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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아! 골이 빠개지는것 같구나. 가슴은 왜 이리도 답답한가? 목이 마르구나. 물이라도 한모금 마시면 좋으련만…

이랑이랑 줄지어 파도가 밀려오는 도래굽이에 퐁퐁 솟구치던 맑은 샘, 언젠가 박원협갑판장이 읊은 자작시처럼 한모금만 마셔도 수평선 천리를 내달릴 억센 용기를 안겨주던 샘, 그 샘을 김정인준의가 발견했었지. 함대사령관이 될 꿈을 안고있다는 처녀, 우리 정대장이 사랑하는 처녀.

원항해타격훈련을 앞두고 그 처녀가 정성껏 만든 오미자단물을 가지고 찾아왔었지. 빛갈이 발기우리하고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그걸 다시한번 맛볼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 생각을 하니 마른 목구멍이 젖어들면서 몸에 기운이 생기는것 같았다.

일어나자! 일어나야 한다!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치는듯 한 타격을 받고 꼬꾸라졌던 리학섭은 가까스로 의식을 차리고 손더듬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귀가 멍멍했다. 그래서인지 기세좋던 고속기관의 동음도, 요란하던 폭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는 상반신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령탑이 파괴되였다.

탐조등의 깨진 유리쪼각과 꺾어진 철판쪼각들이 바닥에 너저분했다.

다행히도 조타기의 타륜은 성한채로 붙어있었다. 조타기밑에서 누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중이다. 부축해주며 보니 양판익정장이였다. 무너진 해도실안에는 기관장이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었다.

리학섭은 안깐힘을 쓰며 기관장을 끌어냈다.

《기관장동무! 영호동무! 정신차리오!》

구영호기관장은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별안간 얼굴이 따가와졌다. 둘러보니 여기서도 저기서도 우지직 부지직거리며 불길이 널름거렸다.

기관이 파손되여 공격도중에 멈춰선 어뢰정 24호는 순식간에 하나의 불덩어리로 화했다.

《야! 분하구나! 어뢰 한발 쏴보지 못한채 이 지경이 되다니!》

양판익은 너무도 절통하고 억이 막혀서 주먹으로 사령탑을 후려쳤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돌격침로에 들어설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해 자기의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어뢰정이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정을 기울여준 어뢰정이 조국을 위해 큰 공을 세워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절통하게도 적의 함포탄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멈춰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저 멈춰선 정도가 아니라 폭발될 위험에 처했다.

선미에 있는 연유탕크에까지 불이 달렸던것이다.

와지직 탁탁! 소리를 내며 불길이 탐욕스런 맹수의 혀처럼 곁에 있는 두발의 어뢰를 핥고있었다. 어뢰 두발이 가열되여 터지면 어뢰정은 산산쪼각이 난다.

승무원들을 시급히 탈출시켜야 했다.

둘러보니 위생지도원 오익섭은 강순봉이와 함께 연유탕크와 어뢰에 달린 불을 끄느라 갑판에서 방화호스를 늘이고있는데 그들의 잔등에선 불이 펄펄 붙었다.

양판익정장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여! 이젠 틀렸소. 빨리 바다물에 뛰여들라!》

오익섭은 강순봉을 억지다짐으로 바다물에 밀쳐버리더니 손에 잡히는대로 구명환을 벗겨서 던져주고나서 사령탑으로 훌쩍 뛰여올라왔다.

리학섭은 정장과 위생지도원에게 부상당한 기관장을 맡기고 손더듬, 발더듬을 하며 해도실을 거쳐 기관실로 내려갔다.

내부구간엔 연기가 꽉 차서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었다. 내부도색을 한 에나멜과 고무바킹이 타는 냄새는 코를 찌르고 눈을 쓰리게 했다.

눈을 뜰수도 없었고 숨도 쉴수 없었다. 질식되여 당장 쓰러질 지경이였다.

가까스로 기관실의 수밀문을 찾아 열어제꼈다.

기다렸던듯 화염과 증기가 확 뿜어나왔다. 리학섭은 두손을 허우적거리며 조기조장과 조기수를 애타게 소리쳐 불렀다.

《시찬동무! 병하동무! 어데 있소?》

기관본체는 달대로 달아 뜨거워서 손을 댈수가 없었다. 리학섭이 손더듬하며 두개의 기관사이로 나가는데 누군가 발에 걸채였다. 조기조장 리시찬이다. 그는 기관옆에 엎드린채 설설 끓는 물이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파손된 청수관을 두손으로 꽉 감싸쥐고있었다.

리학섭은 그를 부둥켜안고 갑판으로 내가려고 했다. 하지만 리시찬은 몸부림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빨리 기관을… 돌리시오, 기관을…》

저쪽에서는 쓰러졌다가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킨 조기수 민병하가 시동변을 쥐고 당기려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리학섭은 어쩔수없이 리시찬을 놓고 민병하를 도와 함께 시동변을 잡았다.

숨이 막히고 전신이 나른해서 제대로 힘을 쓸수가 없었다.

여느땐 한손으로도 얼마든지 당기던 시동변인데 지금은 왜 이럴가?

민병하가 시동변을 놓고 맥없이 쓰러졌다.

리학섭도 화염과 증기에 거의나 질식되여 의식조차 혼미해졌다. 이제라도 갑판에 뛰쳐나가면 후련히 숨을 쉴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숨이 막혀 죽더래도 기관은 살려내야 했다. 그래야 어뢰정을 다시 돌격침로에 들여세우고 어뢰를 발사하든가 그럴수 없는 경우엔 적의 포화력이라도 얼마간 유인할수 있었다.

입을 앙다물고 숨을 죽인채 비지땀을 흘리며 지그시 시동변을 당기는 그의 귀전에는 전투출항을 앞두고 해병결의모임에서 자신이 랑독한 맹세문의 구절구절이 툭툭 관자노리를 치는 맥박과 함께 또렷이 되살아나고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 맹세를 다지였다. 조국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만 미제침략선이 떠있을 자리는 한치도 없다고, 조선청년인 우리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워 미제침략무리를 바다속깊이 수장해버릴것이라고…

별안간 두손에, 두팔에, 온몸에 부쩍 기운이 뻗쳤다.

《아!―》

그는 입을 쩍 벌리고 고함을 지르며 시동변을 와짝 잡아챘다.

꽈르릉!― 폭음을 울리며 기관이 돌아갔다.

부상당한 기관장을 위생지도원에게 맡겨 먼저 탈출하게 하고 문화부정대장과 조기수들이 나오기만을 초조히 기다리던 양판익은 놀랍게도 기관 한대가 꽈르릉거리며 돌아가자 환성을 지르며 타륜을 잡았다.

《전진!》

멈춰섰던 어뢰정24호는 다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령탑에로 번진 불길이 맞받아 부는 해풍에 홰불처럼 펄펄 나붓겼다. 이대로 냅다 내달리다가 적함을 들이받으면 얼마나 통쾌할것인가.

그에 때맞춰 어뢰까지 터지면 좋으련만…

별안간 하늘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머리우에서 울리더니 함포탄이 련속 날아와 터졌다.

좋다! 어디 더 쏴봐라. 우리가 놈들의 포사격을 유인한것만도 대단한거지.

양판익은 내심 쾌재를 올리고나서 기관실에 대고 목청껏 웨쳤다.

《문화부정대장동지! 빨리 나오시오, 어뢰정이 위험합니다.》

기관실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꽈릉꽈릉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히 울려나올뿐… 어느새 불길은 혀를 날름거리며 양판익의 몸을 휩쌌다. 하지만 부릅뜬 두눈에 시퍼런 불이 달린 그는 제몸이 불타는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달리자! 사랑하는 나의 어뢰정아, 너와 나 그대로 어뢰가 되여 가증스러운 미제침략선을 들이받을수만 있다면…

아! 그러면 너도 나도 더 바랄게 무엇이랴!

달대로 달아오른 연유탕크와 두발의 어뢰가 더는 견디여내지 못하고 동시에 폭발했다.

꽝!― 꽈르릉― 눈부신 화광에 사위는 대낮처럼 밝아졌다.

거대한 물기둥이 해병들의 위훈을 전하는 기념비런듯 포연이 짙은 하늘을 찌르며 올라갔다가 쏴아!― 하고 폭우처럼 쏟아져내렸다.

어뢰정24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뢰정이 있던 장소엔 불의 파도만이 세차게 일렁일뿐…

《문화부정대장동무!》

《양판익이!》

주문진등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홍동철과 한백천은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문화부정대장을 비롯한 24호승무원들은 물에 뛰여들면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적의 포화력을 조금이라도 유인하기 위해 불타는 어뢰정과 함께 돌격침로를 내달리다가 자폭하는 길을 서슴없이 택한것이였다.

세척의 어뢰정들은 전우들이 피로써 얻어준 절호의 기회를 타고 쏘구역을 무사히 통과하여 800m계선까지 뚫고들어갔다. 이제는 적함들의 대구경포들이 어뢰정을 보면서도 때릴수 없게 되였다. 고사총탄따위는 아무리 날아들어도 무서울게 없었다.

김군옥은 더욱 자신만만해서 침착하게 정대를 지휘했다.

《목표! 적중순양함, 23호가 먼저 공격하라!》

《알았다!》

《볼티모》호쪽에 제일 가깝게 접근한 23호정은 500m계선에 들어서는 순간 연막을 치는 동시에 오른쪽에 적재한 어뢰를 발사했다.

어뢰는 뒤로 주르르 미끄러져내리더니 첨벙! 하고 바다물에 떨어졌다. 동시에 어뢰기관이 시동되여 힘차게 추진기를 돌렸다. 강한 추진력을 얻은 어뢰는 철갑상어마냥 어뢰정의 배밑창아래로 빠져나가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짱짱하게 생긴 최정수정장은 온 정신을 두눈에 집중시키고 포화에 죽가마처럼 설설 끓어번지는 수면을 스치며 그야말로 쏜살같이 나가는 어뢰를 지켜보았다.

《비켜!》

급해맞은 잭슨은 낯이 해쓱하게 질려서 어쩔바를 몰라 전전긍긍하는 조타수를 밀쳐버리고 자기가 직접 타륜을 잡았다.

로장인 그에게는 태평양전쟁때 일본해군의 어뢰정들이 쏜 어뢰를 솜씨있게 피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멀리에서 쏴갈긴 어뢰여서 회피기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뢰정이 지나치게 바투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했기때문에 회피기동을 제대로 할만 한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볼티모》호는 지그자그로 침로를 변경시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철천지 원쑤에 대한 복수심으로 만장약된 어뢰는 《움직이는 섬》이라고 뽐내는 중순양함의 중심부 흘수선에 정확히 명중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볼티모》호의 철갑선체엔 직경 7m가 넘는 커다란 파공이 생겼다. 만수된 언제의 수문을 열어놓은것처럼 그 구멍으로 바다물이 룡트림을 하며 쓸어들어갔다.

어뢰가 터질 때 생긴 강한 충격에 《볼티모》호는 지진을 만난 고층살림집처럼 심하게 뒤흔들렸다.

타륜을 돌리던 잭슨함장은 앞창을 이마로 힘껏 들이받으며 꼬꾸라졌다. 앞창이 산산쪼각났다.

보호손잡이를 우악스레 틀어쥐고 이 살인적인 충격을 가까스로 이겨낸 웨리크는 함장을 대신하여 전투지휘에 나섰다.

《파공된 부분의 격실들을 밀페할것! 파공을 빨리 퇴치할것!》

이런 경우 파공된 부분의 격실들에는 방수포를 치고 특수타입물을 처넣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맞다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승무원들은 경악해서 미친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뛸뿐 파공퇴치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볼티모》호에 바싹 접근해들어온 어뢰정이 계속하여 또 한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명중시키면 아무리 산처럼 덩치가 큰 중순양함도 침몰의 위기를 면치 못하게 된다.

웨리크는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모든 고사무력은 방금 어뢰를 발사한 어뢰정을 집중타격할것!》

사거리가 긴 대구경포들은 무용지물이 되였지만 고사포와 고사총들은 근거리사격도 얼마든지 할수 있었다.

《볼티모》호에 설치되여있는 40mm고사포 36문과 20mm고사포 12문이 어뢰정23호에 포신을 돌리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두눈을 부릅뜨고 침착하게 전방을 살피던 김군옥은 적들의 화력이 그쪽에 쏠린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1호정, 전투침로로!》

《알았다!》

김도형은 신이 나서 어뢰정을 전투침로에 들여세웠다.

《전속으로!》

채기정은 최대회전수로 올렸다.

어뢰정21호는 파도를 박차고 날아가는듯싶었다.

김도형은 이미 한방 얻어맞고 비칠거리는 중순양함의 연유탕크와 기관실이 있을 선미쪽을 어뢰조준기로 정확히 겨누고 불을 뿜듯이 웨쳤다.

《주의! 발사!》

발사장약이 터졌다. 뒤로 주르르 미끄러져내린 어뢰는 자체기관이 시동되자 즉시 상어처럼 날쌔게 어뢰정의 배밑창아래로 쑥 빠져나갔다.

순간 김군옥은 다급히 소리쳤다.

《우현 25°로 변침할것!》

김도형은 자기가 쏜 어뢰가 정확히 적함의 심장부에 명중되는것을 지켜보고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타륜을 왼쪽으로 힘껏 잡아돌렸다. 한발의 어뢰를 토해버리고 홀가분해진 어뢰정21호는 급히 배머리를 우측으로 돌렸다.

《좋아! 중순양함과 구축함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적들을 유인하라!》

《알았다!》

21호정이 쏜 어뢰는 물속으로 질주하여 그 순간 《볼티모》호의 선미쪽 흘수선을 힘껏 들이받았다.

쾅!― 꽈르릉―

눈부신 화광이 번쩍이였다. 바다가 뒤번져지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싶었다. 솟구쳤던 물기둥이 무너져내리는데 다른 물기둥들이 여기저기서 사선으로 내뿜었다. 그것은 파손된 연유탕크에서 뿜어나오는 배기름이였다. 거기에 불이 확 당겼다. 《볼티모》호의 연유탕크는 거대한 화염방사기로 변했다. 불타는 배기름이 아우성치는 파도우에 뿜겨졌다. 도처에서 불이 일렁거렸다. 바다가 통채로 불타올랐다. 활활 불타올랐다.

과연 장관이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젊은 정대장의 가슴속에서는 일찌기 느껴본적이 없는 벅찬 환희와 쾌감이 분수처럼 솟구쳐올랐다.

오호라! 장쾌하구나! 바다가 노호한다. 바다가 불탄다.

외적들이 발동소리를 울리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침노할제 구슬프게 울기만 했던 바다, 침략자들에게 뜯기울대로 뜯기우고 뺏기울대로 빼앗기고도 잠잠해있던 바다가 오늘은 분연히 고개를 추켜들고 일떠섰구나. 분노로 치솟고 날뛰며 미제침략선을 후려갈기고 불태우고 삼켜버리누나.

오! 바다여, 조국의 바다여!

불타오르고 불비가 쏟아지는 바다의 한복판에서 그 불을 지른 사나이는 이 순간 자신이 시인이 된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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