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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허, 저놈들이 왜 갑자기 여길 쳐다보는거야?

우리 잠망경을 발견했는가?》

잠망경을 상하좌우로 움직일수 있는 조종간을 량손에 틀어쥐고 감시경에 눈을 바싹 대고있던 웨리크함장은 얼른 물속으로 잠망경을 내리웠다.

그의 곁에는 견장을 뗀 해군장교복차림의 앙바틈하게 생긴 사나이가 앉아서 연어통졸임을 안주로 포도주를 마시고있었다. 사나이는 포크로 연어토막을 찍으며 서툰 영어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잠망경을 가려보기 어려울텐데요. 저기에 뭐 그런 전문가가 있겠나요?》

《하긴 그래.》

웨리크는 잠망경을 다시 수면우에 내밀었다가 부랴부랴 내리우며 다급히 구령을 쳤다.

《함 전진! 속력 증가!》

여차하면 즉시에 은밀히 빠져나가려고 배머리를 만입구쪽에 돌려놓고있던 미국잠수함 《U-504》호는 물속에서 소리없이 재빨리 기동을 시작했다.

《왜 그럽니까?》

《우리가 발견된게 분명하오. 한놈이 전마선을 몰고 이쪽으로 급히 오더구만.》

사나이는 코살을 찡그렸다.

《그까짓, 뭐랍니까. 매생이따위로는 감히 잠수함을 어쩔수 없을텐데요.》

웨리크는 언제봐도 얄미울 지경으로 경솔하고 입이 가벼운 이 전형적인 일본인을 마뜩지 않은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북조선에 아직 잠수함을 발견하고 공격할 능력이 없다는건 자기도 잘 아는바이다. 그러나 공연히 그들의 눈에 띄워서 말썽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원산만 깊숙이, 그것도 수상보안간부학교가 빤히 바라보이는 코앞에까지 미군잠수함이 들어왔다는걸 북조선이 알게 되면 즉시 폭뢰는 떨구지 못해도 외교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정부에 강력히 항의할수 있었다.

그런 사태가 빚어지는 경우 제노라던 웨리크중좌의 위신이 납작해진다.

작전임무수행중의 잠수함을 적측에 서뿔리 로출시키는것은 위험천만한 행위로서 그 경위는 어찌되였든 함장의 무능을 보여주기때문이다. 그러면 중대한 임무를 자기에게 직접 준 해군대장 니미쯔각하가 몹시 실망하게 된다. 자칫하면 전도유망하던 자기의 운명을 망칠 우려가 있었다.

지난 태평양해전에서 악랄하기 그지없는 일본해군을 최종적으로 격파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미해군의 작전부장이며 오성대장인 치스터 니미쯔는 웨리크에게 있어서 일찌기 해군사관학교시절부터 우상처럼 숭배해온 대상이였다.

장차 5대양을 타고앉아 대륙들을 뜯어먹을 바다승냥이들을 길러내는 이 학교에는 해상실습함선들은 물론이고 교구비품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었다. 교원들 다수가 유명짜한 해전들에서 명성을 떨친 어제날의 해군지휘관들이였다. 현직해군지휘관들도 자주 초빙되여 강의를 했다. 초빙강사들가운데서 유일한 해군제독인 치스터 니미쯔는 전체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는 풍부한 군사리론과 실전경험을 겸비한 해군지휘관일뿐만아니라 함선기관분야와 해군기지건설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가 집필한 해군건설과 해상작전에 관한 론문들은 해군사관학교에서 교과서처럼 취급되고있었다.

웨리크는 미해군의 거물인 니미쯔앞에서 도저히 기를 펼수가 없었다. 그는 니미쯔에게 말을 걸 엄두도 내지 못했고 타고난 해군제독처럼 위엄있게 생긴 그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감히 바랄수도 없었던 그런 일이, 행운이 생길줄이야…

어느날 일본해군과 북양함대와의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던 니미쯔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학생들을 둘러보며 여기에 혹시 볼티모태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절호의 이 기회를 놓칠세라 웨리크는 자리를 차고일어나며 큰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각하! 제가 바로 볼티모태생입니다.》

니미쯔는 움푹 패여든 눈확안에서 파랗게 불타는 매눈으로 야심만만하게 생긴 젊은이를 자세히 여겨보았다.

《음, 학생은 볼티모경과 모색이 비슷해보이는군. 학생도 앵글로색손족이요?》

웨리크는 하냥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예! 저는 볼티모가문의 자손입니다.》

《아!》

니미쯔는 탄성을 올리더니 거만한 머리를 크게 끄덕이였다.

《나는 게르만족이요. 그러나 앵글로색손족의 귀족이였던 볼티모경을 조상보다 더 존경하오. 볼티모경과 같은 용감한 개척자들이 흘린 피로 오늘의 미국이 생겨날수 있었기때문이요.》

이통에 그저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던 웨리크의 위신은 그야말로 돛대끝에 올라간듯이 높아졌다.

볼티모는 18세기 20년대에 신대륙에 상륙하여 총칼을 무자비하게 휘둘러 원주민들을 내쫓고 경치좋은 바다가에 자기의 령지를 꾸렸다. 하여 새로 생겨난 이 항구도시는 개척자인 볼티모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영광》을 지니게 된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도시는 번창해졌다. 항구에 있는 대규모의 조선소들에서는 세계제패실현에 이바지할 군함들이 건조되였다. 그중 제일 크고 속도가 빠르며 무장장비가 잘 갖추어진 중순양함에도 볼티모의 이름을 달아주었다.

《나는 자기가 세운 공적으로 도시와 군함에 자기의 이름을 빛나게 새겨넣은 볼티모경처럼 살고싶었소. 그래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 새로 편성된 아시아함대의 기함이 된 중순양함 〈볼티모〉호에 보내줄것을 열렬히 요청하였소. 몇년후에야 나는 소원대로 〈볼티모〉호에 가서 항해장교로 복무하게 되였는데 바로 그때가 로일전쟁직후였소.》

계속하여 본강의를 진행한 니미쯔는 다시한번 모를 박아 강조했다.

《장차 세계를 타고앉아야 할 미국의 남아들은 누구나 볼티모경처럼 되여야 마땅하오. 나는 특히 볼티모가문의 후손인 웨리크학생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

이를 계기로 웨리크의 생활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다른 학생들이 시샘할 정도로 배가의 노력을 하여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자진하여 중순양함 《볼티모》호로 갔다. 《볼티모》호는 미해군의 기함이자 대통령전용함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해군에는 그보다 더 크고 무장장비가 좋은 전함들과 항공모함들도 있었지만 《볼티모》호는 이처럼 특수한 지위를 차지했다.

그는 3년이 지나자 니미쯔의 경력을 따라 순양함에서 잠수함으로 이동했으며 항해장을 거쳐 함장으로 승급하였다.

이처럼 그는 한때 니미쯔가 그러했듯이 바다물속에 몸을 푹 잠그고 해군제독이 서있는 사령탑을 향하여 사다리를 한단한단 착실히 톺아오르는중이다.

며칠전 중순양함 《볼티모》호가 푸른 바탕에 흰별이 다섯개나 찍혀진 해군대장기를 위엄있게 펄럭이며 태평양을 횡단하여 도꾜만에 들어왔었다.

요꼬스까항에 정박해있던 7함대 함선들은 맥아더의 명령에 따라 안전항해를 축하하는 신호기를 일제히 마스트에 올리고 쿵! 쿵! 요란하게 례포를 쏘았다. 미련합군 총사령관이라는 요란한 감투를 쓰고 도꾜를 깔고앉아서 태평양너머 본국에까지 감히 호령질을 하는 맥아더가 이런 성대한 환영으로 자기의 경쟁자를 맞이해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었다.

두 오성장군은 부두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매우 감동적인 포옹을 했다.

치스터 니미쯔는 허장성세의 표본이고 명예욕이 지나친 맥아더를 겉으로는 존중해주는척 했지만 내심 경멸하고있었다. 한편 맥아더는 사업에 지나친 열성을 부리고 작전적두뇌를 시위하여 측근들을 종종 무색케 하는 니미쯔를 시기질투하면서 경계해오는터이다. 그러나 두사람의 관계는 표면상 친근한 전우처럼 보였다.

맥아더는 그날 저녁 호텔에서 역시 성대한 만찬회를 차렸다. 웨리크는 7함대지휘관들과 함께 초대되였다. 연회가 끝나자 니미쯔는 자기가 총애하면서 각별히 그 성장과정을 지켜보고있는 웨리크함장을 데리고 《볼티모》호로 돌아왔다. 잭슨함장이 그들을 도꾜의 초호화호텔 1등실도 무색하게 꾸려진 함장실에 안내했다.

오래간만에 《볼티모》호의 함장실에 들어선 웨리크는 감개가 무량했다.

자기가 항해장교로 복무하던 때보다 함의 무기기술장비는 갱신되였지만 함장실에는 감람나무잎과 화살을 부각한 금빛액틀에 넣은 볼티모경의 초상화가 여전히 그대로 붙어있었다.

니미쯔는 지난 태평양전쟁때 《볼티모》호를 미해군의 기함으로 승격시키고 오늘도 애용하고있었다.

한때 해군성 차관이였던, 그런 연고로 니미쯔 못지 않게 해군에 애정을 기울인 전 대통령 루즈벨트도 볼티모경의 숭배자였다. 그래서 그도 역시 《볼티모》호를 자기의 전용함으로 정하고 마스트에 대통령기를 날리며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했고 부인 엘레노아도 전선위문방문을 다닐 때면 꼭 이 함선을 리용하였다.

하지만 대통령과 부인이 타고다니든 해군대장이 타고다니든 이 함선의 진짜주인은 금빛액틀안에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오늘을 지켜보고있는 볼티모경이였다.

니미쯔는 오래간만에 만난 웨리크와 단독으로 할말이 있는지 덤덤히 침묵을 지켰다. 잭슨은 뒤늦게야 눈치를 차리고 알릴듯말듯 얼굴을 붉히며 예비지휘소로 나갔다. 그제서야 니미쯔는 해도를 한장 꺼내여 해도탁에 펴면서 웨리크에게 가까이 오라고 턱짓을 했다.

웨리크는 긴장해서 해도탁에 바싹 다가섰다.

해도를 굽어보던 니미쯔는 손가락으로 조선반도의 등허리를 깊숙이 파고들어간 만을 가리켰다.

《여기가 어딘지 아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수 없어 웨리크는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원산만입니다.》

《옳소, 원산만이지.

나는 로일전쟁직후 바로 이 〈볼티모〉호에서 항해장교로 복무했소. 그때 우린 정기적으로 조선동해연안을 순찰했는데 몇번 원산만에 들어갔댔소.

이것 보게, 만이 얼마나 묘하게 생겼나. 북에서 남쪽으로 길게 내리뻗친건 호랑이반도요.

그앞에 있는건 미인섬이고… 그러고보면 호랑이가 미인을 덮치는 형국인데 남쪽 맞은편에서 쑥 올라온건 갈마반도야. 저 안쪽에 유명한 명사십리가 있고 그담엔 항구도시고 계속하여 송도원이지.

언젠가 이른봄에 원산만에 들어가니 살진 청어떼가 다투어 밀려들어와서 그걸 잡노라 법석 끓어대더구만. 우리도 대단한 횡재를 했지.

펄펄 뛰는 청어를 잡아서 그대로 가마안에 넣고 국을 끓이니 그 맛이란 참 혀가 녹을 지경이였어.

아! 난 지금도 그때의 청어생선국맛을 잊을수가 없거던. 정말 못잊겠어.》

명성높은 해군대장이 천박한 미식가처럼 혀로 입술을 연방 감빨며 군침을 삼켰다.

《중좌도 가보면 대번에 반할거요. 경치도 좋지만 조선소적지와 군항으로 그렇게 리상적인 만은 조선반도에 더는 없소. 정말 욕심나는 곳이지. 그러니 중좌도 어서 가보고 오게.》

《예?!》

《중좌야 잠수함함장이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볼수 있지.》

웨리크는 그제서야 해군대장이 지금 자기와 실없는 한담을 하고있지 않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바싹 긴장해졌다.

《저… 북조선령해에 들어갔다가 혹시 말썽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니미쯔는 정색해지면서 무엇인가를 타산할 때면 노상 그러하듯이 움푹 꺼져들어간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렸다.

《그러게 솜씨를 발휘하여 은밀히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게. 설사 발견돼도 위험할건 없소. 북조선은 아직 잠수함을 추적하고 공격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잠수함을 서뿔리 로출시킴으로써 미해군이 조선동해, 특히는 원산만에 관심을 가지고있다는걸 그들이 눈치차리게 해서는 절대로 안되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중좌도 알고있겠지만 지금 펜타곤에서는 38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고올라가 자유세계의 반공보루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고있소. 조선반도를 무대로 한 이 위대한 연극에서 미해군은 지금껏 진행해온 그 어느 전쟁에서도 그러했듯이 주역을 담당해야 하오. 그러자면 우리와 맞서싸우게 될 적에 대하여 잘 아는게 중요하지.》

니미쯔는 해군정보부가 입수하여 자기에게 제출한 자료를 웨리크에게 보여주었다.

북조선은 정규무력건설을 위한 준비를 맹렬히 하고있다.

륙군은 보안간부훈련소들을 통하여 몇개 사단을 당장 편성할수 있게 되였고 비행대와 땅크병, 포병 등 병종들도 인차 갖추게 된다.

이에 비하면 자금이 많이 드는 해군함대건설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하고있다.

현재 북조선은 국고를 다 털어도 순양함 한척 사올수 없는 실정이며 설사 사온다고 해도 지휘관과 기술인원이 없어 운영이 곤난하다.

해방된 다음해 6월 5일에 나온 서해수상보안대는 기관총 2문과 보총 10여정을 장비한 발동선 한척과 목선 10여척에 불과하다. 관하 5개 대의 인원을 다 합쳐야 50여명이다.

한달후 동해에도 수상보안대가 생겼는바 기관총과 보총으로 장비한 발동선 3척에 목선 20척, 관하 8개 대의 인원은 도합 270명정도다.

올해 수상보안간부학교를 세우고 동서해수상보안대에서 선발한 젊은이들로 해군지휘관양성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였다. 학교는 원산만의 구석진 해안에 자리를 잡고있다. 이전 일본해군의 보급창이 있던 곳이다. 구체적인 학교실정은 아직 알수 없다.

웨리크는 이제야 니미쯔가 자기를 여기로 데리고 온 리유를 알게 되였다.

니미쯔는 해군작전부장으로서 관하 함대의 전도유망하고 자신처럼 믿을수 있는 웨리크함장에게 대아메리카의 세계제패를 위한 전략실현에 의의를 가지는 극히 중대한 임무를 직접 주려고 불렀던것이다.

잠수함들은 이러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함장은 이럴 때면 비밀보장을 위해 함대사령부를 뛰여넘어 해군작전부장에게서 직접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며 그 결과도 해군작전부장에게 직접 보고하는게 관례다.

미국에서 해군장관은 주로 함선건조나 장비를 맡아보고 대체로 작전엔 관계하지 않는다.

하기에 미해군의 실권자는 작전부장이다.

작전부장에게서 직접 단독임무를 받는 함장은 운수가 좋아서 전도양양해진다. 그는 국가적리해관계와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일련의 작전에 기여하게 되며 이 과정에 함대사령부나 해군작전부에 승급할 길이 열린다.

그런즉 나에게도 쉽지 않은 그런 절호의 기회가 차례진것이다.

웨리크는 처음으로 느끼는 벅찬 흥분에 몸을 떨었다. 심장은 튀여나올듯 흉벽을 쳤고 급작스레 설설 끓는 뜨거운 피가 온몸에 소용돌이쳤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부장각하, 믿어주어서 감사합니다!

곧 임무수행에 착수하겠습니다.》

니미쯔는 근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먼저 원산만을 정찰하고 계속 북상하면서 북조선의 해안과 주요 항들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시오. 유사시에 조선동해는 7함대의 활무대가 될것인즉 그러한 사전파악이 매우 중요하오.》

니미쯔는 손수 술병을 들고 혼합주를 만들었다.

그가 술을 부어준 수정유리잔을 받은 웨리크는 너무도 황송해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이제는 둘사이에만 할 꼭 필요한 이야기를 했겠거니 하고 함장실에 들어오던 잭슨함장은 그 광경을 보고 눈이 뒤집혀질 지경으로 놀라 말뚝처럼 굳어졌다. 그를 얼핏 돌아본 웨리크는 우쭐해서 큰소리로 사의를 표했다.

《각하,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에겐 분에 넘친 영광입니다.》

니미쯔는 잭슨함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의 잔을 내밀어 떨리는 웨리크의 잔을 쪼았다.

《중좌, 나는 가까운 몇해안에 원산항이 제2의 볼티모항이 되기를 바라오.》

《그날을 위해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어서 마시시오. 성공을 바라오. 맥아더사령부에서 방조자를 붙여줄거요.》

그 방조자가 지금 자기곁에 앉아있는 야마모또 시마무라다.

태평양전쟁에서 쫄딱 녹아난 일본해군의 소해함 함장이였던 그는 패전후 알짜 거렁뱅이가 되여 처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전전긍긍하다가 비밀리에 맥아더사령부의 《KATO》에 흡수되였다. 미제의 조선전쟁계획작성을 담당한 이 특수기관에는 패망한 일제침략군의 고급작전장교들과 실전경험이 풍부한 지휘관들이 망라되여있었다. 이자들은 미군장교복차림을 하고 부산과 서울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남조선군의 첩보계와 련계를 가지고 북조선에 대한 정탐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넘겨받고있었다.

시마무라는 남조선은 물론이고 북조선의 동해안과 항들을 잘 알고있었다. 특히 일본해군보급기지가 있던 원산만의 요충지는 패망직전에 자기가 자주 드나들던 곳이여서 그야말로 손금보듯 했다.

이런 수로안내자가 곁에 있기에 웨리크는 잠수함을 몰고 원산만으로 깊숙이 들어가 북조선이 해군지휘관들을 양성한다는 학교를 잠망경을 통해 제눈으로 직접 보게 된것이였다.

해군작전부장이 관심하는 그 학교는 자기의 눈으로 보건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이 없었다.

바다기슭에 낡은 건물을 손질한게 분명한 단층교사가 서너채, 운동장변두리에 갖춰놓은 체육훈련기재들, 나무잔교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발동선이 한척, 이게 전부였다.

운동장에서는 해군군관복차림인 교원이 해병복차림인 학생들에게 대렬훈련을 주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포구에서 얼마간 떨어진 자그마한 섬의 주변에서는 교원들이 학생들과 쪽배를 타고 희희덕거리며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렸다. 이런 곳에서 현대과학기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전투함선을 지휘할 인재를 양성한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시마무라군, 당신의 말이 옳소.

전마선으로는 잠수함을 잡을수 없지. 그렇다고 잠수함으로 전마선을 잡을수도 없잖소.》

기분이 언짢은지 오래도록 입을 다물고 그 무슨 생각에 골몰했던 웨리크함장이 불쑥 이런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자 저으기 긴장해서 그의 눈치만 보던 시마무라는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그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웨리크는 씁쓸하고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그의 얼굴엔 자만자족과 우월감이 감출수 없게 드러났다.

《조선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해군의 골치거리는 맞서 싸워볼만 한 상대가 없다 그 소리요.》

《그럴가요?》

약삭바른 일본인의 얼굴엔 신중한 기색이 떠올랐다.

《전쟁이 오늘 당장 일어나는거야 아니잖습니까.》

《늦어도 이삼년내에 전쟁은 일어날거요.

당신은 그동안에 북조선이 해군함대를 건설할수 있다고 보오?》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웨리크는 픽 웃었다.

《저렇게 락후한 학교에서는 3년이 아니라 30년이 걸려도 제구실을 하는 함장을 양성해낼수 없소. 게다가 북조선엔 조선소도 변변한게 없단 말이요. 그러니 구축함이나 잠수함을 건조하는건 꿈도 꾸지 못할게고… 난 정말 유감스럽소.》

그는 맹랑할 때면 그러하듯이 수염이 텁수룩한 턱을 손바닥으로 썩썩 문지르며 입을 다셨다.

《뭐가 그다지나 유감스러운가요?》

웨리크는 왼손엄지손가락으로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며 두눈을 흡떴다.

《내가, 이 웨리크함장이 잠수함으로 북조선의 쪽배따위나 침몰시키고 만세를 부를수야 없잖소.

정말이지 전쟁이 일어나도 미해군은 여기서 할일이 없소. 고작해서 해안가까이 접근하여 함포사격이나 하면서 륙군의 통쾌한 싸움을 구경이나 해야 할거요. 그게 재미는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구경군에겐 월계관이 차례지지 않는 법이지.》

시마무라는 이제야 비로소 과대망상증과 명예욕에 환장이 된 상대방의 속심을 리해할수 있었다.

《지레 실망할건 없다고 봅니다.

조선전쟁이 터지면 쏘련이 가만있지 않을테니까요. 모름지기 조선동해로 쏘련태평양함대가 쓸어들겁니다.》

《내가 바라는게 바로 그거요!》

웨리크는 흥이 나서 주먹을 흔들며 호기있게 웨쳤다.

《그때만이 우리는 진짜해전을 치러보게 될거요. 그러고보면 당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셈이요. 여기 조선동해에서 결판이 나야 그 전쟁이 진짜로 끝나게 된단 말이요.

당신들은 그 싸움을 구경이나 할셈이요?》

《구경하다니요? 우린 미국의 승리를 위해 전심전력할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잠수함에 타고있는 자체가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거지요.》

웨리크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소, 시마무라.

당신들은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가 북조선과 씨비리라는 큼직한 빵덩이를 베여낼 때 자기의 몫을 요구할 자격을 가지게 될거요.》

시마무라는 상대방의 허장성세가 가소로왔지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갑삭거렸다.

《함장님, 고맙습니다.

우린 그저 쏘련에 떼운 몇개의 섬들만 되찾으면 됩니다.》

《음, 난 당신들의 심정을 잘 알고있소.》

웨리크는 아주 거드름을 피웠다.

자신은 함장이 아니라 또 한차례의 대전을 승리로 결속하고 동맹국에 분배몫을 나눠주는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라도 된듯 한 심정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일본의 항복문건에 미합중국을 대표하여 니미쯔가, 미군을 대표하여 맥아더가 서명했다면 앞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결속하는 문건에는 내가 서명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웨리크는 허영심에 붕 떠서 수동돌리개로 잠망경을 다시 수면우에로 내밀었다.

잠수함은 그새 원산만에서 거의나 빠져나와 호랑이반도와 려도사이를 지나고있었다.

그는 물속에 숨어서가 아니라 물우에 솟구쳐올라서 이 아름다운 해안을 마음껏 바라보고싶은 충동을 도저히 누를수 없었다.

《부상준비!》

명령을 내리자 인차 준비를 끝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상!》

물속을 항해하던 잠수함은 고래마냥 길둥그런 선체에 무수히 나있는 구멍으로 일제히 물을 내뿜으며 부력을 리용하여 서서히 수면으로 떠올랐다.

웨리크는 쪽배 한척 떠있지 않는 해상에서 자기를 쳐다볼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금줄장식으로 사치스럽고 으리으리한 례복을 갈아입고 역시 금테장식을 한 군모를 쓴 다음 사다리를 타고올라가 망홀을 열어제꼈다.

창공에서 쏟아져내리는 밝은 해빛에 막 눈이 부셨다. 소금기와 물고기비린내를 머금은 차겁고 맑은 공기가 대뜸 심신을 거뜬하게 해주었다. 아주 상쾌했다.

그는 쌍안경을 들고 이미 잠망경을 통하여 눈독을 들인 항만을 주의깊게 천천히 둘러보았다.

원산만은 볼티모시가 있는 미국의 체써피크만보다 더 아름다왔다.

그러나 시설과 건물들은 너무도 보잘것이 없었다. 백만이 넘는 각이한 피부색의 인총이 들끓고 대규모의 야금기지와 조선소들, 자동차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철강재와 함선들, 자동차를 토해내고 배고동을 울리며 유조선들과 상선들이 꼬리를 물고 드나드는 볼티모시의 번창함엔 비길수 없었다.

앞으로 이 조용한 항구도시는 제2의 볼티모시로 불리우게 될것이니 장차 나의 이름을 큼직하게 새긴 잠수함이나 순양함을 여기서 건조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벅차오른 그는 뒤따라 사령탑우에 올라온 시마무라에게 물었다.

《군은 세계적으로 놓고볼 때 력대 해군명장들가운데서 누구를 첫 손가락에 꼽고있소?》

시마무라는 눈이 시그러워서 실눈을 하고 두리번거릴뿐 인차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야마모또 이소로꾸요?》

야마모또 이소로꾸는 진주만을 불의에 기습하여 전쟁초기에 미태평양함대를 거의나 전멸시키고 악명을 떨친 일본해군함대 사령관이였다.

뒤이어 천벌을 받아 패전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태평양에 수장되기는 했지만…

시마무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알릴듯말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누구요? 영국의 웰슨제독인가?》

웨리크는 재차 물으면서도 니미쯔라는 이름이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니미쯔가 력대 해군명장들가운데서 당당히 첫손가락에 꼽힌다는것은 미국에서 이미 공인된것이다. 어제날의 적수인 일본해군의 함장을 통하여 그것을 재삼 확인해보고싶었다.

헌데 이게 뭔가?

시마무라의 입에서는 유감천만하게도 왕청같은 대답이 튀여나왔다.

《리순신입니다.》

《?!》

웨리크는 일순 어리둥절해졌다.

세계해전사의 갈피마다에서 그런 이름을 보았거나 들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가 도대체 누구요?》

시마무라의 눈가엔 무지한 상대방을 우습게 보는듯 한 묘한 미소가 언뜻 떠올랐다 사라졌다.

《조선사람입니다.》

웨리크는 더욱 놀랐다.

《뭐?! 조선사람이라구?》

《예, 16세기말 세계에서 처음으로 철갑을 씌운 거북선을 만들어 일본수군을 수장시킨 명장이지요.》

시마무라는 당시 3도수군통제사였던 리순신이 불과 12척밖에 안되는 함선으로 수백척에 달하는 일본군함들을 까부신 그야말로 전설같은 이야기를 아주 성수가 나서 실례까지 착실히 들어가며 실감있게 들려주었다.

《흥, 당신은 마치도 조선의 해군명장이 자기 조상이라도 되는듯이 자랑하는구만.》

시마무라는 이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신적인 존재니까요.

전에도 그랬지만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우린 조선남해의 한산도근방을 지나갈 때면 리충무공에게 제를 지낸답니다. 그래야 맘이 놓여서 안전항해를 할수 있지요.》

웨리크는 어이가 없을 때면 항용 그러하듯이 손으로 아래턱을 문지르며 코살을 찡그렸다.

그 옛말같은 소리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고 굳이 믿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던것이다.

《하여간 이런 미개한 나라에 세계적인 해군명장이 있었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놀라지 않을수 없소.》

시마무라의 눈가엔 상대방을 경멸하고 조소하는듯 한 례의 그 묘한 미소가 또 떠올랐다.

《미개한 나라에서는 명장이 나올수 없지요.》

그 말이 과연 의미심장했다.

시마무라는 얄미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더니 이런 기회가 생긴것을 놓치지 않으려는듯 감히 훈시조로 뒤를 달았다.

《조선을 우습게 보고 경거망동하다가는 당신들도 우리 신세가 될수 있지요. 우리가 패전한건 미국의 원자탄때문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바로…》

웨리크는 시마무라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코웃음을 쳤다.

《흥! 여보, 당신은 대아메리카를 도대체 뭘로 보는거요. 우리가 당신들 신세가 된다구? 그런 황당한 일은 여태 있어본적이 없거니와 앞으로도 있을수 없소.》

시마무라는 아연해하더니 쓰겁게 웃으며 심한 야유조로 물었다.

《아따! 세계해전사에 도통한 함장님이 유명한 〈셔먼〉호사건도 모르시나요? 혹은 잊으셨는지?》

웨리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 질문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던 그의 자고자대와 허영심을 아프게 찌른 송곳과도 같았다.

셔먼은 니미쯔나 자기가 그토록 숭배하여 마지않는 볼티모보다 더 유명한 력사적인물이다. 지난 세기 중엽 완고하고 고루한 남부농장주들을 무쇠주먹으로 두들겨패고 전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5년간에 걸친 남북전쟁에서 무비의 용맹을 떨쳐 미국력사에 기록된 장군이 바로 셔먼이였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최신기술로 건조하고 기관까지 설치한 군함에 그의 이름을 달아주었던것이다.

군함 《제네랄 셔먼》호는 남북통일로 급작스레 강대해져서 본격적으로 세계의 주인으로 되는 길에 나선 대아메리카의 상징이였다.

그 군함이 태평양을 건너가 마수거리로 조선을 어째보려고 집적거리다가 화공전술에 걸려들어 불타고 대동강에 수장되였다.

이 사건은 미국의 망신이자 미해군의 수치여서 미국인이라면, 특히 미해군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치고 모르는자가 없었다.

김일성장군의 증조할아버지가 평양사람들의 앞장에 서서 〈셔먼〉호를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웨리크는 내심 놀랐다.

조선인민의 절세의 애국자로, 민족적영웅으로 명성을 떨치고있는 김일성장군에 대한 소문을 그도 익히 들었던것이다.

김일성장군의 령도를 받기때문에 북조선은 빠른 기간에 강력한 해군함대를 창설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칫하면 당신들은 〈셔먼〉호의 신세가 될수도 있는거지요.》

태연한체 하고 덤덤히 서있던 웨리크는 자기의 얼굴을 밉살스러울 정도로 빤히 지켜보고있는 간특한 일본인의 끈질긴 눈초리를 감촉하자 여유작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셔먼〉호는 함장의 실수로 좌초됐기때문에 그런 봉변을 당했던거요. 아무리 유능한 함장도 한두번정도의 실수는 할수 있지.》

시마무라는 랭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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