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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며칠간 조용하던 어뢰정대의 식당이 이른아침부터 별안간 활기를 띠고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원항해타격훈련에서 성과를 거두고 귀로에 오른 어뢰정대가 이제 두시간후이면 입항한다는 련락을 받고 김정녀를 비롯한 군관안해들이 식당에 나와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준비에 달라붙었던것이다.

녀맹위원장인 정녀는 지금처럼 군관안해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자연히 책임자가 되군 했다. 그는 만삭이라 남산같이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내밀고 뚱기적거리며 주방안을 오가면서 녀인들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주거나 잔소리도 했다.

서너명정도로 조촐한 한가정의 밥이나 짓던 녀인들이 한꺼번에 수십명분의 식사를 보장하자니 수월치 않았다. 그것도 특식을 차리자니 일손이 딸려서 모두들 분주히 서둘렀다.

이럴 때 흰 군복상의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녀성군관이 시원한 해풍이 불듯이 신선미를 풍기며 불쑥 들어섰다.

《수고들 하십니다!》

모두거리로 인사를 한 그는 김정인이였다.

군관안해들은 온몸에 탄력이 넘치는 군관복을 입은 처녀를 부러움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인은 곧 탈의실에 들어가 취사복을 입고나왔다.

《물고긴 내가 손질할테니 식칼을 이리 주세요.》

그는 서툰 솜씨로 청어를 손질하고있는 리완근정장의 안해에게서 식칼을 넘겨받더니 날랜 솜씨로 잠간사이에 일을 끝냈다.

다음엔 부뚜막앞에 나서서 지져내고 볶아내고 튀겨내는데 그 솜씨가 어찌도 날랜지 그저 번쩍번쩍했다.

녀준의에게 일감을 떼우고 한걸음 물러나 구경하던 녀인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저런! 고급료리사가 왔다 울고가겠군요.》

《언니네 동생이 군관이기에 밥을 지을줄도 모르겠거니 했더니 솜씨가 대단한데요.》

정녀는 군관안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동생을 정겹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정인인 어린 나이에 배를 타고 밥짓는 일을 했어요.》

녀인들은 이제야 알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랬댔구만.》

《남정네들도 타기 힘든 배를 녀자의 몸으로 어떻게 탔을가?》

《해방이 정말 좋구만요. 배를 타고 고생을 하던 천덕꾸러기가 의학공부를 하고 군관이 됐으니 말이예요.》

《눈이 어글어글한게 얼마나 멀끔하게 잘생겼소. 게다가 의술이 있겠다 료리솜씨도 있으니 저런 처녀에게 장가드는 총각은 정말 좋겠어요.》

정인은 자기를 두고 찧고까부는 소리를 듣는척도 하지 않고 성수가 나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다.

어뢰정대가 훈련에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다니 그 이상 기쁘고 반가울수가 없었다.

어뢰정대가 없으니 이 며칠동안은 군항이 텅 빈것만 같았다. 그래서 허전한 가슴으로 누구인가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쓰군 했다. 그가 그립고 보고싶어서 밤이면 잠을 이룰수가 없을 지경이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보고싶을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그리움이 넘치는 마음 한구석엔 야속함도 없지 않았다.

어뢰정대와 함께 자기도 원항해타격훈련에 참가했어야 하는데 바로 그가 우유부단하게 나오는통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데로부터 오는 야속함이였다.

기지장이 초보적인 승인을 했으니 정대장만 결심하고 내밀면 얼마든지 성사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작전과장이 당치않은 리유로 반대하자 그는 찍소리도 못했지, 그러고보면 주대가 없는것 같애, 주대가 없으면 우선 사내답지 못한것이고 지휘관구실도 제대로 할수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가 보고싶고 못 견디게 기다려지는걸가?

식사준비를 불이 번쩍나게 하면서도 정인의 신경은 미구하여 어뢰정들이 기세좋게 울부짖으며 입항하게 될 부두에 쏠려있었다.

밥을 푸고 접시에 여러가지 반찬들을 보기 좋게 담아 렬을 지어놓고나니 날이 활짝 밝았다.

부두에 계류한 함선들마다에서 식사시간을 알리는 함선호각소리가 련이어 울려왔다.

그런데 기다려마지않는 어뢰정들의 발동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글쎄 말이야, 이젠 입항할 시간이 퍽 지났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가요?》

남편이 바다에 나가면 입항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녀인들이라 걱정스러워서 창밖으로 부두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김정인은 얼른 검식을 한 다음 탈의실에 들어가 군복을 갈아입고 위생가방을 메고서 부두로 나갔다.

부두에서 경쟁적으로 대렬합창을 하며 기세를 올린 해병들이 줄을 지어 자기 함선의 갑판에 올라가고있었다. 함선들의 갑판엔 아침식사를 차려놓았다. 해병들은 비오는 날이나 추운 겨울을 내놓고는 이처럼 시원하게 해풍이 불고 아름다운 경치를 얼마든지 바라볼수 있는 리상적인 장소인 갑판에서 식사하기를 즐겼다.

소포정11호의 사령탑에서 쌍안경으로 바다쪽을 지켜보던 고준무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부두에 나타난 녀준의를 발견했다.

《준의동무! 어서 오라구.》

김정인은 고준무정대장에게서 어뢰정대의 소식을 들을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얼른 소포정의 사령탑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뭘합니까?》

고준무는 다시 쌍안경을 들고 바다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뢰정대가 입항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아서 그러오.

군옥정대장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려댔는데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모르겠구만. 준의동무도 그 친구를 맞이하러 나왔겠지요?》

정인은 실무적인 투로 응대했다.

《난 어느 한사람이 아니라 어뢰정대를 맞이하러 나온거예요. 아실테지만 난 어뢰정대를 담당한 준의니까요.》

고준무는 쌍안경에서 눈을 떼더니 금이발을 번쩍거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시치미를 떼지 마오. 동무야 오래전부터 그 친구와 남다른 사이였지. 수상보안간부학교개교식을 앞두고 동무네 둘이서 나란히 학교정문에 들어서다가 〈뽀쬼낀〉선생한테 걸려들던게 아직도 내 눈앞에 생생하단 말이요. 그때 동무가 입학을 하지 못하고 아저씨에게 붙잡혀간건 참 유감스러운 일이였지.》

《그런 하찮은 일까지 기억해주니 고맙군요.》

《그게 왜 하찮은 일이겠소. 난 잊을수 없소. 처녀들은 많지만 수상보안간부학교에 감히 입학하겠다고 찾아온 처녀는 오직 한명뿐이였으니 어떻게 잊을수 있겠소.》

너스레를 피우던 고준무는 갑자기 정색해지더니 부랴부랴 갑판에 내려갔다. 그는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부두에 나타난 기지장을 발견했던것이다.

소포정갑판에 올라선 홍동철은 고준무에게 식사가 끝나면 곧 출항할수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고준무는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홍동철은 갑자기 어금이라도 쏘는듯 오만상을 찡그렸다.

《어뢰정대에 사고가 났소.》

속이 조마조마해졌던 김정인의 귀에는 아저씨의 그 말이 폭음처럼 울렸다.

사고가 나다니?!

깜짝 놀란 처녀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렸다.

《호랑이반도앞에까지 와서 25호정이 기관고장으로 턱 멈춰섰다는거요. 그래서 지금 25호정을 끌고오노라 역사질을 한다는구만, 제기랄!》

홍동철의 입에서는 험한 욕이 터져나갔다.

웬간한 일에는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속이 탈대로 탔다.

그는 우에서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 원항해타격훈련을 억지공사로 벌려놓고서 사고가 날가봐 속이 조마조마해있던 참이다. 다행히도 훈련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귀항의 배길에서 진행한 타격훈련과 부두설비가 없는 해안에서의 연유보충 그리고 어뢰발사훈련도 무사히 했다. 그런데 군항 코앞에 와서 이런 엄중한 사고가 발생한것이였다.

소포정11호는 부랴부랴 식사를 끝내고 출항하였다.

김정인은 그냥 소포정에 남아있어야 할지 아니면 부두에 내려야 할지 알수 없어서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폈다. 어뢰정대의 비상사고라는 긴박한 정황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누구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소포정은 사납게 울부짖는 어뢰정과는 달리 순하고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방파제끝을 에돌아 호랑이반도쪽으로 배머리를 돌렸다.

한시간 좋이 나가는데 수평선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실려 귀에 익은 어뢰정들의 발동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기운차지 못하고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든것 같았다. 이윽고 저속으로 항해하며 마주오는 어뢰정들이 눈에 띄웠다.

앞선 세척의 어뢰정들은 발사했던 어뢰들을 회수하여 끌고오고 뒤에선 21호정이 25호정을 예선바줄에 매서 끌고오고있었다.

소포정은 21호정에로 접근해갔다.

21호정사령탑에 상반신을 내밀고 서있는 김군옥정대장과 한백천작전과장, 김도형정장의 얼굴이 점차 뚜렷이 안겨왔다. 모두 안색이 컴컴하게 질려서 김정인은 마주보기조차 괴로왔다.

김군옥은 속도를 늦추며 마주오는 소포정의 갑판에 서있는 김정인과 눈길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선수갑판의 앞코숭이에 나간 홍동철은 소포정과 어뢰정과의 사이가 좁혀지자 날쌔게 뛰여건너갔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는 속이 탈대로 탔던지라 눈을 부라리며 다짜고짜로 언성을 높여 물었다.

김군옥은 괴롭게 얼굴을 찡그렸을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곁에서 매우 고까운 눈초리로 그를 흘겨보던 한백천이 큰소리로 대답했는데 마디마디에서 울분이 튀여나왔다.

《이 동무들이 돌아올 때 계속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다나니 기관에 무리가 가서 고장이 났지요. 난 정대장동무에게 정박장습격훈련이 성과적으로 됐으니 다른 훈련은 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무가 어디 내 말을 듣습니까? 안하무인이고 고집불통입니다.》

작전과장이 훈련을 하느라 복잡하게 굴지 말고 그냥 가자고 한건 사실이였다.

김군옥은 그럴수 없었다.

값비싼 기름을 수백마일이나 되는 먼 항해길에 뿌리면서 왜 그냥 간단 말인가? 이 기회에 어뢰돌격을 비롯한 각종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자기 의향을 말하니 작전과장은 그만두라면 그만두라고 소래기를 치고는 고개를 구겨박고 잠을 잤다.

김군옥은 만취된 그와 더 이러니저러니하고싶지 않았다. 어뢰정대는 계속 훈련을 하면서 왔다.

호랑이반도앞에서 어뢰발사훈련을 하고 쏜 어뢰를 찾아서 수색기동을 하는데 25호정의 기관이 둘 다 거의 같은 시간에 저절로 꺼지는 통에 소동이 일어난것이였다.

홍동철은 예선삭에 매여 끌려오는 25호정의 처량한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기관고장의 원인은 뭐요?》

김군옥은 꾹 다물고있던 입을 겨우 뗐다.

《아직은 모르겠답니다.》

한백천이 악에 받쳐서 또 고아댔다.

《모를게 있소? 기관이 과부하를 받아서 선거란 말이요! 준마도 마구 때려몰면 꼬꾸라지는 법이요. 다른 함선들도 그렇게 될

수 있소.

실정에 맞지도 않는 훈련을 괜히 벌려놓고 값비싼 어뢰정들만 혹사시켰으니 그 책임을 누가 지겠소? 누가?》

김군옥은 가뜩이나 졸아들었던 가슴이 섬찍해졌다.

작전과장의 말대로 장기항해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해서 기관이 고장났다면 정말 야단이다. 다른 어뢰정들도 그렇게 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홍동철이 지시했다.

《정대장, 25호정을 떼놓으라구.》

김군옥은 공연히 흠칠 놀랐다.

《예?!》

《빨리 떼놓고 정대를 입항시키시오. 25호정은 소포정이 끌고가겠소.》

김군옥은 기지장의 명령대로 25호정을 고준무에게 넘겨주고 어뢰정대를 이끌고 기지로 갔다.

그의 안색이 어찌도 무겁고 어두웠던지 입항한 후에 김정인은 곁에 다가가 위로해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김군옥은 입맛이 쓰거워서 군관안해들이 성의껏 차린 아침식사를 드는둥마는둥했다.

그는 기관장, 조기조장, 조기수와 함께 25호정기관실에 들여박혀서 고장원인을 찾노라 모지름을 썼다. 기관을 해체해놓고 하나하나 조사해보았지만 고장난 부분이 없었다. 기관을 조립하고 시동을 걸었다. 몇번 꽈르릉거리더니 이내 발동이 꺼졌다. 과연 맹랑했다.

《젠장! 시시펀펀한 기관이 왜 이래?》

채기정은 악이 나서 씩씩거렸다.

숨죽인 기관을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하고 도면을 보거나 나중엔 작업일지까지 뒤적거리던 그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피뜩 고개를 돌리며 정대장을 바라보았다.

《이거 혹시 기관수명이 다된게 아닐가요?》

김군옥은 속이 섬찍했다.

《뭐라구?!》

《이걸 보십시오.》

채기정은 배기름에 뚜껑이 절은 작업일지를 넘겨주었다.

《가동시간을 종합하면 275시간 35분입니다.》

《그러면 아직 24시간이상이 남아있잖소.》

《저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여길 보십시오. 수자를 여러군데나 틀리게 써넣었습니다.》

채기정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어뢰정을 접수하기 전에 정리한것이였다. 24시간이상의 오차는 거기서 생긴게 분명했다.

그래, 고속기관의 수명이 300시간이지, 나는 왜 여태 그것을 명심하지 못했던가? 이건 고장보다 더 야단이다,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하면 된다, 그러나 늙어죽는 사람이야 어쩔수 없지 않는가, 기관도 마찬가지다.

김군옥은 덴겁을 하며 갑판으로 뛰쳐나갔다.

기관실에 들어가는 망홀옆에 쭈그리고앉아 안에서 진행하는 일을 근심스레 지켜보던 다른 어뢰정의 기관장들이 와뜰 놀라며 일어났다.

《동무들! 빨리 기관작업일지를 검토해보시오.

총가동시간을 종합하오. 우리가 어뢰정을 넘겨받기 전부터 오늘까지 기관을 돌린 시간을 1분도 빼놓지 말고 다 계산에 넣소. 정장동무들도 함께 검토하고 결과를 보고하시오.》

김군옥은 지시나 주고 기다릴수가 없어서 21호정의 기관작업일지를 자기가 직접 검토해보았다.

총가동시간이 260시간 25분이였다.

그러니 수명은 40시간정도 남아있었다. 보고를 들어보니 다른 어뢰정들도 엇비슷했다. 만약 25호정처럼 어뢰정을 접수받기 전에 정리한 부분에서 오차가 생기면 수명은 더 짧을수도 있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은가?

절망에 빠진 그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더니 헉! 하고 흐느끼며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튿날 정대는 어뢰정들을 상가장에 끌어올리고 함선정비에 들어갔다.

한주일나마 파도에 부대껴서 소금투성이가 된 어뢰정을 제때에 깨끗이 씻어주지 않으면 구석구석에 부식현상이 생기게 된다. 알루미니움합금으로 만든 어뢰정선체는 일단 부식이 시작되면 걷잡을수 없다.

상가장은 급유와 급수설비가 되여있는 부두로부터 어지간히 떨어져있어 선체청소를 할 때면 물을 길어오기가 힘들었다.

정대원들은 백리터짜리 도람통을 쇠줄로 꿰여 목고로 물을 긷노라 땀을 철철 흘렸다. 함선승무원들은 물동량을 거의다 목고로 나른다.

그래서 배군들의 뒤덜미나 어깨엔 혹처럼 목고살이 생긴다. 그것만 보아도 배군인지 아닌지 알수 있을 정도다.

《영차! 여이차!》

목고를 할 때 앞뒤에서 이렇게 소리치다나면 어쩔수 없게 발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 흔들거리던 물통안의 물이 넘쳐나 쏟아지기마련이다.

김군옥과 채기정은 이런 봉변을 당하고 물참봉이 되였다.

《여! 발은 왜 맞추는거야?》

기관사고로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진 김군옥은 버럭 역정을 썼다.

채기정은 얼굴에 뿌려진 물방울을 손으로 훔치며 중얼거렸다.

《우정 그런건 아닙니다. 저절로…》

김군옥은 공연히 화를 낸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에라! 엎어진김에 쉬여간다는데 우리도 쉬자구.》

그들은 물이 거의 절반이나 쏟아진 도람통옆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정대장의 눈치를 살피던 채기정은 기대가 담겨진 목소리로 은근히 물었다.

《저… 정대장동지, 언제 시작할가요?》

인젠 쓸모가 없게 된 25호정을 두고 속을 썩이던 김군옥은 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하는 기색으로 채기정의 어줍어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거 있잖습니까.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 말입니다.》

대회를 앞두고 어뢰정대에서는 여러점의 발명품과 미술작품들을 올려보냈는데 그중 당선이 기대되는것은 채기정의 작품인 조각 《바다의 수호자》였다.

《동문 속두 편한게로군. 기관을 그꼴로 만들어놓고 무슨 왕청같은 생각을 하고있어?》

핀잔을 받은 채기정은 얼굴이 벌개졌다.

《거 뭐… 수명이 다된걸 난들 어쩌는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낼 방도를 찾아야지. 조선소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 의논해보라구.》

채기정의 아버지는 올해초에 발족된 함선건조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는 함선건조사업을 통이 크게 밀고나가며 노상 조선소들에 나가있었다. 채정보위원장을 만나면 혹시 무슨 수가 생길는지도 모른다.

채기정은 체념한듯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를 만나봐야 별수가 없습니다. 수명이 다된 기관은 대수리를 해야 합니다. 크랑크축과 메달들, 기통과 피스톤을 새로 깎아맞춰넣으면 150시간을 더 돌릴수 있다고 합니다.》

김군옥은 귀가 솔깃해졌다.

《음, 방도가 있긴 있구만. 당장 대수리를 하자구.》

《그게 기관을 새로 만드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수리를 하자면 우선 기술과 기능이 문제지요. 강철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의 여러 부문이 발전해야 합니다. 피스톤을 만들 합금강재료만 놓고봐도…》

김군옥은 와짝 신경질이 나서 눈을 부라렸다.

《동무가 그런걸 연구하란 말이야, 쩍하면 그림이나 그리거나 진흙장난을 하지 말고.》

《정대장동지두… 지금은 시기상조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고속기관을 만들어낼 시기가 오겠지요. 고속기관대수리는 그때에 가야 가능합니다.》

그들은 엉치를 툭툭 털고일어나 다시 목고를 하고 상가장으로 갔다.

선체청소를 하노라 떠들썩하던 상가장이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그들이 물통을 놓고 모두들 어디 갔나?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21호정에서 문화부정대장이 사다리대용으로 걸쳐놓은 배다리를 타고 재빨리 내려왔다.

리학섭은 싱글벙글하면서 손에 쥐고있던 《조선인민군》신문을 정대장에게 주었다.

《자, 이걸 보시오.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가 개막됐습니다.》

그 소식을 학수고대하던 채기정이 환성을 올리며 춤을 출듯 기뻐했다.

김군옥은 그와 함께 신문을 펼쳤다.

 

5월 4일 오후 4시.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 제2차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가 개막되였다.

170여점의 발명 및 창의고안품들과 600여점에 달하는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였다.

이는 지난 동기훈련기간에 이룩한 전투력강화의 일대 시위로 된다.

 

채기정은 좀 아쉬워했다.

《이거 아직 등수는 안 나왔구만요.》

《꽤나 조급해하는군. 벌써 등수가 나올리 있나.》

리학섭은 주전자에서 물을 한고뿌씩 부어주었다.

김군옥은 갈증이 났던지라 사양없이 받아서 단번에 쭉 마셨다.

《어! 시원하다. 거 물맛이 정말 좋군요.》

《준의동무가 저 도래굽이에서 샘을 발견했지요. 이게 그 샘물입니다.》

김군옥은 대뜸 귀맛이 동했다.

해병들은 노상 짜거운 바다물우에서 사는지라 샘물을 그리워했다.

아마 한모금의 물이 얼마나 귀중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은 해병들일것이다. 먼바다우에서 물은 곧 생명을 의미했다.

《샘이 있다기에 모두들 환성을 올리며 거기로 달려갔답니다.》

《우리도 어서 가봅시다.》

샘터는 부두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파도가 이랑이랑 줄지어 밀려오는 바다기슭의 모래불에서 샘이 솟구치는것은 정녕 신기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정대원들은 금모래를 바글바글 일구며 쉬임없이 솟구치는 맑은 샘을 둘러싸고 환희에 넘쳐 아이들처럼 법석 떠들어대고있었다. 넙적 엎드려서 코등을 시원히 적시며 꿀꺽꿀꺽 물을 들이키기도 하고 서로 물을 끼얹어주기도 했다.

김정인은 이처럼 기뻐하는 해병들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담뿍 머금고있었다.

김군옥에게는 그 모습이 유정하게 안겨왔다.

김군옥은 처녀에게 다정한 눈짓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나서 샘앞에 쭈그리고앉았다.

숨쉬는듯 한 맑은 샘을 보니 마음이 맑아지고 머리가 거뜬해졌으며 구태여 마시지 않아도 온몸이 시원해지는것만 같았다.

물량이 적지 않아서 음료수로 쓰고 남아 어뢰정을 청소하기에도 충분해보였다.

그는 두손을 벌려짚고 넙죽 엎드려서 얼굴을 다 적시며 샘물을 량껏 들이켰다.

얼마나 상쾌한지 그야말로 날아갈듯 한 기분이다.

며칠만에 얼굴이 환해진 그를 보며 박원협이 말했다.

《정대장동지, 제가 즉흥시를 한수 읊으랍니까?》

《어디 들어보기요.》

박원협은 샘을 다시한번 정답게 굽어보고나서 고개를 추켜들더니 가슴속에 차넘치는 격정을 석쉼한 목청으로 내뿜었다.

 

        해당화 반겨웃는 백사장에

        퐁퐁 솟아나는 맑은 샘

        세찬 파도 줄지어 밀려와도

        쉼없이 솟아만 나네

 

        정다운 군항에 닻을 내리고

        한달음에 달려와 너를 보니

        엎드려 한참이고 마시고싶고

        어뢰정에도 너를 뿌려주고싶구나

 

        머나먼 항해길에선

        네 한모금 귀중해

        반모금은 마시고

        나머지로 갑판을 닦았거니

        그러지 않고서야

        너의 귀중함 그 어이 알리

 

목소리가 변변치 않아도 시내용은 그럴듯 했다.

모두들 잘한다고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그쯤하고 그만두려던 박원협은 관중의 고무에 부쩍 기세가 올라서 한손을 높이 쳐들고 바다기슭을 거닐면서 더한층 격조를 높이였다.

 

        파도를 헤쳐 수평선

        저 멀리 가면 갈수록

        사무치게 그리운 이 땅이

        내 사랑하는 어머니조국이기에

 

        파도에 뒹굴다 안긴

        이 아들을 위해

        너는 풍만한 젖줄기를

        맑은 샘으로 뿜어주는가

 

        그래 마실수록 새힘이 솟고

        사랑하는 이 땅을 지켜

        수평선천리도 단숨에 달릴

        억센 용기 용솟음치노라

 

        조국의 아들이 된 본분을

        마실수록 새겨주는 샘이여

        해병들 마음속엔 네가 있으리

        언젠가 울려퍼질 승리의 함성

        영광의 그 노래속에도 네가 있으리

 

또다시 박수갈채가 일어번졌다.

김군옥은 정녕 놀라운 눈길로 박원협을 바라보았다. 그가 노래를 즐겨하는줄은 알고있었지만 자작시까지 읊을 정도로 문학적소양을 겸비한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러고보면 문화부정대장이 그를 오락회책임자로 임명한것은 우연이 아니였다.

《시가 좋구만! 예술경연대회에 나갈만 하오.》

《이제라도 평양으로 떠나게.》

저마다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어뢰정대는 원항해타격훈련을 진행한 후 부랴부랴 예술경연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뢰정들을 상가하고 함선정비를 하는 여가에 합창과 중창을 겨우 맞추었는데 기지에서 진행한 시연회에서 불명예스럽게도 락선됐다.

그래 미리부터 준비를 착실히 했다가 다음해에 진행하는 예술경연에는 꼭 참가하여 그 기회에 집체적으로 평양구경도 하자고 벼르는중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리완근정장이 넌지시 시비를 걸었다.

《갑판장동무, 시가 괜찮은데 진실하진 못하구만.》

《예?!》

찬사에 떠받들려 우쭐해졌던 박원협은 비평을 받고 긴장해졌다.

《동무는 서두에서 〈해당화 반겨웃는 백사장에 퐁퐁 솟아나는 맑은 샘〉이라고 했는데 해당화가 도대체 어디에 있어?》

바다가라면 의례히 해당화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정대원들은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래불과 바위들 그리고 키높이 자란 아카시아나무들이 눈에 띄울뿐 해당화는 없었다.

헌데 난처해할줄 알았던 박원협은 벙글서 웃으며 의미있는 눈짓으로 한쪽옆에 서있는 김정인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지요.》

모두의 눈길이 녀준의에게 쏠렸다.

김정인은 수줍어서 얼굴을 활딱 붉혔는데 그 모습이 과연 활짝 핀 해당화처럼 아름답고 싱싱도 했다.

모두들 자기네 정대를 담당한 녀준의가 이런 미인인줄 모르고 여태 지내다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듯 경탄을 했다.

《히야!》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라하던 김정인은 급급히 도망쳐버렸다.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리학섭은 정대장을 넌지시 돌아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김새도 꽃처럼 곱지만 마음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처녀요.》

김군옥은 마음이 즐거워졌다, 마치 자기가 칭찬을 받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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