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
《민생단》으로 몰린 두사람이 감옥에 갇혀있었다. 왜놈들의 《토벌》공세로 자주 집들이 불타고 그 불탄 재더미를 헤치고 다시 건물들과 살림집들을 일떠세워야 하는 유격근거지의 간고한 생활속에서도 현당에 틀고앉은 숙반공작위원회의 간부들은 《민생단》감옥을 세우는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있었다. 하여 근거지마을의 한귀퉁이에 통나무로 지은 감옥이 존재하고있는것이였다. 출입문이나 벽은 《죄인》들이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굵은 이깔나무로 네귀를 맞추어 든든하게 해세웠지만 바닥은 그저 맨 흙바닥 그대로였다.
지금까지 이 감옥에 있던 《죄인》들은 다 총살당하였거나 어디론가 쫓기여가고 현재 단 두명의 《죄인》들이 강냉이대들을 깔고 드러누워있었다. 골격이 굵직하고 허우대가 큰 청년이 분격을 삭이지 못해 혼자 씨근덕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앉았다.
《이거야 분통이 터져와서 참을수가 있나.》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하였다.
그 청년은 현당의 정치공작원인 박덕산(김일의 본명)이였다. 그의 옆에 누워 생각에 잠겨 지붕서까래들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천정을 올려다보고있던 사람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이 무심하진 않겠지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정익동지는 그래도 배포가 유하구만요.》
박덕산은 현당의 일군인 강정익을 진정으로 존경과 감탄이 어린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키가 작달막한 정익의 다부진 체격의 그 어디라 할것없이 반《민생단》투쟁을 부르짖는 숙반의 좌경분자들이 가한 고문의 상처들이 있다. 살이 완전히 빠져 이제는 관골이 무섭게 두드러진 그의 너부죽한 얼굴도 여러군데 찢기여 피딱지가 앉았다.
강정익은 바로 어제 죽음의 문어구에까지 갔던 사람이였다. 동만의 인민들과
현정부의 뒤산중턱의 사형장에 몰려온 헐어빠진 로동복이나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람들, 살이 빠지고 얼굴색이 질그릇처럼 거멓게 탄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불만의 눈길들로 강정익의 《죄행》을 내리엮고 사형선고를 내리는 숙반공작위원회의 간부를 쏘아보았다. 로골적인 의혹과 불만, 거부의 움직임이 파도마냥 술렁술렁 군중들을 휩쓸어가고있었다. 금시라도 그속에서 그 어떤 반항의 웨침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이때 유격근거지 가까이에 주둔해있던 반일부대병사들이 사형장에 달려들었다. 강정익을 총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몰려온 그들은 집행석에 앉아있는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표정의 인물들에게 거칠고 무지스럽게 항의를 들이대였다.
《강정익이 〈민생단〉이라면 〈민생단〉이 아닐 사람이 누구라는거요?》
《강정익동지를 죽여서는 안되오!》
한 병사는 팔이 묶여 서있는 강정익의 앞을 막아나서며 어깨에서 장총을 벗어들고 흔들어댔다.
《이 사람을 죽이려는자는 내가 먼저 죽이겠다.》
강정익은 지난날 반일부대들에 들어가 공작을 많이 하였으며 어언간에 그들과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로 되였다. 반일부대병사들은 자기들에게 반일사상을 심어주고 혁명의 길로 추동하던 강정익이 결코 왜놈들의 앞잡이가 될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당시는 《민생단》혐의자를 동정하거나 감싸고들면 곧 그자신이 《민생단》으로 몰리는 험악한 세월이였다. 박덕산이 《민생단》으로 몰린것도 다름이 아니라 현당일군인 강정익과 가까운 사이라는것이며 보다 엄중한것은 덕산이가 강정익이 《민생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는 리유때문이였던것이다.
반일부대병사들이 들고일어나는것은 문제가 달랐다. 그들은 모두 중국인들이고 혁명군중도 아니였기에 《민생단》으로 몰수도 없었던것이다. 민족배타적인 좌경분자들은 하는수없이 강정익의 총살을 취소하였으며 그의 《죄》를 다시 조사해보겠노라고 반일부대병사들과 군중들의 불만을 눅잦혀놓았다. 그러나 강정익을 석방시키지는 않고 다시 감옥에 끌어다넣었다.
강정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그도 역시
정익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박덕산도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오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며칠전의 밤에 있은 일이 떠올랐다. 적구에 공작나갔던 박덕산이 유격근거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가족들과 오래간만에 상봉이 이루어진 그런 밤이였다. 그런데 그밤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밥 한술을 먹고나자 인차 등을 떠밀어 되돌려보내려고 애썼던것이다.
《아애비야, 어서 당장 도망치거라. 〈민생단〉에 몰리면 큰일이 아니냐.》 어머니는 저고리고름으로 자꾸 눈물을 찍어내면서 말하였다.
어머니의 가늘게 떨고있는, 모진 고생살이에 꺼칠해지고 마디진 손이 덕산의 눈을 찔렀다.
아버지는 곰방대를 물고 뒤전에 앉아 말없이 독한 써레기담배를 뻐금뻐금 피우고있었다. 방 아래목에서는 8살에 잡히는 아들 용석이가 씩씩거리며 단잠을 자고있었다. 덕산은 용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였다.
《내가 누구를 피해간단 말이예요. 내가 〈민생단〉이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지.》
저도 모르게 허거픈 웃음이 새여나왔다.
현당간부인 강정익이 《민생단》으로 체포되면서 박덕산이도 《민생단》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제 숙반공작위원회의 사람들이 박덕산의 집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덕산이 적구공작에서 돌아오면 즉시 숙반공작위원회에 출두시키라는것이였다.
근거지에서 《민생단》으로 몰린 사람들이 어떻게 죽고 쫓겨갔는가를 보아온 덕산의 부모들은 아들을 사지판에 들도록 내버려둘수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하고 아버지는 철문마냥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힘들게 열었다.
《당분간 어디로든 피해 몸을 숨기는것이 좋을것 같다.》
왕년에 함북 명천지방의 의병이였고 그후에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쓰라린 실패와 좌절을 겪은 아버지는 모든것을 체념해버리고 세상을 저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였다. 의병의 화승대를 그대로 어깨에 걸치고 왜놈들에게 쫓기워 두만강을 넘어가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4살에 잡히던 어린시절에 조국땅을 떠나온 박덕산은 나라잃은 설음을 뼈에 새기며 이국땅에서 자랐다.
연길현 석마골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독립군들의 련락소로 되였다.
덕산은 서당에서 글을 깨치던 그때부터 독립군들의 련락원노릇도 곧잘하였고 왜놈들에게 쫓긴 독립군들이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져가고 공산주의혁명바람이 불어오면서부터는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투쟁의 길에 나섰다. 강정익은 박덕산의 상급이면서 동시에 그에게 혁명적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였다.
정익은 일찍부터
강정익은 덕산에게 조선혁명의 젊은
희망과 신심에 넘쳐 전진하던 조선혁명의 앞길에 오늘과 같은 시련이 닥쳐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나도 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어찌겠니. 혁명도 혁명이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리를 수굿하고 앉은 덕산의 귀전을 울리였다.
어머니의 흐느낌소리가 들리였다.
《원 세상두… 이렇게도 못살게 굴다니…》
덕산은 외독자였다. 덕산의 우로 누이가 있고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었다. 손우 누이와 매부는 일찍부터 혁명의 길에 나섰는데 왜놈들과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부모들이 짝을 무어준 덕산의 안해도 왜놈들의 《토벌》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부모들에게는 덕산의 존재가 너무도 귀중한것이였다. (그마저 잃는다면 누구를 믿고 살아간단 말인가.) 하고 그들은 생각하고있었다.
덕산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난 결코 비겁하게 도망치는 존재가 될수는 없다.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혁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
《아버지, 그자들이 날 어쩌지 못할거예요. 그자들에겐 증거가 없어요.》
《그럼 현당의 그 어른에게선 무슨 죄의 증거라도 나졌단 말이냐? 그 어른이야 동만에 널리 알려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혁명을 피해가고싶지는 않아요.》 덕산은 고집스럽게 말하였다.
고콜불이 금시 꺼질듯이 가물거리였다. 밖에서는 그밤따라 모질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들창을 드르릉 울리였다.
다음날 아침 박덕산은 뻐젓하게 현당을 찾아갔고 거기서 강정익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생단》모자를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것이였다.
감옥의 구석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길을 주니 재빛쥐 한마리가 구멍에서 기여나왔다. 낟알을 찾는지 까만눈을 반들거리며 강냉이대밑을 뒤진다. 덕산은 가만히 쥐를 지켜보았다. 이전에는 쥐만 보면 오싹하니 소름이 끼쳤는데 근거지에서 극심한 식량곤난을 겪으면서 그 작은 설치류도 먹을것으로 보이게끔 되였다. 한창 식량고생을 할 때는 사람들이 풀도 가리지 않았고 뱀도 없어서 잡아먹지 못하였다.
(사람 먹을것도 없는데 네놈은 그래도 괜찮게 살이 졌구나.)
등에는 재빛털이 부르르하고 배에는 희슥한 털이 덮인 쥐가 발볌발볌 다가오고있다. 어쩌나 보자 하고 까딱않고 앉아있으니 발치까지 다가온다. 지그시 그놈을 바라보노라니 왜서인지 속이 메슥메슥해왔다.
이어 그는 자기도 모를 강렬한 증오와 울화가 북받쳐오르면서 발길로 힘껏 쥐를 걷어차버렸다.
《짹―》
쥐는 다급한 소리를 지르면서 벽에 부딪쳤는데 놀랍게도 인차 기운을 회복하고 구멍속으로 달아나버리였다.
《공연히 쥐새끼에게 화를 내는군요.》 정익이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덕산이도 시무룩하니 따라웃었다.
《정익동지는 죽는게 무섭지 않습니까?》
정익은 일어나 앉았다. 그는 강냉이대 한대를 들고 뚝뚝 꺾어대며 말하였다.
《이 한몸 죽는거야 무서울게 있겠습니까. 숱한
정익은 해빛이 스며들어오는 뙤창을 바라보았다. 그의 해쓱하니 여윈 얼굴에는 그 어떤 그리움의 표정이 어려있는것만 같았다.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나고 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리더니 덕산의 아들 용석이가 꾸레미를 들고 들어왔다. 덕산의 집에서 식사를 가지고 온것이였다. 꾸레미를 푸니 강냉이알에 산나물과 도토리를 섞어 만든 범벅이 나졌다. 가을을 한지 얼마 안되였지만 여전히 식량사정은 긴장하여 근거지사람들은 세끼 배를 불리지 못하고 살고있었다.
《용석아, 넌 밥을 먹었니?》 정익이가 용석이의 더벅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물었다.
《예.》 용석은 심드렁하여 서있었다.
《앉아라.》
하고 덕산이 말하였으나 아들은 고집스럽게 서서 한쪽구석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린 소년에게 무엇인가 대단히 불만스러운것이 있는것 같았다. 덕산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개의치 않고 범벅덩어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어서 듭시다.》 덕산은 생각에 잠겨있는 정익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식사를 끝내자 용석이가 그릇을 무명보자기에 싸며 말하였다.
《아버진 왜 여기에 그냥 갇혀있는거예요?》
《그건 무슨 소리냐?》 덕산은 얼떠름해서 아들에게 물었다.
《왜 정익아저씨하고 둘이 도망치지 않아요?》
소년은 금시 울음을 터뜨릴듯 까밋한 얼굴을 찌프리고 울먹거리고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꾸 울어요. 아버지가 이제 죽을수 있다는거예요.》
(이 애가 아버지, 어머니가 하는 소리를 귀동냥한 모양인가.…)
덕산은 쓸쓸한 눈길로 아들애를 보다가 공허한 웃음을 조용히 지었다.
《용석아,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말아. 정익아저씨하고 있는데 일없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어쩌지는 못해.》
정익은 자리에서 일어나 용석의 작은 몸뚱이를 슬그머니 그러안아준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는 애모쁜 미소가 어려있었다. 평소에 덕산의 아들 용석을 친자식처럼 사랑해준 정익이였다.
《용석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말란다고 말해주렴.》
《알겠어요.》
용석은 정익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쿨쩍거리며 울었다.
《그만 그쳐라. 사내녀석이 울긴… 어서 가봐라.》 덕산은 가슴이 아릿하였으나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용석이가 감옥에서 나가자 정익이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래도 덕산동무는 복이 있습니다. 저렇게 끌끌한 아들애가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 가족들 소식을 모릅니까?》 덕산은 더욱더 침울해지는 기분으로 물었다.
강정익의 가족은 조선에 있었고 그는 혼자 동만에 와서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 3년전에 그는 안해에게 자기를 찾아오라고 편지를 보냈었다. 그는 안해가 2살에 잡히는 아들애를 업고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건만 끝내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도의 고향에 알아보니 안해는 남편을 찾아간다면서 떠나갔다는것이였다. 이전에 정익은 행방불명된 가족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만나게 될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생활해왔었는데 이마적에 와서는 그 희망마저 잃어버린것만 같았다.
《분명 왜놈들의 〈토벌〉에 걸려들어 잘못된것 같습니다. 아들애를 낳았다는데 난 아직 그 애 얼굴도 보지 못했지요. 안해와 아들이 다 왜놈들에게 잘못되였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몸부림치며 벌떡 일어나군 합니다.》
덕산은 저도 모르게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왜놈들의 간도지구의 조선인부락들에 대한 야만적인 《토벌》을 상기하기만 해도 덕산은 치가 떨리였다. 바로 덕산의 안해인 용석의 어머니도 본가집이 있는 마을에 갔다가 놈들의 《토벌》에 맞다들어 희생되였던것이다.
순박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안해였다. 시아버지의 생일이 박두했는데 가난한 집에는 생일상을 차려올릴만 한게 별로 없었다. 마을의 한 녀인이 가난하면 효도도 제대로 할수 없는것이라고 위로하듯 말했는데 그 말이 안해의 귀에 거슬렸다. 하여 안해는 몇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본가집에 가서 무엇을 얻어오겠다면서 집을 떠나갔던것이다.
《용석이 아버지, 오늘중으로 돌아오겠으니 걱정마세요.》
이런 말을 남기고 웃으면서 떠나간 안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비보를 듣고 한달음에 처가집이 있는 마을에 달려가보니 마을은 온통 불타버렸는데 그때까지도 여기저기서 그물그물 연기를 피워올리고있었다. 왜놈들은 혁명촌으로 알려진 그 마을을 초토화해버렸던것이였다.
덕산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통곡소리, 흐느낌소리를 들으며 반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안해를 찾았다. 불에 타서 새까맣게 된 녀인, 꼭 모아쥔 손에 결혼식때 덕산이 끼여준 동가락지를 쥐고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이 진 이 녀인이 자기의 안해라고는 정녕 믿어지지 않았다. 덕산은 안해를 그러안고 피눈물을 쏟으며 몸을 떨었다.
《이 악귀같은 놈들아.》
덕산은 땅을 치며 왜놈들을 저주하였다.
놈들은 안해뿐 아니라 처가집 일가모두를 학살하였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들중에 왜놈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것인가. 그로 하여 중국 동북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혁명바람이 세찬 곳이 동만이였고 혁명세력의 골간을 이루고있는 사람들도 다름아닌 조선인혁명가들이였다.
그런데 지금 반《민생단》투쟁의 회오리바람이 무고한 조선인혁명가들을 쓰러뜨리고있는것이였다.
《불구대천의 원쑤인 왜놈들을 쳐없애고 빼앗긴 조국을 찾아야겠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혀있으니 너무나 통분한 일이 아닙니까.》 덕산은 부시럭부시럭 마라초를 말며 말하였다.
덕산은 슬프거나 화가 나도 담배, 흥분되거나 기뻐도 담배를 찾는 담배질군이였다.
《나도 한대 말아 피워봅시다.》
정익이 담배연기를 내뿜는 덕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덕산은 의아하여 정익을 쳐다보았다. 정익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였기때문이였다.
《어찌된 일입니까?》
《왜선지 담배를 피우고싶군요. 냄새가 구수한데요.》
정익은 덕산이 말아주는 담배를 몇모금 빨다가 속이 개끼는지 기침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담배불을 끄지 않고 조심스럽게 계속 피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번 피워보았습니다.》
정익은 담배꽁초를 흙바닥에 비벼껐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덕산동무, 나는 아무래도 동무들과 같이 얼마 더 일할것 같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권력장악에 환장한자들은 기어코 나를 죽이려고 할겁니다. 난 알고있습니다. 그걸 피할수는 없을겁니다.》
주구단체인 《민생단》을 조작한것도 일본놈들이였고 유격근거지들에서 벌어진 반《민생단》투쟁을 혁명대렬을 분렬와해시키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온갖 음모와 간계를 다 꾸며낸것도 일본놈들이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그후에 다 밝혀졌지만 그 당시의 근거지사람들은 그저 반《민생단》투쟁의 구호밑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사태에 전률하고 통탄할뿐이였다. 사실 반《민생단》투쟁의 혼란속에서 자기의 권력야심을 이루어보려는 자들이 날뛰고있었다.
《나는 최후의 순간에 혁명만세를 웨치며 죽을것입니다.》 하고 강정익은 말을 계속하였다. 《각오를 하고있지만서도 솔직히 말하면 비통하고 억울한 생각을 어찌할수 없군요. 지금 얼마나 많은 우리 동지들이
《아닙니다. 그자들이 정익동지를 함부로 처형할수 없을겁니다.》
덕산은 격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정익은 덕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듯 자기 생각에 잠겨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정익의 가슴에 굳건히 들어앉은 신념이 덕산의 심장을 울리였다. 덕산은 정익이 어째서 비장한 최후를 예감하면서도 그처럼 태연하고 마음이 안정되여있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닫는것만 같았다.
얼마나 훌륭한
(나도 한번
(
박덕산은 강정익이 그처럼 빨리 희생되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고있었다. 그는
유격근거지는 왜놈들이 쏘아대는 박격포탄소리와 적아간이 맞불질하는 자지러운 총소리들로 하여 그리고 마을들을 뒤덮는 화염과 타래쳐오르는 검은 연기로 하여 무섭게 몸부림치는것만 같았다.
박덕산은 감옥보초를 서던 자위대원청년을 부축하면서 뒤산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이마가 좁고 머리칼이 총총한 자위대원청년은 적들이 쏘는 눈먼 총탄에 넙적다리를 부상당하였다. 그는 더 걷기가 힘이 든듯 맥을 풀었다.
《날 두고 먼저 뛰십시오.》
그는 아예 주저앉고말았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자, 어서 내게 업히시오.》
덕산은 청년에게 등을 돌려대며 무릎을 굽히였다.
《난 일없습니다. 내 걱정은 마십시오.》
어리무던해보이는 그 청년은 그냥 내뻗치였다.
이때 한걸음 뒤져오던 강정익이 노한 소리를 질렀다.
《무슨 투정질인가? 그래 동문 놈들에게 잡혀 값없이 죽겠다는거요?》
현당의 쟁쟁한 간부였던 강정익의 목소리는 찌렁찌렁하였고 사람을 격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머리를 숙인 자위대원청년의 두눈에 눈물이 고이였다.
《날 용서하십시오. 난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난 그저 시켜서 그 더러운 일을 했던거예요.》
청년은 《민생단》감옥을 지키던 자기자신에 대한 뼈아픈 혐오감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량심적인 청년이였다.
《우리가 왜 그걸 모르겠나. 자, 어서 가자구. 살아서 왜놈들과 싸워야 할게 아닌가. 내게 업히라구.》
정익은 들고있던 자위대원의 장총을 덕산에게 넘겨주고 청년을 업으려고 하였다. 덕산이 정익을 제지시키였다.
《내게 맡기십시오. 정익동지는 지금 몸이 말이 아닙니다. 제 한몸도 가누기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덕산은 기어코 자위대원을 등에 업고 달리였다. 빽빽한 잡관목들을 헤치느라니 삐죽한 가지들에 옷이 찢어졌고 살도 찢기워 얼굴에 피가 내배였다. 얼마간 산발을 달리노라니 땀으로 온몸이 화락하니 젖어들고 심장이 금시 밖으로 튀여나올듯이 마구 들뛰고 숨이 턱에 닿는다.
정익이 옆에서 교대하자고 소리쳤으나 듣는척도 않고 고집스럽게 걸음을 옮기였다. 산중턱에 다달았는데 저바로 골짜기에 모여앉은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뜨이였다. 그들은 이불이나 가마, 강냉이자루와 같은 얼마간의 가산을 지고 피난해온 근거지마을사람들이였다. 대체로 늙은이들과 녀인들 그리고 아이들이였다. 청년들은 유격대와 자위대에 들어 놈들과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덕산동무, 이 자위대원동무를 저 사람들에게 맡기고 전투장을 찾아오시오. 아무래도 난 먼저 가야겠습니다.》 하고 정익이가 뒤에서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걸음을 옮기려던 덕산은 문득 누런 군복을 입은 왜놈들 십여놈이 피난민들쪽으로 은밀히 기여들고있는것을 발견하였다.
《왜놈들입니다.》
덕산은 다급히 말하며 자위대원청년을 내려놓았다.
왜놈들이 유격대의 진지를 우회하고있는것이였다. 놈들이 당장 피난민들을 발견할수 있었다.
강정익은 한순간 놈들을 노려보더니 덕산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놈들을 유인해야겠습니다.》
《내가 놈들을 달고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덕산동무는 꼭 살아서
정익은 덕산이 어쩔새가 없이 총을 들고 바위벼랑들이 삐죽삐죽한 산등성이를 향해 치달아올랐다. 그의 모습은 누렇게 황이 들어가는 참나무숲에 가리워져버리고 잡관목들과 잎새들이 흔들리였다. 이윽고 그쪽에서 총소리가 울리였다. 왜놈들속에서 비명소리가 울리고 한놈이 쓰러지는것이 보이였다.
《이놈들아, 유격대가 여기 있다.》
정익이의 큰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지였다. 놈들이 뒤로 돌아 정익이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인민들이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리고 반대쪽으로 밀려갔다.
덕산은 부상당한 자위대원청년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 누워있으라고 말하고 정익이가 쏘는 총소리가 멀어지는쪽으로 잡관목을 헤치고 달리였다. (총! 총이 있었으면…) 이런 생각이 머리를 치는 속에서도 그는 정익이 제발 무사하였으면 하고 빌고 또 빌었다.
이때 그쪽에서 《만세!》소리가 울리더니 왜놈들의 띠염띠염한 총소리를 짓눌러버리며 콩튀는것 같은 요란한 총소리가 터지였다. 유격대원들이 달려와 놈들을 쓸어눕히고있었다.
(됐구나!)
덕산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달려갔다. 유격대원 몇명이 곰이 웅크리고있는듯싶은 바위옆에서 누군가를 둘러싸고 들여다보고있었다. 덕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활랑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가가니 강정익이 쓰러져있는것이 아닌가.
《정익동지!》
덕산은 유격대원들을 헤치고 들어가 정익을 그러안았다. 두손에 장총을 꼭 그러잡고있는 정익의 앞가슴을 총알이 꿰뚫었는데 피가 랑자하니 그 주위에 흘러내렸다. 이윽고 왜놈들을 몽땅 쏴눕힌 유격대원들이 달려와 정익의 주위에 둘러섰다.
《정익동지, 눈을 뜨십시오.》
피투성이가 된 정익을 붙안고 흔드는 덕산의 두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익은 힘겹게 눈을 뜨더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을하늘은 마치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천연스레 푸르고 맑게 개여있었다. 그의 눈길이 비통감에 입술을 떨며 우는 덕산의 얼굴에 멎어섰다. 종이장처럼 창백한 피부가 뼈를 감싼듯싶은 정익의 피기없는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덕산동무, 신심을 가지십시오.》
정익은 피가 내밴 입술을 간신히 열고 떠듬거리며 말하였다.
《민족의
아, 최후의 순간까지 신념을 잃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죽어서는 안된다!
《함께 싸웁시다. 우리 함께
정익의 오른쪽눈귀가 파르르 떨더니 끝끝내 맥이 진한듯 두눈이 스르르 감기고말았다. 덕산의 팔에 받들려있던 고개가 맥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정익동지,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합니까.》
덕산은 숨이 넘어간 정익을 붙안고 흔들며 사나이의 울음을 터뜨렸다. 뒤에서 유격대원들도 모자를 벗고 눈물을 흘리였다. 비분의 감정이 숲을 흔드는듯 조용하던 숲이 뒤설레이였다. 락엽들이 우스스 떨어져내리였다.
덕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누구에게 항변하듯 부르짖었다.
《그래 이 사람이 〈민생단〉이란 말이요?》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덕산은 억이 막혀 다시 부르짖었다.
《어디 대답해보란 말이요. 정익동지가 그래〈민생단〉이란 말인가!》
덕산의 절통한 목소리가 숲을 흔들며 메아리쳐갔다.
강정익이 희생된 후에 군중의 여론이 분분하여 박덕산은 석방되였다.
그러나 현당의 요직에 틀고앉은자들은 음으로 양으로 덕산과 그의 가족을 박해하였다. 덕산은 가족을 데리고 동남차라는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곳에는 《민생단》가족들이 서너집 와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고있었다. 정신육체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덕산은 동남차에서 앓아누웠다.
피눈물로 얼룩진 그해가 지나고 다음해 봄이 왔다. 그 봄에 온 가족의 지성으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덕산은
앓고나서 뼈가 앙상한 몸으로 집을 나서는 덕산을 아버지, 어머니는 부디 만류할념을 하지 못하였다. 아들이 얼마나
《네가 가다가 쓰러지면 어쩌겠니?》
어머니는 살이 다 빠져 솜저고리가 후렁후렁해진 덕산을 눈물이 글썽하여 쳐다보다가 그의 굵직한 손을 꼭 잡아쥐고 쓸었다.
《걱정마세요.
아버지는 방바닥에서 곰방대를 빨면서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한마디 했다.
《가야 할 길이면야 가는거지.》
아들 용석이 덕산에게 매달렸다.
《아버지, 나도 데리고 가줘요.》
덕산은 아들애를 그러안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용석아, 아버지가 가는 길은 너무나 멀구나. 그러니 널 데리고서는 갈수 없다.》
용석은 훌쩍훌쩍 울었다.
《난 아버지를 따라가고싶어요. 내가 아버지를 돌보겠어요.》
덕산은 별안간 불덩어리를 안은것처럼 가슴이 후꾼해졌다.
혁명을 한다고 늘쌍 집을 떠나 살아온 자기자신의 지난날이 돌이켜졌다.
오늘은 《민생단》혐의자로 박해를 받고 죽을 지경으로 앓다가 겨우 일어났는데 또다시 떠나겠다니 이 철없는 애도 진정할수 없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일찍 어머니를 잃은 아들애에 대한 동정과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다.
《아버지 걱정은 말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집에 있어라. 난 인차 돌아오겠다. 할아버지, 할머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덕산은 억지로 용석을 떼여놓았다.
이때 덕산의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덕산이도 잘 아는 현정부에서 일하는 성실한
그는 금방 집을 나서는 덕산을 보고 무작정 달려들어 손을 잡고 열정적으로 흔들었다.
《이젠 일어났구만. 됐소, 잘됐소.》
그는 의아하여 쳐다보는 덕산에게 환희에 넘치는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왜 얼빠진 사람처럼 날 보는거요? 여보 덕산동무, 이젠 우리 조선사람들이 살길이 열렸소.》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겁니까?》
《다홍왜에서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가 열렸다오. 그 대회에서
《그게 정말입니까?》
덕산의 우물속같던 두눈이 초롱불이 켜진듯 번쩍거렸다.
《내가 무엇때문에 헛소리를 한단 말이요?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요? 내 그럴줄 알았지요. 하늘이 무심치 않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뇌이는 덕산의 두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눈이 내리고있었다. 덕산은 눈송이들이 날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희뿌연 하늘에서
(그럴테지, 그렇구말구.)
그는 다시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덕산은 왕덕태군장이 자기를 부른다는 현정부일군의 말을 듣고 한순간 온몸을 사로잡았던 감격과 흥분에서 벗어났다.
《무슨 일때문입니까? 이 〈민생단〉혐의자가 군장동지에게 무슨 필요가 있다는겁니까?》
《이젠 그 〈민생단〉이라는 소릴 그만두오. 군장동지는 원래부터 덕산동무를 믿고있었소. 유격근거지에서 강정익동지의 희생을 두고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한분이 군장동지가 아니였소?》
덕산은 머리를 숙이였다. 강정익에 대한 말만 들으면 예리한 칼날이 가슴을 마구 허비는듯 쓰리고 아픈 덕산이였다.
이들의 말을 듣고있던 어머니도 울었고 아버지는 감심한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끄덕거렸고 아들애는 좋아서 어쩔줄 모르며 다가와 덕산의 팔을 잡는다.
《아버지, 그럼 나도 근거지에 돌아가 아동단생활을 할수 있지요?》
《그렇구말구.》
잠시후 덕산은 마음을 다잡고 현정부의 일군과 함께 유격대지휘부를 찾아가 군장을 만났다. 오래동안 조선혁명가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군장으로까지 발전한 이 체소하고 얼굴이 거밋한 중국인혁명가는 조선말에도 능하고 조선사람들에 대한 리해와 동정이 깊은 사람이였다.
그는 지난날 박덕산이 적구지하공작과 반일부대공작에서 거둔 공적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반일부대공작임무를 주기 위해 덕산을 불렀던것이다.
왕덕태는 지금 반일부대들이 곤경을 겪고있는데 그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어 끝까지 왜놈들과 싸우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면서 부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