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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함설계도면을 가지고 조선소에 가서 기술합의를 하던 채정보는 정치부교장이 새로 임명되여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 돌아왔다.

지난 정초 개교식에 참가하여 감동적인 축하연설을 한 조정철이 정치부교장으로 온다니 더우기나 반가와서 한시바삐 만나고싶었던것이다.

해군함대창설과 관련한 두가지 중요한 문제, 즉 인재육성과 함정건조를 놓고 그는 많은 생각을 하고있으면서도 정작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만 한 상대가 없어서 저으기 애가 타던 참이였다. 김광민교장은 해방전 옥중에서 얻은 병이 심하게 도져서 한달째나 입원치료를 받고있으니 더욱 그랬다. 새로 오는 정치부교장을 만나면 이 문제부터 의논하고 필요한 대책을 취해야 했다.

날이 훤히 밝아서야 기차에서 내린 그는 수십리길을 반달음쳐 땀을 철철 흘리며 수상보안간부학교가 자리잡고있는 외진 포구에 들어섰다.

학교에서 좀 떨어진 안침진 야산기슭에는 교직원들의 사택마을이 있다.

채정보는 려장을 풀어놓으려고 먼저 집에 들렸다. 바께쯔에 돼지죽을 퍼담던 안해가 불쑥 나타난 그를 보고 놀라와했다. 조선소에 가서 배무이공정표까지 짜고나면 보름이 걸릴거라던 남편이 사흘만에 돌아왔으니 그럴수밖에…

채정보는 땀배인 군복상의를 벗으며 성급히 물었다.

《여보, 정치부교장이 임명되여왔다지?》

《글쎄요.》

안해는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별안간 울상이 되여 푸념질을 시작했다.

《이거 야단이 났어요. 기정이가 처벌을 받고서도 정신을 차리는것 같지 않아요.》

《그건 무슨 소리요?》

안해는 세면기에 물을 퍼주고나서 바가지를 손에 쥔채 계속 속타는 소리를 했다.

《걔가 군옥이와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 해삼을 건진다 하고 잔뜩 흰소리만 치고 돌아다니며 정작 미역 한꼬리도 건져오지 못한대요.

소대장과는 계속 엇서기만 하구… 그래서 혼쌀을 내우노라 식당에선 그 건달군들에게 밥도 주지 않는다누만요.

너무하지요, 정말 너무해!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부교장의 아들인데 어쩌면 그렇게까지 괄시할수가 있냐 말이예요.》

채정보는 안해의 송사를 귀등으로 들으며 시원하게 세면을 하고 군복상의를 입었다.

《우리 애는 덩치만 컸지 너무 어질어빠졌지요.

식당에서 밥을 안 주면 집에 와야지요. 엎디면 코닿을데 집이 있고 이 에미가 있는데 그녀석은 쫓겨난 이붓자식같이 얼씬도 하지 않으니 이거야 속상해서 어디 견디겠어요.》

안해는 제 심정을 몰라주는 아들의 무정한 처사를 나무랐다.

그러나 채정보는 아들이 그런 면에서는 옳게 처신한다고 생각했다. 부교장의 아들이라고 해서 으시대거나 근처에 있는 제집에 들락날락하면 다른 학생들의 눈에 거슬리고 또 좋지 않은 영향을 줄수 있었다.

그런 우려가 노상 없지 않아서 아들을 입학시킬 때 단단히 신칙했더니 반년이 돼오는 오늘까지도 집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는다.

안해는 아들이 보고싶으면 교문앞에 가서 고개를 빼들고 지켜서있군 했다. 그러면 운동장에 나온 아들을 구경하거나 아들소식이라도 얻어들을수 있었다.

채정보는 문제의 세 학생에게 처벌을 준 그날 아침에 조선소로 떠났던지라 그후의 일은 알수 없었다.

안해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이 처벌로동을 성실히 하지 않고 건달을 부려서 제재를 받는 모양이다.

김군옥은 성실하고 근면한 학생인데 그럴수가 있을가? 모를 일이로다.

안해는 학교에 나가려는 남편에게 서둘러 밥보따리를 꾸려주었다.

배를 곯고있을 아들에게 슬며시 가져다주라는거다.

채정보는 눈을 흡뜨며 거절하고 마당에 나서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돌아섰다.

《여보, 오늘 저녁에 한상 푸짐히 차리오.》

시무룩해졌던 안해의 얼굴이 금시 밝아졌다.

《그 애와 함께 오시겠어요?》

《쯔쯔, 무슨 소릴 하는거요.

새로 온 정치부교장에게 집구경을 시키고 식사도 함께 하자는거지. 성의껏 준비하오, 솜씨를 보이란 말이요.》

채정보는 이처럼 재삼 당부하고 학교에 나갔다.

식당근처에서 어스벙거리다가 그를 띠여본 한백천이 벙글거리며 달려왔다.

《부교장동지,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사업하던 조정철동지가 우리 학교 정치부교장으로 임명되여왔습니다.》

《나도 그 소식을 듣고 돌아오는 길이요.》

《듣자니 자진해서 왔다더군요. 그런데 이거 대접할만 한게 없어서 야단입니다.

염장청어는 벌써 동이 났구만요. 있다는건 미역이나 다시마따위니…》

《정치부교장동지는 어데 있소?》

한백천은 웬일인지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한시간전에 전마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습니다.》

《어째서?》

한백천은 면구스런 기색으로 사연을 말했다.

《정치부교장동지는 오자마자 교직원들을 만나 학교실태를 료해했습니다. 그 과정에 며칠전 세 학생이 여사여사한 일로 대판 다투고 처벌을 받은것도 알게 됐지요.

소대장동무는 채심하고 해상부업을 성실히 해서 다시마와 미역을 산더미처럼 건져내여 말리우고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두 학생은 물고기를 잡는다고 허풍을 치면서 전마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빈둥거리다가는 해질녘이면 알짜 빈손으로 돌아오군 했습니다.

이거야 처벌로동에 의견이 있다는거지 뭡니까.

그래서 난 그들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했는데…》

난처해서 말허리를 끊고 자기의 눈치를 살피는 한백천에게 채정보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잘했소. 건달을 피우면 먹을 자격이 없지.

그래서 어쨌다는거요?》

《정치부교장은 그 소리를 듣더니 큰일이나 난듯이 펄쩍 뜁디다.》

《그으래?》

《예, 나더러 인간성이 없다는거지요. 교단에 설 자격도 없다고 막 고함을 치더군요.

인상이 좋던 그가 성을 내니까 정말 무섭습디다.》

한백천은 코대가 높고 쩍하면 격하기 잘하는 화약같은 성미인데 새로 온 정치부교장한테 단단히 혼쌀나고 주눅이 든것 같았다.

《정치부교장은 그들이 얼마나 배가 고프겠는가고 걱정하면서 부랴부랴 운반식사를 꾸려가지고 전마선을 타고 사슴섬쪽으로 갔습니다.》

채정보는 그의 신변이 근심되여 몹시 나무라는 어조로 물었다.

《혼자 보냈단 말이요?》

《그럴리야 있습니까.

믿음성이 있는 리완근과 리대훈학생을 함께 보냈습니다.》

채정보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였다.

리완근은 스물두살인데 학생들가운데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이미 장가를 든 그는 매사에 침착하고 성근하며 바다물계에 환했다.

남쪽에서 살다가 해방직후 북으로 들어온 리대훈도 깨끗하고 청렴하고 대바른 젊은이였다.

《침실은 준비했소?》

《학생들과 함께 숙식하겠답니다.》

《그렇게야 어떻게 하겠소. 정치부교장방에 침대를 하나 들여놓고 식사는 당분간 우리 집에서 하게 합시다. 그리고 빈집을 한채 빨리 손질해야 하겠소. 가족들을 데려와야 할테니까.》

《알았습니다.》

한백천은 여느때없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채정보는 서둘러 잔교에 나갔다. 그는 목을 잔뜩 빼들고 사슴섬쪽을 바라보며 전마선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찾아가야지.

그는 부랴부랴 군복을 벗어 부업선의 조타실안에 던져넣고 빤쯔바람에 바다물에 첨벙 뛰여들었다.

뭍에선 한창 봄빛이 무르녹는데 바다물은 아직도 몸이 오싹할 지경으로 차거웠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바다와 인연을 맺고 살아오는 그는 이처럼 차거운 물속에서도 3마일정도는 수월히 헤염칠수 있었다.

바다풀이 거치장스럽게 두손과 두다리에 휘감겼다. 그는 바다풀을 헤쳐버리며 슬슬 헤염을 쳤다. 문득 앞에 연분홍색의 커다란 꽃이 둥실 떠있는게 눈에 띄였다. 해파리였다. 해파리는 수면에 떠서 수많은 길고 가느다란 촉수들을 뻗치고 너울거리며 로획물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해파리의 촉수에 쏘이면 그 자리가 부어오르고 심한 경우엔 생명도 위급하다.

이렇게 헤염을 치다가 큰 해파리를 만나는건 불길한 징조였다.

채정보는 해파리를 슬쩍 에돌았다.

사슴섬이 보였다.

섬에는 사슴을 기르는 자그마한 목장이 있다.

기슭에서 풀을 뜯던 여러마리의 사슴들이 물소리가 나자 일제히 고개를 들고 채정보를 바라보더니 위험을 느꼈던지 들고뛰였다.

채정보는 사슴들이 도망쳐간 반대쪽으로 헤염쳐서 코바위를 에돌았다. 그러자 우묵하게 휘여들어간 작은 만에서 두척의 전마선이 의좋게 나란히 움직이는게 눈에 띄였다.

전마선을 타고있는 학생들은 빤쯔바람이였다.

어릴적부터 힘겨운 로동속에서 단련된지라 그들의 체격은 부러울 정도로 그쯘했다. 해볕에 보기 좋게 탄 구리빛근육이 번들거렸다.

해군샤쯔가 아니라 일반병종의 군인들이 입는 하얀 면내의를 입고 학생들과 바줄을 당기고있는 사람도 보이는데 그는 분명 새로 온 정치부교장일것이다.

무엇때문인지 그들은 노를 저을 대신 섬기슭의 소나무밑둥에 맨 바줄을 당기며 전마선을 움직이고있었다.

그들을 깜짝 놀래워주고싶은 동심이 생겼다.

채정보는 물소리가 나지 않게 은밀히 접근하다가 머리까지 잠그고 물속으로 헤염쳐갔다.

땀을 철철 흘리며 바줄을 당기는데만 정신이 팔렸던 그들은 별안간 전마선의 코앞에서 뭔가 불쑥 솟구치자 모두 깜짝 놀랐다.

《허허! 나요!》

기정이가 먼저 알아보고 소리쳤다.

《아버지! 언제 돌아오셨나요?》

채정보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아버지가 뭐냐? 부교장이라고 불러야지.》

그는 아들이 타고있는 전마선이 아니라 정치부교장이 탄 전마선에로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조정철은 인사를 하며 허리를 굽히고 전마선에 오르는 채정보를 도와주었다. 채정보는 자기의 손을 잡아당겨준 상대방의 손을 막 흔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통에 잠시 작업이 중지되였다.

채정보는 떡함지에 엎어진듯 대뜸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전마선밑창엔 먹음직스런 꽃게와 살진 해삼이 두둑이 깔려있었던것이다.

《히야! 이걸 어떻게 잡았소?》

조정철은 나란히 선 저쪽 전마선에서 한창 뚝심을 쓰며 바줄을 당기고있는 김군옥과 채기정을 대견스런 눈길로 가리켰다.

《저 동무들이 그물쪼박을 기워서 끌망을 만들었더군요. 연추대신에 식당화구칸에서 쓰는 쇠장대를 매달고 이렇게 바다밑을 말끔히 긁어내는중이지요.》

그런즉 두척의 전마선으로 뜨랄작업을 하는셈이였다. 노를 저어서는 무거운 끌망을 끌수가 없어서 이렇게 머리를 써서 바줄로 당기고있었다.

일손을 멈추었던 리완근과 리대훈도 저쪽에서 힘겨워할세라 바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이 동무들은 저기에 드레도 놓았답니다.》

조정철이 가리키는 곳에는 마개를 막은 빈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있었다.

《띄우개가 없어서 저렇게 빈 기름병이나 간장병을 썼다고 합니다.》

칭찬에 린색한 채정보도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거 정말 묘한 생각을 했군요.》

《예. 생각도 묘하지만 그물이 없다, 부업선이 고장이다 하고 타발을 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제 손으로 부업을 잘해서 식생활을 개선하려는 그 정신이 좋다고 봅니다.

부교장선생이 장한 아들을 두었단 말입니다.》

채정보는 황급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녀석은 덩치만 컸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창발성과 실천력이 부족한 생둥이지요.

학습과 훈련에서 모범인 군옥학생을 따라다니더니 요즘은 좀 셈이 드는것 같습니다.》

조정철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서해수상보안대 대장으로 사업하던 김성국으로부터 김군옥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듣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있었다. 김성국은 요구성이 높아서 웬간해선 남을 칭찬하지 않는 성미인데 그 학생에 대해서만은 례외였다.

《수상보안간부학교에 가면 그 친구부터 만나보십시오.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수상보안대창설초기에 우린 경비정은 고사하고 발동선조차 없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노를 젓는 전마선으로는 발동선들을 단속할수 없다고 모두들 우는소리를 했지요. 그런데 어느날 내가 신의주대에 가보니 오토바이기관을 놓고 배머리에 중기를 설치한 전마선이 있더란 말입니다. 그게 물갈기를 날리며 내달리는데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어뢰정같더란 말이지요. 전마선을 그렇게 개조한 대원이 바로 김군옥동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동무를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선참으로 추천한겁니다.

두고보십시오, 앞으로 큰일을 할겁니다.》

하기에 조정철은 그 학생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왔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너무도 어긋나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김군옥학생이 교실에서 소대장과 대판 싸우고 처벌을 받았다는게 아닌가. 그런데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처벌로동을 성실히 할 대신에 하루종일 어디에 가서 배놀이만 하면서 허풍을 친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배놀이를 한다는 여기에 직접 와보았다. 그들은 배놀이를 하는게 아니라 창조성과 적극성을 발휘하여 해상부업을 본때나게 하고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학생들은 바줄을 당겨 전마선들을 섬기슭에 끌어냈다.

들어올린 끌망안에는 번들번들 살진 해삼들과 밤송이처럼 생긴 참성게와 말성게가 한바구니나 들어있었다.

《수확이 대단하구만.

수고들 했소. 좀 쉬고 하기요.》

채정보는 량쪽다리를 다 심하게 저는 조정철을 부축해주며 기슭에 내렸다.

학생들은 아직도 원기가 왕성한지, 아니면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려 쉬고싶은 생각이 없는지 드레를 털어오겠다면서 전마선을 몰고 다시 나갔다.

두 군관은 모래불에 나란히 앉아 해빛을 쪼였다.

따스한 봄빛아래서 바다는 행복에 겨운듯 찰싹찰싹 즐겁게 노래부르며 춤을 추고있었다. 손과 손을 맞잡고 이랑이랑 밀려오는 줄파도가 모래불에 기여올랐다가는 레스같은 정교하고 우아한 문양을 그려놓고 물러가군 했다. 파도에 밀려나온 작은 게들과 게골뱅이들이 거품을 보그그 입에 물고서 바삐 게걸음을 친다.

봄날의 따사로운 태양아래서 바다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재롱을 부리는것 같았다.

다감한 정서와 동심을 불러주는 바다의 모습을 취한듯이 바라보던 채정보는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조동지, 어떻게 돼서 우리 수상보안간부학교에 오게 되였습니까?》

조정철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뜻밖입니까?》

《그런건 아닙니다. 지난 개교식때 조동지는 축하연설에서 우리와 손잡고 해군함대를 건설하고싶은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터놓았으니까요. 나도 그때 조동지와 함께 일하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했댔습니다. 그러나 정작 동지가 우리 학교의 정치부교장으로 오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조정철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저를 친히 수상보안간부학교의 정치부교장으로 임명해주시였습니다.》

모래불에 비스듬히 누웠던 채정보는 얼른 상반신을 일으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요?》

조정철의 총기어린 눈동자가 해빛을 반사하며 반짝 빛을 뿌렸다.

《예, 그이께서는 새 조국건설로 매우 분망하시지만 해군함대창설에 큰 관심을 돌리고계십니다.

해군함대창설에서 수상보안간부학교가 노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요. 그래 어떻습니까? 일이 잘됩니까?》

채정보는 금시 안색을 흐리며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함대창설은 해방된지 3년도 채 안된 우리 나라에 있어서 너무도 아름찬 과제입니다. 해군지휘관들과 전문병들을 키워내야지, 군함들을 마련해야지, 군항들을 건설하고 배수리기지와 보급기지를 꾸려야지. 어느거나 준비된 인재들과 거액의 투자가 없이는 성사 불가능한것입니다. 우리 학교의 실태만 놓고봐도 그렇지요.》

채정보는 이처럼 그동안 안타깝고 답답하던 자기의 심중을 솔직히 터놓았다.

《최신과학기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전투함정을 능숙하게 다루는 지휘관들을 키워내려면 교육조건이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엔 교원력량도 신통치 않고 해상실습선은 고사하고 교육용무기전투기술기재조차 변변히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런 실정에서는 몇년이 가도 제구실을 하는 해군지휘관들을 키워내기 곤난합니다.

그래서 한백천동무를 비롯한 일부 교원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류학을 보내자는건데… 순양함을 사와야 한다는 소리도 있구요.》

채정보는 학교실태와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엇갈린 견해와 립장에 대해서도 실례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말했다.

《글쎄 류학을 보내거나 순양함을 사오는것도 공짜로는 할수 없는건데… 나라에 언제면 그 막대한 자금이 생기겠는지… 지금 형편에서 가능한껏 우리 힘으로 해야 할텐데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으니 안타깝단 말입니다.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일부 교원들과 학생들의 견해가 옳지 않지만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제구실을 하는 해군지휘관들을 양성하려면 항해학과, 기관학과, 포병학과 등을 내오고 교육용무기전투기술기재들과 실습함선도 갖추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학교는 중학수준인데 여기서는 기술근무원이나 양성할수 있지 해군지휘관은 키워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고급중학교나 전문학교정도로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이왕이면 해군대학을 내오는것이 좋습니다.》

조정철은 학교의 실태를 정확하면서도 공정하게 보고 편견을 가지지 않으며 제 생각을 솔직하게 터놓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실정에서 당장 해군대학을 내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 학교를 해군군관학교로 승격시키고 그에 필요한 교육학적조건들을 갖추는 방향에서 가능성을 찾아봅시다.》

《그것도 헐한 일이 아닙니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 교원진영을 더 잘 꾸려야 합니다.》

《필요하면 투자를 해야지요. 빨리 대책안을 작성하여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드립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요?》

조정철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군함대창설에서 기본은 직접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싸울 해군지휘관양성이라고 하시면서 수상보안간부학교에서는 교육기간을 최대한 단축하여 한두해안으로 학생들을 졸업시켜야 한다고 각별히 당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저에게 학교에 내려가보고 걸린 문제가 있으면 다 자신에게 직접 제기하라고, 해군지휘관양성과 관련된 문제는 어느거나 자신께서 직접 책임지고 풀어주시겠다고 하시였습니다.》

채정보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안타깝고 답답하던 가슴이 툭 터지듯 시원하게 열린다. 파도와 짙은 안개속에서 항로를 잃고 갈팡질팡하다가 등대를 발견한 심정이였다.

《인젠 됐구나! 인젠 됐어!》

그는 모래불을 차고일어나 수평선을 향하여 두팔을 힘껏 벌리며 이렇게 환성을 올리고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

《해군지휘관양성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은 해군함정들을 갖추는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른 나라에 가서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사올 허황한 생각을 할게 아니라 어려워도 우리의 기술과 힘으로 비록 크지는 않지만 연해를 지킬수 있는 경비정과 같은 함정들을 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참, 조선소형편은 어떻습니까?》

《거기도 애로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바다를 지킬 해군함선을 우리 손으로 건조하려는 로동계급의 열의는 대단히 높습니다. 인차 함선건조에 착수하려고 합니다. 제가 자주 조선소에 나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그 사업이 중요하니만치 여기 일은 나에게 맡기고 부교장선생은 이제부터 전적으로 조선소에 나가있어도 되겠습니다.》

조정철의 안색과 목소리는 불현듯 심각해졌다.

《조국의 바다를 우리 힘으로 지킬 해군함대를 창설하는것은 조성된 정세로 보아도 더 미룰수 없는 과업으로 제기되고있습니다.》

채정보는 긴장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쟁도발책동에 미쳐날뛰고있는 미제는 해안경비대의 명목으로 남조선해군의 기초를 마련해놓고 상륙선과 소해정을 비롯하여 수십척의 함정들로 장비시켜주었습니다. 앞으로 구축함까지 넘겨주려고 한답니다. 요즘 서해안에서 놈들의 해상도발행위가 우심해졌는데 여기 동해안에서도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모릅니다.》

채정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에 눈길을 돌렸다.

문득 아까 사슴섬으로 헤염쳐올 때 맞다들렸던 해파리의 흉물스런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해파리들이 갑자기 물우에 떠오르거나 바다기슭에 밀려나오면 영낙없이 폭풍이 불거나 해일이 일어나는것이다.

그 해파리가 미구하여 들이닥치게 될 그 어떤 위험을 예고해주는듯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는 평온했다.

《아버지!》

그는 자랑에 넘친 아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두척의 전마선이 경기를 하듯이 빠른 속도로 앞을 다투며 섬기슭으로 다가오고있었다. 군옥과 대훈은 률동적으로 상반신을 움직이며 솜씨있게 기운차게 노를 젓고 완근이와 기정이는 배머리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데 모두들 얼굴이 환했다.

조정철은 그들이 볼수록 대견하고 미더워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재간둥이들입니다. 전마선을 가지고도 머리를 써서 해삼이고 물고기고 다 잡아내는군요.》

채정보는 절로 흐뭇해져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거 정말 고기잡이방법이 신통합니다.》

《무슨 일이나 주인된 자각을 가지고 애를 쓰면 묘안을 찾기 마련이지요. 그 정신과 열의가 얼마나 좋습니까. 저 동무들을 보니 정말 힘이 솟습니다. 끌끌하고 총명하고 열정적인 우리 학생들과 함께라면 못해낼 일이 없겠습니다.》

경쟁적으로 달려온 두척의 전마선은 거의 동시에 모래불에 코를 박았다.

《아버지! 만선이예요! 이것 보세요!》

채기정은 량손에 방금 기름독에서 건져낸듯싶은 시누런 노르메기와 거무스레하고 가시가 뿌죽뿌죽 나온 팔뚝같은 우레기를 쥐고 성큼 모래불에 뛰여내리며 어린애처럼 천진란만하게 떠들었다.

《아버지, 이렇게 큰 우레기는 보기에 첨이예요!》

《녀석두… 철두 없지. 또 아버지라고 부르는구나.》

채정보는 짐짓 아들을 탓하며 우정 소리나게 혀를 찼다.

《너희들이 고기를 얼마나 잡아왔게 큰소리냐? 어디 보자.》

그는 궁둥이에 묻은 모래를 털며 일어나 학생들이 모래불에 반쯤 끌어올린 전마선에로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전마선밑창엔 드레로 건진 잡어들이 퍼그나 되였다. 노르메기와 우레기, 열기, 줄도미따위가 태반인데 드문드문 손가락만큼 굵고 먹음직스러운 왕새우와 배가 볼록하게 나온 보가지도 눈에 띄였다.

채정보는 입을 하 벌렸다.

《허! 큰소리를 칠만도 하구만.》

김군옥은 따로 건사했던 손바닥만 한 물고기를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보십시오, 가재미도 잡았습니다.》

조정철이 웃으며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도다리요, 가재미사촌이지.》

조정철은 아주 으쓱해진 젊은이들에게 자기의 바다지식을 뽐내보고싶었다.

《군옥동무, 이걸 왜 해삼이라고 부르는지 아나?》

김군옥은 제꺽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말그대로 바다의 삼이라는 소립니다.》

《옳소, 산에는 산삼이 있고 바다엔 해삼이 있으며 하늘엔 비삼이 있지.》

비삼이라는 소리에 학생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비삼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구만. 그건 까마귀 열을 두고 하는 소리요.

까마귀란 놈은 300년이나 산다는데 이를테면 신령스러워서 잡기가 헐치 않소. 빈총을 가지고 겨누는 흉내를 내면 꿈쩍도 안하지만 장탄을 하고 겨눌라치면 제꺽 날아가지.》

처음 듣는 소리여서 모두들 신기해했다.

《까마귀 열은 아침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가 밤이면 다시 열주머니에 모여든다고 하오. 그래서 날이 밝기 전에 까마귀를 잡아야 온전한 비삼을 얻을수 있소.》

리대훈이 비삼을 어디에 쓰는가고 물었다.

《허리병에 특효가 있지.

바다엔 이처럼 해삼이 있는데 종류가 여러가지요. 이러루하게 생긴 해삼은 인삼에 비길수 있소.

산삼과 효능이 맞먹는건 백삼이요. 그건 색갈이 하얗지. 어디 동무들이 잡은 해삼가운데 백삼이 있나 보오.》

학생들은 백삼을 찾노라 해산물무지를 마구 뒤적거렸다.

《허허! 공연한 수고는 그만두오.

백삼은 해삼 만개중에 한두개정도 있으나마나 한 귀물이요.》

채정보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산에서 싸우던분이 우리 배군들보다 바다물계가 더 환하군요.》

《나두 배군출신이니까요.

동무들! 이왕이면 판을 더 크게 벌리자구.

부업선을 수리하고 덤장을 쳐서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내잔 말이요.

전마선에 오토바이기관을 설치해본 경험이 있는 군옥동무와 배기관에 조예가 깊은 기정동무가 맘먹고 달라붙으면 그까짓 열구기관쯤이야 수리하지 못하겠소, 어때?》

두 학생은 동시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해내겠습니다!》

《좋소. 우리 순양함타령은 그만두고 우선 우리가 가지고있는 부업선을 수리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하나 배우고 손에 익히기요. 그러면 각종 해산물료리로 식탁도 푸짐해질테니 일거량득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채선생.》

채정보는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정신이 나간듯이 바다쪽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기정은 민망스러워서 아버지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왜 그래요?》

《가만!》

채정보는 피뜩 고개를 돌렸는데 웬일인지 얼굴표정이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저길 보라구! 잠망경이 나타났소.》

청청하늘에서 마른 벼락이 쳤대도 모두들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것이였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져서 채정보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고요한데 그쪽 수면에 미세한 파문이 일뿐 잠망경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물속에 들어갔구만. 그건 분명 잠망경인것 같은데…》

《그럼 잠수함이 여기까지 들어왔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어느 나라 잠수함일가요?》

《글쎄… 쏘련잠수함이라면 사전에 우리에게 통보하고 여기에 들어와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을텐데…》

고개를 기웃거리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김군옥은 그 장소에 가서 제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싶었다. 그래서 기슭에 반쯤 끌어올렸던 전마선을 재빨리 밀고나가 바다물에 띄우는 동시에 날쌔게 올라타며 노대를 노젖에 박았다.

이것은 눈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그 행동이 심상치 않아 채정보가 소리쳤다.

《군옥이! 어쩌자는건가?》

김군옥은 힘주어 재빨리 노를 저으며 대답했다.

《잠망경이 나타났던 장소에 가보려고 그럽니다.》

《돌아오시오! 공연한 일이요, 위험하오!》

그래, 이건 공연한짓이다. 그리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수류탄 한개도 싣지 못한 전마선으로 잠수함을 잡을수야 없지 않는가.

우리에게 구잠함이 있었더라면, 폭뢰가 한발이라도 있었다면 이럴 때 본때를 보이는건데… 분하구나!

김군옥은 너무도 애가 타서 입술을 피나게 깨물며 혹시 잠망경이 나타나면 노대로라도 후려치려고 더 힘껏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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