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등록 |  학생가입 
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8

 

어뢰정!

아, 이게 바로 내가 그처럼 타고싶어하던 어뢰정이로구나. 어뢰정이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생겼구나. 멋쟁인데… 정말 미남이야!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어여쁜 처녀의 미모에 반하듯이 김군옥은 설계도면을 보면서 아직은 실물을 구경도 하지 못한 어뢰정에 대뜸 반했다.

그가 처음으로 어뢰정을 동경하게 된것은 수상보안대에 있을 때였다. 대장인 김성국이 신의주분소에 왔다가 오토바이기관을 놓고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전마선을 보더니 대뜸 배에 오르며 김군옥에게 어서 바다로 나가자고 했다. 전마선은 요란한 동음을 울리며 배머리를 추켜들고 살같이 내달렸다.

《제법인데, 좋아! 아주 좋소, 신통히도 어뢰정같구만.》

배머리에 선 김성국은 맞받아 불어치는 해풍에 옷자락을 날리며 큰소리로 물었다.

《군옥동무! 어뢰정을 타보았나?》

선미에서 조타를 잡고앉은 김군옥은 어줍게 대답했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아직 어뢰정을 구경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뢰정이 바로 이렇게 작으면서도 빠르고 타격력이 강하오. 어뢰에 맞으면 산같은 함선도 즉시 침몰된단 말이요.》

그 소리에 김군옥은 대뜸 반했다.

《어뢰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앞으로 생기게 될거요. 동문 어뢰정 정장감이야.

수상보안간부학교에 가서 어뢰정을 배우게. 어뢰정을 타야 싸움판에서 한몫할수 있소.》

바로 그날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눈앞에 그려보았던 어뢰정이다.

비록 작지만 속도가 빠르고 산같이 큰 적함도 까부실수 있는 강한 타격력을 가진 어뢰정은 마치도 어릴적부터 고생을 함께 하여온 동무처럼 사랑스럽고 친근하게 여겨졌다.

그는 부분도를 통하여 이 신비한 함선의 각 초소들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리해와 표상을 가지기 위해 무진애를 썼다. 잠자리에 누워도 어뢰정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려 잠들수 없었다. 잠들어도 꿈속에서 어뢰정의 마스트로부터 사령탑과 고사총, 라침기, 묘새고와 기관실, 연막장치와 어뢰, 연유탕크와 추진기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두손으로 살틀히 어루만져보게 되는것이였다.

어뢰정의 모습은 간혹 놀랍게도 그 처녀, 김정인의 모습으로 슬쩍 바뀌여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화닥닥 잠자리를 차고 일어나 누가 훔쳐보지나 않았는지 두려운 눈길로 잠든 동무들을 둘러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군 했다. 아마도 그 처녀가 그림과 수놓이솜씨로 자기에게 어뢰정의 모습을 먼저 선보였기때문이리라.

그는 이처럼 련인을 사랑하듯 어뢰정을 사랑하게 되였다. 어뢰정에 대한 그의 애정은 평양에 올라갔던 정치부교장이 돌아오자 선풍을 만난듯이 더 활활 불타올랐다. 조정철은 자기를 반갑게 맞아주는 교직원, 학생들에게 격정에 넘친 목소리로 웨쳤다.

《동무들! 기뻐하시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 학교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고받으시고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조국의 바다를 지킬 해군함대를 빨리 창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군지휘관양성에 필요한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시였습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강구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그이께서 친히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수상보안간부학교는 항해학부와 기관학부, 함상포 및 해안포학부 등을 갖춘 해군군관학교로 승격되게 됩니다.》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모두들 껑충껑충 뛰면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는데 붉게 상기된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기쁠 때도 눈물이 쏟아진다는걸 김군옥은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였다.

《해군군관학교 청사와 후방건물들은 학생들이 각종 전투함선을 타고 해상실습을 하기에 유리한 수상보안사령부가 있는 청진항에 건설하게 됩니다.》

그곳 군항에는 어뢰정들, 소포정들, 소해함을 비롯한 전투함정들이 렬을 지어서 자기의 타를 잡아줄 주인들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건 정말 듣기만 해도 눈이 번쩍 트이고 온몸에 뜨거운 피가 설설 끓어넘치게 해주는 희소식이였다.

며칠후에는 평양학원을 졸업한 끌끌한 군관들이 내려왔다. 그들은 새로 편성하는 학부의 학부장 겸 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학부편성을 앞두고 학생들은 썰썰 끓어댔다.

채기정이 어디서 들었는지 구체적인 내막을 알려주었다.

《항해학부에서는 소해함과 경비함 그리고 어뢰정과 소포정의 함정장들을 양성한대요. 기관학부에서는 기관장들을 키워내고 함상포및 해안포학부에선 포병장들과 해안포지휘관들을 키워낸대요. 난 기관학부에 가겠어요. 기관은 전투함정들의 심장이거던요.》

잔뜩 긴장해서 그 말을 듣던 고준무가 몹시 조급해서 물었다.

《여, 순양함 함장은 어느 학부에서 양성한대?》

코가 큼직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양판익이 대답했다.

《물어보기나새나. 그것두 항해학부에서 양성하겠지.》

고준무는 금이발을 반짝거리며 고수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난 항해학부에 가겠어.》

고준무와 딱친구인 마진규도 덩달아 소리쳤다.

《나도 항해학부에 가겠어.》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무엇인가를 타산해보던 리대훈은 씩 웃으며 주먹을 휘저었다.

《난 함상포 및 해안포학부가 마음에 들어. 포는 전쟁의 신이란 말이야.》

최정수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바다에선 포보다도 어뢰나 폭뢰가 더 위력해. 난 어뢰정을 타겠어.》

리완근과 김도형도 어뢰정을 타겠다고 소리쳤다.

여태 침묵을 지키던 김군옥은 닭알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좀 주저하며 나직이 물었다.

《채동무, 항해학부안에 학과들이 있겠지? 어뢰정정장은 어느 학과에서 양성하나?》

《2소대가 어뢰정정장들을 양성하는 학과라고 하더군요.》

《그럼 1소대는?》

《거기선 소포정장들을 양성한대요. 함정장들은 높은 항해술을 소유함과 동시에 함상포에 정통하고 그 사용에 능란해야 한다는거예요. 그래서 소포정장양성소대를 1소대로 정했대요. 1소대장은 항해학부 부중대장을 겸임한대요.》

김군옥은 기어이 2소대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채기정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게 알려지자 너도나도 항해학부 2소대를 지망하는통에 학부편성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뢰정은 김군옥이만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의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였던것이다.

김광민교장은 정치부교장과 의논하던 끝에 제일 실력이 높은 학생들로 항해학부 2소대를 편성하겠다고 선포했다. 모두의 관심과 호기심이 집중된 속에서 평상시 시험성적을 종합한 결과가 발표되였다.

1등은 김군옥, 2등은 고준무, 3등은 리대훈이였다. 한개 소대에 몰아보내긴 아까운 대상들이다.

《이 동무들을 순위대로 1, 2, 3학부의 부중대장 겸 1소대장으로 임명하는게 어떻소?》

그게 좋겠다고 모두들 박수갈채로 찬성했다.

일이 별나게 번져지는통에 김군옥은 거의나 울상이 되여 하소연을 했다.

《제발 사정을 좀 봐주십시오. 저는 소대장이나 부소대장을 못해도 좋습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항해학부 2소대에 꼭 보내주십시오.》

김광민교장은 못마땅해서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군사지휘관들이 다 그러하듯이 자기가 일단 결정한 문제를 놓고 아래서 이러쿵저러쿵하는걸 달가와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한백천은 군옥이가 어뢰정에 얼마나 반했는지 잘 아는지라 제꺽 지원포를 쏴주었다.

《본인의 요구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정철도 벙글서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1등을 한 학생에겐 선택의 권리가 있지요.》

김광민교장은 입을 다시고나서 어쩔수없이 동의했다.

《그렇게 하기요.》

그러자 불방석에라도 앉은듯 엉치를 들썩거리던 고준무가 벌떡 일어나 볼부은 소리를 내질렀다.

《저를 기관학부가 아니라 항해학부에 보내주십시오.》

한백천은 또 지원포를 쏘았다.

《저 동문 순양함함장이 되겠다고 하는데 본인의 요구대로 해줍시다.》

김광민교장은 정치부교장을 돌아보았다.

조정철은 잔뜩 긴장해서 자기를 지켜보는 고준무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2등을 한 학생에게도 선택의 권리를 주어야지요.》

김광민교장은 동의했다.

이리하여 청진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학부편성이 끝났다.

항해학부 부중대장 겸 1소대장으로 고준무가, 기관학부 부중대장 겸 1소대장으로 채기정이, 함상포 및 해안포학부 부중대장 겸 1소대장으로 리대훈이 정식 임명되였다.

항해학부 2소대장인 김군옥은 실습어뢰정대장이다. 그는 아직 어뢰정을 구경도 하지 못한채 정대장이 된 셈이였다. 하기에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소원을 성취한듯 흡족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였다.

학생들과 교구비품들을 잔뜩 실은 경비함은 원산만을 빠져나가 북으로 배머리를 돌리고 장시간의 항해끝에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군항에는 그들이 타고온 경비함보다 더 큰 함선들이 여러척이나 있었다. 그러나 김군옥에게는 한쪽 부두에 렬을 지어 계류한 다섯척의 어뢰정들만이 눈에 보일뿐이였다. 도면에서 보고 마음속으로 그려온 어뢰정들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니 너무도 반갑고 기뻐서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김군옥이만이 아니였다.

경비함에서 내린 학생들모두가 갈증에 시달리던 끝에 샘을 만난듯 환성을 올리며 어뢰정부두로 달려갔다.

《섯!》

부두입구에 서있던 보초병이 세워총 하고있던 장총을 들어올리며 석쉼한 목소리로 엄하게 소리쳤다.

와와 소리치며 기슭으로 장쾌하게 밀려가던 파도가 앞을 가로막은 방파제에 부딪친듯 턱 멈춰섰던 학생들은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보초병이 내드는 장총이 무서워서가 아니였다. 전투적용맹을 번뜩이는 어뢰정들의 모습앞에서 너나없이 위압되고 기가 질렸기때문이였다.

끄떡없이 뻗치고 서있는 학생은 김군옥이다.

부두보초는 약이 올라서 감때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귀청이 째지게 고함을 질렀다.

《여! 당장 물러가지 못하겠어?》

잔뜩 을러메는걸 보니 여차하면 한방 갈기거나 총창으로 찌르는것도 서슴지 않을것 같았다.

대체로 배심이 약한 친구들이 상대가 그것을 알아차릴세라 겉으로는 위세를 부리군 한다.

김군옥은 구면친구나 만난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반죽좋게 나왔다.

《여 친구, 수고하는구만.

우리가 좀 가까이에 가서 어뢰정을 구경할수 없을가?》

보매 채기정이 또래가 분명한 보초병은 더 위세를 부리며 거만하게 턱을 추켜들었다.

《어뢰정은 누구에게나 함부로 보여줄수 없소. 썩 물러가오, 경치기 전에…》

《그러게 사정을 하는게 아니요. 참, 나는 해군군관학교 실습어뢰정대장 김군옥인데 동문 누구요?》

부두보초는 그 말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뭐라구?! 실습어뢰정대장이라는 사람이 아직 어뢰정을 구경도 하지 못했단 말이요?》

김군옥은 창피스러웠지만 그럴수록 더 어엿하게 처신했다.

《그렇소. 어뢰정을 구경했든 하지 못했든 내가 실습어뢰정대장인건 사실이요. 동문 누구요?》

그제서야 좀 믿음이 갔던지 부두보초는 정색해서 응대했다.

《난 해군기술원양성소 학생 박원협이요.》

《그런데 왜 여기서 보초를 서고있소?》

위엄을 느꼈던지 박원협은 슬며시 말투를 바꾸어 공손히 대답했다.

《우린 공부를 하면서 어뢰정대를 관리하고있습니다. 앞으로 어뢰정승무원이 돼야 하니까요. 전 실습갑판장입니다. 고사총수를 겸합니다.》

《나를 어뢰정으로 안내하오.》

《저… 조금 있다가 오십시오. 지금 해군대좌동지가 어뢰정을 돌아보는중입니다.》

이때 부두 안쪽에 계류한 어뢰정21호의 사령탑에서 흡사 땅크의 륙크처럼 생긴 망호루가 불쑥 열리더니 혈기왕성하고 위풍이 당당하게 생긴 해군대좌가 물속에서 솟구치듯 상반신을 내밀었다.

그가 익숙된 동작으로 날렵하게 갑판에 뛰여내리자 해병복차림의 중발머리처녀가 그자리에 나타났다.

아니?! 저게 누구야? 정인이가 아닌가?!

김군옥은 놀라도 이만저만 놀라지 않았다.

정인은 이 장소에서 군옥을 만난것이 조금도 놀랍지 않은듯, 마치 이런 상봉을 예견하고있기라도 한듯이 스스럼없이 마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김군옥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본게 아닐가? 하는 의심이 들어 다시 여겨보았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해풍에 중발머리를 날리며 사령탑에 의젓하게 서있는 처녀는 자기에게 어뢰정을 수놓은 담배쌈지를 주고 떠나간 정인이가 분명했다.

눈이 류별나게 큰 처녀, 호수처럼 깊고 그윽해보이는 눈에서 노상 미소가 흘러나오는 처녀, 어뢰정의 전투적인 용모와 꽃처럼 아름답고 싱싱한 처녀의 모습이 신기하게도 조화를 이루었다. 자기는 감히 접근조차 할수 없는 어뢰정의 사령탑에 서있기에 정인이는 더 담차고 어여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앞으로 함장을 뛰여넘어 함대사령관이 되겠다던 그 처녀의 욕망도 노상 막연하거나 허황한것 같지 않았다.

정인은 살며시 갑판에 내려서더니 대좌의 곁으로 스스럼없이 다가가 뭐라고 귀속말로 속삭이였다. 미간을 잔뜩 찌프리고 군옥을 엄하게 주시하던 대좌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헨둥하게 어렸다.

《동무, 이리 오게.》

대좌의 부름을 받은 김군옥은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보초소를 통과하여 씩씩하게 걸어갔다.

어뢰정의 현측옆에 멈춰선 그는 패기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대좌동지! 해군군관학교 항해학부 2소대장 김군옥 명령대로 왔습니다.》

대좌는 둥싯한 아래턱을 손으로 어루쓸며 벙그레 미소를 지었는데 좀전의 엄하던 인상과는 달리 인심좋은 아바이처럼 무던하고 푸수해보였다.

그래서인지 낯익은감이 들었다.

《항해학부 2소대장이라?! 음, 그럼 동무가 실습정대장이겠군.》

여느 군관도 아닌 대좌가 자기를 알아보니 김군옥은 흐뭇하기에 이를데 없었다.

《그렇습니다!》

《반갑소. 난 동무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참이요.》

김군옥은 이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대좌는 수상보안간부학교 개교식에 왔던 김정인의 아저씨가 분명했다. 당시 상좌견장을 단 보위색군관복차림을 했던 그가 지금은 대좌견장을 단 해군군관복차림을 하고있으니 인차 알아볼수 없었던것이다.

대좌는 위풍당당한 체구에 걸맞는 걸걸한 목소리로 간단명료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난 원산기지장 홍동철이요.》

김군옥은 어리둥절해졌다.

《원산에 해군기지가 있습니까? 우린 보지 못했는데…》

《아직은 없소. 그러나 곧 생겨나게 될거요.

동무네 학교가 있던 그곳에 말이요.》

멀찌감치 물러나있는 다른 학생들을 얼핏 돌아본 홍동철은 다시금 엄해진 눈초리로 김군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깐깐히 훑어

보았다.

《어뢰정을 처음 본다지?》

《예.》

《그런데두 실습정 대장이라?》

홍동철은 맹랑한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그럼 어디 어뢰정에 대하여 아는껏 말해보오.》

그런즉 실습정대장으로서의 김군옥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는셈이였다.

정인은 사뭇 긴장해진 눈빛으로 군옥을 주시했다. 군옥은 그 눈길에서 고무를 받으며 가슴을 내밀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게뻬아찌〉형어뢰정은 주로 연안을 순찰하면서 령해에 접근하는 적 대형함선들을 어뢰로 타격소멸하는 위력한 전투함선이다.》

계속하여 그는 어뢰정의 제원까지 토 하나 틀리지 않게 정확히 말했다.

잔뜩 긴장해있던 정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소리없이 활짝 웃었다.

홍동철은 여전히 엄한 기색으로 물었다.

《어뢰무게는?》

《1. 7톤입니다.》

《직경은?》

《53센치메터입니다.》

《틀렸소. 정확히는 533. 4미리메터요.》

《명심하겠습니다!》

《장약의 무게는?》

《400키로그람입니다.》

《물조종깊이는?》

《7. 5메터입니다.》

별로 막히는데가 없었다.

홍동철은 그제서야 미간을 쭉 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보지도 못한 어뢰정에 대하여 그만큼 알고있으니 괜찮군. 왜 그러고 서있나? 어서 갑판에 올라오라구.》

김군옥은 파도치듯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조심스레 어뢰정갑판에 올라섰다.

오로지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려왔던 그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저 생각같아서는 당장 갑판에 두팔을 벌리고 어푸러져서 사랑하는 어뢰정을 통채로 그러안고 볼을 비비고싶었다.

홍동철은 첫눈에 마음에 들고 믿음이 가는 젊은이의 억센 어깨를 꽉 잡고 물었다.

《몇살이요?》

《스무살입니다.》

《새파랗게 젊었구만. 어디 함께 생활해보기요.

어뢰정장반 실습은 당분간 내가 담당하겠소.》

《야! 많이 배워주십시오!》

김군옥이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직일병완장을 낀 애젊은 해병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얼굴색이 발기우리하고 솜털이 보르르한 그는 꼭 무르익은 햇복숭아를 련상시켰다. 그는 턱 멈춰서더니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대좌동지, 실습기관총수 강순봉 만날수 있습니까?》

홍동철은 그를 돌아보며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수상보안사령부에 빨리 오시랍니다.》

《알겠소.》

《돌아가겠습니다.》

강순봉은 역시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실습정대장동무, 그럼 어뢰정을 마음껏 돌아보라구.》

홍동철은 갑판에 나란히 선 김군옥과 처제를 흡족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부두에 내렸다.

정인은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김군옥은 오래간만에 만난 김정인이 앞에서 왜서인지 주눅이 들어 얼굴까지 붉혔다.

《예, 오래간만입니다. 그런데…》

정인은 어색하게 경어를 쓰면서 여느때의 그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는 상대방을 흥미있는 눈길로 여겨보았다.

《그런데 어쨌다는거예요?》

군옥은 자기들을 지켜보는 동무들의 호기심과 부러움에 찬 눈길을 느끼며 더 얼굴이 벌개져서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거기선 어떻게 돼서 여기에 왔습니까?》

김군옥이 계속 어색하게 이런투로 나오자 정인은 더 참지 못하고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동무두 참, 뭘 선생님앞에 나선 학생처럼 이랬습니까, 저랬습니까 하면서 쭐나게 그래요?》

김군옥도 제풀에 어이가 없어 허허 웃었다.

《난 수상보안사령부 군의소에 실습을 나왔어요.

방금전에 원산기지장동지와 나는 어뢰정승무원들에 대한 해상에서의 군의보장대책을 의논하던중이였지요.》

《기지장동지야 동무의 아저씨가 아니요.》

정인은 곱게 눈을 흘겼다.

《실습을 나왔으니 나도 아저씨를 기지장동지라고 불러야지요. 참, 그곳을 떠나오기 서운하지 않았어요?》

《왜 서운하지 않겠소. 거긴 정말 경치가 좋고 해산물도 많은 곳이지.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도 잊을수 없소.》

《너무 서운해마세요. 기지장동지가 그러는데 동무들이 해군군관학교를 졸업하면 여기에 있는 전투함정들을 몰고 원산해군기지에 가게 된대요.》

김군옥은 바람맞은 돛처럼 가슴이 막 부풀어올랐다.

드디여 해군함대창설은 본격적인 실천단계에 들어섰구나! 이날이 오기를 내 얼마나 기다렸던가. 기다려다오, 원산기지여, 머지않아 우리는 전투함정들을 몰고 배고동높이 울리며 정다운 그대 품으로 돌아가리.

시조차 한수 읊고싶은데 갑자기 부두에서 법석 떠드는 소리가 났다.

기지장이 자리를 뜬 기회를 타서 용기를 내여 어뢰정으로 우르르 몰려오던 다른 학생들이 보초병에게 제지당하자 소란을 피웠던것이다.

《동무! 우린 해군군관학교 학생들이요!》

《우린 여기서 해상실습을 하게 되였단 말이요.》

모욕이라도 당한듯이 누구보다 약이 올라서 고아대는건 고준무였다. 그는 어뢰정갑판우에 함흥의전의 꽃으로 불리우던 정인이와 나란히 서있는 김군옥을 가리키며 보초병에게 걸고들었다.

《여! 어째서 저 친구는 통과시키고 우리는 막는거야? 우린 다 해군군관학교 학생들이야.》

키는 꺽뚜룩하지만 버쩍 말라서 마른 명태처럼 보이는 부두보초는 고준무의 항의에 한풀 죽어서 주저주저 변명하듯 대꾸했다.

《저 동무는… 실습어뢰정대장이라기에 통과시켰소. 그게 뭐 잘못됐소?》

실습어뢰정대장이 어뢰정에 오르는건 당연한거다.

말문이 막힌 고준무는 쓰거워서 입만 실룩거렸다. 뒤에 있던 김도형이 고준무를 밀어제끼고 당당히 한걸음 나서며 위엄있게 소리쳤다.

《보초병동무! 난 실습어뢰정장이요.》

보초병은 미타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게 정말이요?》

《여보! 그런 거짓말도 하는가?》

곁에 있던 리완근이도 가슴을 쑥 내밀며 당당히 웨쳤다.

《나도 정장이요, 우린 저 어뢰정들의 주인이란 말이요.》

난처하게 된 부두보초는 두눈만 껌벅거리다가 어쩌면 좋은가고 묻는 눈길로 김군옥을 흘끔 바라보았다.

김군옥은 방금전에 원산기지장이 그랬던것처럼 짜장 엄숙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부두보초는 좀 망설이다가 가로막았던 장총을 수직으로 들어올리며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그럼 실습어뢰정장들만 통과하시오.》

김도형과 리완근을 비롯한 항해학부 2소대 학생들은 의기양양해서 보란듯이 활개를 치며 보초소를 지나 어뢰정갑판에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어뢰정도 반갑다는듯이 기우뚱 기우뚱 춤을 추었다.

마치도 어머니가 귀여운 자식들을 한품에 안고 둥기둥기 팔그네를 태워주는것 같았다.

부러움에 찬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던 고준무는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나서 으시대며 자기를 소개했다.

《에― 보초병동무, 나는 실습소포정대장이요.》

보초병은 다시 장총으로 앞을 가로막은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고준무는 바싹 약이 올라서 금이발을 번뜩거리며 고아댔다.

《들었소, 먹었소? 난 실습소포정대장이란 말이야!》

부두보초는 잘은 논다는 식으로 픽 웃었다.

《여긴 어뢰정부두요. 큰소리를 치겠으면 소포정부두에 가서 치라구.》

더 어쩔수 없게 된 고준무는 어뢰정갑판우에서 재수없이 생글생글 웃고있는 함흥의전의 꽃을 걸고들었다.

《여! 녀학생은 어뢰정에 올라도 되고 우린 안된다는거야?》

《저 처녀동문 어뢰정승무원들에 대한 군의보장실습을 나왔소.》

고준무는 메사해서 입을 쩝쩝 다시며 돌아서더니 뒤미처 제 할바가 생각났던지 별안간 기세를 돋구며 벼락치듯 웨쳤다.

《실습소포정장들은 날따라 구보로!》

1소대는 고준무를 따라 소포정들이 계류한 부두로 달려갔다.

《실습소해함장들은 날따라 구보로!》

3소대는 소해함들이 있는 부두로 달려가는데 리대훈이가 보초병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해안포는 어디에 있소? 어디에 있냐 말이야?》

《저… 저기에…》

늦가을에 젊은 주인들을 맞이한 군항은 고대하던 봄을 이제야 맞은듯 생신한 모습으로 급기야 약동하기 시작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