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김군옥은 파도에 젖은 사령탑 앞턱을 왼손으로 꽉 틀어쥔채 오른손에 쌍안경을 들고 주타격대상인 《볼티모》호를 노려보았다.
《볼티모》호는 놈들이 《움직이는 섬》이라고 떠들어댈만큼 요란했다. 갑판과 구조물우에는 커다란 철갑모를 방불케 하는 포탑들이 위엄있게 번들거리고 포신들이 아가리를 벌리고있었다. 사령탑과 마스트에 수풀처럼 돋아난 각종 안테나들, 중갑판과 선미갑판에 장비된 5련발 어뢰발사관과 각종 폭뢰들… 그저 움직이는 섬이 아니라 떠다니는 요새화된 섬이였다.
나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부터 네놈과 한번 맞서보려고 벼르어왔는데 오늘에야 그 기회가 왔구나. 마침이다. 어디 결판을 지어보자.
가슴에선 피가 설설 끓어번졌다.
어뢰의 유효사거리는 500m안이다. 그런데 아직 적함과의 거리는 2천m가 넘었다. 서뿔리 공격을 시도하다가는 유효사거리안에 접근하기 전에 포탄소나기를 얻어맞고 정대가 순식간에 격파될수 있었다.
경순양함이 정대의 앞을 가로막으려고 재빨리 기동하면서도 포사격을 하지 않는걸 보니 놈들은 우리를 하찮게, 우습게 여기는게 분명하다. 거동을 보니 놈들은 감히 우리를 나포하려고 허세를 부리고있다.
기술적우세와 수적우세를 뽐내며 잔뜩 기고만장하고 허장성세하는 바로 여기에 놈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 약점에 강타를 들이대야 한다. 그러자면 절호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덤비지 말자. 랭정하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조금만 더…
타를 잡고 침로방향이 아니라 주타격목표가 있는쪽을 쏘아보던 김도형정장이 더는 참지 못하고 간청했다.
《돌격합시다!》
김군옥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채 적함을 지켜보기만 했다. 신경이 바늘끝처럼 곤두섰다.
23호정장 최정수도 무선통화로 피타게 독촉했다.
《정대장! 빨리 돌격명령을 달라!》
어뢰정대와 적함들과의 거리는 2천m이내로 각일각 좁혀지고있었다.
산처럼 덩치가 큰 세척의 적함이 여유작작하게 슬슬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드니 바다가 더욱 좁아진것처럼 느껴졌다. 수평선이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적함들의 선수선미갑판과 중갑판, 상갑판에 설치된 백수십문에 달하는 각종 구경의 함상포들이 어마어마하게 안겨왔다. 야수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린 포신들마다에서 이제 당장 화광이 번뜩이고 포탄이 우박치듯 쏟아져나올것만 같았다.
신경이 약한 사람은 그 광경만 보아도 숨이 막혀 지레 기절해버릴 지경이였다.
적함들과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는 24호정의 양판익정장도 더는 참지 못하고 돌격을 간청했다.
저도 모르게 초긴장상태에 들어간 김군옥은 온몸이 강직된것만 같았다. 관자노리의 피줄만이 잔뜩 부풀어나서 당장 튀여나갈듯 맹렬히 펄떡거렸다. 적함들을 될수 있는 한 더 접근시켜야 했다.
그러자면 강한 의지를 발휘해야 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는 여태 꾹 다물고있던 입을 열고 침착하게 지시했다.
《침착하라! 현침로를 계속 유지하면서 명령이 내리는 즉시 변침할수 있게 준비할것!》
김군옥은 언짢아서 미간을 찡그렸다. 자기의 목소리가 어쩔수없이 떨리는것을 감촉했기때문이다.
이게 뭔가?! 침착하려고, 태연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후드득 후드득 속이 떨려나고 온몸이 푸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한이라도 만난듯이…
그가 경련을 멈추려고 입을 악물고 두손으로 바다물이 질벅한 사령탑 앞턱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는데 수화기로 문화부정대장의 목소리가 소곤소곤 울려나왔다.
《정대장동무, 날이 밝기 시작하는군요.》
마치도 바다경치에 심취된듯 한 목소리였다.
이처럼 위험하고 긴박한 정황에서 상대방이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는 그자체가 놀라왔다.
수평선상이 더 훤해졌다. 점차 뚜렷하게 갈라지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에서 장미빛아침노을이 우렷이 비끼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반한듯이 바라보는 김군옥은 떨리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따스해짐을 느꼈다.
《정대장동무, 국기를 올려야지요.》
문화부정대장이 의논하는듯 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일깨워주어서야 김군옥은 자기가 너무도 긴장하다나니 초보적인 함선규정의 요구조차 망각하고있음을 알아차렸다.
항해중이거나 표류하는 해군함선은 날이 밝으면 마스트에 국기를 올렸다가 날이 저물 때 내린다.
이 경우 군항에 있을 때처럼 해병들을 갑판에 정렬시키지 않고 그저 함선호각만 분다. 그래, 국기를 올리자!
오만무례한 미제침략자들이 기절초풍하게 우리의 람홍색공화국기를 올리자.
이렇게 결심하는 그의 눈앞에는 가증스런 적함의 몰골이 아니라 불타는 아침노을을 배경으로 물갈기를 하얗게 날리며 쏜살같이 내달리는 어뢰정의 모습이 안겨왔다. 마치도 어뢰정은 수면을 박차고 창공으로 나래쳐가는것만 같았다.
수평선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아침해빛에 물든 바다는 금빛으로 춤을 춘다. 파도쳐 노래부른다.
《장군님!》
김군옥은 목메여 소리내여 불렀다.
파도가 날아드는 사령탑에 몸소 오르시여 자기의 어깨를 주먹으로 쾅쾅 두드려주시며 큰소리로 고무격려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귀전에 되살아났다.
높은 공격정신을 지니고 기묘하고 령활한 전법을 쓰라! 그러면 어뢰정을 가지고 그 어떤 큰 적함도 얼마든지 까부실수 있다! 얼마든지!
그날의 격정, 그날의 환희가 급작스레 파도치듯 설레며 가슴에 차올랐다. 가슴을 옥죄였던 긴장의 탕개가 탁 풀려나갔다. 신심과 용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것은 그가 지금껏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비상한 정신적인 앙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위대한 태양의 품에서 조선함대의 주인으로 자라난 어뢰정대원들은 몸이 열두쪼각나서 파도우에 뿌려진대도 기어이 적함을 까부시겠습니다.
미해군의 상징이며 기함인 〈볼티모〉호를 바다깊이 수장하고 기술적우세와 수적우세를 뽐내는 적들에게 조선해군의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맹세를 다진 그는 별안간 두눈을 부릅뜨며 목청껏 웨쳤다.
《주의!》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정장들은 즉시 복창했다.
《주의!》
《공화국기를 올릴것!》
갑판장들은 재빨리 기류함에서 공화국기를 꺼내여 마스트에 올렸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무비의 영웅성을 발휘할 시각은 왔다. 한목숨 바쳐서라도 적함을 기어이 까부시자!》
정대원들은 주먹을 추켜들며 호응했다.
《까부시자!》
《우현 40°로 변침할것!》
김도형정장은 얼른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타륜을 재빨리 잡아 돌렸다.
기정을 따라 다른 세척의 어뢰정도 적함을 향하여 동시에 칼날같은 배머리를 돌렸다. 어느새 적함과의 거리는 1 500m이내로 가까와졌다.
갑판에서 개미떼처럼 와글거리는 승무원놈들도 얼마든지 가려볼수 있었다. 놈들을 보니 모두들 눈에서 불이 일었다.
《속도 증가! 전속 앞으로!》
어뢰정들은 박차를 가한 준마들처럼 선체를 부르르 떨더니 파도머리를 휙휙 스치며 날듯이 내달렸다. 꽈릉꽈릉 울리던 동음은 흡사 호랑이들이 울부짖는듯 한 따웅! 따웅! 하는 소리로 승화되였다. 그 기세에 놀라서 뒤설레던 바다조차 흠칫 굳어진듯싶었다.
급변한 정황에 웨리크는 일순 당황해졌다.
꼬리가 빳빳해서 내빼는척 하던 어뢰정들이 당돌하게도 공화국기를 올리더니 즉시 변침하여 돌격침로에 들어선것이였다. 어찌도 속도가 빠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수가 힘껏 뿌린 네개의 해군단검이 희뜩번뜩거리며 날아오는것만 같았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불현듯 그의 눈앞에는 3년전 원산만에서 자기의 잠수함을 허겁지겁 따라오던 매생이가 떠올랐다. 그 매생이가 오늘은 저렇게 어뢰정으로 변하여 휘두르는 장검인양 파도머리를 쳐갈기며 발동소리도 드높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고있었다.
《함장님! 빨리 전투경보를 울립시다.》
잭슨함장은 별로 놀라와하지 않았다. 입에서 파이프를 뽑으며 비죽이 웃는걸 보니 상대도 안되는 어뢰정들이 도전하는걸 가소롭게 여기면서 오히려 반가와하는것 같았다.
《어랍쇼. 북조선해병들은 담이 크구만. 제법 국기까지 올리고 달려드는구만.》
잭슨함장이 야유조로 뇌까리자 부함장과 조타수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그런즉 우리와 감히 정식으로 맞서 싸워보자는거지요.》
《좋아! 부함장, 어서 성조기를 올리라구.》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치솟은 《볼티모》호의 마스트에 대문짝처럼 큰 성조기가 펄럭이며 올라갔다. 경순양함과 구축함에서도 성조기를 올렸다.
전투함선들은 배수량이 많든지 적든지 일단 바다에 나가면 해당 국가의 령토의 한 부분으로서 자기의 나라를 대표하게 된다. 그런즉 조선동해의 연안에서 창건된지 이태도 못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세계《최강》을 뽐내는 미합중국이 승패를 겨루어 마주섰다.
잭슨함장은 파이프를 쥔 왼손을 위엄있게 내밀며 구령을 쳤다.
《분함대 전투준비!》
아아 앙!―
짜르릉!―
배고동과 싸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갑판에 나와서 북조선해군의 어뢰정을 구경하며 희죽벌죽 지껄여대던 승무원들은 이제야 번쩍 정신을 차린듯 자기의 전투초소로 달려갔다. 함상포에 달라붙은 포수들은 전투준비를 부리나케 끝냈다. 토니를 비롯한 장탄수들은 포탄고를 열어제끼고 아름드리 포탄을 맞들어 날라다가 장탄했다.
신속정확히 움직이는 그들을 보니 웨리크는 일순 긴장됐던 가슴이 안정되는듯싶었다.
잭슨함장은 연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파이프를 흔들며 련속 구령을 쳤다.
《목표, 북조선해군 어뢰정들! 발사준비!》
백수십문에 달하는 함상포들은 횡대를 지어 쏜살같이 달려드는 네척의 어뢰정을 함장과 포병장들이 불러주는 사격제원에 따라 재빨리 조준경의 십자선에 잡아넣었다.
바로 이 순간이였다. 박원협이 다급히 웨쳤다.
《지휘소! 좌현 75° 거리 3mile 소포정 두척 발견!》
소포정이라니?!
온 정신이 주타격대상인 《볼티모》호에 쏠려있던 김군옥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갑판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소포정 두척이 어뢰정대의 뒤를 따라 돌격침로에 들어서고있었다.
소포정은 중속기관을 놓았기때문에 속도가 어뢰정의 3분의 1도 되나마나했다. 화력장비는 선수갑판에 놓은 37mm함상포 한문과 선미갑판에 놓은 고사총이 고작이였다. 하기에 적순양함을 공격한댔자 맨발로 바위차기였고 얻어맞기나 좋았다.
김군옥은 목청껏 소리쳤다.
《갈매기! 갈매기! 나 새매다!》
고준무의 침착한 목소리가 정장모에 달려있는 수화기로 울려나왔다.
《군옥이! 우리도 돌격한다! 우리 함께 〈볼티모〉호를 기어이 까부시자.》
김군옥은 가슴이 뭉클했다.
고준무는 어뢰정대에 우박치듯 쏟아질 적의 화력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려고 희생을 무릅쓰고 무모한 공격을 단행한것이였다.
가뜩이나 격동되였던 김군옥의 가슴은 불이 달린듯 뜨거웠다.
고준무! 이 친구야! 고맙다, 정말 고마워!
소포정대의 동무들! 우리를 믿어달라! 우리는 동무들의 심정까지 어뢰에 실어 적순양함의 심장부를 기어이 강타할테다!
고속기관들의 동음은 더 우렁차게 높아졌다.
날이 선 배머리에 부딪쳐서 천쪼각, 만쪼각이 난 파도가 아우성치며 사령탑우로 휙휙 날아갔다.
한편 잭슨함장은 포병장들로부터 각기 담당한 목표들에 대한 발사준비가 끝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웨리크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어디 시작해볼가?》
웨리크는 이제 당장 벌어지게 될 멋진 장면을, 장엄한 포성과 더불어 즉시 산산쪼각나 파도우에 처참하게 휘뿌려질 어뢰정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잭슨함장은 오른손으로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연기가 감실감실 피여오르는 파이프를 감싸쥔 왼손을 불쑥 앞으로 내질렀다.
《일제사격!》
그의 명령을 각 함선들의 포병장들이 복창했다.
꽈르릉! 쿵쾅!―
백수십문에 달하는 각종 구경의 함상포들이 거의 동시에 울부짖었다. 《볼티모》는 지진을 만난듯이 세차게 흔들렸다. 푸들푸들 떨리는 포신아구리에서 시뻘건 불줄기가 쭉쭉 뻗어나가고 검은 연기와 매캐한 화약가스가 뭉클뭉클 피여올랐다. 세척의 군함은 화재라도 난듯이 삽시에 포연에 휩싸였다.
통나무토막같은 시누런 탄피들이 반충에 화약내와 단내를 물씬 풍기며 튕겨나 챙강! 챙강! 소리를 내며 갑판에 나뒹군다. 화약내와 포연에 숨이 컥컥 막혔고 눈이 쓰려났다.
일순 당황했던 웨리크는 귀고막을 북치듯 하는 요란한 포성에 인차 용기를 가다듬었다. 그는 자기가 승선지도장교임을 새삼스레 자각하며 위엄있게 쌍안경을 들고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며 파도우에 무수한 물기둥을 일으키는 전방을 지켜보았다. 이때 문득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북조선해군이 감히 어뢰정 네척으로 우리 기동분함대를 공격할 용단을 내릴수 있을가? 아니다.
모름지기 어디서인가 절호의 기회를 노리는 다른 어뢰정들이 또 있을것이다. 혹시 그들은 항공대와 련합작전을 할수도 있다.
《항공감시를 강화할것! 일체 고사무력은 대공방어준비를 할것!》
이렇게 명령을 내린 그는 쌍안경의 렌즈를 조절하며 전방뒤쪽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전투서렬의 왼쪽에서 공격해오던 어뢰정이 포탄에 맞았는지 비칠거리며 속도를 늦추더니 얼마 못 가 멈춰서고야말았다. 선체에 불이 달렸다.
《좋아! 어뢰정 한척을 격상시켰소.》잭슨은 흡족해서 소리쳤다.
그는 이 정도의 위력시위를 하면 어뢰정대가 공격을 포기하고 꽁무니를 빼는데 급급할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나머지 세척의 어뢰정들은 맹수의 피냄새를 맡은 사냥개인양 물갈기를 하얗게 날리며 더 기승스레 달려들었다.
《오냐! 본때를 보여주지.》
잭슨은 바싹 열이 올라서 파이프를 쥔 손을 휘저으며 《쐇! 쐇!》하고 련속 구령을 쳤다.
함상포들은 포신을 식힐 사이도 없이 다투어 울부짖었다. 포신들 아구리마다에서 번개불같은것이 번쩍거렸다. 몰방으로 터지는 요란한 포성에 하늘이 무너져내리고 바다가 통채로 펄펄 끓는것 같았다. 도처에서 솟구치는 물기둥과 흩날리는 물보라, 짙은 포연때문에 앞을 가려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웨리크는 지금 돌격침로에 들어선 어뢰정들의 뒤에서 불쑥 나타난 두척의 소함정을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어뢰정들이 분명한것 같았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정황처리에만 급급하고있는 잭슨의 어깨를 툭 쳤다.
《함장! 저기에 어뢰정들이 또 나타났소.》
《뭐라구? 어디? 어디에?》
뜻밖의 정황에 잭슨은 어지간히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웨리크에게서 쌍안경을 받아쥐였다.
《아! 저것두 어뢰정인가?》
《먼저 공격하는건 허위고 저게 진짜인것 같소. 놈들이 묘한 수를 쓰고있소.》
《글쎄 내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잭슨은 정황이 급한지라 목표를 정확히 확인해볼 사이도 없이 부랴부랴 명령을 내렸다.
《주포들은 뒤에 나타난 어뢰정들을 타격하라!》
포병장들이 필요한 구령을 내렸다.
세척의 군함에 장비되여있는 도합 25문에 달하는 주포들이 새로운 목표를 찾아 포문을 돌렸다. 짙은 화염과 물보라때문에 목표를 찾지 못한 조준수들이 정확한 좌표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미처 입을 벌리지 못하는 잭슨함장을 대신하여 웨리크가 큰소리로 좌표를 불러주었다.
《발사!》
꽈르릉!― 수십발의 대구경포탄이 불꼬리를 뒤에 달고 대기를 찢으며 동시에 날아갔다. 돌진하는 소포정 두척을 둘러싸고 폭음이 울리고 수십개의 물기둥이 일제히 솟구쳤다. 바다가 통채로 곤두섰다가 일시에 무너져내리는듯싶었다.
소포정들은 요행 직탄을 맞지 않았지만 솟구쳐올랐다가 쏟아져내리는 물사태에 가랑잎처럼 당장 뒤집혀질듯 흔들거렸다.
《잘한다! 잘해! 어서 쏴라! 어서 쏴! 이놈들아!》
어뢰정대에 쏠린 적의 화력을 분산시키는데 성공한 고준무는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출듯이 날뛰며 고함을 쳤다.
《어서 쏴라! 어서!》
고준무는 소포정을 그야말로 자기의 눈동자처럼 사랑했다. 그래서 소포정들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김군옥에게 천둥같이 화를 낸것이였다. 하지만 이 시각엔 돌격하는 어뢰정대를 위해 자기의 소포정들을 서슴없이 희생시키면서 이리도 기뻐하는것이였다.
소포정이 흠칫 멈춰섰다.
기관실에서 다급한 웨침소리가 울렸다.
《지휘소! 파편에 맞아서 기관이 파괴됨!》
무전실에서도 파공이 됐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파편이 휙휙 날아들었다. 정장이 푹 꼬꾸라졌다. 더 지체하면 무의미한 희생을 내게 된다.
《모두 정에서 탈출할것!》
정대원들은 날쌔게 정에서 뛰여내렸다.
고준무는 갑판장과 함께 부상당한 정장을 고무단정에 실었다. 온통 화염과 물보라에 휩싸여서 어느쪽이 바다기슭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그는 고무단정의 노를 힘껏 저으며 소리쳤다.
《함선에서 될수록 빨리 멀어질것!》
하늘이 찢겨져나가는 굉음이 울리더니 또다시 포탄소나기가 쏟아졌다. 고무단정은 솟구치는 물기둥을 타고 아찔하게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훌떡 뒤집혀졌다. 흩어졌던 해병들은 다시금 모여들며 필사적으로 고무단정을 붙잡았다. 고준무는 해병들의 도움을 받으며 부상당한 정장을 뒤집혀진 고무단정에 가까스로 올려놓았다.
《후―》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소포정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동력을 잃어버린채 떠있던 두척의 소포정이 간곳없이 사라져버렸다. 소포정이 있던 곳엔 박산난 함선의 잔해와 불타는 포탄상자들이 둥둥 떠돌뿐이였다.
《아! 저… 저거… 이럴수가 있나?》
고준무는 너무도 억이 막혀서 입을 항 벌린채 굳어졌다.
해병들은 동시에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모두들 가슴이 터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어뢰정에 비하면 속도는 느린 대신에 선체가 두배나 큰 소포정들은 집중적인 포탄세례를 받고 형체도 찾아볼수 없게 산산쪼각난것이였다.
웨리크는 통쾌해서 쌍안경을 높이 추켜들며 환성을 올렸다.
《명중이다! 만세!》
잭슨은 철부지처럼 분수없이 곁에서 떠들어대는 웨리크를 사납게 흘겨보았다.
《빌어먹을! 저건 어뢰정이 아닌것 같애.》
웨리크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부쩍 우겨댔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어뢰정들이 분명하오.》
잭슨은 악이 받쳐서 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목이 터지도록 소래기를 질렀다.
《아니래두! 그놈들이 포사격을 분산시킨 틈을 타서 어뢰정들은 쏘구역을 뚫고들어왔어!》
그제서야 웨리크는 피뜩 정신을 차렸다.
순간 눈앞이 아뜩했다.
이게 뭔가? 어쩌면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무차별적인 집중포격으로 하여 세찬 불길과 룡트림하는 화염이 파도치는 그속을 뚫고 세척의 어뢰정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속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그것은 정녕 불속에서도 죽지 않고 나래쳐오른 불사조들이였다.
웨리크는 그 모습, 그 정신에 위압되여 전신이 마비되는것만 같았다.
《여! 조타수! 뭘 멍청히 서있어? 빨리 변침하라! 어서!》
잭슨은 다급히 소래기를 질렀다.
기세등등하여 달려드는 북조선해군의 어뢰정들을 얼친듯이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던 조타수는 그제서야 정신이 펄쩍 들었던지 부랴부랴 타륜을 돌렸다.
《포사격 중지!》
뒤늦게야 중순양함은 부질없는 불질을 그만두고 꼬리를 사리려고 황급히 배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함상포를 갈겨대던 경순양함과 원양구축함도 급작스레 조성된 절망적인 사태앞에서 몹시 당황망조해서 꼬리에 불이 달린 맹수들처럼 갈팡질팡 헤덤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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