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일본의 공군기지들에 긴급대기상태에 있던 미군전투폭격기들은 전쟁이 일어난 첫날부터 조선전쟁에 출격했다. 적기들은 전선은 물론이고 공화국북반부의 후방 깊숙이까지 날아가 전면적이면서도 무차별적인 맹폭격을 들이댔다. 놈들은 이러한 공중타격을 수주일만 들이대면 북조선을 지도우에서 없앨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적들의 공습에 대처하여 어뢰정들을 부두설비가 되여있지 않은 해안에 은페시키고 위장을 철저히 할데 대한 상급참모부의 지시가 하달되였다.
리학섭은 상륙작전에 동원되지 않은 23호정과 24호정의 해병들과 함께 도래굽이의 샘터앞에 통나무로 림시잔교를 세우고 어뢰정을 이동시킨 다음 위장을 했다. 식당근무병들은 군관가족들의 방조를 받으며 상륙작전에 참가하고 돌아올 동무들에게 푸짐하게 먹일 식사를 준비했다. 하기에 군항에 돌아온 해병들은 림시잔교에 어뢰정을 대고나서 곧장 식당에 가서 배불리 먹고 륙상병실에 가서 잠을 잘수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휴식을 할 때 리학섭은 다른 해병들과 함께 항해후 정비까지 말끔히 해주었다.
바다에 나갔다온 해병들은 너무 피곤해서 저마다 네활개를 벌리고 경쟁적으로 코를 고는데 병실은 항해중인 기관실처럼 소란했다.
그들은 이튿날 훤히 밝아서야 일어났다.
몸이 날아갈듯 거뜬해졌다. 모두 시원하게 세면을 하고 식당에 갔다. 륙상병실은 물론이고 식당도 나무가지를 꺾어다 위장했는데 마치 숲속의 동굴안으로 들어가는듯 한 기분이였다.
풀향기와 나무잎냄새, 송진냄새가 기분좋게 풍겼다. 식탁은 푸짐했다. 검진을 나온 김정인도 정대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모두 식욕이 부쩍 동해서 맛있게 먹으며 상륙작전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한개 련대의 상륙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고 덤으로 적발동선까지 나포해왔으니 박원협의 말마따나 마수걸이가 괜찮은셈이였다.
김군옥은 그새 전선형편을 알고싶어 문화부정대장에게 물었다.
리학섭은 인민군련합부대가 어제 밤 9시에 의정부를 해방시켰다, 그 전투에서 포로한 적들만 해도 무려 800여명이나 된다고 구체적인 수자까지 들어가며 대답했다.
《어제 우리 비행대는 룡산과 수색, 영등포역과 적군용렬차들을 폭격하여 적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주었습니다.》
모두들 환성을 올리는데 박원협은 짐짓 울상이 되였다.
《허, 그러고보면 우리가 륙군이나 공군보다 형편없이 뒤떨어졌구만요. 이제야 겨우 자그마한 발동선을 한척 나포했으니 말입니다.》
김도형이 그에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제 포로한 장교놈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바다싸움은 이제부터요.》
평소엔 말이 적은 리완근도 눈빛을 번쩍이며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하긴 속초앞바다에 적들의 소해함들이 나타난것도 심상치 않거던. 괴뢰해군은 지금 미7함대의 기동에 앞서 수로정리를 하고있소.》
리학섭은 신중한 기색으로 그 말을 긍정했다.
《옳소. 미국놈들은 벌써 조선전쟁에 뛰여들었소.
미국비행기들은 공화국북반부의 상공에 날아들어 평화적인 도시와 마을들을 대대적으로 폭격하기 시작했소. 아마 미지상군도 며칠내로 전선에 투입되게 될거요.》
떠들썩하던 식당안이 불시에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미제침략자들이 본격적으로 무력간섭을 하면 전선형편이 어려워질수 있다는 우려에 잠겨들었다.
김군옥은 수저를 놓고 일어나 정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볼수록 미더운 전우들이다.
《동무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태발전을 한해전에 예견하시고 함대출항식때 우리들에게 남조선괴뢰해군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면 일본에 주둔한 미7함대가 조선동해로 덤벼들텐데 어뢰정대가 맞서싸울 상대는 미제침략군 대형함선집단이라고 하시였습니다.
기지장동지가 해군사령부의 긴급호출을 받고 올라갔으니 인차 우리 정대에 전투명령이 내릴겁니다. 우리는 어뢰정대의 출동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미7함대의 기동분함대를 타격소멸하기 위한 훈련을 더 힘있게 벌립시다.》
모두들 힘차게 호응했다.
《알았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30분후에 도보항해훈련을 시작하겠소. 모두 전투장구류를 착용하고 모래불에 정렬하시오.》
김군옥이 식당을 나서는데 문화부정대장이 슬며시 따라와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참미역이 묵직하게 담긴 그물망태를 손에 들려주었다.
《정대장동무, 이건 동무들이 산모를 위해 마련한것인데 얼른 가져다주고 오시우.》
김군옥은 그제서야 전쟁이 터진 날에 태여난 기지장의 아들이 생각났다. 리학섭이 재촉했다.
《어서요. 미래의 어뢰정대원이 태여났는데 정대장동무가 정대를 대표하여 가서 축하해줘야지요.》
《예,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미역망태를 받아쥔 김군옥은 잠시 망설이였다.
미역은 산모를 위한것이다. 아기에게는 딸랭이와 오또기 같은 장난감을 선물해야 할텐데… 그 애가 사랑하는 처녀의 조카애니 더우기나 빈손으로 갈수 없었다.
어쩐다? 두루 생각하던 그는 자기 방에 가서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부터 애용하던 함선호각을 꺼냈다.
묘한 곡선을 이룬 동관과 그 끝에 매달린 소리방울, 손잡이와 은사슬로 이루어진 함선호각은 해병들의 친근한 벗이다. 은방울을 굴리는듯한 함선호각소리는 그 어떤 소음과 격벽도 뚫고 함선의 어느 초소에도 울려간다. 함선승무원들은 그 소리에 맞추어 일과생활을 해나간다. 그러고보면 미래의 해병에게 줄 멋진 선물이 아닐수 없다.
그는 취사장에서 식당근무병들을 도와 그릇을 가시고있는 김정인을 불러냈다.
《이걸 받소.》
김정인은 참미역이 가득 들어있는 그물망태를 얼결에 받아쥐고 어리둥절해서 김군옥을 바라보았다.
《동무네 언니네 집으로 어서 가기요.》
《그건 어째서요?》
《갓난애기가 보고싶구만.》
《예?!》
김정인은 놀랐다.
그는 어제 소해함을 타고 상륙작전에 참가하고 돌아오다나니 언니가 그제 밤에 아이를 낳았으며 해산방조를 자기가 해주었다는걸 감감 잊어버렸다. 자기보다 더 바쁜 정대장이 그걸 잊지 않고있은것이 자못 놀라왔다.
《그 애야 미래의 어뢰정대원이 아니요. 시간이 없소, 빨리 갔다오기요.》
김군옥은 그리 멀지 않은 사택마을을 향하여 먼저 냅다 달렸다. 정인은 느닷없이 마음이 즐거워져서 뒤따라 달려가며 소리쳤다.
《정대장동무! 함께 가자요!》
김군옥은 뒤돌아보면서 싱긋 웃었을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김정인은 이를 악물고 기를 쓰고 내달려 그를 기어이 따라앞섰다. 언니네 집앞에 먼저 이른 그는 그제서야 멈춰서서 뒤따라 달려오는 김군옥을 으쓱해서 돌아보았다.
《정대장동무가 모든 체육종목에서 정대선수권보유자라고 하더니 꽝포였군요.》
《그건 무슨 소리요?》
《방금 달리기에서 나에게 졌으니까요.》
승벽이 여간이 아닌 김정인은 무척 통쾌해했다. 김군옥은 우정 지는척 해주었지만 기꺼이 그것을 인정하였다.
《옳소. 난 동무에게만은 못 견디겠소.》
《청진기지에서 해상실습을 할 때도 나와 수영경기를 해서 졌댔지요.》
즐거운 추억을 불러주는 소리였다.
그때 김정인은 해군군관학교 학생들과 함께 어뢰정을 타고 항해훈련도 하고 3마일극복수영훈련에도 참가하군 했었다. 시오리나 되는 먼거리를 헤염쳐야 하는 이 훈련은 몹시 힘겹고 위험했다.
그래서 정인이만은 이 훈련에 참가시키지 않기로 했는데 그만 소동이 일어났다. 정인이가 모욕이나 당한듯이 발끈해서 도전했던것이다.
《군옥동무도 나를 녀자라고 깔보는군요. 어디 나와 100메터자유영경기를 해보자요. 만약 내가 지면 3마일극복수영훈련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것으로 인정하고 물러서겠어요. 그대신 군옥동무가 지면 바지를 벗어놓고 치마를 입으라요.》
이리하여 숱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영경기가 진행되였다.
정인은 물에 뛰여드는 동작부터 자신만만하고 맵시가 있었다. 물론 속도에서 김군옥을 당할수는 없었다. 김군옥은 속도를 약간 늦추어 우정 져주었던것이다.
《난 동무에게만은 그때부터 손을 들었소. 그래도 여전히 정대선수권보유자지.》
《어떻게 그럴수 있어요?》
《동문 어뢰정대원이 아니니까.》
《어뢰정대 담당준의예요.》
《어쨌든 정식 우리 성원이 아니란 말이요.》
김정인은 정색해졌다.
《그러니까 전투항해를 할 때 나를 참가시키지 않겠다는건가요?》
김군옥은 저으기 난처해서 타협조로 나왔다.
《글쎄… 그건 그때 가서 보기요.》
《나를 빼놓을 생각은 아예 마세요.》
《알겠소. 어서 들어가기요.》
그제서야 김정인은 싱긋 웃으며 언니네 집의 뜨락에 들어갔다.
터밭에 오이넝쿨이 무성했다. 푸르싱싱한 잎사귀들사이로 한뽐이나 되게 자란 오이들이 먹음직스레 달려있었다. 뜨락에서는 통통 살이 진 씨암닭 세마리가 팥알같은 눈을 되록거리며 땅을 헤집고있는데 사뭇 평화로운 광경이였다. 해산하는 날 하마트면 목을 비틀리울번 한 닭들이다.
아늑한 방안에서는 미역국냄새와 젖냄새가 달콤하게 풍겼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김정녀는 불쑥 문을 열고 들어서는 동생과 어뢰정대장을 보고 반가와하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정대장아저씨가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오셨나요?》
《안녕하십니까?》
김군옥은 깍듯이 거수경례를 했다.
정녀는 서둘러 아기를 포단에 눕혀놓고 방석을 내놓았다.
《여기 편히 앉으세요.》
《괜찮습니다.》
김군옥은 방석을 밀어놓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두눈을 깜박거리는 아기곁에 바싹 다가앉아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았다.
김정인은 미역망태를 내밀었다.
《언니, 참미역이예요.》
정녀는 가볍게 혀를 찼다.
《원, 별걸 다 수고스레 들고오는구나. 아무렴 우리 집에 미역이 없겠니.》
《이건 우리 어뢰정대원들이 언니가 생남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물에 들어가 건져낸거란 말이예요.》
《원, 그런 수고를 다 하다니…》
김군옥이 탄성을 올렸다.
《히야! 이 애의 눈동자가 꼭 바다처럼 푸르고 맑군요. 이거 눈만 보아도 정말 해병감입니다.》
김정녀는 내심 흐뭇해서 빙그레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총각들도 갓난애가 보고싶은가요?》
김군옥은 방금 미역망태를 부엌에 내려다놓고 방에 올라오는 김정인을 슬쩍 돌아보고나서 엉큼한 기색을 지으며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요. 이렇게 건강하고 잘생긴 아기를 구경해야 나도 장가를 들면 색시가 이런 아기를 낳게 할게 아닙니까.》
이통에 급해서 얼굴이 빨개진건 김정인이다.
김군옥은 그를 바라보며 한술 더 떴다.
《준의동무, 그렇지 않소?》
김정인은 불판에라도 올라선듯 닁큼 뛰였다.
《어마나!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김군옥은 바빠하는 처녀를 못본체 하고 아기를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김정녀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이따금씩 어뢰정대식당에 나갈 때마다 본 정대장은 아주 단정하고 말쑥하게 생긴 미남자지만 눈빛이 엄해서 감히 말을 붙여보기조차 어려웠다. 엄격성으로만 빚어놓은 조각상과 같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 보니 우스개소리도 잘하고 능청스러운 아주 서글서글한 총각이였다.
김군옥은 아기를 바라보는데 온 정신이 팔렸다.
아기의 눈동자는 이슬을 머금은 머루알같았다.
정녕 맑고맑았다. 티 한점 없었다. 보면 볼수록 자기의 마음도 맑아지고 깨끗해지는듯싶었다.
문득 불우한 시절에 망국노의 멍에를 쓰고 태여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자 눈굽이 쩌르르해졌다. 죽지 못해 살아가던 그 세월 태풍은 왜 그리도 세차고 파도는 왜 그리도 기승을 부렸던지…
어야 디야 어야 디야
퍼먹는건 사자밥이요
누우면 칠성판이라
닻 올려라 돛 달아라
어야 디야 어야 디야
굶주린 맹수마냥 입을 쩍쩍 벌리며 달려드는 횡포무도한 날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배군들이 기막힌 신세를 한탄하며 처량하게 부르던 배따라기가 어린 자기의 귀에 못처럼 박힌 첫 노래였다. 그렇게 떠나갔다가 돌아온이 몇이던가? 고기배들이 풍파에 산산쪼각이 나서 파도에 밀려오면 어촌엔 통곡소리가 터져올랐다. 어쩌다 신수가 좋아서 물고기를 좀 잡아와도 왜놈선주의 아가리에 다 처넣어주고나면 쩝쩔한 소금물이 배인 제 손가락이나 빠는수밖에 없었다.
이게 타고난 신세요 피할수 없는 숙명이였다.
정녕 그 나날엔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모지름을 쓰고 발버둥을 쳐도 자기도 배를 부리다가 구사일생으로 병신이 된 아버지의 신세를 면할수가 없었다. 피눈물을 뿌리며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으로 찾아갈 때 어찌도 서럽던지 압록강을 건느느니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어버리고싶었다.
그런데 아기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좋은 세상에서 태여났으니 행운아요 복둥이였다. 아니, 공교롭게도 전쟁이 터진 날에 태여났으니 무작정 행복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이 땅을 휩쓸고있는 전화의 불길이 천진란만하고 앞길이 구만리같은 아기의 운명을 시시각각으로 위협하고있었다. 아기의 요람에 이제 당장 폭탄이 떨어지고 함포탄이 날아들지 모를 아슬아슬한 판이였다.
아니! 아니다! 그래서는 안되며 그럴수 없다.
김군옥은 마음속으로 세차게 도리머리를 저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들고 정의의 성전에 과감히 떨쳐나선 우리가 있기에 아기의 요람엔 단 한발의 총탄도 날아들지 못할것이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니켈도금을 한 사슬이 달린 함선호각을 꺼내여 입에 물었다.
휫! 또르르―
호이요 호이요 호이요―
호이― 또또또 호이―
휫! 또르르― 또또…
오른손에 감싸쥔 소리방울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재치있게 열거나 닫을 때마다 새들이 우짖는듯 한 명랑하고 우아한 음향이 흘러나와 방안에 가득차군 했다.
김군옥은 신기한듯 바라보는 아기엄마에게 함선호각을 주었다.
《난 이걸 아기의 놀이감으로 가지고왔습니다. 이 앤 장차 어뢰정대원이 돼야지요.》
《고마워요.》
《이름은 뭐라고 지었습니까?》
김정녀는 아기를 낳은 다음날 새벽에 불쑥 나타났다가 인차 사라진 남편이 생각나서 시무룩이 웃었다.
《아직 짓지 못했어요. 참, 아저씨가 지어주세요.》
《내가요?》
어떤 일에서나 주저를 모르는 그였지만 이런 부탁은 쉽게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글쎄… 어디 생각해봅시다.》
정인이 자매는 기대어린 눈길로 정대장을 지켜보았다. 김군옥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쥐여짰지만 정작 신통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애가 났다.
아기의 이름엔 부모들의 소원이 담겨져야 한다.
가문의 전례인 항자돌림도 고려해야 한다. 이름이자 그 사람이다.
그러니 잘 지어야 할텐데…
김군옥은 자기의 이름을 신통치 않게 여기고있었다. 《옥》자가 있으니 사내이름답지 않기때문이였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하필이면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군》자 돌림인데 군철이요, 군석이요, 군성이요 하고 좋은 이름은 먼저 난 아이들이 가지다나니 어쩔수없이 그렇게 지었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종시 신통한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한 그는 주섬주섬 일어났다.
《아주머니, 내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량해해주십시오.》
김군옥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다가 뒤따라나오는 김정인에게 짜증이 어린투로 말했다.
《동문 천천히 오라구, 시끄럽게 졸졸 따라다니지 말고…》
김정인은 어이가 없었다.
《어마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김군옥은 구두를 신고 마당에 성큼 뛰여내리더니 정겨운 눈길로 돌아보며 간곡히 당부했다.
《동문 아기와 산모를 잘 돌봐주고 천천히 오란 말이요.》
《난 어제 상륙작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동무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해야 해요.》
《우린 다 건강하오. 검진이나새나…》
《뭐라구요?! 다시 말해봐요.》
정인은 주먹을 들고 뒤쫓아나가고 젊은 정대장은 도망치듯 냅다 달려갔다.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정녀는 소리없이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정대장과 동생이 철부지애들 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이제 겨우 스물두살에 난 젊은이들이다. 너무도 젊었다.
어뢰정대를 제외한 다른 정대와 함선들은 전투임무를 받고 련이어 출항하였다. 어뢰정들만이 위장그물을 뒤쓴채 도래굽이의 가설잔교에 여전히 붙어있었다. 정대원들은 모래불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도보항해훈련을 했다.
오늘은 풍산개조법을 숙련하는데 모를 박았다.
기정의 뒤를 따라 어뢰정들은 종대로 항해한다.
목표를 발견해도 못 본척 하고 그냥 기만기동을 하다가 급작스레 회두하여 쐐기대형을 짓고 공격한다. 먼저 어뢰를 발사한 어뢰정은 적함들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유인기동을 한다.
《유인기동!》
김도형이 재빨리 앞으로 쑥 나가자 승조원들도 급히 뒤따랐다.
《21호는 연막을 칠것! 24호는 우측에 있는 적구축함을 공격할것!》
24호정장 양판익의 뒤를 따라 승무원들이 재빨리 움직인다. 그들속엔 문화부정대장과 비편제위생지도원인 오익섭도 있다.
《24호정장 부상!》
오익섭은 재빨리 선두에 선 정장에게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한다. 리학섭이 정장의 위치에 들어섰다. 능숙하게 어뢰정을 조종한다.
《돌격침로로!》
문화부정대장의 뒤를 따라 24호승무원들이 내달린다.
《발사준비!》
《준비끝!》
《발사!》
반복 또 반복…
이젠 숙련될대로 숙련돼서 모두들 구령에 따라 치차처럼 착착 맞물려 돌아간다.
리학섭은 휴식시간이면 건국실에서 라지오로 들은 최고사령부의 보도를 그시그시 정대원들에게 알려주군 했다.
인민군련합부대들의 서울해방소식에 접한 정대원들은 너무 기뻐 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다. 전승소식은 련이어 날아들었다.
《동무들! 동해안을 따라 남진하는 부대들은 해상륙전대와 협동작전으로 괴뢰군 8보병사단을 족치고 강릉을 해방시켰습니다.》
그 해상륙전대는 엊그제 어뢰정들이 호위한 수송선단이 상륙시킨 부대였다.
《서해에서는 오늘 새벽에 백령도를 완전히 해방한데 이어 대청도와 소청도도 타고앉았습니다.》
연해연방 날아오는 전승소식은 정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을 뿐만아니라 초조하게도 해주었다.
《하! 이러다가 우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뢰 한발 쏴보지 못하는게 아닌가.》
《그러게나 말일세. 이거 정말 속이 타는구만.》
모두 속이 달아서 윽윽했다.
이럴 때면 김정인이 방금 길어온 샘물을 권하군 했다.
《자, 어서 마시고 땀을 들이세요.》
몸이 좋아서 남들보다 더 땀을 흘리는 채기정은 물고뿌를 먼저 받아쥐고도 선뜻 마시지 못했다.
《이거 준의동무 볼 낯이 없구만요.》
《왜요?》
《우리야 뭐 하는 일이 있습니까?
전쟁이 터졌는데 배놈들이란게 땅에서 밥이나 조겨대고 건강검진이나 받고있으니 말입니다.》
김정인은 상냥하게 웃었다.
《때가 오겠지요. 꼭 올거예요.》
곁에 있던 박원협이 놀란듯이 소리쳤다.
《저걸 보게! 소포정대도 출항하는구만.》
모두들 부두쪽을 바라보았다.
싸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데 항해복을 입고 전투장구류를 착용한 정대원들이 갑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함상포가 포신을 좌우로 휘둘러댄다. 쿵쾅! 쿵쾅! 기관이 신나게 돌아간다.
기지장이 해군사령부에 올라가고 없기에 한백천이 부두에 나와 항해준비상태를 검열하고있었다.
고준무정대장은 아주 으쓱한 자세로 기정의 사령탑에서 두손을 허리에 얹고 어뢰정대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느 함선이든 출항할 때면 군항에 있는 모든 함선들은 안전항해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진 기발을 올려 배웅해주어야 한다. 박원협은 부랴부랴 어뢰정에 올라가 위장포를 좀 벗겨놓고 안전항해를 바라는 기발을 올렸다. 김군옥은 싸움터로 떠나는 친구를 직접 배웅해주고싶어 서둘러 부두로 갔다.
고준무는 그를 보고 사령탑에서 내려 부두로 나왔다. 김군옥은 그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네가 부럽구만. 무슨 임무를 받았나?》
고준무는 대수롭지 않은듯이 대답했다.
《별게 아닐세. 우리가 상륙시킨 해상륙전대에 포탄과 총탄을 날라주는거지.》
《조심하게. 강릉앞바다에 미7함대 기동분함대가 나타날수 있네.》
《알겠네.》
고준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별안간 두눈을 부릅뜨며 도전적으로 걸고들듯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해상체육경기는 언제 한다? 승부를 겨뤄야 할게 아닌가.》
《그야 뭐 전쟁이 끝난 후에 해야지.》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다고 그래. 우리가 포탄수송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면 한번 붙어보자구. 수구경기만이라도 해보잔 말이야.》
고준무의 금이발이 이악스레 반짝거렸다.
김군옥은 도전에 기꺼이 응했다.
《좋아! 그렇게 하세!》
《자네 지면 어쩌겠나?》
《패자야 승자의 그 어떤 요구에도 응해야지.》
고준무는 아주 정색해서 요구조건을 제기했다.
《자네 경기에서 지면 어뢰정대를 내놓게. 대신 소포정대를 넘겨주지.》
보아하니 고준무는 어뢰정대원들의 항해훈련을 위해 소포정대를 빌려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의 고까움이 아직 속에 맺혀있는 모양이였다.
《좋도록 하자구.》
고준무의 금이발이 다시금 번쩍거렸다.
《그럼 약속했네. 가만…》
고준무는 증인을 찾는지 두리번거리더니 마침 항해준비검열을 마치고 부두에 내려서는 작전과장에게 성수가 나서 소리쳤다.
《과장동지! 우린 포탄수송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어뢰정대와 수구경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군옥정대장이 자기네가 지면 어뢰정대를 나에게 주겠답니다.》
한백천은 흠! 하고 코소리를 내더니 마뜩지 않아하는투로 물었다.
《동무네가 지는 경우엔 어쩌겠소?》
고준무는 꿈쩍 놀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우리가 지다니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야 체육경기만이 아니라 훈련에서도 동무네가 어뢰정대한테 계속 앞자리를 떼우지 않았소.》
작전과장이 야박스레 사실을 빠개놓자 고준무는 생억지를 썼다.
《글쎄 지금까지는 어쩔수없이 그랬지요, 기지나 해군사령부에서도 어뢰정대편만 들어주니까요.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럴수 없단 말입니다. 모든 일에서 공정한 과장동지가 심판을 서주십시오. 그러면 문제없습니다.》
한백천은 전쟁판에 왕청같이 체육경기소리를 하는 고준무가 못마땅했지만 전투임무수행에 착수하는 지휘관의 사기를 떨구어서는 안되겠기에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소, 그렇게 하기요. 시간이 됐소. 빨리 출항하시오.》
고준무는 차렷자세로 정중히 거수경례를 하고 승선했다.
세척의 소포정들은 출항하였다.
두 군관은 소포정들이 설레이는 푸른 물결우에 자그마한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지켜서서 바래주었다.
김군옥은 더우기나 속이 상해서 한숨을 소리나게 내쉬고나서 초조하게 물었다.
《과장동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이것은 해군사령부의 긴급호출을 받고 올라간 기지장을 념두에 둔 질문이였다. 한백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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