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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어뢰정대는 주문진항 입구에 있는 등대앞을 지나갔다.

짙은 어둠속에서 바다는 불안스레 뒤설레고있었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으로 해풍이 세차게 불었다. 칼날같은 배머리에 찢기운 파도가 아우성치며 련속 갑판우에 날아들었다. 사령탑에까지 물보라가 흩날렸다.

사령탑에 나란히 서있는 김군옥과 김도형정장은 물론 고사총좌지에 앉은 박원협갑판장도 소나기를 맞은듯 물참봉이 되였다.

얼굴에 쫙쫙 끼얹어지는 바다물이 눈섭에 맺혀 앞을 감시하기 불리했다. 손으로 자주 얼굴을 문질러도 쩝쩔한 바다물은 계속 줄줄 흘러내려서 과연 짜증이 날 지경으로 거치장스러웠다. 푹 젖은 항해복이 연추처럼 무거워졌다. 차거운 바다물은 가슴팍을 적시고 아래도리에까지 슴배여들었다. 으스스 오한이 났다.

해도실에서 채기정이 훈훈한 기운을 풍기며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정대장동지, 잠간 기관실에 들어와 몸을 녹이십시오. 후끈후끈합니다.》

김군옥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속초항으로 올 때는 김도형정장과 교대로 타를 잡으며 기관실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식사도 했지만 전투를 앞둔 지금은 그럴수 없었다.

《자! 그럼 거기서라도 한고뿌씩 드십시오.》

김군옥은 그가 주는 법랑고뿌를 얼른 받아쥐였다. 고뿌에는 진한 빠다물이 담겨져 하얀김을 몽몽 뿜어올렸다. 고뿌를 감싸쥔 손바닥이 기분좋게 따끈따끈했다. 그는 빠다물고뿌를 정장과 갑판장에게 넘겨주고나서 세번째로 받은걸 한모금 마셨다.

뜨겁고 달콤하고 고소한것이 목구멍을 지지며 넘어갔다. 차겁던 배속이 대뜸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오한이 즉시에 멎었다.

《자! 이것도 잡수십시오.》

얼결에 받아쥐니 말린 김에 싼 주먹밥이다. 안에 고추장과 졸인 멸치토막을 박아넣은 주먹밥은 과연 꿀맛이였다. 차거운 바다물이 날아드는 날바다우에서 따거운 빠다물을 국삼아 먹는 이 주먹밥이야말로 땅우에 차려놓은 진수성찬에도 비길수 없었다.

해병식식사를 간단히 하고나니 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기운이 솟구치고 눈정기가 밝아지는게 헨둥하니 알렸다.

김군옥은 거치장스러운 항해복을 벗어던졌다.

어뢰정대는 어느새 타격지점인 묵호항입구에 거의 접근하고있었다.

《주의! 전방감시를 더욱 강화할것!》

모두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전방을 지켜보았다.

산이나 언덕, 전호와 은페호가 없는 허허날바다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발견하고 때리는쪽이 주도권을 쥐기마련이다.

연안순찰용으로 건조한 이 구식어뢰정에는 전파탐지기가 없었다.

하기에 말그대로 눈이 보배였다.

육안감시로 적함을 발견하고 재빨리 돌격침로에 들어가 어뢰공격을 해야 했다.

《볼티모》호를 비롯한 적함들은 조선전쟁을 앞두고 반경 십여mile을 원형감시할수 있는 신형전파탐지기를 장비하였다고 한다. 놈들의 전파탐지기에 걸려들면 즉시 함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그러면 어뢰정들은 적함을 구경도 하지 못한채 산산쪼각이 나고만다.

벌써 놈들의 전파감시에 걸려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당장 백수십문에 달하는 함상포들이 어뢰정대를 겨누고 포문을 열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짜아짜했다. 금시 하늘이 무너져내리거나 바다가 통채로 뒤번져질듯싶다.

그런데 피어린 격전을 눈앞에 둔 묵호항입구는 너무도 고요했다. 산중의 호수인양 잠풍하다. 적함은 그림자도 없었다.

묵호등대가 바라보일 때 어뢰발사준비를 갖추고 최고속으로 질풍같이 달려든 어뢰정대는 아연해서 멈춰섰다. 기관을 공회전시키고 아무리 사위를 둘러봐도 적순양함은 고사하고 쪽배 한척 눈에 띄우지 않았다.

너무도 예상밖인 정황에 부딪치자 김군옥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놈들이 어딜 갔을가? 혹시 항만에 들어간게 아닐가?

《전진! 항만을 수색할것! 목표가 나타나면 즉시 공격하여 어뢰를 발사할것! 24호정은 항입구를 지킬것!》

세척의 어뢰정이 쏜살같이 항만에 들어갔다. 탐조등으로 부두를 샅샅이 훑으며 항만을 한바퀴 빙 돌았지만 역시 적함들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김도형정장은 악이 날대로 나서 주먹으로 사령탑 앞턱을 치며 고아댔다.

《빌어먹을, 이 개자식들이 다 어디로 갔어?》

성미가 유순하고 거친 말이라고는 전혀 입에 올리지 않던 리완근정장도 욕사발을 퍼부었다.

《개놈들! 우리가 나타나니 지레 꼬리를 사렸구나. 내 기어코 붙잡아서 묵사발을 만들테다!》

김군옥은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버리는것만 같았다.

투묘지나 정박장에 있는 적함들을 습격하지 못하면 부득불 넓은 바다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엔 어뢰정대측이 결정적으로 불리했다.

그저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나 승산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다. 동해를 다 뒤져서라도 적함들을 기어이 찾아내여 까부셔야 했다.

그는 정장모를 시원하게 벗어쥐고 수화기가 달린쪽을 입에 가져다댔다.

《나의 명령을 들으라! 즉시 항밖으로 나가 3mile씩 사이를 두고 횡대대형을 지어 남쪽으로 내려가며 수색할것!》

항입구를 벗어난 어뢰정대는 어둠에 잠긴 해상을 샅샅이 훑으며 남하하기 시작했다.

홍동철과 한백천은 방금전에 등대탑이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이 천번중 단 한번의 기회를 노려 면밀하게 짜고들었던 묘박지습격안은 공든 탑처럼 일시에 무너져버렸다. 너무도 억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들은 경악하여 돌처럼 굳어졌다.

남쪽으로 멀어져가는 어뢰정들의 동음에 멍하니 귀를 기울이던 한백천은 별안간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며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흐! 이젠 다로구나!》

일껏 바라던 요행수를 놓친 그의 입에서는 절망적인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기지장동지, 어쩌면 좋습니까? 이젠 어뢰정대가 설사 적함들을 발견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허허날바다에서 기동분함대와 싸운다는건 닭알로 바위치기지요. 무모한 자살행위란 말입니다.》

홍동철은 가뜩이나 신경이 더 날카로와져서 상대방을 흘겨보았다.

《여보! 우는 소리는 그만하오.》

그는 경우에 따라 불처럼 확 붙다가는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리군 하는 작전과장의 경망스러운 성격이 기질상 질색이였다.

한백천은 여전히 락심천만해서 웅얼거렸다.

《무전련락을 취합시다. 이제라도 어뢰정대를 돌려세워야 합니다.》

홍동철은 일순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작전과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야간에 진행하는 묘박지습격은 승산이 있다. 그러나 날이 밝았을 때 어뢰정대가 적기동분함대와 맞다들리면 어뢰 한발 변변히 쏴보지도 못한채 포탄소나기를 뒤쓰고 풍지박산날수 있는 우려가 다분했다.

그렇다고 하여 이제와서 물러설수도 없었다. 이 싸움은 승산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둘 그런 싸움이 아니였다.

전투출항에 앞서 어뢰정대는 위대한 장군님께 심장의 맹세를 다지였다.

우리들은 조선로동당의 참다운 전사답게, 항일선렬들의 고매한 뜻을 이은 조선청년답게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워 미제침략자들을 바다속깊이 수장해버리겠다고…

수령께 다진 맹세는 피로써 지켜야 한다.

여기에 전사의 참다운 행복과 기쁨이 있고 최상의 영광이 있다.

한백천은 절망이 어린 목소리로 재삼 독촉했다.

《기지장동지! 빨리 돌아서라고 어뢰정대에 무전을 보냅시다.》

홍동철은 버럭 고함을 쳤다.

《그건 안돼! 난 그들을 믿소.》

한백천은 주저앉은 상태로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어디 믿는다고 될 일입니까? 이젠 용빼는 수가 없습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난다면 몰라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게 아니라 창조해야지.》

《아니?! 누가 기적을 창조한다는겁니까? 교육과정안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싸움도 전혀 해본적이 없는 그 동무들이 기적을 창조한다구요?》

한백천은 허거프게 웃다가 정황에 어울리지 않게 경망스레 처신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화를 내며 오만상을 찡그렸다.

작전과장이 락심천만해서 우는 소리를 할수록 홍동철은 마음이 안정되고 더욱 신심이 생겼다.

《자, 어서 가기요.》

홍동철은 언덕아래로 달려내려갔다.

야전차곁에서 긴목을 빼들고 바다쪽을 바라보며 서성거리던 운전사가 그에게 성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어뢰정대는 적함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가고있소. 우리도 어서 따라가기요.》

운전사가 급히 발동을 걸었다. 한백천이 허둥지둥 뒤따라 내려와 뒤좌석에 올랐다. 항구를 에돈 야전차는 해안가를 따라 내달렸다.

수평선상이 알릴듯말듯 희읍스름해지기 시작했다.

바다를 뒤덮었던 흰안개가 해안가로 소리없이 느물느물 기여올랐다. 어디선가 잠을 깬 새들이 청아하게 우짖었다. 동녘하늘도 훤해진다. 날이 밝아오는것이다.

홍동철은 다시금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졌다.

날이 밝으면 어뢰정대의 전투행동이 결정적으로 불리해지기때문이다.

입술을 깨물고 바다쪽을 주시하던 그는 운전사의 옆구리를 팔굽으로 쿡 찔렀다.

《차를 세우오!》

야전차는 급제동하며 곤두박힐듯 멈춰섰다.

《저기를 보오. 어뢰정대가 돌아섰구만.》

뒤좌석에 후줄근해서 앉아있던 한백천은 벌떡 일어나 기지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서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번지는것이 알릴듯말듯 눈에 띄웠다. 그 물보라는 북쪽으로 움직이고있었다. 점차 어뢰정들의 독특한 동음도 미세하게 울려왔다.

《왜 돌아섰을가?》

기지장의 물음에 한백천은 한숨을 소리나게 내쉬는것으로 대답했다.

그야 뻔하지 않는가, 어뢰정대는 아무리 생각해봐야 승산이 없는 전투를 포기하고 기지로 돌아가는것이다.

홍동철은 벙글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대형을 지은걸 보니 북상하면서 수색을 계속하는게 분명하오.

운전사동무, 빨리 차를 돌리시오.》

야전차는 되돌아서서 어뢰정대와 나란히 해안가를 내달렸다.

어뢰정대는 묵호항입구를 지나쳐서 강릉앞바다에 들어섰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문진앞바다다. 호상 바라볼수 있게 일정한 간격으로 벌려선 어뢰정들은 사냥감을 찾는 풍산개들처럼 중속으로 여유있게 나가면서 해상을 면밀히 감시하였다.

날이 밝는게 위험했지만 감시에는 유리했다.

마침 날씨가 맑아서 시정이 좋았다. 하늘과 바다를 경계짓는 수평선이 뚜렷하게 한눈에 안겨왔다.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시정이 좋은 경우 대체로 12mile정도다.

적기동분함대의 작전구역이 삼척―강릉앞바다이기에 김군옥은 남하하던 어뢰정대를 돌려세워 북상하며 수색을 계속하고있었다. 보아하니 놈들은 공해쪽으로 나간것 같았다. 날이 밝으면 함포사격을 하려고 연안에 기여들것이다.

정대장과 정장, 갑판장과 고사총수는 모두 눈이 아프도록 수평선쪽을 긴장하게 감시하고있었다.

수평선쪽에 선 24호정의 고사총수인 강순봉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곁에 있는 문화부정대장에게 소리쳤다.

《저게 연기가 아닙니까?》

리학섭은 그가 가리키는쪽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수평선우로 검은 실오리같은것이 가물가물 피여오르고있었다. 함선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분명했다.

《옳소, 배기가스요.》

강순봉은 목표를 남먼저 발견한 기쁨을 담아 큰소리로 웨쳤다.

《지휘소! 우현 30° 거리 12mile 연기 발견!》

그러지 않아도 그쪽을 지켜보던 양판익정장은 즉시 무선통화로 정대장에게 정황을 보고했다.

《알았다! 모두 우현 30° 거리 12mile에 감시를 집중할것!》

김군옥은 이렇게 지시하고 수평선상에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긴장하게 지켜보았다.

잠시후 수평선상에 마스트가 나타났다.

하나, 둘, 셋.

세개의 마스트아래 사령탑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구경포신들도 얼마든지 가려볼수 있었다.

정대원들모두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던 미제침략자들의 기동분함대가 분명했다.

됐구나!

김군옥은 내심 탄성을 올리며 후련히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긴장되기는 고사하고 가슴을 옥죄였던 긴장의 탕개가 탁 풀리는것이였다.

《종대대형을 지을것!》

그는 풍산개전술로 넘어가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구령을 쳤다.

기정이 속도를 내며 불쑥 앞으로 나가자 대렬정들은 전술번호대로 줄줄이 따라섰다.

《현침로로 계속 북상하면서 적함들을 감시할것!》

《알았다!》

그새 날은 더 밝아서 5mile정도 떨어져있는 해안가까지 바라보였다. 적함들의 모습도 완전히 드러났다.

선두에 선건 경순양함 《야이카》호다. 가운데 선것은 바다의 《움직이는 섬》이라고 소문난 중순양함 《볼티모》호다. 뒤에서는 원양구축함이 호위하고있었다. 포신들이 숲을 이루었다. 요새화된 섬들이 통채로 움직이는것 같았다. 기동분함대의 출현으로 하여 바다가 비좁아진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주문진등대에 오른 홍동철과 한백천도 사슴떼를 발견한 맹수들마냥 해안을 향하여 유유히 다가오는 적함들을 쌍안경으로 지켜보았다.

적함들의 기동을 주시해보니 우리 어뢰정대를 이미 발견하고 두들겨패려고 작정한게 분명했다.

적함들을 고래에 비긴다면 우리 어뢰정들은 멸치나 까나리에 비겨야 할는지… 너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뢰정들은 종대를 지어 속도를 높이며 계속 북상하는데 마치도 적 대형군함들의 출현에 겁을 먹고 허겁지겁 도망치는것처럼 보였다.

한백천은 너무도 긴장해서 가슴이 막 졸아드는것 같았다. 그는 어뢰정대에 대고 적함들이 나타났으니 빨리 주문진항으로 피하라고 고함을 지르고싶었다. 이제라도 항에 피신하면 무사할수 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왜서인지 아직도 기지로 돌아가지 않고 항입구쪽에 나가 표류해있던 소포정 두척이 부리나케 기관을 돌리며 바다로 나간다.

한백천은 경악을 했다.

《고준무가 눈이 멀었나? 적함들이 달려드는데 왜 출항하는가? 항구에 그냥 숨어있을게지.》

홍동철도 소포정들이 왜 급기야 바다로 나가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째서 그러느냐고 물어볼수도 없으니 그저 지켜볼수밖에… 그러자니 가슴속에선 심장이 뛰는게 아니라 시한탄이 찰칵찰칵 초침소리를 울리는것만 같았다.

웨리크는 누군가 자기가 덮은 모포를 우악스레 잡아채는통에 굳잠에서 깨여났다.

침대곁에 나타난 부함장이 좀 흥분한 기색으로 재빨리 말했다.

《여보, 굉장한 구경거리가 생겼소. 빨리 기본지휘소로 올라오시오.》

《뭐라구요?》

부함장은 의미있게 눈을 껌벅이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웨리크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여러날째 반복되고있는 해상기동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목표에 대고 쏘아대군 하는 함포사격에 이젠 그만 싫증을 느끼고있었다.

그런데 굉장한 구경거리란건 도대체 뭔가? 북조선해군함정이 나타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외에 굉장한 구경거리란 있을수 없다.

문득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흥분해서 부랴부랴 군복을 주어입고 기본지휘소로 올라갔다.

여느날과 다름이 없이 례복차림을 한 잭슨함장은 연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파이프를 왼손에 쥐고 앞창에 바싹 다가서서 뭔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있었다. 부함장과 항해장, 당직장교도 그쪽을 바라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웨리크는 호기심을 느끼며 서둘러 함장곁에 다가갔다.

《웬일입니까?》

《저길 보오.》

잭슨은 손에 쥔 파이프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에 급해서 도망치는 네척의 소함정이 보이지 않소. 저건 당신이 그처럼 보고싶어하던 북조선해군함정들인것 같소.》

웨리크는 함장이 넘겨주는 쌍안경을 받아들고 그쪽을 주의깊게 살폈다.

7~8mile정도 떨어진 연안에서 자그마한 함정 네척이 하얗게 물갈기를 날리며 종대를 지어 북상하고있었다. 아직은 형태가 뚜렷이 안겨오지 않아 어떤 종류의 함정인지 가려보기 어려웠다. 속도는 비교적 빠른축이다.

《30분전에 저것들이 전파탐지기에 걸려들었소.

너무 작아서 식별하기 곤난하더군. 그래서 대관절 어떤 놈들인가 구경하려고 기동을 했소.》

앞에서 전진하던 《야이카》호에서 함장의 무선통화가 날아왔다.

《〈볼티모〉! 불명목표는 북조선해군 어뢰정들인것 같다. 우리의 연안순찰용어뢰정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웨리크는 확성기로 울려나오는 《야이카》호 함장의 보고를 들으며 눈정기를 한껏 모아 목표를 주시했다.

점차 날씬하게 생긴 선체가 드러났다. 선수갑판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령탑뒤쪽에 고사총이 설치되여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선미쪽이 무겁게 잠긴걸 보면 선미갑판에 어뢰를 적재한게 분명했다.

《함장님, 어뢰정들입니다.》

잭슨은 자기도 그렇게 보고있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어떻게 할가?》

그는 적함을 발견하고 싸움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의논한다기보다는 잡아놓은 물고기를 놓고 어떤 방법으로 료리할것인가를 묻는것 같았다.

웨리크는 잭슨을 마주보며 징그럽게 웃었다. 그 역시 로획물을 놓고서 맹수들이 그러하듯이 좀 장난을 치면서 혼쭐을 쑥 뽑아놓고 재미를 보다가 뜯어먹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던것이다. 그래야 심심풀이가 될것 같았다.

《저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앞을 가로막고 어쩌는가 봅시다. 흰기를 올리면 자비심을 베풀어주어야지요.》

그런즉 기동분함대의 위용으로 보잘것 없는 상대의 기를 눌러 손쉽게 나포하자는 소리였다.

장난삼아 해볼만 한 놀음이다. 잭슨은 기꺼이 응했다.

《〈야이카〉! 놈들을 나포하자. 침로를 가로막으라!》

《알았다!》

《야이카》호는 속도를 높이며 앞으로 쑥 나갔다.

수천명에 달하는 미군해병들은 모두 갑판에 떨쳐나와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목을 길게 빼들고 연안쪽에서 북상하고있는 어뢰정들을 바라보고있었다. 그저 바라보는게 아니라 손짓을 하며 떠들어댔다.

《여! 저게 뭐야?》

《혹시 한국해군의 어뢰정이 아닐가?》

《아니야, 북조선해군의 어뢰정들이래.》

《모를 소리다. 북조선해군의 어뢰정들이 남쪽에서 나타날수가 있나.》

토니가 장탄하는 흉내를 냈다.

《하여튼 주포로 한방 갈겨보자구. 아마 포소리만 내도 저런 잔고기들은 휘딱 놀라서 뒤번져질거야.》

와하하! 웃음통이 터졌다.

극도로 자고자대하는자들의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너털웃음이였다. 안하무인격인 이들은 전투준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휘소에서도 전투경보를 울리지 않는걸 보면 어뢰정 서너척같은건 정식으로 싸워볼만 한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걸 의미했다.

《저놈들을 다 사로잡아 부산항으로 끌고가자구.》

주포1호의 조준수가 능글맞게 웃으며 이런 제의를 하자 모두들 승벽내기로 맞장구를 쳤다.

《마침 24사단이 인차 부산항에 상륙한다니 그들에게 보여주세. 그러면 희한한 구경거리가 될거네.》

《공산군에게 뒤쫓겨 정신없이 도망쳐온 한국군놈들에게도 우리가 나포한 어뢰정을 보여주자구.》

《좋아! 미해군의 실력을 과시하고 절망에 빠진 한국군놈들에게 바람을 불어넣어줘야지.》

그들은 《세계1등급》의 해군에서 복무하는 우월감과 자부심을 가슴뿌듯이 느끼며 성수가 나서 지껄여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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