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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요란한 동음으로 하늘과 바다를 뒤흔들며 어뢰정대는 종대를 지어 내달렸다. 선두에 선 기정에는 홍동철기지장이, 22호정에는 한백천작전과장이 타고있었다. 리학섭은 바다에 나갈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24호정사령탑에 있었다.

따웅! 따웅!

꽈릉! 꽈릉!

고속기관들은 겨끔내기로 련이어 폭음을 울리며 추진기를 돌렸다.

그 동음에 귀를 기울이노라니 김군옥은 은근히 초조하고 불안스러워졌다.

출항을 앞두고 그는 어뢰정들의 기관사용시간을 다시한번 따져보았었다. 21호정과 22호정은 상륙작전에 참가하고나니 남은 사용시간이 25시간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두척도 35시간정도다. 이번 전투를 치르고나면 설사 어뢰정들이 기지로 돌아온다고 해도 더는 쓸모가 없게 된다.

결국 이번 해상전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다시는 싸워볼 기회가 없다, 다시는…

꽈릉! 꽈릉!

요란한 동음과 함께 기관사용시간은 각일각 줄어들고있었다.

감시근무를 서는 박원협갑판장이 소리쳤다.

《지휘소! 전방 좌우에서 기뢰부설작업을 하는 함선들 발견!》

김군옥은 전방 좌우를 살펴보았다.

어둠속에서도 여기저기 널려있는 함선들의 형체가 얼핏얼핏 눈에 띄웠다.

《정대 속력감소!》

정대장의 명령에 따라 어뢰정들은 즉시 속도를 떨구고 채정보대좌가 해도에 그어준 안전항로를 따라 조심스레 나아갔다.

기뢰부설함에서 반짝반짝 불빛신호가 왔다.

《안전항해를 바람!》

입출항을 할 때면 함정들사이에 의례히 주고받던 해병식인사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신호에 담겨진 의미가 각별하게 여겨지면서 코마루가 쩡해졌다. 갑판장은 불빛신호로 답례를 보냈다.

김군옥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큰소리로 채기정을 불렀다. 해도실에서 기관실에 필요한 조종신호를 보내던 채기정은 웬일인가 해서 사령탑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라구.》

《그건 무슨 소립니까?》

김군옥은 저쪽에서 반짝거리는 불빛들을 가리켰다.

《저기서 채정보대좌동지가 기뢰부설전투를 지휘하고있단 말이요.》

채기정은 씩 웃더니 돌아앉아 정색해서 기관조종간을 틀어잡았다.

《여! 작별인사를 안하겠어?》

김군옥이 해도실에 대고 큰소리로 묻자 채기정은 조종간을 억세게 틀어쥔채 고개짓으로 옆에 준비해놓은 속사첩을 가리켰다.

《난 〈볼티모〉호가 격침되는 통쾌한 장면을 속사해서 아버지에게 기념으로 드리자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김군옥은 일순 긴장하고 불안해졌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왜 아버지에게만 보여드리겠나. 〈볼티모〉호의 격침장면을 잘 그려서 인민군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면 틀림없이 1등을 하게 될거요.》

고사총좌지에 앉아서 해상감시를 하면서도 귀동냥을 하던 박원협이 석쉼한 목소리로 덩달아 흥에 겨워 소리쳤다.

《왜 그림만 그리겠습니까. 난 이번 해상전투를 노래한 서사시를 쓰겠습니다.》

타륜을 잡고있는 김도형정장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누구로 선정하겠나?》

《우리 정대장동지지요.》

《이 김도형이도 나오겠지?》

《물론이지요. 기정의 정장이 아닙니까. 주요인물로 형상하겠습니다. 대신 전쟁이 끝나면 이 시인을 안변에 초청해서 감을 실컷 먹여줘야 합니다.》

《아직 쓰지도 않은 작품을 놓고 받아먹을 생각부터 하는걸 보니 케가 글렀어.》

하하하! 즐거운 웃음소리가 파도소리를 뚫고 울렸다.

어뢰정들은 한참후에야 기뢰부설구역을 조심스레 벗어나 압룡단을 돌아섰다.

《속력증가!》

어뢰정들은 박차를 가한 준마들처럼 속력을 올리고 린광이 번뜩거리는 잔파도를 쭉쭉 가르며 남으로 내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둠속에서 저기 해안쪽에 웅기중기 일어선 거대한 돌기둥같은것이 어슴푸레 보였다.

《총석정이요!》

정대장의 말을 들은 채기정은 얼른 사령탑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천하절승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는군요. 낮에 보았으면 속사를 해두는건데…》

《놈들을 족치고 돌아올 때는 여기서 발동을 끄고 해뜨는 시간을 기다리자구. 그래야 총석정의 해돋이를 볼수 있지. 마음놓고 그림도 그리라구.》

《고맙습니다.》

김도형이 끼여들었다.

《여긴 도미가 많다는데 이왕이면 낚시질을 해서 둬두름 잡아갑시다. 해남이 어머니랑 아주머니들에게 주면 좋아할겁니다.》

《거 욕심이 지나치구만. 우린 그저 〈볼티모〉호만 잡으면 되는거야. 바싹 정신차리라구. 도미생각을 하다간 고래를 놓칠수 있어.》

김군옥은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이윽고 장아대단과 삼일포앞을 지나갔다. 푸름푸름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군사분계선 남쪽해상이다. 출렁이는 파도도 어서 오라고 어뢰정대를 반겨주는듯싶었다.

날이 훤히 밝아서야 속초항에 들어섰다.

시계를 보니 열시간나마 장기항해를 했다.

속초항은 그리 크지 않은 항구인데 놈들의 함포사격에 몹시 파괴되여 한산하고 어수선했다. 깨진 고기배의 잔해들과 불에 그슬린 나무통들이 여기저기 떠있어서 자칫하면 어뢰정에 부딪칠수 있었다. 속력을 죽이고 모두 삿대를 들고나서서 부유물체들을 밀어던지면서 가까스로 입항을 했다.

깨진 부두에 나와있던 해상륙전대원들이 몹시 반가와서 수고했다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계류바줄을 받아주었다.

홍동철은 정대장에게 빨리 위장포를 치고 항해후정비를 하라고 지시를 주고나서 작전과장과 함께 부두에 내렸다.

대원들과 함께 어뢰정대의 계류작업을 도와준 소위가 거수경례를 하며 자기가 항을 경비하는 구분대를 책임졌다고 보고했다.

《소위동무, 어뢰정들에 연유를 보충해줄수 있소?》

《예, 련락을 받고 준비해놓았습니다.》

《연유창은 무사했던 모양이군.》

홍동철은 피곤이 거미줄마냥 잔뜩 엉켜붙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고나서 텅 비다싶이한 부두를 주의깊게 둘러보았다.

《소위동무, 혹시 우리 소포정들을 보지 못했소?》

정장들에게 임무를 주던 김군옥은 그 물음에 귀가 솔깃해져서 소위를 돌아보았다.

《소포정들은 어제 아침 여기에 들려서 연유와 청수를 보충받고 주문진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돌아서지 못했을가?

난 그들을 여기서 만나게 될줄 알았는데…》

홍동철은 소위를 앞세우고 정박장초소로 올라갔다. 한백천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김군옥은 정장들과 함께 묘박지를 습격할 때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처한 전술방안을 토의하였다. 정대원들은 밤을 꼬박 밝히며 항해해서 몹시 피곤했지만 어뢰정들에 위장포를 씌우고 항해후 정비를 하면서 동시에 연유와 청수를 보충받을 준비를 하노라 분주히 돌아쳤다.

리학섭은 위생지도원과 함께 부두에서 좀 떨어진 그늘진 장소에 땅가마를 걸었다. 그는 식빵을 비롯한 항해용식품이 있지만 출전을 앞둔 해병들에게 따끈한 흰쌀밥에 더운 국을 먹이고싶어서 가마와 쌀을 싣고왔다.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다 불을 지피고 쌀을 일어 가마에 안치고 반찬을 만드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였다. 가뜩이나 텁텁하게 생긴 그는 이럴 때 보면 푸수한 취사원아바이같았다.

이윽고 흥겨운듯 들썩들썩 춤을 추는 가마뚜껑밑에서 흰김이 뿜어나오고 밥잦는 구수한 냄새가 안정감과 친근감을 안겨주며 풍겼다.

또이요, 또이요, 또이또이또이요!―

식사시간을 알리는 함선호각소리가 군항에 있을 때나 다름없이 신나게 울려퍼졌다.

김군옥은 해도를 접었다.

《자, 식사를 합시다.》

정장들은 일손을 뗀 정대원들과 함께 시원히 세면을 하고나서 식사를 푸짐하게 차려놓은 바다기슭의 나무그늘안에 빙 둘러앉았다.

장시간 항해를 하고 뭍에 오르면 누구나 식욕이 부쩍 당기는 법이다. 더우기나 해방된 남쪽지역의 항구에 들어와 처음으로 하는 식사인지라 그 맛이 정녕 각별했다.

정대원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함께 한 홍동철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어허! 이거 요란한걸, 어뢰정대의 식사질이 이렇게 높은줄은 몰랐구만. 허, 이것 봐라! 고추장까지 있군.》

아닌게아니라 반찬접시 가운데 한숟갈씩 떠놓은 새빨간 깨고추장이 각별히 눈길을 끌었다.

김군옥은 자랑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채기정동무의 어머니가 보내온겁니다.》

《음, 료리솜씨가 대단하오.》

정박장초소에까지 오르내리노라 식욕이 부쩍 동한 홍동철은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곁에 앉은 한백천은 속이 말짼지 상을 찡그리고 음식을 먹는둥마는둥했다.

《이 오이김치가 과연 별맛이군.》

기지장의 칭찬에 김군옥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해남이 어머니의 솜씨랍니다.》

《음, 글쎄 어쩐지… 요거 밥도적은 누구 솜씨지?》

기지장이 풋고추를 곁들여 졸인 멸치를 가리키자 강순봉이 기다렸던듯 얼른 대답했다.

《담당준의동지가 만든겁니다.》

홍동철은 허허 웃었다. 자기가 전번엔 안해를 칭찬했고 이번엔 처제를 칭찬한셈이였던것이다.

《이 완자는?》

위생지도원 오익섭이 말없이 식사를 하고있는 리완근정장을 슬쩍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주머니의 솜씨랍니다.》

김도형정장은 문득 수저를 멈추더니 짜장 근심스러운듯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잡아도 집채같은 고래를 잡아가지고 가야지 빈손으로 돌아갔다가는 아주머니들을 볼 낯이 없겠소. 아마 완근정장은 집뜨락에 들어서지도 못할걸.》

리완근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는데 정대의 막내이며 24호정의 고사총수인 강순봉이 꽉 틀어쥔 주먹을 흔들었다.

《그러게 기어이 까부셔야지요.》

깊은 생각에 잠긴채 식사를 하던 채기정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기관사용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번에 일을 치지 못하면 더는 기회가 없소.》

《수류탄을 다 꺼내여 선수갑판에 무져놓읍시다.》

《그건 어째서?》

《어뢰 두발을 쏴갈기고도 적함을 침몰시키지 못하면 선체육박을 해야지요.》

《옳소! 우리 몸이 육탄이 되여서라도 기어이 적함을 까부셔야 해!》

모두들 기가 뻗쳐 윽윽대는데 오익섭이 국자를 휘두르며 돌아갔다.

《자! 어서 국곱배기를 청하게. 배집이 든든해야 싸움도 잘할수 있소!》

저마다 국그릇을 내밀며 곱배기를 청했다.

한백천은 심사가 좋지 않았다.

거의나 승산이 보이지 않는 해상전투를 앞두고 어쩌면 모두들 이렇게 등산이나 천렵을 나온것처럼 히히덕거리며 식사를 할수 있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그는 몹시 긴장해서 그런지 밥과 반찬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적정을 두고봐야 했다.

만약 적함들이 야간에 묘박지에 들어가지 않으면 정말 난사다.

아! 이게 뭐야?

공교롭게도 물고기가시가 목구멍에 걸렸다. 그는 얼른 돌아앉아 입을 크게 벌리고 카! 카! 구토질을 했다. 가시는 반발하듯 목구멍을 더 아프게 따끔따끔 찔러댔다.

여느때없이 별로 말도 안하고 불안해하는 작전과장에게 마음이 씌여있던 김군옥은 얼른 수저를 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럽니까?》

한백천은 고통스럽게 오만상을 찡그렸다.

《젠장, 물고기가시가 목에 걸렸소.》

《어디 좀 봅시다.》

한백천은 어쩔수없이 입귀가 찢어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김군옥은 눈정기를 모아 그의 목안을 들여다보았다. 물고기가시는 눈에 띄우지 않았다.

《위생지도원동무, 이거 어쩌면 좋소?》

오익섭이도 난감한 기색이였다.

《글쎄요. 참, 이걸 대충 씹어서 넘겨보십시오.》

그는 오이김치 한토막을 작전과장의 입에 넣어주었다. 한백천은 그것을 고통스럽게 넘기더니 더 상을 찡그렸다.

《그럼 식초를 마셔보십시오.》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오익섭은 당황해났다.

《이거 야단인데… 목구멍에 걸린 물고기가시를 인차 뽑지 못하면 잘못될수 있습니다.》

한백천은 급한통에도 신경질을 부렸다.

《여보! 그따위 소린 그만두오. 전쟁판인데 바다에 나가서 싸우다 죽으면 몰라도 물고기가시가 목에 걸려서 죽는다는게 말이 되오? 아! 아이고!》

그는 두눈이 빨개지도록 련속 구토질을 했다.

《그러게 담당준의동무를 데리고올걸 그랬습니다.》

채기정이 어뢰정에 달려가서 정비용알콜병을 들고왔다.

《자, 이걸 마셔보십시오.》

그것도 효과가 없으니 정말 야단이 났다.

박원협갑판장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무너진 부두에 달려가 찢어진 그물쪼박을 주어가지고 왔다.

《자! 이걸 목에 감아보십시오.》

한백천은 오만상을 찡그린채 도리질을 했다.

박원협은 약장사처럼 그럴듯하게 엮어댔다.

《내 어릴적에 해녀출신인 할머니에게서 들은건데 물고기가시가 목에 걸렸을 땐 고기그물을 목에 감는게 상책이라더군요. 그러면 물고기가시란 놈이 무서워서 톡 튀여나와 도망친다는겁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래기라도 쥔다고 한백천은 그물쪼박을 받아 목에 감았다.

세계해전사를 강의하던 《뽀쬼낀》이 그물쪼박을 목에 감고 행여나 해서 앉아있는 모습이 실로 가관이여서 모두들 와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한백천은 얼굴을 왈칵 붉히며 그물쪼박을 풀어 내동댕이치더니 저도 우습던지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러다가 떡 굳어졌다.

《어! 이게 뭐야?》

놀란 소리를 치는 그를 모두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았다.

한백천은 얼굴이 환해서 손바닥에 튀여나온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물고기가시를 그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듯이 보여주었다.

《가시가 나왔소. 요렇게 쪼꼬만게 말썽을 부렸다니까.》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게 작다고 숫보면 안되지요.》

《작아도 고추알이라는 말이 있잖나.》

《맹수도 가시가 목에 걸리면 꼼짝없이 죽는다고 하더군요.》

박원협은 큰 공로나 세운듯이 으쓱해서 한백천이 내동댕이친 그물쪼박을 주어들었다.

《보십시오. 이게 은을 냈다니까요. 위생지도원동무, 이걸 잘 건사해두게.》

오익섭이 한수를 더 떴다.

《그건 작전과장동지에게 드리게. 그걸 건사하고있으면 두번다시 물고기가시가 목에 걸리지 못할거요.》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식사후 함선정비가 계속되였다. 초소정비를 먼저 진행한 후 모두가 달라붙어 어뢰정의 마스트로부터 사령탑과 갑판, 현측에 이르기까지 먼지 한점, 소금이 한알갱이라도 있을세라 깨끗이 닦아냈다. 전투를 앞두고 하는 마지막정비여서 이처럼 정성을 다 쏟아붓는것이였다. 선체청소까지 끝내고나서 모두들 모래불에 나가앉아 숨을 돌리며 새서방처럼 멀끔해진 어뢰정들을 정이 담긴 만족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채기정은 속사첩을 펼치고 어뢰정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속사첩에는 보람찬 해병생활의 이모저모가 다 담겨져있었다. 그는 전투출항을 앞둔 어뢰정대의 모습을 속사한 다음 아래에 《속초항에서 1950년 7월 1일》이라고 써넣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정대원들이 감탄을 했다.

《야! 정말 멋지게 그렸소!》

《솜씨가 있다니까요.》

채기정은 겸손하고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솜씨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어뢰정들이 아주 멋지게 잘 생겼지요. 외국의 한 작가는 세상에 아름다운게 세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돛을 올린 전함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달리는 준마의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춤추는 처녀의 모습이라는겁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전속으로 달리는 어뢰정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멋이 있더군요.》

정말로 그랬다. 볼수록 아름답고 정이 가는 어뢰정들이였다.

박원협이 격정에 북받쳐서 더는 견딜수 없었던지 벌떡 일어나 한손을 높이 추켜들었다.

 

아! 볼수록 정답구나

어뢰정이여

조국에 바치는 이내 청춘을

긍지로 꽃펴주는 나의 집이여

 

파도에서 구을던 옥돌인가

네 모습 빠짐없이 다듬어져

곡선미로 아름다운 선체허리엔

은띠인가 잠김선이 선명하구나

 

이제 당장 기운차게 배고동 울고

마스트에 공화국기 펄펄 날리면

저 바다 쭉 가르며 수평선을 당겨오리

나의 사랑 나의 자랑 어뢰정이여

 

풍어의 노래높던 우리 바다에

미제침략선들 침입했으니

너도나도 리별없이 달려나가자

기다려 마지않던 습격의 항로

 

우리 어찌 바라랴

살아서 군항에 돌아오기를

그 항로에 내가 육탄이 되면

너 또한 육탄이 되여야 하리

 

오! 어뢰정이여!

네 모습 크지 않아도

내 목청껏 자랑하고싶노라

동해천리 너와 함께 주름잡으며

일생토록 전속으로 내달리고싶어라

이 심장속엔 언제나

조국의 바다가 출렁이기에…

 

박수갈채가 일어번졌다. 21호정의 사령탑에서 작전안을 다시 검토하던 김군옥도 박수를 쳤다. 박원협이가 어뢰정을 사랑하는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자작시에 담아 읊은것만 같았다.

《여! 갑판장! 동문 정말 해병시인이요! 전쟁이 끝나면 시인이 되라구!》

정대장의 값비싼 칭찬을 받은 박원협은 흐뭇해서 싱글벙글 웃었다.

이때 홍동철기지장이 다가왔다.

《정대장동무, 위대한 장군님의 전투명령을 전달할 시간이 됐소. 문화부정대장동무가 어디에 있소?》

김군옥은 야외취사장에 대고 소리쳤다.

《문화부정대장동무!》

위생지도원과 함께 점심밥을 짓노라 땀을 철철 흘리며 돌아가던 리학섭은 얼른 일손을 놓고 군복매무시를 바로잡으며 달려왔다.

가뜩이나 거무틱틱하게 생긴 그의 얼굴은 숯검뎅이와 나무재가 붙은데다가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보기 흉했다. 그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문지르고 기지장에게 차렷자세를 취했다.

《문화부정대장동무, 위대한 장군님의 전투명령을 어떤 형식으로 전달했으면 좋겠소?》

리학섭은 이미 계획했던지라 즉시 대답했다.

《해병결의모임을 엽시다.

먼저 기지장동지가 전투명령을 전달한 다음 결의토론들을 하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 삼가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하려고 합니다.》

홍동철은 손목시계를 보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준비를 해야 하겠구만. 시간이 얼마나 요구되오?》

《다 준비되여있습니다.》

홍동철은 저으기 놀랐다.

정대원들과 꼭같이 항해를 하고 입항을 하자 식사준비로 누구보다 바삐 돌아친 문화부정대장이 어느 하가에 해병결의모임을 준비했는지 알수 없기때문이였다.

리학섭은 전투가방을 열고 종이를 꺼냈다.

《위대한 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문초안입니다. 보시고 의견을 주십시오.》

홍동철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정중히 그것을 받았다.

 

맹 세 문

 

경애하는 수령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여!

조국의 바다에 오만하게 기여든 미제침략선들을 수장시키고야말 결의에 충만된 우리들은 전투출항을 앞두고 당신에게 이 글월을 드립니다.

조국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만 미제침략선이 떠있을 자리는 한치도 없다는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의 가슴은 조선로동당의 참다운 전사답게, 항일선렬들의 고매한 뜻을 이은 조선청년답게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워 미제침략자들을 바다속깊이 수장해버릴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여있습니다.

우리들은 판가리결전장으로 나가면서 경애하는 수령이신 당신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하는바입니다.

 

                                                                           7월 1일

                                                                         제2어뢰정대 해병일동

 

홍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맹세문초안을 정대장에게 넘겨주었다.

김군옥은 그것을 자자구구 새겨가며 읽어보았다.

맹세문은 길지 않았지만 어뢰정대원들의 심장에 차넘치는 결사의 각오와 필승의 신념이 글줄마다 뜨겁게 맥박치고있었다. 조국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만 미제침략선이 떠있을 자리는 한치도 없다는 대목이 각별히 마음에 들었다.

《그럼 점심식사후에 인차 해병결의모임을 시작합시다.》

적들의 공습에 대처하여 바다기슭의 나무그늘속에 들어가 모임을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한 정대원들이 나무그늘아래 렬을 지어 앉는데 불쑥 저 멀리 남쪽해상에서 쿵! 쿠쿵― 하고 둔중한 포성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미제침략군 기동분함대의 함포사격소리가 분명했다. 각이한 구경의 함포들이 련이어 울부짖고있었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격분했는지 별안간 바다가 무섭게 울부짖으며 태질을 했다. 허연 거품을 물고 날뛰는것이 꼭 미치광이같았다. 사납게 달려들어 기슭을 때리고 물어뜯었다.

미역과 다시마를 비롯한 바다풀들이 파도에 갈기갈기 찢기여 기슭에 밀려나왔다.

그것은 마치도 포악스런 야수가 짓씹다가 뱉아버린 연약한 짐승의 뼈부스레기나 껍질과 흡사했다.

갈매기를 비롯한 바다새들이 기겁해서 날아예며 피터지는 소리로 귀아프게 울어댔다.

대기를 흔들며 계속 울려오는 둔중한 함포소리, 사납게 울부짖는 파도소리와 바다새들의 울음소리는 모임에 참가한 정대원들의 피를 더욱 끓게 해주었다.

모임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2어뢰정대에 직접 하달하신 전투명령문을 홍동철기지장이 전달하였다.

 

명령 1950년 7월 1일

조국의 령해에 침입하여 야수적인 함포사격으로 평화적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인민들을 살해하며 인민군지상부대들의 진출을 저지시켜보려고 책동하는 미제침략군 해군함선들을 7월 2일 새벽 묵호앞해상에서 어뢰야간공격으로 격침시킬것.

 

토론이 시작되자 김군옥이 먼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동무들! 우리가 오늘 이 시각을 얼마나 기다려왔습니까. 우리는 바로 오늘을 위해 평화로운 나날에도 사나운 날바다우에서 훈련 또 훈련으로 피처럼 진한 땀을 아낌없이 흘려왔습니다.

우리가 타격해야 할 미제침략군 기동분함대는 지상의 군단에 맞먹는 너무도 엄청난 무력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출명장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심어주신 백두의 공격정신과 우리 식의 전법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필승의 무기입니다.

하기에 우리 어뢰정들에 장진한것은 단순한 어뢰가 아니라 항일선렬들이 물려준 연길폭탄입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폭탄을 적중순양함의 심장부에 명중시켜 기어이 침몰시키겠다는것을 맹세합니다!》

모두들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어 정장들을 대표하여 리완근이가, 기관장들을 대표하여 채기정이 결의토론을 했다. 모임을 끝내려는데 24호 조기조장 리시찬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평소엔 말이 없어서 하루종일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었다. 그저 짬만 있으면 기관실에 들어박혀서 말없이 수걱수걱 정비나 하던 그였지만 오늘은 흥분된 심정을 터놓고싶은 모양이였다.

《동무들! 다 알다싶이 고속기관은 어뢰정의 심장입니다. 이 심장이 고동을 멈추면 어뢰정은 움직일수 없으며 적함을 까부실수 없습니다. 때문에 나는 피끓는 나의 심장을 바쳐서라도 전투항해의 전기간 고속기관의 만가동을 보장하겠다는것을 굳게 결의다집니다.》

그러자 정대의 막내인 강순봉이도 일어났다.

《나는 고사총수로서 공중과 해상감시를 잘하여 적함을 제때에 발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무엇때문인지 머뭇거리던 그는 다시 고개를 추켜들며 챙챙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전투출항을 앞두고 민청원인 나는 조선로동당원으로 받아줄것을 청원합니다.》

모임이 끝나자 취침구령이 내렸다. 야간전을 하려면 낮에 잠을 충분히 자야 했다. 당직근무성원들을 제외한 정대원들은 나무그늘아래 주런이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김군옥은 습관대로 21호정의 선수갑판에 드러누웠다. 전투를 앞두고 긴장해질대로 긴장해져서 그런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했다.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속으로 셈세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잠이 올사하는데 공교롭게도 누군가 갑판에 올라서는 소리가 들렸다. 초조감과 짜증이 어린 목소리…

《무전수동무, 아직 소식이 없소?》

작전과장의 목소리다.

《없습니다.》

《혹시 동무가 무전을 받지 못한게 아니요?》

억울해하는 목소리.

《예?! 난 레시바를 순간도 벗은적이 없습니다.》

《무전이 오면 즉시 나에게 알려주오. 이거야 어디 기다려먹겠나.》

작전과장은 선미갑판쪽으로 걸어가더니 잠시후에 다시 선수갑판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구두발소리가 신경을 자극해서 김군옥은 부아가 났다. 그는 우정 크게 코고는 소리를 냈다.

드르렁! 드르렁!

구두발소리는 곁에 와서 멎었다.

《어허… 놀라운걸, 정대장이라는 량반이 전투를 앞두고 이렇게까지 곯아떨어질수가 있나?》

한백천은 아연한듯 소리내여 중얼거리더니 킁킁 코소리를 내며 사령탑에 대고 다드락다드락 손장단을 치다가 다시 무전수에게 물었다.

《무전수동무! 소식이 없소?》

《예.》

《귀를 바싹 강구고있소.》

또 다드락다드락 손장단소리, 뚜벅뚜벅 구두발소리…

김군옥은 코고는 소리를 멈추고 다시 하나, 둘 속으로 셈세기를 시작했다.

《여보! 정대장동무!》

작전과장이 찾았으나 그는 못 들은체 했다. 사령탑에서 기지장이 나무랐다.

《좀 조용하오. 정대원들이 깨나겠소.》

《속이 타서 그럽니다. 왜 아직 적정통보가 오지 않을가요?》

《이제 오겠지. 우리 저기 나가서 장기나 한판 두기요.》

《예?! 장기를요?》

《왜 놀라오. 장기를 두면서 전술연구를 하잔 말이요.》

정말 장기를 두러 나가는지 두사람의 구두발소리가 선미갑판쪽으로 멀어지더니 사위는 조용해졌다. 찰싹 찰싹! 배전을 치는 파도소리만이 단조롭게 울려올뿐… 김군옥은 저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누군가 소리치며 자기를 와락 잡아흔들기에 그는 깊은 잠에서 깨여났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지 사위는 캄캄했다. 자기를 흔들어깨운 사람은 작전과장이였다. 기지장이 곁에 서서 자기를 굽어보고있었다.

김군옥은 얼른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적정통보가 왔소.》

홍동철은 그에게 방금 변신한 무전문을 보여주었다.

《어뢰정대앞.

주문진앞바다에까지 올라와 함포사격을 한 적함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묵호항근처의 만으로 돌아갔음.》

됐구나!

김군옥은 온몸이 거뜬해지는감을 느끼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이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여태 안절부절을 못하던 한백천은 큰소리를 쳤다.

《여보! 이젠 승산이 확고하오! 확고해!》

그렇다! 야밤에 감쪽같이 접근하여 어뢰를 쏘면 아무리 덩치가 큰 적함들도 용빼는 수가 없다.

김군옥은 승전의 예감에 가슴이 파도치듯 설레여서 진정하기 어려웠다.

홍동철은 작전과장과 함께 어뢰정대의 묘박지습격안을 최종검토해주었다. 김군옥은 그에 따라 정장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해상시계가 밤 11시 50분을 가리켰다.

《정대 전투항해준비!》

구령에 따라 정대원들은 날쌔게 전투초소를 차지했다. 항만에 깃들었던 고요와 정적을 들부시며 고속기관들이 다투어 폭음을 울렸다. 홍동철은 정대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잘 싸우시오. 성공을 바라오.

바로 동무들속에서 공화국의 첫 영웅이 나오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에 꼭 보답하시오.》

《알았습니다!》

모두들 승리의 신심에 넘쳐 큰소리로 대답했다.

한백천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자기가 승선지도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해상전투를 놓고 그닥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 동요하던 작전과장이 전투출항을 앞두고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는통에 홍동철도 김군옥도 어리둥절해졌다.

《동무가 승선지도를 하겠다구?》

《예, 저두 어뢰정대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원항해타격훈련때도 제가 승선지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김군옥은 거절했다.

《고맙지만 그건 안됩니다.》

《어째서?》

《그럴 필요가 없기때문이지요. 이번 항해는 훈련이 아닙니다. 편제전투성원외에는 누구도 승선할수 없습니다. 초과승선은 오히려 짐이 됩니다.》

승산이 보이기에 나섰던 한백천은 거절당하자 화가 나서 떠들어댔다.

《여보! 작전과장이 승선지도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아무렴 짐이 되겠소? 정대장동문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요?》

《우린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어서 그럽니다.》

《나도 죽는걸 겁내지 않소. 생사운명을 함께 하기요.》

《글쎄 안됩니다. 이 시각부터 어뢰정대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집니다.》

홍동철은 몸이 와짝 달아오른 작전과장의 손을 잡아끌고 배에서 내렸다.

《정대장동무의 말이 옳소. 우린 내리기요.》

아쉬운듯 실실하며 서있던 한백천은 출항구령이 내리자 서둘러 계류바줄을 벗겨서 던져주었다.

《정대장! 다시 만나자구.》

이렇게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는 갈렸다.

김군옥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순간에 작전과장의 인간됨을 보았기때문이였다. 그는 목이 잠겨서 아무런 응대도 할수 없었다.

기정의 뒤를 따라 어뢰정들은 차례로 부두를 떠났다. 홍동철은 작전과장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어뢰정대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문득 경적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아까 륙전대에 부탁했던 야전차가 왔다. 그들은 야전차를 타고 기지로 돌아가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선뜻 차에 오를수 없었다.

운전사가 어서 가자고 다시 경적을 울렸다.

홍동철은 깊은 생각에 잠긴채 야전차에 올랐다.

한백천도 말없이 차에 올랐다.

《부르릉!》

야전차가 출발했다. 항을 벗어난 야전차가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려고 하자 홍동철은 여태 꾹 다물고있던 입을 열었다.

《운전사동무! 묵호항으로 가기요.》

《예?!》

운전사가 펄쩍뛰면서 급정거시켰다.

《왜 그러오?》

《거긴 위험합니다.》

《해방지역이 아닌가?》

《해방지역이지만 밤이면 놈들의 기동분함대가 항근처에 들어와 해안과 항구에 함포사격을 하군 해서 그 주변엔 얼씬을 못한다고 하던데…》

홍동철과 한백천은 그 소리에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서로 마주 보았다.

홍동철은 영문을 몰라하는 운전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자! 어서 가기요.》

 

묵호항근처의 작은 만은 수심이 깊고 잠풍해서 묘박지로는 그저 그만이였다.

여기를 묘박지로 정한 기동분함대는 첫날에 함포사격을 들이대여 묵호항과 주변해안을 초토화시켰다. 지금도 도처에서 그물그물 연기가 피여오르고 사람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중순양함과 경순양함, 원양구축함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닻을 떨구었다. 낮에는 해안을 따라 기동하며 전진지휘소가 불러주는 사격제원에 따라 미친듯이 함포사격을 하다나니 모두들 피곤했다. 하기 싫은 포신소제를 억지로 대충 하고나서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 저녁식사를 끝내자 저마다 병실에 달려들어가 침대에 기여올라 즉시 곯아떨어졌다.

낮에 잠을 자거나 팔짱을 끼고 함포사격을 구경한 고사포병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전투직일근무를 섰다.

그날도 자기가 직접 장탄을 하고 조준도 하면서 포사격에 열을 올렸던 웨리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해일기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

그런데 덧쌓인 피곤에 충혈진 눈이 거불거려서 도무지 사색할수가 없었다. 하루도 번지지 않고 그날에 받은 인상을 글로 남긴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품이 련속 터져나왔다.

재깍거리는 해상시계의 초침소리는 귀고막이 아프도록 크게 들려오다가 난데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다시금 조심스레 들려오기도 했다.

에라! 모르겠다. 펜을 내던진 웨리크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몸이 노그라드는것 같았다. 그는 누가 해군단검으로 자기의 매부리코를 쑥 베여가도 모를 지경으로 녹초가 되였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누군가 자기를 흔들어깨워서야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겨우 눈을 떴다. 웬일인지 잭슨함장이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웨리크는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다.

《왜 그럽니까?》

《전진지휘소에서 무전이 왔소. 어제 초저녁부터 북조선해군이 고기배들까지 다 동원시켜 주요 항들의 입구와 연안에 기뢰를 대대적으로 부설한다는거요.》

웨리크는 기지개를 켜며 입귀가 째질 정도로 하품을 하고나서 짜증이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거요?》

《묵호항주변은 이미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갔거던. 여기서도 기뢰를 부설하지 않을가? 우리가 여기에 있는게 어쩐지 께름직하구만.》

조선전선으로 떠나기에 앞서 잭슨함장에게 그 무슨 경적필패에 대하여 운운했지만 사실 웨리크는 북조선해군을 싸움상대로 여기지 않고있었다.

그들이 기뢰따위나 부설하는데 어쨌단 말인가?

이 주변해안가는 함포사격으로 콩마당질을 해놔서 인민군수중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얼씬을 못하고있다.

웨리크는 별치 않은걸 가지고 자기의 단잠을 깨운 잭슨함장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아주 기고만장하던 그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별걱정을 다하는군요. 우린 아직 북조선해군함선의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지요. 우리가 나타나자 그들은 감히 움쩍도 못하고있단 말입니다.》

잭슨은 퍼그나 신중한 기색이였다.

《어쨌든 난 조짐이 좋지 않소. 빨리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수역으로 기동해야 하겠소.》

웨리크는 달갑지 않아서 입을 쩝쩝 다시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15분이였다.

《함장님, 잠이나 잡시다. 깊은밤에 공연히 들볶아댈 필요가 없잖소.》

《당신은 몹시 피곤한것 같은데 그냥 쉬오. 필요한 인원들만 깨워서 조용히 기동하겠소.》

잭슨은 방에서 나갔다.

잠시후 주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함은 유유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의 동요에 맞춰 침대가 요람처럼 흔들거렸다. 이럴 땐 잠이 더 잘 오기마련이다.

웨리크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태연히 눈을 감고 꿈나라로 찾아갔다.

 

야전차가 주문진항에 도착한것은 이무렵이다.

거의나 비여있는 부두에 소포정 2척이 위장을 하고 붙어있었다. 소포정들은 주문진아래 방진리에 전개된 5사소속의 포련대에 포탄을 수송해주고 오던길에 12호정의 기관상태가 시원치 않아 주문진항에 들렸다. 홍동철이 부두가에 야전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는 기관수리가 거의 끝날무렵이였다.

기름투성이가 되여 기관수리를 도와주던 고준무는 사다리를 타고 기관실에 내려오는 기지장과 작전과장을 보자 너무도 뜻밖이여서 깜짝 놀랐다.

《아니?! 기지장동지! 어떻게 여기엘 다 오셨습니까?》

홍동철은 번듯한 이마를 손으로 쓸어만지며 호인다운 미소를 지었다.

《우린 묵호항으로 가는 길인데 동무네 행처가 궁금해서 잠간 들렸소.》

고준무는 더우기나 어리둥절해서 기지장과 작전과장을 번갈아보았다.

《묵호항엔 왜 가십니까? 거긴 위험합니다.

지금 항입구에 미군 중순양함과 경순양함, 구축함이 닻을 떨구고있으니까요. 놈들이 걸핏하면 함포사격을 해대지요. 묵호항근처엔 새들도 얼씬을 못합니다.》

한백천은 호기있게 장담했다.

《오늘 새벽엔 그놈들이 혼쌀나게 될거요. 우린 그 멋진 장면을 구경하러 간단 말이요.》

고준무의 두눈이 번쩍거렸다.

《그러니 어뢰정대가 출항했단 말입니까?》

홍동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소. 인차 주문진항앞을 지나가게 될거요.》

고준무는 몸이 와짝 달아올라서 펄펄 뛰였다.

《야! 그 친구들이 정말 부러운데요.

기지장동지, 저두 묵호항에 함께 가서 통쾌한 해상전투를 구경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홍동철의 안색은 대뜸 엄해졌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동무넨 빨리 기지로 돌아가오. 지금 기뢰부설을 하노라 숱한 배들이 바다에 나왔는데 동무네가 그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겠소.》

홍동철은 작전과장과 함께 부랴부랴 소포정에서 내려 야전차에 올랐다. 야전차는 즉시 부르릉― 하고 발동을 걸었다.

홍동철은 미타한 생각이 들어서 배웅을 나온 고준무정대장에게 어뢰정대에 절대로 무전을 날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고준무는 저으기 풀이 죽어서 두덜거렸다.

《걱정마십시오. 제가 뭐 그런것두 모르는줄 아십니까?》

야전차는 배기가스를 확 뿌려놓고 씽하니 부두가를 떠났다.

고준무는 속이 달아서 도무지 진정할수 없었다.

《아! 내가 왜 어뢰정을 타지 못했던가. 이제 군옥이 그 친구가 되게는 으시되겠는걸. 드디여 적순양함을 까부시러 간단 말이지.》

몹시 부러워하던 그는 문득 그 자리에 굳어졌다.

적들은 순양함이 2척이고 구축함이 1척이다.

그런데 우리 어뢰정은 고작 4척에 불과하다.

어뢰정 4척으로 어떻게 놈들의 기동분함대를 까부실수 있단 말인가? 이게 과연 가능한것인가?

그는 고개를 들고 이제 어뢰정대가 지나가게 될 항구앞을 바라보았다. 때맞춰 귀에 익은 어뢰정들의 발동소리가 해풍에 실려 알릴듯말듯 울려왔다. 소포정대원들은 너도나도 갑판과 부두에 떨쳐나와 목을 길게 빼들고 어둠속을 뚫어지게 지켜보며 귀를 강구었다.

고준무의 눈앞에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부터 자기와 늘 앞자리를 다투던 김군옥의 얼굴이 막 얼른거렸다. 그는 부지중 뇌이였다.

《그 친구, 정말 괜찮아. 지내볼수록 마음에 들거던.》

이것은 고준무의 진심이였다.

승벽이 강한 그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부터 자기의 경쟁대상인 서해친구를 될수록 얕잡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은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자기를 앞서는것이였다. 그에게는 무엇이나 하면 된다는 배심이 있었고 실천으로 기어이 해내는 완강성과 결단성이 있었으며 무지막지하게 내미는게 아니라 그것을 성사시킬 기묘한 방도를 찾아내는 탐구심과 창발성이 있었다.

그 기초엔 무엇이 있을가?

《군옥이! 서해친구야, 인젠 네가 동해의 주인이 된셈이구나. 난 네가 정말 부러워서 못 견디겠다. 그런데 너를 다시 만날수 있을가?

승리하고 꼭 살아서 돌아오게. 그래야 전쟁이 일어나는통에 하지 못한 해상체육경기를 할게 아닌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웨치는 그의 두눈에선 핑글 뜨거운것이 고여넘쳤다.

스르릉― 쾅! 하고 기관이 시동됐다.

기관장이 죽은 사람이라도 살려놓은듯이 기뻐서 환성을 지르며 갑판에 뛰쳐나왔다.

《정대장동지, 이젠 정상입니다! 빨리 출항합시다!》

고준무는 입술을 감쳐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뢰정대가 안심치 않구만. 적들의 력량이 너무도 우세하니 마음을 놓을수 없단 말이요.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수 없을가?》

기관장은 난감해했다.

《도와줄수만 있다면 죽기내기로 도와주어야지요.

그런데 우리야 속도가 느려서 그 친구들과 행동보조를 맞출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미처 뒤따라가기도 전에 전투는 끝날텐데요.》

《음, 기관을 끄오. 어뢰정대가 적함을 까부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기지로 함께 가기요.》

고준무는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가벼워질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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