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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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의 국민당군대의 빈번한 무장도발로 압록강연선의 긴장상태는 날을 따라 격화되였다. 압록강하류에 위치한 작은 섬인 황초평에 국민당무장악당들이 넘어와서 주민들을 랍치해가더니 갑자기 큰 부대가 쳐들어왔다. 하여 도발자들과 국경경비대사이에 치렬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였다.
김일이 한영덕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대책을 강구하는데 동북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찾아왔으니 빨리 평양에 와서 맞이하라는 소식이 왔다.
벅찬 흥분으로 가슴이 높뛰였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당장 아들과 어머니를 보고싶었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들의 숨쉬고 심장이 뛰는 몸을 그러안고싶었다. 10년전에 한영덕이 소식을 알려주면서 찾아가보라고 할 때 가보지 못했던 그 괴로움과 그동안 쌓인 그리움이 그들을 만나보는 그 한순간에 기쁨으로 폭발할것이다.
그러나 김일은 국경이 불안한 상태에서 자리를 뜰수 없었다. 그는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고 전화로 허창숙을 찾았다.
《어머니와 용석이가 귀국했다누만. 평양에 와서 날 찾는다오.》
《그래요? 정말 기쁘시겠어요. 글쎄 살아있으면 다 만나게 된다니까요.》
《내 시간이 없어 간단히 용건만 말하겠소. 난 지금 신의주를 뜰수 없으니 동무가 가서 내 인사도 전하고 여기로 데려와줄수 있겠소?》
허창숙은 김일의 마음을 다 리해하고있었다. 싸움도 함께 했고 비록 길지 않은 시일이지만 안해로서 함께 가정생활도 했으니 누구보다도 김일을 잘 안다고 할수 있을것이였다. 그 녀자는 김일이처럼 군소리가 없이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알겠어요. 내 당장 떠나겠어요.》
《고맙소.》
송수화기를 놓고 다시 일에 착수하자니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행처불명인 강정익의 아들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다.
얼마전에 있은 일을 돌이켜보니 그의 입귀로 허거픈 웃음이 새여나왔다. 그는 림산호를 생각할 때마다 그 비슷한 모상으로 해선지 강정익이 상상되는것이여서 우정 중하면에 출장을 가는 도당의 한 일군을 통해 산호의 어머니를 만나게 했었다. 그런데 그 일군이 출장길에서 돌아와 하는 말은 김일을 실망케 하였다.
《…산호의 어머니는 산호는 자기가 낳아 기른 애라면서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느냐면서 펄펄 뛰더군요.》
(어리석은 생각으로 괜히 애꿎은 녀인만 놀라게 하고 노엽혔단 말이야.)
김일은 그 일을 회상하면서 입을 다시였다.
(그 애를 찾아야겠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있는지.)
지금 동북에서는
저녁녘이였다. 어스름이 창문으로 발볌발볌 기여들고있었다.
김일은 번거로운 생각을 애써 털어버리고 전화로 한영덕을 찾았다.
황초평의 전투상황을 들으니 침입한 적들은 격퇴되였는데 또다시 덤벼들려고 시도한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내 황초평에 건너가봐야겠소.》 하고 김일은 영덕에게 말하였다.
김일이 당사업에서 제기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조직사업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장종학이 들어왔다. 어디서 달려오는 길인지 종학의 훤한 이마엔 땀발이 돋았고 숨을 씨근거리고있었다.
《어떻게 왔소?》
《멀리 동북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찾아왔는데 왜 아주머니만 보냅니까. 내 역에서 아주머니를 만나 얘기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혀 달려오는 길입니다.》
장종학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막 들이대였다.
《난 지금도 김일동지가 반일부대를 이끌고
김일은 잠시 격한 종학을 바라보았다.
(참 마음이 고운 사람이야. 하지만 험난한 혁명의 길을 계속 걸어가자면 그것 하나만으로는 안되지.)
《종학동무, 날 너무 모진
김일은 더 말하지 않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자를 썼다. 종학은 얼친 사람처럼 김일을 바라보았다.
《동문 왜 그러고 섰소?》
《파견원동지는 어데 가시려고 합니까?》
《내 황초평에 건너가보겠소.》
《그럼 나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거긴 동무가 왜 간단 말이요?》
《나도 파견원동지를 따라가고싶어 그럽니다.》
《황초평은 지금 격전장으로 화했소. 거긴 위험하오. 동무야 사민이 아닌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내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을 취재해서 도일보에 글을 투고하겠습니다.》
《그럼 함께 가보기요. 거기 가면 림산호도 만나볼수 있을거요.》
검푸른 하늘에는 먹장구름들이 타래치고있었다. 습한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파도가 배전을 들이치고있다. 발동선은 1시간나마 검은 물결을 헤가르며 밤안개가 지꿎게 느물거리는 속으로 내달리고있었다. 김일은 한영덕과 함께 선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있는데 장종학은 갑판에 나와 서서 어둠속을 응시하고있었다.
비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장종학은 선실로 들어갈념도 않고 두손으로 갑판의 란간을 꽉 틀어잡은채 까딱않고 서있었다. 그는 그 신념과 의지에 있어서 김일에게 미치지 못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렬등감에 잠겨있었다. 자기는 확실히
그래서 후회도 많이 했고 오늘에 와서는 걸음걸음 김일을 본받자고 하는데도 왜 자꾸 뒤떨어지는것일가?
비에 옷이 젖어들면서 으시시 떨려왔으나 피하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더 세차게 퍼부어라. 이밤에 내리는 비에 변변치 못한 몸도 마음도 깨끗이 정화시키고싶구나.
《장동무, 여기서 왜 비를 맞는거요? 어서 선실로 들어가기요.》
돌아보니 한영덕이 팔을 잡아당기고있었다.
《날 그냥 내버려두시오. 난 지금 나자신에게 벌을 내리고있는거요.》
《벌을 내린다구? 이 사람 무슨 수수께끼같은 소릴 하는거야.》
그제야 종학은 껄껄 웃었다. 자기의 고민을 내색하고싶지 않아 터치는것이여서 어딘가 공허감이 느껴지는 웃음이였다.
《영덕동무, 다른게 아니요. 내 그저 좀 해본 소리요. 자, 들어갑시다.》
잠시후에 배는 황초평에 당도하였다.
비를 맞은 땅은 감탕처럼 발목까지 푹푹 빠져들어간다. 포구에서 동뚝까지 무성하게 자란 갈대들이 비바람에 휘여들며 길을 가로막았다.
김일의 일행은 전지불로 앞길을 밝히며 갈숲을 헤치였다. 비옷들을 입었지만 벌써 아래도리는 화락하니 젖어버렸고 갈숲을 헤치면서 슴새든 물에 앞자락도 젖어들고있었다.
섬주둔 국경경비대 지휘부안은 불을 화끈 때여 건조한 공기가 떠돌았으나 방등불이 약해서인지 어둑시그레하였다. 그래서 패기가 넘치는 젊은 경비대소대장은 부랴부랴 방등 한개를 더 가져다가 심지를 크게 돋구어 불을 달아놓았다. 그리고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와서 고뿌에 철철 넘치게 따라 세사람에게 권하였다.
《당장은 물밖에 대접할게 없습니다. 식사준비를 시켰습니다. 좀 기다리면…》 소대장의 얼굴에는 미안스러운 표정이 어리였다.
《동문 마치 우리가 대접이나 받자고 온 사람들인것처럼 말하는구만.》 영덕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난 담배만 피우면 그만이요.》 김일은 담배갑을 꺼내 한대 물고 소대장에게도 한대 주었다.
《피우시오, 사내들이야 담배면 인사차림이 되는거지.》
방안에는 네사람이 내뿜는 구수한 담배연기가 그물그물 피여올랐다.
소대장은 아직 담배를 피울줄 모르는지 연거퍼 성급하게 담배연기를 들이빨더니 그만에야 기침을 터치였다. 그는 마치 기침의 원인이 국민당놈들에게 있는듯이 불시에 격분을 내뿜었다.
《정말 괘씸한 놈들입니다. 중국인민들을 앞세우고 총질하면서 들어와서는 갈단을 채가지고 도망친단 말입니다. 우리가 경비를 철통같이 하니 이제는 무력으로 침범해들어오는것입니다.》
《현재정황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오.》 한영덕이 하는 말이였다.
《놈들을 완전히 격퇴했습니다.》
소대장은 전투정형을 구체적으로 보고하였다.
《놈들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거요. 또 덤벼들것이니 맞을 준비를 든든히 해야겠소.》
김일이 맛스레 담배를 피우며 듣고만 있다가 심중한 낯빛으로 말하였다.
《경비대력량만 가지고는 안되겠소. 마을청년들로 자위대를 조직해서 섬을 순찰시키도록 합시다.》
이윽고 김일과 한영덕이 대원들의 형편을 료해하는데 소대장이 사기가 나서 자기 대원들에 대한 칭찬을 늘여놓았다.
《모두 얼마나 잘 싸우는지 모릅니다. 이번 전투에서 신입병사가 용감성을 발휘해서 적 세놈을 제꼈습니다.》
《그 신입병사이름이 뭐요?》
김일의 물음에 소대장이 대답하였다.
《림산호라고 합니다.》
김일과 한영덕, 장종학은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소대장을 따라 대원들이 차지하고있는 초소로 나갔다. 아직도 비가 멎지 않고 내리고있었다.
《소대원들은 지금 병실에서 휴식하고있습니다.》 소대장이 안내하면서 하는 말이였다.
중국 대안쪽에 전호를 든든하게 파놓았고 화점을 만들어 중기관총도 설치하였다. 비바람에 갈숲이 설레이고 파도가 기슭을 때리는 소연한 소리가 들려올뿐 전방엔 고요한 정적이 깃들어있다.
전호에 엎드려 감시임무를 수행하고있던 비옷을 입은 병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감시근무중 이상없습니다.》
《이 동무가 이번 전투에서 공을 세운 림산호동무입니다.》
김일의 전지불에 림산호의 놀란 얼굴이 비쳐졌다. 비물이 줄줄 흐르는 그 얼굴엔 이전에는 전혀 볼수 없었던 묵직하고 근엄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이제 더는 어리다고 볼수 없는 병사가 앞에 서있었다.
《산호동무, 수고하는구만.》
《안녕하십니까? 파견원동지.》
산호는 힘차게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그 목소리도 우렁찼고 자세도 름름하여 장종학은 대견스러움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산호는 한영덕과 장종학에게도 인사하였다.
김일이 산호의 쳐든 팔을 내리워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장해, 공을 세웠다지? 축하하오.》
산호는 머뭇거리다가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파견원동지는 제 운명의
장종학이 속으로 산호의 말을 긍정하는데 김일의 얼굴이 찌프러졌다.
《산호는 잘못 생각하고있소. 내가 어떻게 산호에게
찬비가 세차게 뿌려지는 속에서 김일의 말은 모두의 가슴에 뜨겁게 젖어들었다.
(
장종학은 김일의 말을 입속으로 외웠다.
그는 비에 젖은 온몸이 훈훈하게 더워지는듯 한 감을 느끼였다.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삶의 보람이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주었기때문이였다.
《산호, 명심하라구.》하고 김일이 다시금 말하면서 산호의 가슴을 큰 주먹으로 쿡 찔렀다. 한영덕과 장종학은 김일이 주먹으로 도장을 찍듯 하는 행동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표시라는것을 잘 알고있는지라 느슨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알았습니다.》
산호는 힘차게 대답하며 차렷자세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