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등록 |  학생가입 
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4

 

김정인의 출현은 개교준비에 분주하던 수상보안간부학교 교직원들과 흥분하여 입학수속을 하던 젊은이들모두를 놀래웠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정인이를 거의나 강다짐으로 려객선부두에 떨구어놓고 온 한백천소좌였다. 그는 처녀가 락심천만해서 집으로 돌아갈줄 알았지 밤새 행군하여 여기까지 찾아올줄은 차마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처녀의 고집과 이악성에 탄복할 지경으로 놀랐지만 그렇다고 하여 양보할 그가 아니였다.

가뜩이나 개교준비가 어설프기 그지없어 이런 곳에서 제구실하는 해군지휘관들을 키워낼수 있겠는지 자신심이 생기지 않는데 처녀까지 입학시키면 꼴불견인데다가 될일도 안될수 있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처음부터 학교의 규률과 질서를 엄격히 세우기 위해서도 눈 꾹 감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한백천은 관청뜨락에 들어온 암병아리를 쫓듯이 두팔을 벌리고 처녀를 교문밖으로 밀어냈다.

이통에 처녀와 나란히 운동장에 들어섰던 김군옥이도 황황히 뒤걸음쳐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인은 당장 눈물이 쏟아질 지경으로 애가 타고 약이 바싹 올랐다.

하지만 숱한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자기를 지켜보기에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다분히 응석이 섞인 어조로 항변했다.

《아저씨두 참… 너무하군요.

제가 그렇게두 보기 싫어요? 왜 문전거절을 하는거예요?》

키가 꺽두룩한 한백천은 노상 부은것처럼 보이는 퉁방울같은 눈을 부릅뜨고 엄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나를 아저씨가 아니라 소좌동지나 선생이라고 불러야 해.》

상대방이 엄하게 나올수록 정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매달리듯 졸라댔다.

《나를 학교에 받아주세요. 예? 선생님.》

《여기엔 녀자들이 필요없어.》

《왜 필요없어요? 해군에도 녀성들이 할일이 얼마든지 있잖나요.》

《간호원이나 무전수, 타자수로는 복무할수 있지.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간호원이나 무전수가 아니라 전투함선을 몰고 풍파사나운 바다에 나가 싸울 함장들을 키워낸단 말이야.》

정인은 가슴을 내밀며 큰소리로 언명했다.

《나도 함장이 되자는거예요!》

한백천은 앙천대소했다.

《하하! 이거야말로 세상을 웃기겠구만.

정인아, 처녀함장이라는건 동서고금 어느 나라 해군에서도 있어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수 없어. 붉은군대에도 녀성들이 적지 않지. 그들가운데엔 녀성정찰병이나 녀성비행사는 더러 있어.

그러나 녀성함장은 없어. 함장은 고사하고 녀성조기수나 갑판수도 없단 말이야.》

정인은 모욕감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만하세요! 난 아저씨한테서 녀성천시로 일관된 연설을 벌써 두번째로 들어요.》

김군옥은 더이상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수 없었다.

그는 밤새도록 함께 먼길을 걸어오면서 친숙해진 처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서 대담하게 지원포를 쏘았다.

《소좌동지, 다른 나라 군대는 어떻든 우리 인민군대에서 력사상 처음으로 녀성함장이 나오면 좋은거지 나쁠거야 없잖습니까.

이 동무의 소원대로 해주십시오.》

한백천은 주제넘게 나서서 훈시를 하는 젊은이를 감때사납게 흘겨보았다.

《넌 누구야? 버르장머리가 없구만!》

첫탕에 다짜고짜로 된욕을 먹은 김군옥은 자세를 바로하며 항의하듯 우정 큰소리로 대답했다.

《서해수상보안대 신의주분소에서 온 김군옥입니다!》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는 그 태도가 한백천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신발을 바로 신기기 위해 엄하게 추궁했다.

《동문 군사규정도 몰라? 상관에게 할말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소좌동지, 물어볼수 있습니까?〉 이렇게 먼저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얼핏 보매 어지고 참하게 생긴 젊은이가 튕겨볼수록 짱짱 쇠소리를 냈다.

《음, 입학하러 왔소?》

《예!》

《그럼 문건을 내놓소.》

김군옥은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멨던 베보자기를 벗어 서둘러 풀고 수속에 필요한 문건을 꺼내 두손으로 정중히 바쳤다.

한백천은 문건을 깐깐히 뜯어보고나서야 감때사나운 표정을 어느 정도 풀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소. 동문 들어가 입학시험수속을 하오.》

김군옥은 동행자를 남겨둔채 혼자 들어갈수가 없어서 머뭇거렸다.

한백천은 총각과 처녀를 색다른 눈으로 번갈아보더니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으며 흥미있는 어조로 물었다.

《가만, 동무넨 잘 아는 사이요?》

두 젊은이는 불시에 얼굴을 붉히며 몹시 당황해했다.

김군옥은 방금전의 당당하고 어엿하던 자세를 허물며 우물쭈물 변명조로 대답했다.

《저… 려객선부두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럼 남의 일에 싱겁게 상관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오.》

운동장에서는 대렬을 지은 입학생들이 잔뜩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교문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고있었다.

김군옥은 바빠맞아서 허겁지겁 달려가 대오에 들어섰다.

대렬앞에 당돌하게 서있던 앙바틈하고 영악스레 생긴 고수머리가 대뜸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동무! 보고도 없이 승인도 받지 않고 자의대로 대렬에 막 들어서면 되는가?》

추궁을 받은 김군옥은 일순 어리둥절해졌다.

나이가 자기와 비슷해보이는 상대방은 차림새를 봐도 교원이 아닌게 분명했기때문이였다.

이때 곁에 서있던 체격이 우람진 젊은이가 얼른 귀띔을 해주었다.

《저 동문 오늘 아침에 임명된 소대장이예요.》

소대장이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을 마수거리로 행사하고싶었던지 금이발을 번쩍거리며 자못 거드름스럽게 다가왔다.

《동문 어디서 온 누구인가?》

키가 작은 소대장이 키가 큰 한백천소좌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것이 가관이였다. 김군옥은 좀 기분이 상했지만 자세를 바로하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서해수상보안대 신의주분소에서 온 김군옥입니다!》

소대장은 무슨 흠집을 잡고싶은지 메밀눈으로 날씬하고 단정하고 온순하게 생긴 김군옥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입학하려고 왔으면 문건을 내놓소.》

이런 요구를 하는것도 신통히 한백천소좌를 본땄다.

《문건은 이미 소좌동지에게 제출했습니다.》

소대장의 메밀눈에 상대방을 시까스르는듯 한 능청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서해에서 왔다는 동무가 동해의 해당화는 언제 꺾었소?》

동해의 해당화란 정인이를 념두에 둔게 분명했다. 김군옥은 당황해졌다.

《그… 그건 무슨 소리요?》

구운 가재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아닌보살하는 군옥이를 바라보며 학생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소대장은 씨물씨물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 처녀는 함흥의전의 꽃이란 말이요. 그런데 동무가…》

김군옥은 방금전 한백천소좌에게 그러했듯이 얼른 변명조로 대꾸했다.

《그건 오해요. 우린 어제 려객선부두에서 처음으로 만나 함께 왔을뿐이요.》

《하여간 이제부터는 헛눈을 팔지 마오. 예로부터 꽃향기에 취한 배군은 제구실을 못한다고 했소. 치마바람을 쏘인 배는 영낙없이 산으로 올라간단 말이요.》

소대장이 손짓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가리키자 또다시 와하하! 하고 폭소가 터졌다.

졸지에 웃음가마리가 된 김군옥은 상당할 정도로 모욕감을 느꼈다.

《여보! 거 아무 말이나 탕탕 하지 마오!》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소대장은 그제서야 자기의 언행이 지나쳤음을 느꼈던지 화해조로 버룩 웃었다.

《골을 내긴… 동무하군 롱담도 못하겠구만.》

《시시껍적한 롱담은 삼가하란 말이야!》

《뭐가 어째?》

그들은 눈섭을 곤두세우고 성난 수닭처럼 서로 노려보았다. 눈찌만 봐도 둘다 만만치 않았다. 곁에 있던 체격이 우람지나 얼굴엔 햇복숭아처럼 솜털이 보시시한 젊은이가 두팔을 벌리고 그들사이를 막아나섰다.

《이제부터 함께 공부를 해야 할텐데 이러면 되나요? 그만두라요.》

다른 학생들도 만류하기에 그들은 물러섰다.

그날부터 입학시험이 시작되였다.

인기있는건 오후에 진행한 체력검정이였다.

오전에 진행한 시험들은 주로 종이에 써내는것이여서 누구의 실력이 높은지 아직은 알수 없었다. 그러나 체력판정은 입학생들의 육체적준비정도를 그 자리에서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달리기와 너비뛰기, 높이뛰기, 장대오르기, 철봉, 평행봉, 조마 등 모든 종목에서 김군옥은 평상시에 독을 먹고 꾸준히 련마해온 자기의 우수한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정문밖에 오도카니 서서 자기를 줄곧 지켜보는 정인의 고무적인 눈길을 기쁘게 느끼고있었다. 그 눈길앞에서 용감하고 대담해지고싶었고 모두를 깜짝 놀래울 뛰여난 솜씨를 발휘하고싶었다. 그래서 실력을 다 과시했는데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으로 몸이 잘 움직여져서 종전에 세운 자신의 기록을 모든 종목에 걸쳐 돌파했다.

백메터달리기로부터 조마에 이르기까지 그와 성적이 어슷비슷한 학생은 벌써 소대장이 돼서 큰소리를 탕탕 치며 대렬관리를 하는 고준무였다.

두 젊은이는 체력검정마당에서 대뜸 쌍벽을 이루며 두드러진 존재가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군옥은 노상 기쁘거나 즐거울수가 없었다.

녀성함장이 되려는 리상을 안고 자기와 함께 밤길을 인상깊게 걸어온 정인이가 입학시험도 치지 못하고 울상이 돼서 교문밖에 그냥 서있기때문이였다.

벌써 김군옥이에게 반해서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채기정이가 왜 그러는가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김군옥은 그에게 사연을 솔직히 터놓았다.

채기정은 씩 웃으며 선뜻 장담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라요. 우리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될테니까요.》

김군옥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누구야?》

《교무부교장이지요.》

채기정은 조금도 뽐내거나 으시대지 않고 오히려 좀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김군옥은 막혔던 숨이 활 나갔다.

그는 즉시 채기정을 앞세우고 교무부교장을 찾아갔다. 과연 채기정의 아버지답게 유순하면서도 리지적으로 생긴 부교장은 성칼스럽기 그지없는 한백천소좌와는 달리 입학하러왔다는 처녀에게 대단한 관심을 표시했다.

《처녀가 해군지휘관을 지망한단 말이지. 거 정말 대단한걸. 그 처녀의 아저씨가 누구라구?》

《해방전엔 발뜨함대에서 복무했는데 지금은 보안간부훈련소에서 부소장으로 사업한답니다.》

채정보는 호인다운 홍동철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자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 그럼 전에 해주시당에서 부부장을 하던 홍동철동무로구만.

어서 데려오시오. 그 처녀를 만나보기요.》

이리하여 천만다행스럽게도 김정인은 부교장을 만나게 되였다.

채정보는 처녀의 절절한 소망을 귀담아들어주고나서 난 찬성이다, 그러나 나 혼자의 결심으로 될일이 아니니 그동안 식당료리사아주머니와 함께 지내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정인은 당분간 식당일을 도와주게 되였다.

보기에도 시원하게, 서글서글하게 생긴 처녀가 행주치마를 산뜻하게 두르고 주방에 나타나니 식당이 별스레 환해진듯싶어 인기가 대단했다.

며칠이 지나갔다.

개교식날 오전 9시경에 경비함 한척이 위엄있게 배고동을 길게 울리며 이 외진 포구에 들어왔다.

마침 개교식준비를 끝낸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환성을 올리며 달려나갔다. 학생들이 가슴을 울렁거리며 지켜보는 속에 경비함은 닻을 떨구고 요란하게 닻줄을 풀며 천천히 후진하여 변변치 못한 나무잔교에 맵시나게 꽁무니를 붙이였다.

배다리를 설치하자 개교식에 참가하러 온 중앙과 지방의 일군들과 인민대표단성원들이 한사람한사람 조심스레 잔교에 내렸다.

중절모를 쓰고 외투를 입은 신사풍의 틀진 사나이가 선참으로 바다기슭에 내려섰다. 그는 마중나온 김광민교장, 채정보부교장과 인사를 했다. 한백천소좌와는 각별한 사이인지 서로 포옹까지 했다.

학생들속에서 목을 길게 빼들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군옥은 은은히 풍기는 꽃향기같은것을 감촉했다. 어느새인가 정인이가 자기곁에 나타났다. 처녀는 그의 귀에 대고 따스한 입김을 뿜으며 속살거렸다.

《저분은 강원도당위원장이예요.》

김군옥은 놀랐다.

《동무가 그걸 어떻게 아오?》

《저분도 우리 아저씨와 함께 발뜨함대에서 복무했지요. 아저씨네 집에 몇번 찾아왔댔어요.》

상좌견장을 단 군용외투를 입은 군관이 두번째로 잔교에서 내렸다.

예리한 눈빛, 사려문 입술, 군살이 한점도 없이 깎이운 볼편, 날카로운 턱… 날이 선 해군단검이나 수류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였다.

웬일인지 다리를 알릴듯말듯 절었다. 그것이 결사전에 나가는 걸음처럼 매력이 있어 그의 전투적인 용모를 더욱 부각시켜주었다.

그걸 보니 김군옥은 배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심하게 절던 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초면이지만 상대방에게 대뜸 친근감이 갔다.

《항일투사 조정철동지예요.》

정인이 귀띔해주는 이름이 귀에 익었다.

자기와 신의주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평양학원에 간 리활이 생각났다. 그가 보내온 편지에는 자기의 입당보증을 조정철동지가 해주었다는 자랑이 담겨져있었던것이다.

《저분은 나도 아오. 평양학원에서 정치일군을 한다지.》

《지금은 만경대혁명학원에 가있어요.》

세번째로 날렵하게 생긴 사람이 잔교에서 뛰여내려 다리를 저는 조정철을 부축해주었다.

《저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군요.》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본 김군옥은 너무 놀랍고 반가와서 하마트면 환성을 올리며 달려나갈번 했다.

몹시 흥분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에게 정인이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예요?》

김군옥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우리 서해수상보안대 대장으로 사업하던 항일투사 김성국동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정인은 웬일인지 흠칫 놀라더니 군옥이의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왜 그러오?》

《이를 어쩌나. 우리 아저씨도 왔어요.》

김성국의 뒤로 잔교에서 내린 나이지숙하고 듬직하게 생긴 상좌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교원들과 웃으며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첫눈에 호감을 주었다. 정인의 아저씨라니 그런 인상을 받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저씨가 왔으니 동무의 입학은 결정된거나 다름이 없구만.》

정인은 반가와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이였다.

《그럴가요? 아니예요. 일이 공교롭게 됐어요.》

《뭐라구?》

《난 아저씨가 승낙하지 않는걸 몰래 여기로 떠나왔거던요. 아저씨는 나를 보면 야단을 칠거예요. 우리 아저씨도 바다를 남자들의 독점물로 여기고있으니까요.》

개교식이 시작되자 도당위원장 한일무가 중절모를 벗어들고 일어났다.

《동무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에 분망하시지만 작년 여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이 포구에 찾아오셨댔습니다.

그날 제가 길안내를 해드렸는데 이 주변엔 수풀과 갈대가 무성하고 진펄이 있어서 말이 아니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수풀을 헤치고 진펄을 건느시며 여러곳을 돌아보시다가 여기에 수상보안간부학교의 터전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날을 돌이켜보는 한일무의 얼굴엔 감회가 그윽히 어렸다.

《장군님께서는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에서는 바다를 지키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창설하게 될 해군함대의 골간인 해군지휘관들을 빨리 키워내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그이의 구상과 가르치심에 따라 오늘 개교식을 하게 됩니다.

나는 미래의 조선함대를 이끌고나갈 동무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모두들 일제히 박수를 쳤다.

다음으로 조정철이 몹시 흥분하여 서두르며 일어났다. 그는 무엇을 노려보는듯 한 예리한 눈초리로 장내를 휘둘러보고나서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칼칼하던 그의 모습은 놀랍게도 유순하고 친절하게 변모되는것이였다.

《오늘 나는 정말 기쁘고 감개무량합니다.》

이처럼 그는 격식을 차려 연설을 하지 않고 친절하고 무랍없이 서두를 뗐다.

《내 고향은 동해와 가까운 덕성군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나는 입 하나 덜자고 집을 떠나 북청과 청진으로 떠돌며 칠성판을 지고 바다에 나가 별의별 고생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두만강을 건너 항일유격대에 찾아갔지요.》

고준무가 어깨를 으쓱하며 곁에 있는 리대훈에게 뻐기듯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라구. 항일투사동지도 동해출신이야.》

김군옥은 그쪽에 대고 조용하라고 주의를 주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산에서 싸울 때 나는 바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조정철의 두눈에 불시에 물기가 어려 번들거렸다. 그는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뜨거운것을 가까스로 삼키고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산에서는 제일로 귀한게 소금인데 소금이 없어서 고생할 때면 바다가 더 부쩍 생각나더란 말입니다.

우린 전투와 행군이 끝나면 밀림의 긴긴밤을 우등불로 태우며 사무치게 그리운 조국산천을 그려보며 저마다 고향자랑을 하군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난 북청앞바다에서의 고기잡이를 자랑했지요. 실은 칠성판을 지고 날바다에 나가 죽을 고생을 했는데 조국을 멀리 떠나 밀림속에서 돌이켜보니 그 고생조차 즐거웠던것으로 여겨지더란 말입니다.

난 조국이 해방되면 우선 동해에 찾아가 미역을 감고 물고기도 잡고 섭죽놀이도 하자고 벼르군 했습니다. 정작 해방된 조국에 오니 어찌도 바쁜지 바다가에 찾아가기는 고사하고 지척인 대동강에 나가 숭어잡이를 할 여유도 없더군요.

그래서 개교식을 계기로 이렇게 모처럼 바다가에 찾아왔는데 돌아가고싶지 않습니다. 이 경치좋은 바다가에서 동무들과 함께 해군함대를 건설하고싶습니다. 정말이지 동무들이 부러워서 못 견디겠단 말입니다!》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김군옥은 별안간 코허리가 찡하고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자기도 이국땅에 가서 고학을 할 때 바다가 사무치게 그리운 심정을 수시로 체험했기때문이였다. 어쩌다 밥상에 오르는 구운 조기나 백하젓을 두고 끓인 호박국을 보아도 그리움이 북받쳐올라 눈시울이 후덥게 젖어들군 했었다. 그럴 때면 인정많은 하숙집할머니는 혀를 찼다.

《젊은인 왜 각종 해산물에 흰쌀도 난다는 살기 좋은 고향을 떠나 소금조차 귀물인 이 산골에 와서 고생을 하노?》

그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온것이다.

곁에서 정인이가 눈이 올롱해졌다.

《아니?! 왜 울어요?》

김군옥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황황히 자신을 수습했다.

《그저… 항일투사동지의 연설이 참 감동적이구만.》

정인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난 속상해 죽겠어요.》

《왜?》

《내 입학문제가 어떻게 결정될가요?》

《제대로 될거요. 마음을 놓으라구.》

축하연설이 끝나자 학생들의 분렬행진이 진행되였다. 눈보라가 심술사납게 몰아치는데 해군복을 입은 학생들은 어뢰정이나 경비함을 몰고 저 넓은 바다를 주름잡는 심정으로 영예와 긍지가 한껏 차넘친 가슴을 당당히 내밀고 지축을 울리며 나아갔다.

유독 정인이만이 그 행진에 참가하지 못했다.

뒤이어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축하연이 끝나자 경비함은 출항준비를 갖추었다.

손님들은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잔교로 나갔다. 홍동철은 축하연을 할 때 접대를 하면서도 희망이 담겨진 애원의 눈길로 자기를 줄곧 쳐다보던 처제를 붙잡아 거의나 강다짐으로 끌고갔다.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는 처녀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처녀를 동정하면서도 막상 도와줄 엄두는 내지 못했다. 김군옥이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채 아저씨에게 붙잡혀가는 정인을 허둥지둥 뒤따랐다.

잔교앞에 이른 그는 진작 만나려고 했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그저 눈인사만 나누었던 김성국을 붙잡았다.

《아! 군옥동무로구만.》

김성국은 여간만 반가와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라구. 난 동무가 소원대로 꼭 어뢰정정장이 되기를 바라오.》

김군옥은 몹시 서두르며 응대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뭐요? 동무의 부탁이라면 다 들어주겠으니 어서 말하오.》

김군옥은 아저씨에게 한쪽팔을 잡히운채 마지못해 경비함에 오르는 정인이를 가리켰다.

《저 처녀동무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어망처망한 부탁에 김성국은 눈이 둥그래졌다.

《뭐?! 살려달라구?》

《예, 저 동무가 우리 수상보안간부학교에서 공부하고싶어서 그러는데 도와주십시오.》

김성국은 실눈을 하고 잠시 군옥을 바라보더니 중떠보는듯 한 어조로 물었다.

《동문 저 처녀와 어떤 사인가?》

《그저 좀… 여기 와서 만난 동무입니다.

저 동무가 함장이 되고싶다기에 난 탄복했습니다.

처녀가 정말 함장이 되면 이거야말로 세상을 깜짝 놀래울 일이 아닙니까. 도와주십시오.》

김성국은 빙긋이 웃었다.

《동무의 심정은 알만 하오. 홍동철동지가 그 문제를 놓고 채정보부교장과 진지하게 의논을 했소. 처녀가 지금 다니고있는 의전을 졸업하면 해군에 입대시키기로 했단 말이요. 해군에도 의사가 필요할게 아닌가.》

이때였다.

경비함에 올랐던 정인이가 잔교로 뛰여내려 군옥이에게로 달려왔다.

《군옥동무!》

이렇게 큰소리로 불러놓고 무슨 말을 하려던 처녀는 모두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린걸 알아차리자 얼굴을 확 붉히더니 무슨 천쪼박같은것을 군옥의 손에 쥐여주고는 홱 돌아서서 다시금 경비함으로 달려갔다.

김성국은 의미있게 웃으며 김군옥의 어깨를 툭 치고는 처녀의 뒤를 따랐다.

그가 마감으로 승선하자 경비함은 배다리와 계류바줄을 거두고 닻줄을 칭칭 감아올리며 미속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떠나는 손님들과 바래주는 교직원, 학생들이 서로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부웅!―

배고동을 길게 울리며 속력을 올린 경비함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김군옥은 처녀가 남기고간것을 남몰래 보았다.

그것은 정성껏 만든 담배쌈지였다. 곤청색공단에 흰 실로 수를 놓은 어뢰정이 많은 의미를 담고있었다. 장차 함장이 아니, 함대사령관이 되겠다는 파격적인 큰 포부를 안은 녀장부가 이처럼 섬세하게 수놓이를 했다는것이 정녕 놀라왔다.

 

문득 하늘을 썰어대는 동음이 울려왔다.

사연깊은 담배쌈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김군옥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푸른 하늘에 한쌍의 흰새와도 같은 비행기 두대가 나타났다. 편대를 지어 비행운을 길게 뽑으며 바다쪽 상공으로 날아온 비행기들은 갑자기 기수를 숙이며 급강하했다. 수면에 내리꽂힐듯 하다가 슬쩍 기수를 든 비행기들은 해빛에 은빛동체를 보란듯이 번쩍이며 창공높이 나래쳐올랐다.

김군옥은 그 모습이 정녕 부러웠다.

평양학원 항공반에서는 벌써 조선의 첫 항공대가 창설되였다고 한다.

비행사나 기술근무성원들의 대다수는 조선항공협회 신의주지부에서 선발되여간 청년들이였다. 그들과는 죽마고우라 군옥은 이처럼 비행기들이 상공에 나타날 때면 부럽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해군함대출항식은 언제가야 진행될는지 막막했기때문이였다.

그는 써레기를 꺼내여 마라초를 굵게 말아 입에 물고 성냥을 탁 쳐서 불을 달았다.

입과 코구멍에서 동시에 연기가 뿜어나왔다.

이건 담배연기라기보다는 속이 타서 나는 연기다. 정말 속이 탄다.

하늘에선 비행기가 날고 땅에선 땅크와 모터찌클이 와릉으릉 내달리는데 바다는 아직도 산중의 호수인양 고요하다.

《뽀쬼낀》선생의 말마따나 함대창설은 욕망만으로는 될수 없는 먼 장래의 일인가? 나는 속이 탄김에 실없이 말싸움이나 하다가 처벌을 받았으니 이 잘난 꼬락서니를 정인이가 보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할것인가.

그는 꺼지게 한숨을 쉬고나서 바라보기조차 부끄러운 담배쌈지를 접어 품속에 소중히 넣었다.

삿대로 다시마를 건져내면서도 군옥을 아니꼽게 자주 흘겨보던 고준무는 그만 짜증을 냈다.

《여! 담배질이나 하고있으면 되겠어? 어서 와서 일을 해야지.》

김군옥은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일어나 스적스적 부업선에 올랐다.

그는 고준무와 채기정이가 다시마를 건져내는 모양을 잠시 지켜보다가 권고했다.

《소대장동무, 이까짓 흔하디흔한 바다풀이나 건져내선 뭘하겠소. 이왕이면 물고기도 잡고 해삼도 잡자구.》

고준무는 어이가 없어서 코방귀를 뀌였다.

《흥! 까마귀가 꿩 잡아먹을 생각을 한다더니… 무얼 가지고 어떻게 물고기와 해삼을 잡는다고 그래?》

김군옥은 기분이 상했지만 자칫하면 또 싸울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고 의논조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게 궁리를 하고 의논을 하면서 방도를 찾아보자구.》

고준무는 귀찮아서 잔뜩 오만상을 찡그렸다.

《동문 언제봐도 되지도 않을 일을 하겠다고 부득부득 고집을 쓰거던.》

《이건 고집이 아니라…》

《됐어! 물고기를 잡든 해삼을 잡든 맘대로 하게. 난 상관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가 처벌로동을 한다는걸 잊지 말게. 건달을 부리다간 더한 처벌을 받게 될걸세.》

고준무는 이렇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나서 더 극성스레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채기정은 마음이 동했던지 삿대를 놓고 군옥에게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김군옥은 그에게 슬쩍 눈짓을 하고 전마선에 뛰여내렸다. 채기정도 그의 뒤를 따랐다.

삐걱삐걱 노젓는 소리가 울렸다.

고준무는 전마선을 몰고 어디론가 가는 그들을 찌글서 흘겨보다가 과연 눈꼴이 사나와서 금이발을 번쩍거리며 버럭 소래기를 질렀다.

《여! 하라는 부업은 안하고 배놀이를 하고있어?》

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고준무는 약이 바싹 올라서 그들의 뒤모습을 노려보며 위협조로 으르렁거렸다.

《좋아! 도급제를 하자구.

저녁에 수확물을 놓고 톡톡히 셈을 하잔 말이야.

건달을 부리면 밥술을 쥘 자격이 없게 된다는걸 명심해!》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