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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6


장종학은 1945년 10월말부터 신의주로 와서 도공산당 선전부에서 사업하였다.

11월초의 어느날 퇴근시간에 장종학이 김일을 찾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자기 집으로 청하였다. 장종학의 생일날이라기에 김일은 군말없이 따라나섰다.

《마침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장종학동무가 어떻게 사는가 집구경하러 가려댔소. 언제 집들이를 하겠는가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어디 찾아주어야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럼 내가 실책을 범한가 보군요. 난 내 생일날에 맞추어 김일동지를 청하려고 별렀는걸요.》

《그래? 어쨌든 고맙소. 그런데 뭘 들고간다? 난 빈손뿐인데…》

김일은 두손바닥을 펴보이며 난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어서 가십시다.》

장종학은 나무람하듯 얼굴을 찌프리며 김일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밖에서 김람인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함께 장종학의 집으로 향하였다. 종학은 아직 비여있던 집 한채를 배정받고 중하에 있던 가족을 데려왔었다. 종학의 부모들은 아직도 중국에서 살고있었고 젊은 안해가 가정의 전부였다.

종학의 집에 와있던 한 중학교학생이 김일에게 인사하였다. 좀 작을사 한 키에 소년답지 않게 체통이 바라지고 이마와 볼편에 좁쌀알만 한 여드름들이 내돋은 그를 보는 순간 김일은 왜선지 가슴이 후둑 뛰였다.

《림산호라고 중하에서 우리 이웃에 살던 애입니다. 신의주에서 하숙생활을 하며 동중학교에 다니고있습니다.》하고 장종학이 김일에게 그 학생을 소개하였다.

《림산호라… 부모님들은 뭘하고있소?》

김일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아버지는 해방되기 이태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중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있습니다.》

림산호가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그래? 집을 떠나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겠구만. 공부를 잘해서 새 민주조선을 떠메고나갈 역군이 되기를 바라오.》

안주인의 성의가 엿보이는 조촐한 음식상에 둘러앉아 술 한잔씩 들었을 때 김람인은 깍듯하게 무릎을 꿇고앉아있는 산호의 한손을 잡아쥐며 말하였다.

《산호는 열여섯살이지만 문학세계는 대단히 높습니다.》

보매 람인이도 산호에게 그 어떤 애정을 느끼는듯싶었다.

《선생님은 절 춰올리시는구만요.》

산호는 얼굴을 붉히였다.

《그러니 산호는 람인선생에게서 시를 배우는 모양이구만.》

김일은 옹골찬 몸집이며 검스레한 얼굴에서 어쩐지 당돌함이 느껴지는 산호에게 호기심어린 눈길을 던지였다.

《내가 뭘 배워줄게 있겠습니까.》

람인이 한손으로 안경을 밀어올리며 어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저 산호가 시를 사랑하고 또 나를 따르니 내 이따금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따름입니다.》

《난 람인선생님이 쓴 시들을 좋아합니다. 나자체는 별로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써보느라 하는데도 잘되지 않습니다.》

산호는 겸손하게 말하였다.

《그래, 람인선생이 쓴 시들중에서 어느 시가 마음에 드나?》

《〈청색마〉도 좋고… 다른 시들도 마음에 드는게 많습니다.》

《산호, 너 이 자리에서 시를 한번 랑송해보렴. 람인선생이 해방을 맞아 쓴 시가 있지?》

종학이 산호를 부추겨댔다.

《잘 랑송할줄은 모르니 량해해주십시오.》

산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방》이라는 제목의 시를 랑송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세상 내 세상이 왔다

마음놓고 살아갈

이날의 아침은 찬란도 하다


거리마다 기발을 들고

골목마다 프랑카드 걸고

해방의 은인 김일성장군님을 맞자

우리 나라 가꿀 농쟁기를 들고…


해방이다 해방이다

이 땅의 모든것!

자유조선의 모든것!

오호, 창천의 태양은 밝아라

2천만동포여 일어서라

명일의 앞길은 무궁하려니!


김일이도 장종학도 안주인도 박수를 쳤다. 김람인만이 씁쓸해서 앉아있었다.

《산호가 시를 잘 읊는구만, 좋아.》

김일은 산호를 칭찬하였다.

《람인선생이 쓴 시도 마음에 드오. 해방의 은인 김일성장군님을 맞자는 구절이 얼마나 좋소. 그런 의미에서…》

김일은 다시금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에 김일은 인차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원래 이런 좌석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였다. 아마 그것은 빨찌산시절부터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습관되여서일것이다.

람인이도 김일을 따라 일어서는데 종학이 붙들었다.

《김형은 좀더 앉아있소.》

람인과 종학이 보통학교동창이라지만 나이상으로는 람인이 서너살 우였던것으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데서는 종학이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람인이 못이기는체 하고 주저앉았다.

림산호가 김일을 따라나섰다.

《난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그럼 가봐라, 또 네 형이 행패질하면 야단이지.》 종학은 산호가 가는것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형이 왜 행패질을 한다는것인가?)

김일은 종학의 말에서 의문을 느끼였으나 남의 가정문제라 더이상 캐여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는데 희미한 가로등이며 거리의 장식등들이 명멸하면서 어둠과 싸우고있었다.

김일이 산호와 함께 얼마쯤 걸었을 때 갑자기 웬 청년이 달려들어 무작정 산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타격이 어찌나 센지 산호는 벌렁 나가넘어졌다.

《이게 무슨 망동이야?》

청년이 다시 산호에게 달려들려는것을 김일이 막아나서며 위엄차게 소리쳤다. 허우대 크고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김일에게 위압감을 느꼈는지 청년은 더 기승을 부리지 않고 산호에게 소리만 질렀다.

《이자식, 그만큼 일렀는데도 말을 안 듣는구나.》

김일이 슬며시 청년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동문 누구요?》

《난 이자식 형이요. 내가 동생에게 버릇을 가르치는데 무슨 간참이요?》

길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 어떤 힘을 얻었는지 청년은 김일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산호에게 덤벼들려 했다.

김일은 날랜 동작으로 청년의 팔을 잡아당겨 등뒤에서 꺾었다. 청년이 비명을 질러댔다.

《덜돼먹은 자식!》

김일은 잠시 청년을 노려보다가 담벽쪽으로 밀쳐버렸다.

《정신차려. 더 망동을 부리면 보안서원들을 부르겠다.》

비칠거리다가 자기를 수습한 청년이 김일과 마주섰다. 산호가 한손으로 코등을 싸쥐고 다가와 청년의 팔을 잡아당겼다.

《형, 그만두라요.》

그러니 형이 맞긴 맞는 모양이였다. 산호의 형이 행패를 부린다고 장종학이 우려하는 소리를 한것이 우연치 않았다. 이자가 정신병자인가?

괴이쩍은 청년이 산호를 뿌리치고 만만치 않게 김일을 흘겨본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난 도공산당의 김일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내 이름을 들어봤나?》

《아하, 그러니 당신이?… 그렇구만요.》

청년은 놀란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였다.

《이거 몰라봐서 안됐습니다. 신의주에서 김일동지를 모르면 안되지요.》

짐짓 정중하게 괴여올리는 말속에는 진한 야유가 슴배여있었다.

《내 동생이 공산당의 큰 간부와 동행할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내 당신의 체면을 봐서 이쯤하고 물러서지만 동생이 다시 공산당사람들과 다니는것을 보면 용서치 않겠습니다.》

산호의 형은 홱 돌아서더니 바람처럼 사라져버리였다.

산호는 코피를 흘리고있었는데 종이로 아무리 닦아도 멎지 않았다.

김일은 손수건을 꺼내여 산호의 코피를 닦아주었다.

《그래, 산호의 친형이 맞니?》

《예, 우리 형은 권투구락부에 다닙니다.》

《그러니 주먹이 꽤 세겠구만. 그런데 형이 공산당을 미워하는 까닭이 뭐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형은 내가 공산당간부인 김람인선생에게 다니고 장아저씨집에도 다닌다고 해보는겁니다.》

《이제 집에 가면 또 맞겠는데 차라리 나와 같이 우리 집에 가서 잘가?》

《아닙니다, 집에 가겠습니다.》

그런데 산호는 왼쪽팔굽을 움켜쥐고있었다. 김일이 팔소매를 걷어올려보니 피가 내배였다. 아마 넘어지면서 상한 모양이였다.

《안되겠어, 우리 집에 가자. 여기 가까운데 있어. 비상약품도 있으니 제꺽 처치를 받고 가라구. 우리 집사람이 웬만한 처치는 할줄 안다니까.》

김일은 산호를 억지로 자기 집으로 끌었다. 산호에 대한 동정심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산호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가 남같지 않게 생각되는것이였다.

김일의 집은 신의주중심부의 도당청사가까이에 위치하고있었다.

울타리를 두른 단층짜리 아담한 기와집이였다. 김일이 산호를 데리고 들어가자 몸매 자그마한 아련한 녀인이 젖먹이애를 안고 마중하였다.

그 녀인은 김일의 안해 허창숙이였다. 김일과 허창숙은 원동의 훈련기지에 있을 때 김일성장군님과 동지들의 축복속에 소박한 결혼식을 하였다.

산호는 얌전하고 연약해보이는 이 녀인이 이전날 총을 들고 풍찬로숙하며 왜놈들과 용감히 싸운 빨찌산녀대원이였다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내 손님을 데리고 왔소. 헌데 넘어져서 팔굽이 벗겨졌소. 좀 처치를 해주어야겠소.》

산호를 허창숙에게 소개한 김일은 아들애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애를 둥게둥게 어루며 웃었다.

《우리 애기, 잘있었나. 어이구, 우리 애가 아버지가 안아주니 반갑다고 웃는구만.》

어린애는 김일의 팔에 안겨 해죽해죽 귀엽게 웃어댔다.

방에 들어선 산호는 너렁청한 집안에 가장집물이라는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놀랐다. 깨끗한 장판방구석에 몇개의 상자와 트렁크 두개가 있을뿐이였다.

비상약품함을 찾아낸 허창숙이 치료를 하자고 다가들자 산호는 저으기 부끄러움을 느끼였다.

《뭐 별로 큰것도 아닌데 파견원동지가 자꾸 끌어서…》산호는 송구해서 중얼거렸다.

《자그마한 상처라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거예요.》

허창숙은 다정하게 말하면서 산호의 상처에 빨간약을 바르고 오징어뼈가루를 뿌려주고는 아프겠다고 입으로 호호 불어주는것이였다.

김일부부의 살뜰한 정에 산호는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이젠 됐습니다.》

산호는 면구스러워서 팔을 거두어들이고는 김일이 안고있는 애의 발기우리하고 오동통한 볼을 살그머니 쓸어주었다.

《한번 안아봐요. 이 애는 어찌된 일인지 남자들을 좋아하거던요. 녀자들이 안으면 울어대는데 남자들이 안으면 웃지요, 호호…》

허창숙이 옆에서 말하였다.

《어디 산호가 안아보지.》하고 김일이 아들애를 다시 쳐들었다.

산호는 호기심이 동하여 김일에게서 애를 넘겨받아 안아보았다.

정말 어린애가 좋다고 자꾸 웃었다.

《그것 참 신통한데요.》

김일이도 허창숙이도 함께 웃었다.

《애가 돼먹었지. 새 조선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기본 남자들이라는걸 알거던.》

김일의 말에 허창숙이 눈을 흘기며 반박하였다.

《비판받을 소리 삼가하세요. 김일성장군님께서 녀성들은 새 사회건설을 떠미는 한쪽수레바퀴라고 말씀한걸 잊었어요?》

《허, 이거 내 녀맹일군앞에서 큰 실수를 했구만.》

산호는 김일의 소탈함과 가정의 화목함을 느끼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고 가라는데도 듣질 않는구만.》

김일과 창숙은 산호를 문밖까지 바래주었다.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김일은 창숙에게 말하였다.

《저 산호라는 소년을 보면 강정익동지가 생각나거던. 정말 그 동지와 비슷하게 생겼소.》

김일이 산호를 처음보는 순간 놀랐던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산호가 별로 친근하게 여겨지는것도 그때문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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