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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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숙의 부상자리는 빨리 아물어갔다. 그럼에도 아직 일정한 시일의 안정치료가 필요되였으나 그는 자기가 맡은 녀맹사업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부득부득 퇴원하였다. 김일도 그것을 막을수 없었다.
김일이 잠시 속이 알찌근해서 앉아있는데 키가 후리후리하고 균형잡힌 미끈한 몸매에 눈과 코날이 예리해보이는 한사람이 찾아들어왔다.
《동북민주련군 길동분구 공급부 부부장 정두환입니다.》
손님이 자기 소개를 하였을 때 김일의 너부죽한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확 피여났다. 김일은 일어서서 정두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강건동무에게서 왔단 말이지요?》
정두환이 김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옳습니다. 강건동지가 김일동지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김일과 강건은 다같이
《그래 지금 동북정세는 어떻습니까? 아직 형편이 어렵습니까?》
김일의 물음에 정두환은 가슴속의 괴로움을 토하듯 긴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지금 말이 아닙니다.》 하고 정두환은 중국 동북에서 벌어진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당시 중국 동북정세는 중국공산당의 편에 불리하게 번져지고있었다.
작년 1945년 11월 쏘련군대가 동북에서 철수하면서 국민당 반동세력이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대무력을 침입시킴으로써 중국공산당 군대는 피동에 빠지게 되였다. 강건을 비롯한 조선인지휘관들이 조직한 부대들은 물자공급부족에 직면하였다. 당시의 긴박한 정세로 하여 중국공산당 중앙에 손을 내밀수 없었던 길동분구사령부에서는 군복만이라도 어떻게 하나 자체로 풀어보기로 합의하고 정두환을 조선에 파견하였던것이다.
《여기 평북도에서 군복천을 좀 해결받을수 없겠습니까? 전장에서 한겨울을 난 대원들이 봄을 맞았어도 두터운 솜옷을 벗지 못하고있습니다.》
《얼마나 필요됩니까?》
《한 만벌가량은 있어야 합니다.》
김일은 머리를 수굿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머리속에서 고패치는 여러가지 생각이 침침한 그림자가 되여 얼굴에 비끼였다.
사실 그가 쓰려고 건사하고있는 일정한 량의 군복천이 있었다. 강건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데 응당 내주는것이 혁명동지로서의 도리이고 의리일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런 생각을 억제하는 강렬한 지향이 있었다. 괴로운 사색속에 눈앞에 우렷이 떠오르는것은
(후날 강건동무도 내 심정을 리해해줄것이다.)
김일은 솔직한 사람이였다. 그는 정두환이 자기를 좋지 않게 보리라 생각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두환동무,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실은 여기에 군복천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은 요긴하게 쓸 필요가 있어 건사해둔것이니 나로서는 줄수가 없습니다. 량해해주십시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긋다가 말하였다.
《뭐 정두환동무에게 숨길것도 없지요. 우리가 조국에로 개선하기 전에
《민족군대창설사업을 위해서라면야 오히려 우리가 지원을 해야 할터인데…》 정두환은 느슨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쯤한것도 리해하지 못하겠습니까.》
《동무가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강건동무에게 내 심정을 전해주십시오.》
정두환이 가겠다고 일어서는것을 김일이 붙들어앉히였다. 부탁은 들어주지 못하였어도 불원천리 찾아온 사람을 그냥 보낼수는 없었다.
김일은 정두환과 함께 식사를 한끼 나누었다. 정두환이 돌아갈 때 김일은 강건에게 전해달라고 한배낭의 담배와 물주리를 주었다. 강건은 김일과 더불어
김일은 강건에게 편지도 썼다. 그 편지에서 김일은 잊지 못할 동지인 강정익의 아들애에 대해서도 썼다.
김일은 강건에게 진성봉이라는 소년도 찾아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진성봉은 허창숙이 북만에서 함께 싸운 동지의 아들이였다.
김일은 정두환과 작별한 후 신의주국경경비대 지휘부를 찾아갔다. 국경경비대는 지난해말
국민당군대가 안동(오늘의 단동)에 침입한 작년말부터 국경일대가 편안치 않았다. 국민당군벌들은 압록강국경연선에서 빈번히 군사적도발을 감행해오군 하였다. 놈들을 제압하자면 국경경비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하였다.
김일은 경비대지휘부 마당에서 대원들의 제식훈련모습을 한창 지켜보면서 곁에 서있는 한영덕에게 말하였다.
《전투정치훈련에서 기본은 대원들을
《념려마십시오. 아무렴 이 한영덕이
한영덕은 얼마전에
《영덕동무를 믿겠소.》
김일의 말에 영덕의 검실검실한 얼굴에 미소가 어리였다. 이윽고 영덕은 깊은 감회가 깃든 어조로 말하였다.
《우린 또 함께 일하게 되였구만요.》
1936년 김일이 반일부대를 이끌고
《허창숙동지가 반동놈들에게 부상을 당하고 입원했다는데 어떻습니까?》
《퇴원했소. 몸집은 작아도 속은 남자들이상으로 강한 동무요. 아들애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이겨냈소.》
잠시후 김일은 대렬상태에 대해 묻다가 신대원을 한명 받아야겠다고 하였다.
《김일동지가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모든 면에서 합격일테지요?》
영덕은 롱을 섞어 말하였으나 김일은 정색한 얼굴표정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있었다.
《17살난 청년이요. 사람은 괜찮아보이는데 정신적으로 좀 나약한게 탈이라고 할가… 글쎄 한창 앞길이 구만리같은 애가 자살까지 시도했더란 말이요. 아무래도 그를 우리 군대의 강한 군사규률과 화약내풍기는 전장에서 단련시킬 때만이 구원할수 있을것 같소.》
김일은 영덕에게 림산호의 하숙집주소를 대주었다.
《지금 하숙집에서 고독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있을거요.》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영덕은 차렷자세로 서서 힘있게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