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등록 |  학생가입 
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28

 

주문진등대에 서있는 홍동철과 한백천은 넓은 해상을 뒤덮은 불길과 짙은 연기때문에 이 통쾌한 전투장면을 제대로 볼수가 없어 몹시 안타깝고 속이 탈대로 탔다.

도처에서 널름거리는 불길, 련이어 치솟는 물기둥들, 룡트림하는 포연속에 언뜻언뜻 보이는건 덩치가 큰 적함들의 모습이였다. 우리 어뢰정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우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24호정처럼 다른 어뢰정들도 격침되거나 격파되였단말인가?

한백천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해쓱해지고 이지러진 그의 얼굴엔 체념의 그늘이 비꼈다.

어뢰정대는 전쟁의 법칙을 어기는 무모한 싸움을 하고있다. 역시 현대전은, 특히 해상전은 군사기술적우세가 승리의 결정적요인이다. 장비가, 포탄이, 기름이 싸움을 하는것이다. 배수량이 작거나 장비수준이 낮고 속도가 뜨면 견딜수가 없다.

물론 우리 어뢰정대는 력량상, 기술장비상 너무도 엄청난 적기동분함대와 맞서 높은 공격정신을 발휘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것은 실로 감동적이고 경탄할만 했다. 그러나 결국 무모한 희생을 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차마 입밖에 낼수 없었다.

그는 승무원들이상으로 어뢰정대를 사랑했다.

그처럼 아끼고 애지중지하던 어뢰정대를 전쟁이 시작된지 도무지 한주일밖에 안되는 이날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억이 막혀서 땅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런데 기지장은 무슨 미련이 있는지 끄떡없이 서서 해상전투장을 지켜보고있다.

한백천은 승산이 전혀 없는 이 해상전투를 사전에 저지시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타매했다.

《저게 뭐요? 우리 어뢰정이 아니요?》

놀라움과 기쁨에 넘친 기지장의 목소리에 한백천은 어느새 감겨졌던 두눈을 번쩍 떴다.

저 멀리 포연이 자옥한 불바다속에서 소함정 한척이 물보라를 하얗게 날리며 전속으로 빠져나오고있었다.

기지장은 뭐라고 격정에 넘쳐 웨치며 바다기슭으로 달려내려갔다.

한백천도 얼른 일어나 허둥지둥 기지장의 뒤를 따랐다.

바다기슭을 향하여 전속으로 달려온 어뢰정은 제동장치가 고장났는지 모래불에 배머리를 박으며 턱 멈춰섰다. 갑판우에 서있던 승무원들은 관성에 떠밀려 쏴갈긴 어뢰처럼 휙 날아가 모래불에 떨어져 나딩굴었다.

홍동철과 한백천이 달려가니 승무원들은 모래불에 어푸러진채 죽은듯이 기척이 없었다.

홍동철은 먼저 군관복을 입은 승무원을 두손으로 잡아일으켰다. 화염에 꺼멓게 그슬린 얼굴을 보니 22호정장 리완근이다. 그는 정장모도 없이 맨머리바람이였다.

《정장동무! 완근이!》

홍동철은 상반신을 일으켜세운 그의 두어깨를 잡고 우악스레 흔들었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듯 가슴만 들먹이던 리완근은 불시에 얼굴을 찡그리더니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듯 가까스로 눈을 떴다.

《이게 어떻게 된거요?》

기지장의 성급한 물음에 그는 터갈라진 입술을 겨우 놀리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한백천은 그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볼티모〉호를 까부셨다는거요?》

《예, 어뢰를 세발이나 명중시켰습니다.》

한백천은 다우쳐물었다.

《적함이 침몰되는걸 동무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리완근은 얼굴을 찡그리며 입술을 감빨더니 더는 말할 기운이 없는지 스르르 눈을 감았다.

홍동철은 작전과장과 함께 모래불에 어푸러져있는 정대원들을 바로 눕혀주고 얼굴에 묻은 피와 그을음을 닦아주었다. 모두들 맥을 탁 놓아서인지 아니면 화염에 질식됐는지 기척이 없다. 찢어진 항해복의 가슴부위가 출렁이는 물결처럼 오르내릴뿐… 부상은 더러 당했지만 희생된 정대원은 다행히도 없다.

홍동철은 모래불에 반쯤 올라온 어뢰정의 갑판에 서둘러 올라갔다.

사령탑으로 가니 부러져나간 조타기의 타륜에 리완근이 벗어던진 정장모가 걸려있었다. 정장모에 달린 무선송수신기에서 어뢰정22호를 애타게 찾는 김군옥정대장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앵앵 울려나왔다.

《새매 둘! 새매 둘! 왜 대답이 없는가?》

홍동철은 진주보석을 발견한듯 두눈을 번쩍이며 얼른 전화모를 쥐고 송수신기를 울대에 댔다.

《나 기지장이다! 홍동철이야!》

그는 너무도 반갑고 기쁘고 격한김에 대호를 쓸 생각도 못하고 이렇게 무랍없이 웨쳤다.

김군옥은 놀라도 이만저만 놀라지 않았다. 순양함을 타격하고 사라진 어뢰정22호를 찾는데 왕청같이 기지장이 나오니 놀랄수밖에…

《아! 기지장동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주문진해안가에 있소. 22호정은 무사히 빠져나왔소. 동무넨 어디에 있나?》

《우리도 전투장에서 방금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아직 기관사용시간이 여섯시간이나 남아있습니다. 곧장 기지로 돌아가겠습니다.》

아주 여유작작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하오! 참, 적함은? 〈볼티모〉호는 어떻게 됐소?》

《선체가 기울어져 바다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원양구축함이 지금 구조작업을 하는데 아마 소용이 없을겁니다.》

저절로 통화가 끊어졌다. 거리가 멀어져서 더이상 초단파무선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좋아! 아주 잘했어!》

홍동철은 바다쪽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를 쳤다.

한백천은 바삐 어뢰정으로 다가갔다.

《기지장동지! 뭐라고 합니까?》

홍동철은 홱 돌아섰다.

《어뢰를 세발이나 명중시켰다는 리완근정장의 말이 옳소! 지금 〈볼티모〉호가 침몰되고있다오.》

한백천은 너무도 놀라 입을 항 벌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말고, 우리가 이겼소!》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이 바다의 전장에 짙게 드리웠던 화염과 포연, 검은 연기가 해풍에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보기 흉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검은 연기를 토하며 출렁이는 파도속에 잠기는 중순양함의 처참한 몰골이 점차 뚜렷이 안겨왔다.

한백천은 눈앞에 펼쳐진 이 놀라운 현실을 더는 믿지 않을수가 없게 되였다.

정녕 놀라왔다. 아직 세계해전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기적이 바로 우리 어뢰정대에 의하여 우리 바다에서 창조되였다. 김군옥과 채기정을 비롯한 20대의 젊은 어뢰정대원들이 세계《최강》을 뽐내는 미해군의 《강대성》의 신화를 보기 좋게 깨버린것이였다. 단지 그것만이 깨진게 아니였다. 자기의 머리속에 그 어떤 군사교범이나 전쟁의 법칙처럼 굳어져있던것도 산산쪼각이 났다. 그것은 사대주의였고 기술만능주의였으며 결국은 패배주의였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기지장앞에서 가슴을 풀어헤치고 자신을 반성하며 용서를 빌고싶었다.

어뢰정21호는 드디여 격전장의 불길과 포연속에서 빠져나갔다. 시원한 해풍이 불어와 심신을 거뜬하게 해주었다. 김군옥은 욕심스레 해풍을 들이키며 번쩍 고개를 추켜들었다.

언제 솟았는지 저 멀리 꿈틀거리는 수평선우에서 불덩이같은 아침해가 눈부시게 빛을 뿌리고있었다.

태양은 세계해전사에 아직 없었던, 적아간의 력량상차이가 너무도 엄청난 치렬한 격전이 벌어진 주문진해상을 바라보며 장엄하게 더 높이 떠올랐다. 찬란하고 황홀한 그 빛을 받은 바다는 환희에 겨워 넘실넘실 춤추며 설레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군옥의 가슴은 승전의 긍지와 격정으로 끓어올랐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승전하고 귀항의 배길에 오른 어뢰정대원들을 축하해주시는것만 같았다.

《동무들! 해가 솟았소! 태양이 솟았소!》

정대장이 웨치는 소리에 기관실에 있던 채기정을 비롯한 승무원들까지 갑판에 뛰쳐나왔다.

《만세!》

모두들 찬란한 태양을 우러러 두손을 흔들며 목청껏 환호성을 터쳤다. 포연과 화염에 그슬린 얼굴마다 쇠물처럼 뜨거운 눈물이 화락하니 흘러내렸다.

칠색무지개빛으로 아롱지는 그 눈물에 얼비쳐 이 승전소식을 듣고 기뻐할 그 처녀 김정인의 모습이 눈앞에 우렷이 떠올랐다. 방금 해산한 몸으로도 항해식품을 성의껏 마련해준 기지장의 아주머니를 비롯한 군관가족들의 모습도 안겨왔다.

전쟁이 터진 날에 태여난 미래의 어뢰정대원인 해남이가 손에 쥔 함선호각을 흔들며 엄마의 품에 안긴채 밝게 웃고있다.

승전의 기쁨을 안고 기지로 돌아가는 배길에 갈매기들은 춤추며 날아들고 파도는 꽃보라같은 물보라를 뿌려주었다.

세발의 어뢰를 련속 얻어맞고 만신창이 된데다가 함장과 승선지도장교를 비롯한 수많은 승무원들의 버림을 받은 중순양함 《볼티모》호는 해상전투가 시작된지 다섯시간후인 오전 9시 10분에 침몰되여 해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도 분노하여 길길이 일떠선 조선동해가 침략의 원흉인 중순양함을 훌떡 삼켜버린듯싶었다.

이로써 반세기가 넘는 기나긴 세월 거만하게 치솟은 마스트에 대통령기와 해군대장기를 펄펄 날리며 태평양과 대서양을 제멋대로 쏘다니며 주인행세를 해온 《볼티모》호는 자기의 화려한 존재를 너무도 비참하게 끝마쳤다. 침몰이 일으킨 소용돌이가 잦아들자 배기름이 번들거리고 시체들이 흥떡이는 수면우에는 산산쪼각난 중순양함의 잔해들이 쓰레기처럼 너저분하게 떠올랐다.

원양구축함은 어뢰정21호의 검질긴 추격에서 겨우 벗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고 전투장에 북조선해군의 어뢰정이 더는 없다는것을 재삼 확인하고나서야 구조작업에 착수했다. 불타는 바다에 떨어져 반정신이 나갔던 웨리크는 다행히도 구명뽀트를 붙잡았다. 그는 구축함갑판에 올라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죽지 못하고 살아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겨우 목숨을 건진 대가로 자기의 눈앞에서 침몰되는 《볼티모》호의 처참한 광경을 낱낱이 목격하지 않으면 안되였기때문이다.

정신적인 고통에 못이겨 다시 까무라쳤던 그는 강심제를 주사해서야 가까스로 눈을 떴다.

한쪽눈에 붕대를 감은 잭슨함장이 무전문을 내밀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전진지휘소와 맥아더사령부에 보낼거요. 당신이 수표하시오.》

전투정형을 종합한 무전문을 보니 새삼스레 기가 막혔다.

기동분함대는 도무지 네척밖에 안되는 북조선해군의 어뢰정들과 싸워 중순양함은 침몰되고 경순양함은 격상되였고 살상된 승무원수는 무려 7백여명에 달했다.

웨리크는 악이 치받쳐서 무전문을 와락 그러쥐고 잭슨함장을 물어뜯을듯이 노려보았다.

《왜 내가 수표하라는거요? 어째서?》

잭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소리나게 내쉬더니 랭담하게 응대했다.

《당신이야 승선지도장교가 아니요. 함선을 잃어버린 이 잭슨은 여기에 수표할 자격조차 없소.》

웨리크는 이를 갈면서 하는수없이 무전문에 수표를 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