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김정인은 어뢰정대원들의 건강이나 돌보는것으로 만족할 처녀가 아니였다. 그는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위생가방을 메고 어뢰정갑판에 오를 결심이 되여있었다. 쏟아져내리는 불비속을 뚫고 적함을 향하여 돌진하는 정대원들과 생사운명을 함께 할 각오로 심장을 불태워왔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공교롭게도 그는 전쟁이 터진 그 시각부터 해산방조를 하느라 언니네 집에 붙잡혀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언니는 당장 해산을 할듯 소동을 피우면서도 정작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다나니 산모도 준의도 들볶이울대로 들볶이여서 기진맥진해졌다. 어뢰정들은 벌써 하가하고 출항했을수도 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김정인은 안절부절했다.
정녀는 땀투성이가 된채 이불에 드러누워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진통을 씹어삼켰다.
《정인아,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군의소로 돌아가렴. 어서!》
이때 군의소에 보냈던 봉임간호장이 되돌아왔다.
《왜 왔어요?》
《군의소장동지가 야단을 하면서 돌려보내더군요.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아이를 무사히 받아내래요.》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김정녀는 웬일인지 남편이 보고싶어서 똑딱거리는 벽시계를 자꾸만 쳐다보며 《왜 상기두 안 들어오실가?》 하고 되뇌이였다.
《언니두 참… 전쟁이 터졌는데 기지장이 어떻게 집에 들어온다고 그래요.》
《그래두… 아침식사랑 점심이랑 제대로 하셨는지 모르겠구나.
난 애아버지가 보고싶어 못 견디겠어. 이러다가 내가 혹시 잘못될수도 있잖니.》
이럴 때 보면 처녀시절에 벌써 군당부녀부장까지 했던 언니가 꼭 어린애같았다.
《아이고! 이거 죽여주는구나.》
김정녀는 또 진통에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가 딸애를 찾았다.
《순이는 완근정장동지네 집에 가있어요.》
《참 그랬지. 미안해. 나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고생하는구나. 여느날도 아닌 전쟁이 터진 날에 말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아이를 가지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김정녀는 모진 고통속에서도 미안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봉임간호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언니는 아픔을 참으려고 그러는지, 엄습하는 불안을 털어버리려고 그러는지 땀투성이가 되여 가쁜숨을 몰아쉬면서도 자꾸만 말을 했다.
《전번엔 그이가 딸을 낳았다고 섭섭해하시더구나. 그래서 이번엔 꼭 아들을 낳자고 했는데… 전쟁이 터질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아이고!》
김정인은 신음소리를 내는 언니의 볼에 달라붙은 땀에 젖은 머리칼들을 조심스레 떼내여 귀등으로 넘겨주었다.
《정인아, 네 생각엔 어떠냐? 아들일가, 딸일가? 이번에도 또 딸을 낳으면 난 어쩌면 좋아.》
정인은 언니가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자기도 알수 없었다. 그러나 진통에 신음하는 언니를 고무해주려고 이렇게 장담했다.
《이번엔 꼭 아들일거예요. 글쎄 틀림이 없다니까요.》
언니는 안도의 숨을 후련히 내쉬였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러더니 큰 시름이나 놓은듯이 숨소리를 고르롭게 내면서 혼곤히 잠들었다.
정인은 언니가 정말로 생남을 하면 어뢰정대장감이 태여났다고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할 아저씨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방긋이 웃었다.
봉임은 산모가 있다는것도 잊었는지 기세등등해서 큰소리를 쳤다.
《준의동무, 희소식이예요! 우리 인민군대가 전전선에 걸쳐 반공격으로 넘어갔대요.》
《정말?》
《예! 방금전에 개성과 주문진을 해방한 소식이 보도되였어요.》
정인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싶었다.
《기지에선 지금 뭘하고있나요?》
《래일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진행한대요.》
말만 들어도 가슴에서 피가 끓어넘쳤다.
《지금 모두 떨쳐나 그 준비를 하고있어요.》
《어뢰정대두요?》
《예, 지금 한창 하가작업을 하고있어요. 소해함은 오전에 먼저 출항했대요. 상륙작전에 앞서 배길상태를 알아보러 갔다고 해요.》
어느새 잠을 깼는지 김정녀도 일어나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 소식을 들으니 기운이 솟구치는 모양이다.
《언니, 가만 누워계세요.》
《전쟁이 터졌다는데 내가 누워있으면 되겠니.
어뢰정대에 항해용식품을 보장해줘야 해.》
《걱정마세요. 다른 군관가족들이 할텐데…》
《그래두 내 몫이야 해야지.》
김정녀는 아픔에 잔뜩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부득부득 일어나려고 했다.
《언니, 정 그러면 지시나 하세요. 우리가 해드리지요.》
상반신을 겨우 일으켰던 정녀는 그 소리에 안심이 된듯 다시 드러누웠다.
《우선 닭을 잡아. 알낳는 닭이 세마리 있는데 다 잡아.》
정인이와 봉임은 난처한 기색으로 마주보기만 했다.
《왜 그래? 닭잡을줄도 모르나?》
정인은 언니에게 닭은 후에 잡기로 하자고 설복했다.
정녀는 부엌의 항아리안에 있는 닭알을 다 꺼내서 삶아라, 터밭에 있는 오이를 따서 김치를 담가라, 고추장도 단지채로 보내자 하고 지시를 했다. 정인은 산모를 그냥 지키고있고 봉임이가 터밭에 나가 손에 잡히는대로 오이를 따가지고 부엌에 들어가 부산스레 돌아갔다.
밤은 계속 깊어가는데 잠시 조용해졌던 산모가 배를 그러안으며 또다시 죽는소리를 쳤다. 눈이 거불거불해서 앉아있던 정인이와 봉임은 해산방조를 하노라 썰썰 끓어댔다.
《언니! 힘을 주라요!》
《응. 응.》
《용을 쓰라요! 좋아요! 한번 더!》
그들은 체육경기를 응원하듯 겨끔내기로 소리쳤다.
정녀는 곁에 앉은 간호장의 손목을 꽉 움켜쥔채 이를 악물고 기운을 썼다.
진통이 도를 넘어 정신이 흐리마리해졌다. 이마가 보기 좋게 벗겨진 남편이 벙글벙글 웃으며 눈앞에 다가온다. 사위를 끔찍이도 위해주던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도 안겨왔다.
《여보! 순이 아버지!》
정녀는 목이 터질 지경으로 소리쳤다. 남편은 여전히 벙글벙글 웃을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엄마!》
사지가 찢겨나가는듯 한 모진 아픔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 찰나에 뭔가 쑥 빠져나가며 무겁고 지겹던 몸이 홀가분해졌다. 허공에 둥실 떠오른 기분이다. 불쑥 자신의 존재를 시위하려는듯이 힘차게 울어대는 아기의 고고성이 터져올랐다.
《됐어요! 언니, 수고했어요. 정말 용해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고무해주는 동생의 목소리가 꿈결인양 아렴풋이 들려왔다. 뒤이어 여러 사람이 동시에 터치는 탄성이 울렸다.
《야! 사내애군요.》
《실하기두 해라.》
《기지장동지가 얼마나 기뻐하실가.》
《간호장동무가 빨리 가서 알려주세요.》
문이 여닫기는 소리, 소곤소곤 속삭임소리…
다음엔 조용해졌다. 고요해졌다.
정녀는 홀가분해진 자기의 몸이 따스한 물결에 실려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것만 같았다. 공교롭게도 전쟁이 일어난 날 깊은 밤에 새생명을 창조한 녀인은 긍지에 넘친 행복의 미소를 머금은채 만시름을 놓고 혼곤히 잠들었다.
아기는 크고 실했다. 이마가 번듯하고 코가 큼직한게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다. 이처럼 아기가 크다나니 해산할 때 산모가 애를 먹은것이였다.
아기구경을 왔던 녀인들이 돌아갔다. 따스한 물에 아기를 목욕시켜 보드라운 천으로 감싸 자그마한 포대기에 눕혀놓은 김정인은 숨을 돌리려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날이 바뀌였다. 꼭두새벽이라 캄캄했다.
지칠대로 지친 그는 퇴마루에 앉아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차거울 정도로 시원한 해풍을 한껏 들이켰다.
불현듯 저기 부두쪽에서 불빛이 반짝거리고 출항준비를 하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알릴듯말듯 울려왔다.
그는 손으로 입을 싸쥐며 터져나오는 하품을 막았다. 긴장이 풀리니 피곤했다. 이대로 눈을 감고 쪽잠에 들면 좋으련만… 아니, 내가 왜 이러고있나. 빨리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놓고서 군의소에 돌아가야지.
그가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데 누군가 부리나케 마당으로 뛰여들었다.
《정인아! 수고했다!》
아저씨였다. 정인은 놀라운 눈길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낳은 소식을 전하려고 간호장이 가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아저씨가 집에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아들이라지?》
《예.》
홍동철은 춤을 출듯이 기뻐하며 성급히 방에 들어갔다.
방금 잠에서 깨여나 고개를 드는 안해에게 눈을 끔벅해보인 그는 안해의 곁에서 단잠을 자고있는 아기를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뒤따라 방에 들어온 정인이 말했다.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았어요.》
홍동철은 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걸.》
그는 이런 말을 한게 미안했던지 안해를 돌아보며 벙글서 웃었다.
《여보,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허허! 이제야 해병감이 태여났군.》
흡족해하던 홍동철은 팔목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일어났다.
《그럼 몸조리를 잘하오. 난 가봐야 하겠소.》
김정녀는 가까스로 일어나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남편을 바래워주었다.
안절부절하던 정인은 부랴부랴 아저씨의 뒤를 따라 토방에 나갔다.
《기지장동지, 저도 이젠 군의소에 돌아가겠습니다.》
홍동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응, 여기 일은 간호장동무에게 맡기고 너는 빨리 군의소장을 만나거라. 기다리고있을거다.》
무엇때문에 군의소장동지를 만나라고 할가?
정인이 물어볼새도 없이 아저씨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정인아, 잠간만 기다려라!》
언니가 서두르며 부엌에 내려갔다.
《언니, 어쩌자구 그래요? 어서 누워계세요. 찬바람을 쏘이면 큰일이예요.》
정인은 언니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정녀는 방안에 들어갈념을 하지 않고 삶은 닭알을 넣은 광주리와 오이김치를 담은 바께쯔, 깨고추장단지를 동생에게 안겨주었다.
《자, 군의소에 가는 길에 이걸 어뢰정대에 전해주렴. 꽈배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구나.》
《알겠어요. 빨리 방안에 들어가세요.》
《정대장동무에게 놈들을 본때나게 족쳐달라고 해라.》
《알겠다니까요. 자, 어서.》
정인은 언니를 부축하여 방안에 들어가 자리에 눕혀준 다음 아기의 건강상태를 다시금 확인하고나서 봉임간호장과 함께 닭알광주리와 오이김치가 담겨진 바께쯔, 깨고추장단지를 안고 들고 부두를 향해 잰걸음을 쳤다.
새벽의 대기를 요란하게 뒤흔들며 전투함정들의 발동소리가 승벽내기로 울려왔다. 그가운데서 귀에 익은 어뢰정들의 발동소리는 유별나게 기운찼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가뜩이나 조급하던 마음에 불이 이는듯싶었다.
《빨리 가자요.》
《가만, 이러다간 오이김치를 쏟겠어요.》
달려가고싶어도 그럴수가 없어서 아기작거리며 조바심을 치는데 부두쪽에서 굴러오던 어뢰운반대차가 그들앞에서 멈춰섰다.
《어딜 갑니까?》
반가와서 소리쳐 묻는 해병은 전달에 급성충수염으로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하다가 퇴원한 어뢰조종수였다.
《어뢰정대에 가요.》
《그걸 어서 대차에 실으십시오.》
어뢰조종수들은 그들에게서 오이김치바께쯔와 닭알광주리, 깨고추장단지를 받아서 싣고 다시 부두로 대차를 밀고갔다.
김정인은 봉임간호장을 언니네 집에 돌려보내고나서 대차를 뒤따라 달려갔다.
꽈릉! 꽈릉!
횡대로 계류한 4척의 어뢰정들가운데서 바깥쪽에 붙은 두척이 공회전상태로 기관을 돌리며 당장 뛰쳐나갈듯이 선체를 들썩이고있었다.
부두엔 배기가스가 자옥해서 짙은 안개속인듯 앞을 가려보기 어려웠다. 배기가스냄새가 어찌두 지독한지 눈이 쓰리고 숨이 막히고 구토감이 났다. 그속에서 정대원들이 항해준비를 하고있었다.
정인이가 대차에서 부린 닭알광주리를 안고 서둘러 어뢰정에 오르려는데 누군가 성큼 부두로 뛰여내리며 담벽처럼 앞을 막았다.
《이건 뭐요?》
목소리를 들으니 마침 정대장이다.
《기지장동지네 집에서 보내는 항해식품이예요.》
김군옥은 그제서야 정인을 알아보았다. 그는 박원협갑판장을 불러 항해식품을 받아 배에 실으라고 지시를 주고나서 호기심이 어린 궁금한 어조로 물었다.
《참, 언니는 어떻게 됐소?》
《아들을 낳았어요.》
《그래?! 정말 수고했구만, 수고했어.》
김군옥은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정대원들에게 목청껏 웨쳤다.
《동무들! 경사요! 기지장동지의 아주머니가 아들을 낳았다오.》
항해준비를 하던 정대원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우르르 몰려왔다.
《수고했습니다! 준의동무.》
《아기가 누구를 닮았습니까?》
《이름은 뭐라고 지었습니까?》
저마다 겨끔내기로 질문을 퍼부었다.
정인은 평화시기도 아닌 지금 억대우같은 바다사나이들이 아기의 출생을 놓고 이다지도 기뻐할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실은 전쟁시기여서 아기의 출생은 더욱 경사롭고 신비스러운것으로 되였으며 그래서 해병들은 이토록 흥분하고 기뻐하는것이였다.
이때 기지장이 불쑥 나타나서 엄하게 소리쳤다.
《왜 떠들어대는거요? 자기 위치로!》
해병들은 바삐 자기 초소로 달려갔다. 정인은 21호정 지휘소로 올라가는 정대장에게 무슨 임무를 받고 출항하는가고 소리쳐 물었다. 김군옥은 그 처녀를 피뜩 돌아보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곁에 서있는 김도형정장에게 무슨 지시를 주기 시작했다.
《정대장동지! 저도 함께 가겠어요.》
김정인이 무작정 어뢰정갑판에 오르려는데 아저씨가 엄하게 소리쳤다.
《준의동무는 빨리 군의소장한테 가오!》
김정인은 애원의 눈길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전…》
홍동철은 벌컥 화를 냈다.
《아저씨가 뭐야? 군의소장한테 가라구, 어서!》
김정인은 하는수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군의소로 갔다.
군의소장은 약품들을 준비해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수고했소. 순산했다지?》
《예.》
군의소장은 해산방조를 하노라 수고했다는 소리도 없이 불쑥 물었다.
《준의동무, 이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수 있겠소?》
김정인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얼른 대답했다.
《예, 나가겠습니다.》
《오늘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진행하오. 이 작전에 군의보장을 해야 하는데 기지장동지가 이왕이면 정인동무를 보내달라고 하더군.》
김정인은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기야 뭐… 이 약품을 가지고 〈평화〉호에 오르오. 기지장동지도 그 배를 타고가오.》
《평화》호는 해군군관학교에서 실습선으로 사용하던 수송선이다.
김정인이 승선하자 수송선은 배다리를 끌어올리고 부두를 떠났다.
뒤따라 소해정들, 경비함들도 출항했다. 주변에 있는 수산합작사의 고기배들까지 따라섰다. 크고작은 함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동소리를 울리며 나가는 모습은 볼수록 장관이였다.
김정인은 먼저 출항한 어뢰정 두척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눈에 띄우지 않았다. 항해모를 단정히 쓴 홍동철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아저씨.》
홍동철은 엄한 기색을 지으며 눈을 흡떴다.
《다시 불러라.》
김정인은 정색해서 거수경례를 했다.
《기지장동지, 소위 김정인 명령대로 약품을 가지고 승선하였습니다.》
《음, 우린 오늘 해상륙전대 한개 련대를 아직 미해방지구인 해안에 상륙시켜야 하오. 적들과 전투를 하는 경우 부상자들이 생길수 있으니 준의동무는 필요한 대책을 세우시오. 담가조를 동무에게 배속시켜주겠소.》
《알았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고난 김정인은 방싯 웃었다.
《아저씨.》
《또 아저씨냐?》
《아기의 이름을 뭐라고 하겠어요?》
홍동철은 그건 무슨 왕청같은 소리냐 하듯이 두눈을 크게 떴다가 뒤미처 오늘 새벽에 안해가 해산을 한 생각이 나서 허허 웃었다.
《그걸 깜박 잊었댔구나. 하여간 상륙작전을 수행한 다음에 아기의 이름을 짓도록 하자꾸나. 너두 이름을 하나 생각해내려무나.》
수송선단은 원산부두에 정박했다.
새벽어스름속에서 구령소리가 울리고 수많은 륙전대원들이 움직였다. 방금 건네놓은 배다리를 타고 누군가 먼저 수송선갑판에 올랐다. 그는 자기를 맞이해주는 기지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련대장 최민철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두 군관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홍동철은 보안간부훈련소에 있을 때 항일투사인 최민철과 이미 낯을 익힌 사이였다.
련대는 승선을 시작했다. 전투장구류를 갖춘 륙전대원들이 배다리를 건너 날쌔게 갑판으로 달려올라왔다. 잠간사이에 승선이 끝났다.
수송선단은 곧 출항했다.
한편 먼저 출항한 두척의 어뢰정은 고성앞바다를 지나 38도선이남수역에 들어섰다.
김군옥은 낯선 해안을 유심히 살피다가 갑이나 등대, 섬들이 나타나면 해도실에 들어가 해도에 표시해놓군 했다.
어뢰정이 속초항에 거의 접근했을 때 어디선가 포성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긴장하게 해상감시를 하던 박원협이 석쉼한 목소리로 웨쳤다.
《지휘소! 좌현 15도, 거리 7마일 불명목표 발견!》
김군옥은 즉시 그쪽으로 변침할것을 명령했다.
어뢰정들은 배머리를 돌리고 속도를 높였다. 포연에 흐려진 수평선쪽에서 이쪽을 향하여 마주오는 함선의 자태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박원협이 소리쳤다.
《지휘소, 우리 소해함인것 같다.》
그는 명태처럼 버쩍 마르기는 했지만 키가 껑충하고 눈이 밝아서 리상적인 감시병이였다.
김군옥은 그가 넘겨주는 쌍안경을 받아들고 그 함선을 바라보았다.
소해함이 분명했다. 배머리에 31이라고 쓴 전술번호도 가려볼수 있었다. 100미리주포가 위엄있게 틀고앉은 선수갑판에 해병들이 떨쳐나와 이쪽에 대고 손을 흔들며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부다.
《저 친구들이 왜 저렇게 떠들어대는거야?》
김도형정장이 의아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글쎄 말이요. 공회전시키고 어뢰정을 바투 들이대라구.》
《알았다.》
김도형은 정대장의 지시대로 기관을 공회전시키고 타력을 솜씨있게 리용하여 어뢰정을 소해함곁에 들이댔다.
해군군관학교 동창생인 소해함함장 마진규대위가 아주 성수가 나서 확성기로 소리쳤다.
《동무들! 우린 벌써 놈들과 한판 붙었댔소.》
김군옥도 확성기를 들고 큰소리로 물었다.
《어떤 놈과 붙었댔나?》
《소해함이요!》
괴뢰해군의 소해함은 우리 소해함과 배수량이나 무장장비가 엇비슷했다.
《두척이 량쪽에서 동시에 달려들더군. 우린 오른쪽에서 덤벼드는 놈을 맞받아나가면서 먼저 주포를 쏴서 주도권을 쥐였지. 첫발을 사령탑에 명중시켜 짓뭉개놨거던. 놈들도 부랴부랴 포사격을 해대더군.
한창 싸움을 하는데 어뢰정들의 동음이 울려오자 놈들은 냅다 도망쳤소.
정대장! 그놈들을 추격해서 어뢰를 한발씩 안겨주게나!》
《알겠네!》
김군옥은 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자기를 바라보는 김도형정장과 의미있게 눈길을 맞추며 픽 웃었다.
《흥! 그깟놈의 소해함이나 때리기엔 어뢰가 너무 아깝지.》
김도형은 자부심에 넘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요. 대포로 참새를 잡는 격이지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기요. 송사리들은 놀래워서 쫓아버리자구.
만약 고래나 상어가 나타나면 물론 잡아야지.》
어뢰정들은 다시 남쪽으로 배머리를 돌리고 파도를 헤가르며 씽씽 내달리기 시작했다.
배가 출출한감이 드는데 마침 채기정이가 작업모안에 삶은 닭알을 가득 담아가지고 사령탑에 올라왔다.
《자! 맛보십시오. 광주리채로 기관우에 올려놓았더니 따끈따끈합니다.》
《기관실에 있는 동무들에게 먼저 주었소?》
《예, 어서 드십시오.》
모두들 파도가 날아드는 사령탑에 선채로 삶은 닭알을 한알씩 발가먹었다. 소금대신 사령탑 앞턱에 흐르는 바다물을 찍어먹었다. 별맛이였다.
《자, 이것도 드십시오. 22호정장동무의 아주머니가 해온 남새빵입니다.》
채기정은 인심좋은 안주인처럼 해도실에 들락날락하며 먹을것을 계속 내왔다.
항해를 할 땐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멀미가 나면 아무것도 먹을수 없다. 바다에 나오면 식욕이 있다는것이 자랑으로 된다.
오이김치가 각별히 맛있었다. 김도형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지장동지의 아주머니가 해산을 하면서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보내주었으니 정말 고맙구만. 기관장동무, 인사를 어떻게 한다?》
채기정은 능청스레 응대했다.
《정장동무도 그런 녀성을 안해로 삼으라구요.》
김도형은 능청스레 응대했다.
《그런 녀성은 동생인 준의동무인데…》
《왜? 맘에 들지 않아요?》
《그 처년 벌써 임자가 있단 말이야.》
채기정은 모르쇠하고 누구냐고 물었다.
《누구긴 누구겠나, 정대장동지지.》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항해길에서는 이런 실없는 롱담도 육체적부담을 이겨내게 해주는 힘으로 된다.
《정장동문 봐둔 처녀가 없소?》
김군옥의 물음에 당사자는 없다고 하는데 채기정이가 있다고 우겨댔다.
《있지요. 봉임간호장이랍니다.》
아니라거니 그렇다거니 싱갱이를 하는데 박원협이 불쑥 소리쳤다.
《지휘소! 등대 발견.》
김도형은 이내 정색해서 저 멀리 해안가에 알릴듯말듯 바라보이는 등대를 해도와 대조해보았다.
《저건 주문진등대입니다.》
《그럼 1차상륙지점이 멀지 않았소.》
어뢰정들은 강릉앞바다를 지나 정동진해안가를 가까이 했다.
김군옥은 무전수에게 기함과 통신을 결속하라고 했다.
《기지장동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할것. 1호지점 적정 없음.》
잠시후 답전이 날아왔다.
《알았다. 계속 남하하여 2호지점앞 해상과 해안의 안전상태를 확인할것.》
어뢰정들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1차상륙장소에 이른 수송선단은 해안가에 바투 들어갔다. 명령에 따라 가슴을 치는 바다물에 뛰여내린 한개 대대가 기슭으로 나갔다. 여기는 어제 해방한 지역이여서 조용했다. 기슭에 오른 륙전대원들은 소대단위로 대오를 짓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백사장을 지나 언덕너머로 사라졌다.
빈 발동선들은 북으로 침로를 돌리고 다른 함선들은 어뢰정을 따라 계속 남하했다.
어뢰정들이 묵호항 앞바다를 지나가는데 박원협이 다급히 소리쳤다.
《지휘소! 적함 발견!》
김군옥은 대뜸 긴장해져서 갑판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파도우에 황급히 도망치는 자그마한 발동선이 보였다. 갑판장이 넘겨주는 쌍안경으로 바라보니 돛대에 나붓기는 기발이 적들의것이였다.
《적발동선을 나포할것!》
정대장의 명령에 따라 두척의 어뢰정은 일정한 간격으로 벌려서서 속도를 올리며 적함을 추격하였다. 급해맞은 놈들이 제법 먼저 불질을 했다.
《위협사격을 할것!》
《알았다!》
박원협은 고사총으로 적함의 마스트에 대고 련발사격을 했다.
22호정에서도 위협사격을 했다.
놈들은 케가 글렀던지 인차 사격을 중지하고 마스트에 부랴부랴 흰기를 올렸다.
21호정은 적함의 꼬리를 바싹 물고 22호정은 적함의 앞을 가로막았다. 놈들은 기관실안에 처박혀서 감히 고개도 내밀지 못했다.
김군옥은 확성기로 소리쳤다.
《손들고 나오라! 불응하면 당장 배를 침몰시키겠다.》
박원협이 고사총으로 한점발 공포를 쏘았다.
그제서야 기관실로 내려가는 망홀이 덜컥 열리더니 장교 한놈과 기름이 얼룩진 정비복을 입은 사병 두놈이 갑판에 나와 번쩍 손을 들었다. 놈들은 저들을 겨누고있는 고사총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덜덜 떨었다. 꼬락서니가 구태여 한방 갈기지 않아도 저절로 쓰러질것 같았다. 김군옥은 쓰겁게 웃으며 소리쳤다.
《소속이 어디야?》
장교는 금시라도 불을 토할것만 같은 고사총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 얼어붙었는지 입도 열지 못했다.
《어서 대답해!》
그제서야 간신히 입을 뗐다.
《예, 울진항에 소속된 배입니다. 보시다싶이 전투함선이 아니라 수로안내선입니다.》
《여기엔 뭣하러 왔는가?》
장교는 고개를 굽석거리며 서둘러 대답했다.
《등대를 수리하려고 왔댔습니다. 미7함대소속 기동분함대가 북상하니 이쪽에 설치되여있는 등대들과 해안표식물들을 빨리 정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기에…》
그러니 미7함대가 조선전쟁에 개입한다는건가?
김군옥은 대뜸 긴장해졌다.
《기동분함대의 구성은?》
《순양함과 구축함들로 편성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건 모릅니다.》
김군옥은 가슴이 후드득 뛰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천리혜안의 예지로 예견하신바 그대로 전쟁이 터지자마자 미제침략자들의 대형함선집단이 조선동해에 밀려들고있었다. 그것은 어뢰정대의 타격대상이였다. 지금껏 노려오고 기다려온 적수를 드디여 만나 판가리격전을 벌릴수 있게 되였다.
별안간 가슴속에서 피가 설설 끓어번지는듯싶었다. 그는 애써 흥분을 누르며 해안경비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장교는 지금 증강된 한개 대대가 해안을 지키고있는데 방풍림을 따라 참호를 파고 중기화점들을 설치했다고, 척탄통과 화염방사기도 있다고 그 수자까지 일일이 들었다. 아마 심문에 적극적으로 응하면 행여나 목숨은 건질수 있을거라고 타산한 모양이였다.
김군옥은 채기정에게 포로한 놈들을 련락삭으로 묶어서 마스트에 매놓으라고 지시하고 정황을 무전으로 보고했다. 즉시 응답전문이 날아왔다.
《알았다. 엄호조는 현위치에서 해상감시를 하다가 적함이 나타나면 공격하라.》
이윽고 수송선단이 나타났다. 수송선단은 홍동철기지장의 지휘에 따라 남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림원진해안에 바싹 들어가 횡대대형을 지었다.
해안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아무런 위험도 없는듯싶었다.
《교활한 놈들…》
랭소를 머금은 홍동철은 별안간 두눈을 흡뜨며 구령을 쳤다.
《목표, 해안가 방풍림! 발사준비!》
수송선단의 모든 함선들에 장비된 함상포들과 고사무력이 목표를 겨누었다.
《련발로 쐇!》
쿵! 꽝! 꽈르릉―
포성이 련이어 울리고 고사총들이 불을 토하며 울부짖었다. 고요하던 방풍림은 포탄과 총탄소나기를 맞고 칼탕을 친듯이 산산이 휘뿌려졌다. 참호에 매복하고 륙전대가 상륙하기만을 기다리던 적들은 맞불질을 할 엄두도 못내고 혼비백산하여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았다.
이때만을 기다리던 최민철련대장이 권총을 뽑아들고 선참으로 배에서 뛰여내렸다.
《상륙!》
련대장을 따라 륙전대원들은 련속 바다에 뛰여들었다. 물보라가 장쾌하게 일어번졌다. 바다물이 부글부글 끓는것만 같았다.
《만세!》
륙전대원들은 목청껏 웨치며 가슴을 치는 바다물을 헤치며 기슭으로 나갔다. 무사히 기슭에 오른 그들은 젖은 군복을 벗어서 짜입을새도 없이 적들을 추격하며 신바람이 나서 내달렸다.
《잘한다! 잘해!》
《히야! 저 친구들 사기가 났는걸!》
어뢰정대원들은 통쾌한 그 장면을 재미나게 바라보며 쾌재를 올렸다.
《리승만역도가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희떠운 수작을 하며 전쟁의 불을 지르더니 저꼴을 좀 보라지. 제 졸개놈들이 썩은 바자 넘어가듯 하는 저 꼬락서니를!》
《전쟁이란게 뭔가 했더니 이런것이였구만.》
《그러게나 말이지.》
어뢰정들이 지키고있어서인지 상륙작전이 다 끝날 때까지도 적함은 한척도 얼씬하지 못했다.
상륙작전을 성과적으로 진행한 수송선단은 유유히 북으로 배머리를 돌렸다. 나포한 괴뢰군함선을 끌고가려고 소해함이 어뢰정들이 있는쪽으로 다가왔다.
《정대장동지! 저걸 보십시오. 담당준의동지입니다.》
박원협이 반가와서 소리쳤다.
모두들 그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소해함의 선수갑판에 어엿이 서있는 녀군관의 모습이 이채로왔다. 정인이였다. 처녀는 자기를 지켜보는 어뢰정대원들과 눈길이 마주치자 밝게 웃으며 손저어 반겨주었다. 파도를 헤가르며 달려오는 수송선과 선수갑판에서 군복자락과 중발머리를 해풍에 날리는 그 처녀가 서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한폭의 그림같았다.
《정말 신바람이 나는데요. 마수걸이가 괜찮단 말입니다.》
잔뜩 사기가 나서 떠들어대는 갑판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송선의 갑판에 우아하게 서있는 사랑하는 처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김군옥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전쟁이란 이렇게 쉽게 이기는 랑만적인것인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으랴. 지금 인민군대의 질풍같은 반공격에 괴뢰군놈들은 썩은 바자 무너지듯 하고있다. 이처럼 물밀듯이 밀고나가면 한두달내에 통일은 문제없다. 괴뢰군놈들은 문자그대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전쟁의 불을 지른 장본인은 세계제패를 노리는 미제침략자들이다.
세계《최강》을 뽐내는 그놈들과의 판가리싸움이 눈앞에 박두했다.
김군옥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남쪽해상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순양함과 구축함들로 편성했다는 미7함대의 기동분함대가 검은 연기를 토하며 북상하는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가슴은 치솟는 분노로 뒤설레고 피가 펄펄 끓어올라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이제 당장 남쪽으로 침로를 돌리고 놈들을 맞받아 전속으로 내달리고싶었다.
올테면 오라! 우리 어뢰정대는 네놈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서 자라난 인민해군의 본때를 보여줄것이다.
그는 이렇게 내심 부르짖으며 주먹을 꽉 틀어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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