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하기훈련이 시작되자 군항은 전투적인 용맹으로 끓어번졌다. 어뢰정대는 소포정과 소해정들을 리용하여 항해훈련을 하느라 노상 바다에 나가살다싶이했다. 훈련 또 훈련으로 이어지는 나날들이였다.
휴식이 부족해서 아무리 카로리 높은 식사를 해도 모두들 눈에 피발이 서고 살결이 꺼칠해졌으며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홍동철기지장은 그들을 휴식시키고싶었지만 시시각각으로 악화되는 정세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2월 중순 맥아더는 리승만을 도꾜에 불러다가 일본수상 요시다를 동석시키고 악명높은 《북벌》협정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미, 일, 남조선간의 3각군사동맹이 무어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남조선괴뢰군의 무장장비가 날로 늘어나는 가운데 괴뢰해군은 구축함 2척을 포함하여 70여척에 달하는 각종 전투함선들과 보조선박을 보유하게 되였다. 일본주둔 미군은 6월에 들어와 전쟁준비를 마감단계에서 다그치기 위해 륙해공군합동훈련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있었다.
며칠전 도꾜의 궁성광장에서는 맥아더와 군부우두머리들이 참가한 가운데 주일미군의 열병식이 요란하게 진행되였다고 한다.
래일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없었다.
정세를 주시하며 초긴장속에 훈련을 계속하다나니 지휘관들도 해병들도 모두 지쳤다.
홍동철기지장은 이런 상태를 더이상 지속시킬수 없다고 생각했다.
휴식을 적절히 배합해야 전투력을 더욱 강화할수 있다. 그저 잘 먹고 잠이나 자는 휴식이 아니라 체육경기와 오락회와 같은 적극적인 휴식이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높은 훈련속에 한달이 폭풍처럼 휙휙 지나가버렸다.
토요일에 진행된 월훈련총화모임에서는 어뢰정대가 단연 1등으로 평가되였다.
어뢰정들을 상가한 조건에서도 방도를 찾아 항해훈련을 계속 진행하여 새로운 전투조법들을 부단히 연구하고 숙련한것이 각별히 우점으로 언급되였다.
소포정대는 2등을 했는데 그래서 고준무는 약이 올랐다. 어뢰정대에 함선을 빌려주다나니 자기넨 항해훈련을 계획대로 내밀수 없었던것이다. 일껏 남좋은 일을 해주고나서 총화마당에 와서는 박수까지 쳐주자니 그 성미에 기분이 좋을리 만무했다.
그가 보기에는 기지에서도 그렇고 해군사령부에서도 그저 어뢰정대만 적극 내세워주고 소포정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것 같았다.
순서를 놓고봐도 우리가 1정대인데 2등을 하다니… 생각할수록 아쉽고 기분이 상했다.
홍동철기지장은 그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둥실한 얼굴에 호인다운 미소를 지으며 래일은 일요일이니 해상체육경기를 진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과연 귀맛이 당기는 소리여서 고준무는 찌긋이 감고있던 두눈을 번쩍 떴다.
《종목은 바줄당기기, 단정경기, 수영경기, 수구경기입니다. 시상을 크게 하겠소. 해상체육경기에서 정대의 전투력과 집단주의정신이 낱낱이 반영된다는걸 잊지 마오.》
그래! 마침이로다. 해상체육경기에서 단연 1등을 해서 어뢰정대의 코대를 꺾어놔야 한다.
고준무는 자못 흥분해서 속으로 윽벼르다가 공교롭게도 자기를 쳐다보는 김군옥의 눈길과 마주쳤다. 워낙 만만치 않게 생긴 상대방의 눈동자에는 해상체육경기에서도 1등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승벽심과 야심이 감출수 없게 비껴있었다.
어디 래일 한바탕 겨뤄보자구!
두 군관은 서로 노려보며 내심 부르짖었는데 마치도 말없이 결투를 거는것 같았다.
훈련총화모임이 끝나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김군옥은 반달음쳐서 륙상병실로 달려갔다. 저녁식사시간을 앞두고 정대원들은 휴식을 하고있었다.
그들은 총화모임정형이 궁금했던지라 흥분해서 나타난 정대장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동무들! 월훈련총화에서 우리 정대가 1등을 했소.》
긴장해서 지켜보던 정대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래일 해상체육경기를 합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모든 종목에 걸쳐 1등을 해야 하오. 만약 지게 되는 경우엔 그가 누구든지 가만두지 않겠소. 알겠소?》
정대장의 기질을 닮아서 무엇을 해도 이기는데만 습관되여온 정대원들은 자신만만해서 가슴을 내밀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김군옥은 종목별로 선수들을 선발하고 책임자를 임명했다. 후방사업과 응원은 문화부정대장이 맡기로 했다.
《오늘은 일찌기 잠을 자고 래일 아침에 일어나 훈련을 해야 하겠소.》
김군옥은 이튿날 어뜩새벽에 일어났다. 돌아보니 문화부정대장의 잠자리는 벌써 비여있었다. 그는 내의바람에 밖으로 나갔다.
군항은 고요한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부두에 계류한 함선들의 선미기대에 켠 정박등만이 잠들줄 모르는 초병의 눈동자처럼 반짝거렸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군항엔 아늑함과 평온이 짙게 어려있었다.
문득 식당쪽에서 귀에 익은 칼도마소리가 정답게 울려왔다.
가보나마나 문화부정대장의 솜씨다. 오랜 배군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 역시 료리솜씨가 대단했다.
오늘은 후방사업을 맡았으니 솔선 나서서 특식을 준비하는것이다.
려명직전의 어둠을 뚫고 두사람이 재빨리 달려가다가 김군옥을 알아봤는지 턱 멈춰섰다.
《누구요?》
상대방은 숨이 차서 할딱거리며 대답했다.
《저예요.》
김정인의 목소리였다.
《이 새벽에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거요?》
《언니가 몹시 급해한다기에…》
점차 설피게 밝아오는 새벽빛에 위생복을 걸친 김정인과 위생가방과 둥근 주사기통을 쥔 간호장의 모습이 륜곽적으로 안겨왔다.
《그러니까 기지장동지의 아주머니가 위급하다는거요?》
왜서인지 대답이 없다.
《이런 변이 있나, 함께 가기요.》
김군옥이 무작정 따라서려는데 정인은 덴겁을 했다.
《아이! 정대장동문 안돼요. 간호장동무, 빨리 가자요.》
김정인은 봉임을 뒤에 달고 냅다 달려갔다.
김군옥은 영문을 몰라 얼결에 몇걸음 뒤따르며 소리쳤다.
《난 어째서 안된다는거요?》
《남자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예요!》
키드득거리는 간호장의 웃음소리가 뒤따라 날아왔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김군옥은 그들이 사라진 군관사택마을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흠칠 놀랐다.
부두쪽이 급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웅성웅성하더니 첨벙첨벙 물에 뛰여드는 소리, 영차 여이차! 하고 노젓는 소리가 울려왔던것이다.
저 친구들이 벌써 훈련을 하는구나.
그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부두병실로 달려가려는데 기지장이 불쑥 나타났다. 김군옥은 어정쩡해졌다.
《아니?! 아주머니가 위급하다던데 여긴 왜 나왔습니까?》
홍동철은 좀 멋적어하면서 손으로 대머리를 어루쓸었다.
《거 뭐 해산을 할 땐 다 그렇게 볶인다누만.》
김군옥은 이제야 깨도가 되였다.
《그런걸 난… 축하합니다.》
《이 사람아, 아이는 녀편네가 낳는데 내가 축하를 받으면 되나. 그건 그렇고… 어때? 오늘 1등할 자신이 있소?》
김군옥은 자신있다고 장담했다.
《소포정대가 가만있지 않을걸, 어제 총화모임때 보니 고준무 그 친구의 눈에 달이 떴더군.》
문득 소리도 없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홍동철은 손바닥을 펴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난처한듯 중얼거렸다.
《허, 이거 경기날자를 잘못 잡았나?》
《까짓거 비가 내린들 뭐랍니까. 계획된대로 체육경기는 해야 합니다.》
《하기야 바다물에서 하는 경기니 비가 와도 별로 상관이 없지. 허, 저걸 보라구. 저 친구들은 벌써 일어나 련습을 하고있구만.》
안달이 나서 재빨리 병실에 달려들어간 김군옥은 직일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목청을 돋구어 구령을 쳤다.
《정대 기상!》
정대원들은 일제히 잠자리를 박차고 뛰쳐일어났다.
《아침식사시간까지 조단위로 훈련할것!》
김도형정장이 먼저 구령을 쳤다.
《단정경기조 날따라 앞으로!》
어제 밤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우정 륙상병실에서 잠을 잔 리완근정장도 소리쳤다.
《수구경기조 날따라 앞으로!》
김군옥이 뒤따라가니 먼저 뛰쳐나간 단정경기조는 울상이 돼서 부두에 멍하니 서있었다.
부두에 매놓았던 여러척의 단정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정대의 선수들이 타고 바다에 나갔던것이다. 김군옥은 김도형정장에게 모의훈련이라도 하라고 소리쳤다.
단정경기조는 김도형의 구령에 따라 부두에 두줄로 나란히 앉아서 두팔을 한껏 내밀어 노대를 잡은 흉내를 냈다.
김도형은 뒤에 앉아 왼손으로 타를 잡은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을 앞으로 힘껏 내밀며 웨쳤다.
《출발!》
조원들은 동시에 상반신을 뒤로 제끼며 두팔을 힘껏 잡아챘다.
《영차! 여이차!》
한편 부두끝에 수구조를 한줄로 나란히 세운 리완근은 손에 쥐고있던 수구공을 있는 힘껏 바다 멀리에 뿌려던졌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수영빤쯔만 입고 상반신을 약간 숙이고있던 조원들은 일제히 물에 뛰여들었다. 장쾌하게 물보라가 일어번졌다. 바다물이 와글와글 끓는것 같았다.
저마다 먼저 수구공을 잡으려고 숨도 안 쉬고 냅다 팔다리를 놀리며 헤염쳐간다.
제일 앞선 조원은 뺄헤염을 치는데 두발로 물을 얼마나 잽싸게 차던지는지 마치도 어뢰정의 추진기가 고속으로 돌아가는것 같았다. 그의 수영솜씨가 뛰여나기에 부두에 나와있던 다른 정대의 해병들이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먼저 수구공을 잡은 그는 훌쩍 상반신을 솟구치며 따라오는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부두에선 탄성이 올랐다.
《어뢰정대장동지구만.》
《히야! 정말 빠르다.》
《자유형에선 어뢰정대장을 따를 사람이 없겠소.》
물속헤염을 쳐서 정대장에게 은밀히 접근한 채기정이 불쑥 솟구쳐오르며 수구공을 덮쳤다. 김군옥은 휙 방향을 돌려 갑판장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박원협은 날아오는 공을 공중에서 재치있게 잡아 상대방의 문대앞으로 길게 던져주었다. 김군옥이 그쪽으로 날쌔게 헤염쳐가서 공을 잡아 슛을 하려는데 방어를 하던 23호정장 최정수가 그의 빤쯔끈을 자기의 엄지발가락으로 걸어챘다.
김군옥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물속으로 쑥 잠겨들었다. 재빨리 몸을 솟구친 그는 한손을 쳐들고 소리쳤다.
《반칙!》
입에 호각을 물고 부두에서 굽어보는 리완근은 정대장의 목소리를 못들은체 했다. 최정수는 깨고소해서 벙글벙글 웃었다.
수구공이 또다시 휙 날아와 떨어지며 물탕을 튕겼다. 김군옥은 공을 잡으려다가 다시 바싹 접근하여 반칙동작을 하려는 최정수의 아래배를 발끝으로 힘껏 내리눌렀다. 최정수는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정대장의 발을 두손으로 움켜잡았다.
김군옥은 어쩔수없이 물속에 끌려들어갔다.
물속에서 밀치고닥치고 씨름질을 하던 그들은 너무 숨차서 더는 견딜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서로 뿌리치고 부랴부랴 수면우로 솟구쳤다.
숨이 탁 터져나간다. 답답하던 가슴이 순간에 활짝 열린다. 상쾌하기에 이를데 없다.
재미있네, 재미있네 해도 수구경기의 재미를 따를만 한 체육경기가 어데 있으랴. 실로 수구경기장은 바다사나이들이 힘과 용맹을 겨루며 한바탕 갈개보는 마당이다.
수구경기의 재미에 푹 취해서 시간이 가는지오는지도 모르며 물장구를 치던 김군옥은 길게 울리는 호각소리에 이어 다급히 웨치는 리완근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대장동지! 폭풍입니다! 폭풍!》
폭풍이라니?! 난데없이 이게 무슨 소리야?
김군옥은 일순 어리둥절해서 채머리를 흔들어 머리칼을 타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바다물을 뿌려던지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소리없이 내리던 보슬비는 어느새 멎고 날은 활짝 밝아오고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 맑은 아침에 폭풍이란 도대체 무슨 소린가?
폭풍은 비상소집신호이기도 하다.
오늘은 해상체육경기를 하기로 했으니 기지에서 비상소집을 할리 없었다. 아까 기지장을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은 없었더랬다.
다른 정대원들도 어리둥절해서 리완근을 바라보았다.
여느때는 침착하고 유순하던 리완근이 불판우에 올라선듯 펄펄 뛰면서 고래고래 소래기를 질렀다.
《뭣들 하고있어? 빨리 나오라! 전쟁이 터졌대, 전쟁이!》
뭐?!
김군옥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소리에 귀가 멘듯싶었다. 귀안이 징징 울렸다. 그는 물속에 머리를 박고 두팔을 힘껏 내저으며 재빨리 헤염쳐나갔다. 부두벽에 매달아놓은 완충용 다이야를 붙잡고 부두에 기여오르는데 계류해있는 함정들이 배고동과 싸이렌을 요란하게 울렸다.
해상체육경기를 앞두고 그 준비에 흥성거리던 군항의 분위기는 발칵 뒤집혀졌다.
바다물에서 부두로 기여오른 해병들이 저마다 자기의 함선으로 달려갔다. 소포정들은 벌써 함상포의 씌우개를 벗기고 발사준비를 끝냈다. 어뢰정대원들은 급급히 내의를 주어입고 부두병실로 달려갔다.
김군옥이 부두병실로 뛰여들어가 재빨리 군복을 입는데 직일관이 소리쳤다.
《정대장동지! 빨리 지휘소로 오랍니다!》
《알겠소. 동무들은 하가준비를 하오!》
김군옥은 전투가방을 메고 기지지휘소로 달려갔다. 너무도 정황이 급변해서 그의 머리는 혼란되여있었다. 멘 귀고막이 아직도 열리지 않는것 같았다. 웅웅 울리는 소음속에 《전쟁이 터졌대!》라고 웨치던 리완근정장의 목소리가 확성되여서 자기 머리가 증기빵처럼 막 부풀어나는듯싶었다.
전쟁이 터졌다!
이게 사실인가? 혹시 내가 꿈을 꾸는게 아닐가? 날로 첨예해지는 정세로 보아 조만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럴줄이야, 그것도 여느날이 아닌 일요일에…
불현듯 한백천작전과장이 입버릇처럼 뇌이던 소리가 되살아나며 귀청을 때렸다.
《명심하시오! 일요일, 휴식일에 전쟁의 불을 지르는것은 놈들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일본놈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그러했고 도이췰란드놈들이 도발한 쏘도전쟁이 그러했습니다. 만약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날도 모름지기 일요일일것입니다.》
새삼스레 작전과장의 예언이 떠올랐다.
가만, 오늘 아침에 기지장동지의 아주머니가 해산을 한다고 했지.
일두 참… 부디 이런 날, 이런 시각에 아이를 낳다니… 아기가 태여나는 신성한 이 아침에 전쟁이 터졌단 말이지, 전쟁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황없이 지휘소에 들어선 그는 입구에 지켜서있는 작전과장과 부딪쳤다.
한백천은 비장한 기색으로 이를 악물고 두눈을 흡뜬채 지휘소로 들어오는 지휘관들을 지켜보고있었다. 김군옥은 거수경례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다급히 물었다.
《작전과장동지, 그게 사실입니까?》
전쟁발발을 념두에 둔 질문이였다.
한백천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전… 믿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나 역시 그렇소.》 하며 한백천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일요일에 전쟁을 일으키는게 놈들의 상투적인 수법인줄은 알고있었지만 설마…
로회한 놈들이 선손을 썼소. 우리 군대가 더 강화되기 전에 선제타격을 한거요. 우리 해군은 아직 전쟁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는데 이걸 어쩌면 좋소?》
《그건 무슨 말입니까?》
한백천은 눈을 부라리며 신경질을 썼다.
《몰라서 묻소? 우리에겐 해상작전을 수행할수 있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은 고사하고 어뢰정이 도제 네척밖에 없단 말이요. 일본에 주둔하고있는 미7함대가 덤벼들건 뻔한데 다섯손가락안에도 들지 못하는 어뢰정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는거요?》
김군옥은 선뜻 대답을 할수 없었다.
적들과의 싸움을 위해 지금껏 훈련과 함선정비로 긴장한 나날을 보내왔지만 정작 전쟁이라는 준엄한 환경에 부딪치고보니 무언가 이에 대처할 준비가 미흡한것 같았다. 전쟁에 대처할 모든 준비를 사전에 완전무결하게 갖춘다는것은 아마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작전과장은 몹시 안타까와했다.
《어뢰정이 40척만 있어도 한번 해보는건데…
그러면 항공대와 협동하여 놈들의 기동분함대를 공격하는 해상전을 본때있게 벌릴수 있단 말이요. 난 그 작전안을 이미 다 세워놓았소. 그런데 우린 항공대와의 협동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거던.
다음달에 들어가 이 훈련을 하려고 해군사령관동지에게 제기를 한 상태인데… 놈들이 선손을 썼단 말이요. 선손을…》
작전과장이 신심이 부족한 소리를 하기에 김군옥은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놈들더러 전쟁을 미루자고 하겠습니까? 맞받아쳐야지요.》
한백천은 큰소리를 치는 젊은 정대장을 좀 아연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더니 픽 웃으며 훈시조로 말했다.
《용기는 좋구만. 당신의 젊은 혈기가 정말 부럽소. 그런게 승패를 결정하는게 아니지.》
곁에 서있던 고준무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궁금해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제서야 한백천은 소해함 함장인 마진규대위를 비롯한 여러명의 군관들이 신중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넌지시 에둘러 말했다.
《글쎄 뭐라고 꼭 짚기는 어려운건데… 하여간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도 과학이요. 전쟁에는 고유한 자기의 법칙이 있소.》
김군옥은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니 미국놈들이 달려들면 우리가 이길수 없다는겁니까?》
《그런건 아니지, 미국함대가 조선동해에 들어오면 쏘련함대도 가만있지 않을테니까. 우린 태평양함대와 협동작전을 해야 하오.
난 이미 이런걸 예견하고 작전안을 세웠소.》
김군옥은 긴장이 지나쳐서인지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지휘관들이 성급하게 련이어 들어왔다.
지휘소의 분위기는 근엄하고 긴장했다. 화약내와 피비린내같은것이 풍기는것만 같았다. 열기띤 눈동자들이 번뜩거리고 거친 숨소리가 높아졌다.
대머리가 보기 좋은 둥싯한 얼굴에 늘쌍 호인다운 미소를 짓고있던 홍동철기지장은 입귀에 주름이 잡히도록 입을 꾹 다물고있는데 험악한 그 인상이 사태의 엄중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전투복장차림으로 다급히 지휘소에 들어오는 지휘관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바라보던 한백천은 마감으로 군의소장이 들어오자 벼락같이 구령을 쳤다.
《군관동무들!》
홍동철기지장은 차렷자세를 한 지휘관들을 엄한 눈매로 바라보며 여느때없이 쉬엿구령을 내리지 않고서 본론에 들어갔다.
《동무들! 미제의 사촉을 받아 북침전쟁열에 환장이 된 남조선괴뢰군은 오늘 이른새벽에 38도선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을 감행하였습니다.》
김군옥은 숨을 턱 멈추었다.
가뜩이나 긴장됐던 지휘소안의 공기가 그 순간에 쩡! 하고 얼어붙는것만 같았다.
호인이던 기지장의 두눈에선 불이 황황 일었다.
《공화국정부에서는 리승만괴뢰도당에게 동족상쟁의 모험적인 전쟁행위를 즉시 중지하고 괴뢰군을 38도선이남으로 철수시킬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놈들은 전쟁을 더욱 확대했습니다.》
어찌도 격분했는지 기지장의 입에서는 불이 뿜어나오는듯싶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즉시 내각비상회의를 여시고 우리 인민군대에 적들의 무력침공을 좌절시키고 결정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갈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습니다.》
쾅!― 하고 벌써 승리의 포성이 울린듯 얼어붙었던 지휘소의 공기는 삽시에 확 달아올랐다.
김군옥은 꽉 막혔던 귀구멍이 이제야 쑥 열린것 같았다. 가슴 한구석에 떠돌던 불안과 위구의 구름이 순식간에 가셔졌다. 심장이 쿵쿵 흉벽을 친다. 뜨거운 피가 급기야 설설 끓어오르며 온몸에 세차게 소용돌이쳤다.
아! 우리에게는 백두의 밀림에서 강도 일제를 쳐부신 천출명장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신다. 그이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길것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미국놈들이라고 하시면서 〈미국놈들이 우리를 잘못 알고 서뿔리 덤벼들었소. 오만무례한 미국놈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줍시다.〉라고 힘있게 말씀하셨습니다.》
곁에 서있는 고준무와 마진규를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이 신심에 넘쳐 눈빛을 번쩍이며 뜨거운 숨을 확 내뿜었다.
그렇다! 승리는 확정적이다.
필승의 신념과 철의 의지, 무쌍한 배짱과 담력을 지니신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적들의 불의의 침공에 대처하여 방어만 하는것이 아니라 반공격이라는 대용단을 내리신것이다.
《모든 정대들은 출항준비를 신속히 갖추고 위장을 철저히 하고 차후지시에 따라 움직일것! 어뢰정대는 하가준비를 할것!》
《알았습니다!》
김군옥은 기세충천하여 웨치듯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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