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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전화기가 소란스럽게 울었다. 홍동철이 송수화기를 드니 한일무가 인사말도 없이 으르렁거렸다.

《여보! 〈새매〉가 원항해타격훈련을 준비한다는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새매》는 어뢰정대의 대호다.

기지에서는 아직 이 문제를 해군사령부에 상정시키지 않았다. 해군사령관이 어떻게 알고 노발대발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건 정대장이 발기했다지?》

《예.》

《정대장이야 엊그제 해군군관학교를 나온 햇내기가 아니요. 그 나이엔 물인지 불인지도 모르고 그저 막 헤덤벼친단 말이요.

당신이야 발뜨함대의 로병인데 그런 햇내기의 장단에 춤을 춘다니 이게 어디 말이 됐소? 도무지 다섯척밖에 안되는 어뢰정을 가지고 어째보겠다니 이거 군사상식이나 알고 하는 소리요? 이거야말로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드는 자살행위란 말이요.》

한일무는 민족보위성 부상겸 해군사령관으로 승진하자 조폭하고 고집스럽고 안하무인격인 자기의 성격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해군에 대해서는 자기보다 아는 사람이 있을수 없다는 태도였다. 홍동철은 고분고분 응할수가 없었다.

《1번동지, 우리도 그것이 모험인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한일무는 상대방의 말허리를 꺾으며 노기등등해서 소래기를 쳤다.

《모험인 정도가 아니라 자멸행위요!》

홍동철은 쩍하면 화끈 달아올라서 큰일이나 난듯이 법석 고아대는 그가 한백천과 비슷한데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을 리해시키려고 애썼다.

《모험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큰 놈을 잡을수 있습니까. 우린 유사시에 어뢰정들을 효과있게 써먹을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해 모색하고있습니다. 해상전투에서 높은 공격정신을 발휘하며 기묘하고 령활한 우리 식의 전법을 적극 활용하라는것은 함대출항식때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입니다.》

한일무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결 누그러든 목소리로 약간 비꼬듯이 물었다.

《그래 그런 신통한 전법을 연구했소?》

《예.》

《그럼 어디 실례를 들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오.》

홍동철은 먼저 풍산개전술을 말했다.

풍산개들은 사냥을 할 때 맹수를 발견하면 좌우로 갈라져 검질긴 추격전을 벌린다. 그러면서 겨끔내기로 맹수의 옆구리와 꼬리를 건드린다. 맹수가 옆구리와 꼬리에 달린 풍산개를 물려고 걸음을 늦추며 고개를 돌릴 때 맨앞에서 달리던 풍산개가 결정적인 이 순간을 노려 맹수의 멱을 물고 늘어진다.

《여보, 그건 어뢰정 다섯척이 모두 적함의 쏘구역을 무사히 뚫고 들어갔을 때 가능한거요. 그런 요행수야 바랄수 없잖소.》

한일무는 이처럼 그 전법의 치명적인 약점을 꼬집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도적고양이전술도 적용하자고 합니다.》

《거 전술제목이 왜 그리 천하오?》

《제목은 어떻든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적들의 대형함선집단이 자주 나타나군 하는 해상로근처에 있는 섬이나 갑에 어뢰정을 미리 잠복시켰다가 절호의 기회를 노려 들이치는 전술이였다.

한일무는 그것도 불만스러워했다.

《계류설비가 없는 섬이나 갑에 어떻게 어뢰정을 잠복시킨다는거요?》

《섬기슭가까이에 접근하여 앞에는 닻을 떨구고 선미는 섬의 나무밑둥에 계류바줄을 매면 됩니다.》

《잠복기간에 손가락을 빨고있겠소?》

《가마와 쌀을 싣고나가면 밥도 얼마든지 해먹을수 있습니다.》

《태풍이 불면 견디지 못해!》

소래기를 친 한일무는 차라리 적들의 군항을 습격하는게 어떤가고 물었다.

정박장이나 묘박지습격도 이미 론의된 전술방안이였다. 그러나 홍동철은 우정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 그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런 방향에서 전술을 연구해보오. 몇척밖에 안되는 어뢰정을 효과있게 써먹자면 그게 묘안일거요.》

《예, 그러니 어차피 먼 거리를 항해하여 적의 군항을 타격하는 훈련을 해야 할게 아닙니까.》

한일무는 원항해타격훈련을 반대할 리유가 없어졌다. 대신 그 훈련에 해군사령관인 자기의 낯을 낼수 있는 근거가 생겨났다.

《정 하고싶으면 하오. 명심할건 먼 거리를 항해하여 적들의 군항을 불의에 들이치고 빠져나오는 훈련에 모를 박으라는거요. 그렇게 하면 승산이 있을것 같소.》

《알았습니다. 그러자면 항해도중 연유를 보충받아야 합니다.》

《훈련에 필요한 연유와 유조차는 보장해주겠소.

여보! 내 재삼 강조하는데 훈련도중 사소한 사고도 내면 안되오. 어뢰정은 거액의 자금을 들여 마련한 나라의 귀중한 재산이란 말이요.

한척이라도 잘못되면 정장이나 정대장은 물론이고 당신도 군사재판을 받아야 해!》

홍동철은 송수화기를 놓고 손수건을 꺼내여 대머리에 내밴 땀을 닦았다.

된다거니 안된다거니… 복잡한 론의를 거쳐 해군사령부에 올려보냈던 원항해타격훈련계획이 마침내 비준되여 내려왔다.

기지에서는 김군옥정대장이 발기한대로 어뢰정대가 먼바다에 나가서 우리 령해를 침입하려는 적대형함선집단을 공격하는것으로 훈련계획을 세워서 올려보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멀리에 있는 적들의 군항을 습격하는것으로 수정되였다.

홍동철은 마음에 차지 않아하는 젊은 정대장에게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정대장동무, 이 정도로 승인을 받은것도 다행이요. 이번 훈련에서 사소한 결함도 범하면 안되겠소. 사고를 내지 말란 말이요. 책임을 지는게 두려워서 그러는게 아니요. 자그마한 사고라도 나는 경우엔 두번다시 이런 훈련을 할수 없게 된단 말이요. 알겠소?》

김군옥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것 보오, 가상적인 습격대상으로 해군사령관이 선정한 곳은 우리 기지에서 2백여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청진군항이요. 거기로 가자면 동해에서 바다모양이 제일로 나쁜 무수단앞바다를 통과해야 하거던. 아마 해군사령관이 고분고분하지 않는 동무들을 혼쌀내워서 정신을 톡톡히 차리게 해주려고 잡도리를 한것 같소. 항해준비에 사소한 빈틈도 있으면 안되겠소.》

《예, 그런데 아까운 기름을 2백여마일 배길에 태우면서 그냥 갈게 있습니까? 저는 청진군항으로 가면서 여러가지 타격훈련을 하겠습니다.》

홍동철은 여전히 신중한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갈 때는 곧추 가시오. 우선 정박장습격훈련을 실수없이 하는게 기본이요.》

《그럼 돌아올 때 여러가지 타격훈련과 어뢰발사훈련, 부두가 없는 해안에서의 급유훈련을 진행하겠습니다.》

《동무의 고집은 정말… 정박장습격에서 성공한 다음엔 동무생각대로 해도 좋소.》

김군옥은 기대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승선지도는 기지장동지가 하겠지요?》

홍동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작전과장이요. 해군사령부에서 그렇게 선정했소. 동무와 내가 짝자꿍을 할가봐 그렇게 한것 같소. 강평은 누가 하는지 아오? 해군사령관이요.》

김군옥은 움쩍 놀랐다.

《예?!》

《그래서 잡도리를 단단히 하라는거요. 해군사령관동지는 벌써 오늘 아침에 청진군항으로 내려갔소. 동무네 묘한 수를 써야지 청진군항에 들어가기도 전에 발견되면 끝장이야.》

김군옥 정말이지 급해맞았다.

원산항과는 달리 청진항은 만이 깊지 못하고 입구에 반도나 섬들이 거의나 없어 개방되여있었다. 항에서 수평선까지의 해상이 휑하니 한눈에 안겨온다.

어뢰정들은 청진항앞바다에 접근하기 바쁘게 《적》기지의 육안감시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니 야간에 습격해야 하는데 그 경우에도 고속기관의 요란한 발동소리를 감출 방도가 없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가?

그는 정장들과 의논해보고싶어서 서둘러 하가준비로 분주한 상가장에 갔다.

해병들은 흘수선아래에 독장을 바르고있었다.

독장은 독성분이 들어있어 살갗에 조금만 묻어도 상처가 생긴다. 그래서 작업모를 쓰고도 그우에 머리수건같은것을 휘감고 얼굴을 가리웠다. 그런 상태로 허리를 굽히고 고개는 들고 칠작업을 하자니 몹시 말쨌다.

모두들 땀투성이가 되여 붓질을 하고있지만 이제야 절반밖에 칠하지 못했다.

독장바르기에 앞서 흰색에나멜로 솜씨있게 흘수선을 그어준 21호갑판장 박원협은 곱지 못한 목청으로 제딴엔 아주 감정을 잡아 노래를 부르며 상가대차권양기의 쇠바줄을 검사하고있었다.

만약 쇠바줄에 가시가 일었으면 그 부분을 보강해주어야 했다. 그 작업도 숙련과 기능을 요하는 헐치 않은 일이다.

기관장들과 조기수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타래형의 추진날개를 추진기축에 조립하고있었다. 기계기름냄새가 물씬 풍겼다.

김군옥은 몹시 초조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중에 독장을 다 바르고 권양쇠바줄을 보강해야 점심식사후에 인차 하가할수 있다.

만약 꾸물거리다가 시간을 지체하면 네댓시경부터는 바람이 불고 바다모양이 나빠지기에 애를 먹을수 있었다.

박원협은 쇠바줄검사를 하면서 계속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장하고나 우리들은 힘찬 근로자

        새 세기를 창조하는 승리의 주인

        …

 

이것은 그가 즐겨부르는 노래다. 수상보안간부학교 학생들이 청진항으로 이동해갔을 때 어뢰정부두에서 보초를 섰던 그는 목소리가 신통치 않았지만 락천가여서 정비를 할 때에도 노상 노래를 부르는것이였다. 제4차 예술경연대회를 앞두고 그는 정식 오락조장으로 임명되여서 열성이 대단하다.

김군옥은 꿱꿱 내지르기만 하는 그 노래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얼굴을 찡그리고 잠시 박원협을 지켜보다가 버럭 소리쳤다.

《21호갑판장!》

그제서야 박원협은 노래를 그치고 돌아섰다.

《문화부정대장동무가 어디에 있소?》

《아까 준의동무와 함께 건국실에 갔습니다. 찾아오랍니까?》

《아, 됐소.》

박원협은 또 노래를 부르며 권양도람에서 쇠바줄을 풀었다.

김군옥은 정인이가 어뢰정대를 담당하고 나온것이 반갑기도 했지만 난처하기도 했다.

며칠전에 있은 일이다.

상가보관하고있는 어뢰정들을 돌아보던 그는 누구인가 자기를 주시하는듯 한 감촉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지켜보던 녀군관은 얼른 돌아서더니 도망치듯 바삐 걸어갔다. 군옥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다름아닌 김정인임을 몸으로 느꼈던것이다.

군옥은 이끌리듯 녀군관의 뒤를 따랐다.

군의소마당까지 따라가서는 정인이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훈련시간이 퍼그나 지난줄도 모르고 서있던 그는 부랴부랴 륙상병실로 갔다.

이번 상학시간엔 정대장인 그가 병실에서 해병들에게 천문학을 강의하게 되여있었다.

다급히 병실에 들어가려던 그는 문화부정대장의 흥분한 목소리가 울려나오자 멈춰섰다.

《동무들!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공화국정부에서는 인민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대책으로 가까운 시일안에 공채를 발행하게 됩니다.》

김군옥은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남조선에서 공채를 발행하고 강매해서 인민들의 원한이 사무쳤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었다. 그러나 우리도 공채를 발행한다는 소리는 듣기에 처음이였다.

《공채가 뭔지 누가 말해보시오.》

누구도 선뜻 대답을 못했다.

《국가는 필요한 자금을 국내주민들이나 다른 나라에서 림시로 빌려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발행하는 증권이 공채입니다. 공채는 돈을 빌렸다는것을 법적으로 확인해주는 증서로서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돈을 돌려줄 때 신용을 담보해줍니다.

올해 우리 나라 종합예산은 수입에 있어서 252억 2 274만 8천원에 이를것으로 예상하고있습니다. 그런데 267억 2 274만 8천원을 지출해야 합니다. 이처럼 수입에 비하여 지출이 15억원 초과됩니다.

어째서 그런가?》

김군옥은 귀맛이 당겨서 살며시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갔다. 문화부정대장이 돌아보자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한가지 례를 든다면 올해에 평양방직공장의 생산능력을 대폭 확장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규모의 현대적인 방직공장건설을 친히 발기하시고 대동강기슭에 나가시여 공장터전까지 잡아주신데 대하여 리학섭은 감명깊게 이야기했다.

작년초부터 3만개의 방추와 1천대에 달하는 직기를 설치하게 될 방직공장건설이 시작되였다고 한다.

《수도시민들이 공장건설에 다 떨쳐나섰는데 내가 다니던 중앙당학교의 학생들도 과외시간엔 공사장에 나가서 애국로동을 했습니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있던 여름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농촌에 나가셨다가 농민들에게 나라에서 무엇을 해결해주면 좋겠는지 서슴지 말고 제기하라고 하셨답니다.

이때 한 로인이 어려움도 잊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장군님, 해방전엔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던 우리가 장군님은덕으로 분여받은 제땅에서 농사를 짓고 기와집에서 살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있으니 더 바랄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두 말타면 견마잡히구싶다고 이젠 나들이옷과 이부자리도 좋은걸로 갖춰놓고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에 돌아오시자 일군들에게 강원도농민의 말을 전해주시면서 우리가 토지개혁을 하고 먹는 문제를 풀어주어 인민들이 좋아하는데 이젠 입는 문제를 풀어주자고 하시면서 평양방직공장의 방추수를 3만추가 아니라 6만추로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감격에 겨워 병실에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보았다.

《그래서 건설중에 있는 평양방직공장의 생산능력이 두배로 확장되게 된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라에서는 기계공업을 창설하기 위해 공작기계들을 대량적으로 구입하며 인민소비품생산을 위한 지방산업공장들도 증설하게 됩니다.

또한 평남관개공사를 위한 설계를 하고 농기계임경소들을 새로 내오며 평양역사를 새로 짓고 기관차도 대량 구입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필요되는 돈을 인민들의 여유자금으로 해결하자는것입니다.》

모두들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히야! 요란하구만!》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부쩍 올라가겠소.》

《내 누이동생이 평방직에 들어갔습니다. 난 누이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선참으로 공채를 구입하겠습니다.》

《우리 집엔 분여받은 논이 3천 2백평이나 되는데 이젠 뜨락또르로 농사를 지을수 있게 해준다니 막 덩실덩실 춤을 추고싶습니다.

나는 저금한 돈과 이달생활비까지 다 합쳐서 공채를 구입하겠습니다.》

이렇게 너도나도 나서는데 리학섭은 그제서야 문지방에 서있는 정대장을 발견하고 다소 미안한 기색으로 량해를 구했다.

《상학시간이 되였기에 내가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이거 늦어서 안됐습니다.》

김군옥은 이렇게 모두걸이로 사과하고 천문학강의를 시작했다.

시간관념이 철저한 그가 자기가 집행해야 할 상학에 늦어지긴 처음이였다.

문화부정대장은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됐던지 그날 밤 잠자리에 눕기 전에 지나가는 소리처럼 묻는것이였다.

《정대장동무, 아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은 무슨…》

《정대장동무가 군의소쪽으로 허둥지둥 가는걸 내가 봤습니다. 꼭 귀신한테 홀리운것 같더군요.》

김군옥은 잠든체 하고 응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년장자인 문화부정대장에게 속을 터놓고싶었지만 정작 그럴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나에게 있어서 김정인이라는 처녀는 도대체 무얼가? 그저 우연히 만나서 사귀게 된 녀동무인가? 어째서 그 처녀의 얼굴이 자꾸만 내 눈앞에서 얼른거리는것일가? 정인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있을가?

이런 생각에 달콤하게 잠겨든 자신을 발견한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이건 뭐야? 언제 전쟁이 터질지 알수 없는 준엄하고 긴장한 때에 처녀생각이나 하고있으니…

그래 네가 그 처녀를 끝까지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줄수 있어? 기다리던 결전의 그 시각이 오면 사생결단하고 적대형함선집단과 맞서 싸워야 할 어뢰정대장인 네가 말이다.

그는 적대형함선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여러가지 전법들을 연구하는 과정에 그것이 사생결단의 비상한 각오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것임을 깨닫게 되였다.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공격하면 승산이 있는것이고 목숨을 아끼면 애당초 시도조차 해볼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 군의소에 조동되여온 정인이를 만나보고싶지만 애써 참아왔는지도 모른다. 헌데 그 처녀가 어뢰정대 담당준의로 되였으니 기쁘기도 했지만 공교롭고 난처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문화부정대장이 손을 쓴게 분명했다.

김군옥은 새로 온 문화부정대장이 두팔을 걷고 식당을 지을 때부터 그와 배짱이 맞는다고 흐뭇하게 생각했었다. 식당건설을 끝낸 문화부정대장은 원래 식당이였던 건물을 해병들의 교양장소인 건국실로 잘 꾸려놓았다.

그는 요즘 제2차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와 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할 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대회소집과 관련한 요강이 발표되자마자 대회참가준비위원회와 심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정대오락조장을 임명한다, 필요한 성원들에게 시간과 조건을 보장해준다면서 분주탕을 피웠다.

채기정중위가 자기는 미술경쟁대회에 공화국의 해군무력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출품하고싶은데 석고가 없다고 우는소리를 하자 문화부정대장은 멀리에 있는 제요공장에까지 찾아가서 석고를 구해오는 열성을 부렸다.

원항해타격훈련을 앞두고 그 준비에 1분 1초가 귀중한데 문화부정대장이 훈련엔 상관이 없는 그런 일로 들볶아대니 김군옥은 저으기 속이 상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자기만 쳐다보는 정장들에게 공연히 신경질을 부렸다.

《뭘 멍하니 서있소? 우리도 어서 독장을 바르기요.》

정대장과 정장들도 도장붓을 쥐고 칠작업에 달라붙었다.

한편 김정인은 건국실에서 문화부정대장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해놓은 발명품들과 미술작품들을 보고있었다.

야간조준훈련기재와 연유절약기, 각종 정비도구들을 비롯한 발명품들에는 정대원들의 지혜와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미술작품은 발명품보다 더 많은데 정말 볼만 했다.

보람찬 해병생활을 담은 연필화와 수채화, 유화, 조각상도 있고 《조선경제지도》, 《조선의 산업발전면모》를 비롯한 지도와 직관물도 있었다. 또한 미국놈들과 리승만괴뢰도당의 무분별한 북침소동을 풍자한 만화들도 있다.

그중에서 채기정이 형상한 조각상 《바다의 수호자》는 각별히 눈길을 끌었다.

파도를 뚫고 내달리는 어뢰정의 사령탑에서 어뢰조준기로 적함을 겨누고 목청껏 발사구령을 치는 지휘관의 모습을 형상한 반신상이였다.

머리에 쓴 전화모, 미간에 굵게 내리패인 두개의 주름살, 숱진 눈섭아래 부릅뜬 눈, 힘껏 벌린 입, 두드러진 광대뼈, 날카로운 아래턱, 높이 추켜든 무쇠주먹, 해풍에 세차게 나붓기는 군복자락.

대뜸 낯이 익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 어뢰정대장 김군옥대위였던것이다.

《신통히도 정대장동무의 모습이군요.》

리학섭은 자랑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

《청진기지에선 어떻게 준비하고있습디까?》

《거기서도 불이 붙었답니다. 특히 해군군관학교에서는 예술경연대회에서 기어이 1등을 할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본때있게 하고있어요.》

리학섭은 호기심을 가지고 거기서 어떤 종목들을 준비하고있는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뢰정대에서는 발명 및 미술경쟁대회에 참가할 준비는 잘되는데 예술경연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있었다. 정대장이 원항해타격훈련준비에만 몰두하면서 예술경연준비엔 전혀 낯을 돌리지 않으니 리학섭은 몹시 안타까왔다.

그런데 해군군관학교에서는 정치부교장이 합창을 지휘하고 합창시와 노래이야기, 군무는 물론 1막 2경으로 된 연극까지 한다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리학섭은 등이 달았다.

《준의동무, 저녁 오락회시간때마다 우리 동무들에게 노래와 춤을 배워주오. 내 그래서 동무를 담당준의로 보내달라고 제기했소.》

이때라고 생각한 김정인은 기꺼이 응했다.

《예, 저도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준의동무의 부탁이야 들어줘야지요.》

《원항해타격훈련에 저도 참가시켜주세요.》

예상치 못한 부탁이라 리학섭은 난처해졌다.

《그건 정대장동무와 의논해봐야 하겠습니다.》

《정대장동문 승낙하지 않을겁니다.》

《그럴가요? 하여튼 의논해봅시다.》

리학섭은 상가장으로 갔다. 정대장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병들과 독장을 바르고있었다. 리학섭은 함께 일손을 잡으며 정대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담당준의동무가 그러는데 청진기지와 해군군관학교에서는 예술경연준비에 불이 붙었다는군요. 우리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요.》

김군옥은 중요한 훈련을 앞두고 문화부정대장이 이런 소리를 하니 짜증이 났다.

《그런건 훈련이 끝난 다음에 봅시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언제 한가하게 노래나 부르고 춤을 출새가 있습니까?》

리학섭은 면구스러웠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점심식사후에 하가작업이 진행되였다.

어뢰정들은 하가대차를 타고 바다물로 미끄러져내려갔다. 해병들은 바다물에 띄운 어뢰정들을 바줄로 끌고 삿대로 밀며 부두에 가서 연유와 윤활유, 청수를 적재했다. 이튿날에 부두기중기로 어뢰를 적재하고 후방물자도 실었다.

리학섭은 무엇때문인지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신경질을 부리는 정대장에게 원항해타격훈련을 할 때 진행할 문화사업계획서를 보여주었다.

출항에 앞서 군관회의를 소집하고 훈련의 목적과 의의를 해설해주며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방도도 가르쳐준다. 다음으로 초급선전원, 오락조장 및 전투소보원모임을 가지고 훈련기간에 독보를 정상화하고 전투소보를 계속 발간하며 특히 저녁 오락시간을 리용하여 예술소조공연준비를 다그치도록 한다. 다음은 민청회의를…

김군옥은 알릴듯말듯 미간을 찡그렸다.

《군관모임, 민청회의를 따로 할것없이 공개당총회를 여는게 어떻습니까?》

리학섭은 그 의견을 허심히 받아들였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술소조공연준비는 훈련이 끝난 다음에 하기로 합시다. 훈련과 써클을 혼탕시키면 안되지요.》

리학섭은 의논조로 사근사근 물었다.

《군중문화사업을 더 힘있게 내밀어야 훈련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지 않을가요?》

《하여간 훈련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해주시오.》

워낙 자기의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김군옥은 달갑지 않은 어조로 말하고나서 지휘소에 올라갔다. 리학섭은 너그럽게 웃으며 따라 올라갔다.

《정대장동무, 한가지 더 의논할게 있습니다.》

김군옥은 해도를 펼치면서 시간이 없는데 어서 말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훈련에 담당준의동무도 참가시키는게 어떨가요?》

김군옥은 해도를 보면서 마깝지 않게 말했다.

《훈련은 배놀이가 아닙니다.》

《준의동무는 해상에서 군의보장대책을…》

김군옥은 화가 나서 상대방의 말허리를 분질렀다.

《문화부정대장동무! 난 지금 그런 일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기지장동지가 그러는데 해군사령관동지가 벌써 청진기지로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박장습격을 어떻게 하는지 현지에서 직접 보겠다는거지요. 우리가 정박장에 들어가기 전에 〈적〉에게 발견되면 해안포사격을 받게 됩니다. 어뢰정은 발동소리가 요란한데 어떻게 은밀히 정박장에 들어갈수 있습니까. 지금 리대훈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귀를 바싹 강구고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있을거란 말입니다.》

음, 그래서 정대장이 량볼이 홀쭉해지도록 고민하고있었구나.

리학섭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리대훈이가 도대체 누구인가고 물었다.

《내 동창생인데 해안포학부 부중대장이였지요. 지금 청진항입구를 지키는 해안포중대를 지휘하고있습니다.

까놓고말해서 나는 해군복을 입었지만 륙상에서 포청소나 하게 될 그 친구를 숙보았지요. 그 친구는 우리 항해학부 학생들을 무척 부러워했었구요. 그런데 숱한 연유를 수백마일의 배길에 뿌려놓고 우리가 정박장을 습격하려다가 그 친구에게 발견되여 얻어맞으면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체면은 둘째지요. 해군사령관이나 작전과장은 코웃음을 칠겁니다. 정박장습격도 제대로 못하는 너희들이 구축함이나 순양함을 어떻게 까부신다는거야? 그러면 난 할말이 없게 된단 말이요.》

김군옥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정치적식견이 높은 문화부정대장을 내심 어렵게 대하면서 존중해왔다. 그러나 격하니 말투가 곱지 않게 나갔다.

리학섭은 조금도 탓하는 기색이 없이 물었다.

《지휘관동무들과 의논해보았습니까?》

《예, 아무리 의논해야 신통한 방도가 나오질 않습디다.

은밀성을 보장하려고 기관을 끄면 어뢰정이 움직일수 없지요. 그렇다고 전마선으로 어뢰정을 끌고갈수도 없잖소. 참 난사요.》

하도 속이 상한김에 한바탕 우둘렁거린 김군옥은 문화부정대장을 외면하고 정박장습격안을 각종 기호로 표시한 해도에 눈길을 돌렸다.

이때 마침이라 해야 할지 공교롭다 해야 할지 물주전자를 든 김정인이 사령탑으로 올라왔다.

그는 고뿌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발기우리한 물을 부어서 리학섭에게 권했다.

《드세요, 오미자단물입니다.》

리학섭은 눈짓으로 정대장에게 먼저 권하라고 했다. 그러나 정인은 정대장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김군옥도 그가 곁에 나타난것을 모르는척 하고 그냥 해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하는수없이 리학섭은 단물을 받아마시고 우정 큰소리로 탄성을 올렸다.

《히야! 그거 정말 달콤하고 시원하구만.》

김정인은 기뻐서 활짝 웃었다.

《원항해훈련때 오미자단물도 싣고가자요. 항해를 할 때 마시면 좋을거예요.》

리학섭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아주 좋지. 가만, 준의동무도 해방전 청진에서 배를 탔다고 했지요?》

《예, 그건 왜 물으십니까?》

리학섭은 눈짓으로 정대장을 가리켜보이며 눈을 끔벅거렸다.

《지금 정대장동무가 까다로운 문제와 맞다들려서 골머리를 앓고있으니 우리가 가능한껏 도와줍시다.》

김군옥은 그들이 곁에서 자기를 빗대고 이러쿵저러쿵하는게 귀찮아서 헛기침을 했다.

《그때 준의동무가 탄 고기배는 어떤거였소?》

《돛배였습니다. 이른새벽에 남서풍을 타고 먼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밤에 북서풍이 불 때면 돌아오군 했지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었습니다. 배가 크기때문에 노를 선미와 중갑판좌우현에 여러개나 설치했답니다.》

무심중 귀를 기울이던 김군옥은 뭔가 번뜩 뇌리를 치기에 피뜩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의미심장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문화부정대장과 눈길이 마주쳤다. 리학섭은 손바닥을 펴서 들어보였다.

《정대장동무, 우리도 돛을 다는게 어떨가요?》

그래! 그게 바로 묘안이다.

김군옥은 급작스레 흥분이 북받쳤다. 그는 얼음덩이가 갑자기 불덩이로 변한듯 대뜸 얼굴이 환해져서 손으로 해도탁을 탁 치며 환성을 올렸다.

《바로 그거요! 문화부정대장동무, 고맙습니다.》

《허허, 인사를 받을 사람이야 내가 아니라 준의동무지요.》

《거 정말 그렇군요.》

김군옥은 언제 랭담했던가싶게 싱글벙글거리며 김정인을 돌아보았다.

《준의동무, 묘안을 튕겨주어서 고맙소.》

정인은 금시 얼음인가 하면 금시 불같은 변화무쌍한 그 성격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김군옥과의 관계에서 요사이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던것이 봄눈처럼 일시에 녹아버리는것이였다. 처녀의 마음은 봄날처럼 따스해졌다.

《정대장동무두… 고맙긴요. 우리야 한배를 타고있지 않나요.》

그 말에는 어뢰정대의 담당준의이며 더우기는 전술적묘안의 발기자인 자기에게도 원항해타격훈련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는 암시가 담겨있었다.

김군옥은 그 말을 못 들은척 하고 호기있게 소리쳤다.

《정장동무들은 21호정 갑판에 모이시오!》

제일먼저 김도형정장이 기관실에서 뛰쳐나왔다.

리완근을 비롯한 다른 정장들도 21호정으로 훌쩍훌쩍 넘어왔다.

《동무들! 방도를 찾았소, 이걸 보오.》

김군옥은 갑판에 해도를 펴놓고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청진항을 멀리 에돌아 북상하여 그우에 있는 고말산뒤에 가서 표류합시다. 그러면서 바람새를 보다가 밤에 북동풍이 불면 슬쩍 돛을 올리고 기관을 시동하지 않은 상태로 청진항에 들어가자는거요.》

김도형이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돛을 올리다니요? 어뢰정에 무슨 돛이 있다고 그럽니까?》

김군옥은 쩔쩔 혀를 찼다.

《이 코막고 답답한 사람아, 꼭 돛이 있어야 하나. 꿩대신 닭이라고 위장포를 돛대신에 쓰면 될게 아닌가.》

이제야 깨도가 된 김도형은 해도에 있는 청진항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됐습니다, 만세!》

《만세를 부르긴 아직 이르오. 이제 당장 돛을 올려보기요. 어서!》

갑판장과 함께 륙상창고로 달려간 김도형은 위장포퉁구리를 맞들고왔다.

그가 위장포를 펴서 당장 마스트에 달아보려고 서두르는데 김정인이 나섰다.

《가만, 그냥 매달면 안돼요. 위장포를 네겹으로 접고 아래와 우에 삿대를 붙이고 조종끈들도 달아줘야 해요.》

그들은 김정인이 자신만만하게 시키는대로 했다.

김정인은 그물실을 꿴 돗바늘로 삿대를 감은 위장포의 아래단과 웃단을 누벼나가는데 그 솜씨가 여간이 아니였다. 모두들 신기해서 입을 하 벌리고 지켜보았다.

한뽐, 두뽐 손으로 척척 길이와 너비를 재여가면서 삿대를 달 곳엔 삿대를 달고 조종끈을 달 곳엔 조종끈을 단다. 잠간사이에 돛을 신속히 펴기도 하고 감기도 할수 있게 만든 김정인의 얼굴엔 땀방울이 보기 좋게 돋아났다.

이 순간 처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왔다.

홀린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김군옥은 문화부정대장이 팔굽으로 옆구리를 슬쩍 건드려서야 황급히 자신을 수습했다.

《그래 어떻습니까?》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진 물음에 김군옥은 느닷없이 얼굴을 붉혔다.

《좋구만요.》

리학섭은 꼬집어물었다.

《준의동무도 훈련에 참가할 자격이 있지요?》

김군옥은 긴장하게 자기를 지켜보는 김정인의 눈빛을 느끼며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김정인은 유쾌하게 웨쳤다.

《자! 이젠 다 됐어요. 어서 달아보자요.》

그들은 어뢰정21호의 마스트에 돛을 올렸다.

돛이 제대로 펴지자 김군옥은 다른 어뢰정들도 빨리 돛을 만들어서 달라고 명령했다.

저마다 위장포를 가져다가 부두에 펴놓고 돛을 만드는데 눈에는 익었지만 손엔 설어서 잘되지 않으니 김정인을 찾았다. 담당준의로부터 급작스레 기술교관이 된 김정인은 아주 성수가 나서 이리 해라, 저리 해라 지시도 하고 제가 직접 손을 대기도 했다. 워낙 사나이들속에 처녀가 한명 끼워있으면 모든 일이 다 흥겨운 법이여서 부두는 떠들썩했다.

그 모습을 다른 정대의 해병들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고준무가 뒤짐을 지고 슬슬 다가왔다.

그는 돛을 올린 21호정을 보더니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렸다가 쓰겁게 웃었다.

《과연 꼴불견이요. 양복을 빼입은 신사가 베감투를 쓴 격이로군.》

빈정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김군옥은 태연히 응대했다.

《자네 눈엔 베감투로 보이는것이 내 눈엔 날개로 보이네.》

고준무는 코웃음을 쳤다.

《날개라구? 흥, 속도가 빠른 어뢰정이 돛을 달아선 뭘하겠나. 자네 머리가 돈게로구만.》

《남이 베감투를 쓰든 날개를 달든 자네가 상관할게 있나. 제 코나 씻게.》

고준무는 손으로 주먹코를 매만지며 그냥 지부렁거렸다.

《난 하여간 어뢰정대가 무슨 도깨비짓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거던.

저런?! 저게 누군가? 함흥의전의 꽃이로구만.

치마바람까지 쏘이는걸 보니 자네 일이 심상치 않겠네. 거 정말 근심이 되는구만.》

김군옥은 이 독설가와 더 옴니암니하기 싫어서 외면하고 문화부정대장쪽으로 돌아섰다.

《돛조종을 해보았습니까?》

리학섭은 자못 신중한 기색이였다.

《예, 그게 헐치 않습니다. 숙련과 요령이 요구되지요.》

《그럴겁니다. 옛날에 대양을 항행하는 큰 돛배들은 돛조종사가 한명만 없어도 출항을 하지 못한다고 했으니까요. 이제부터 돛조종훈련을 합시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고준무가 물러가자 공교롭게도 한백천이 나타났다.

어뢰정대의 원항해타격훈련을 한사코 반대하던 그는 훈련계획이 비준되고 자기가 승선지도를 맡게 되자 마지못해 찾아온것이였다. 심사가 꼬여있던 그는 어뢰정들의 마스트에 달아놓은 돛을 보고 대뜸 생야단을 쳤다.

《여보! 저건 도대체 뭐요? 당장 떼버리시오!》

김군옥이 정박장에 은밀히 들어가려면 돛을 리용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한백천은 막무가내였다. 워낙 성미가 푼푼치 못한 그는 성칼사납게 두눈을 치뜨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당신 내가 번역한 〈세계해전사〉를 읽어봤지?》

한백천은 수틀리면 군사규정에 어긋나는 당신이라는 부름을 쓰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거기 어느 페지에 어뢰정에 돛을 달고 싸움을 했다는 소리가 있소, 응?》

김군옥은 속이 울컥했지만 애써 자제하며 침착하게 응대했다.

《그런 소리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더우기나 그렇게 해보자는겁니다.》

한백천에게는 그 말이 도전적으로 들렸다.

《여보! 세계해전사에도 류례가 없는걸 구태여 해보겠다고 부득부득 고집을 쓰는 리유가 뭐요? 당신 정말 틀려먹었구만.》

《전례가 없는 방법일수록 효과가 클게 아닙니까.》

한백천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여태 말없이 서있던 리학섭은 은근한 어조로 정대장을 응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작전과장동지, 돛을 다는건 제가 보기에도 기발한 착상이고 승산이 있어보이니 시험삼아 그대로 해봅시다. 다른 묘안이 없잖습니까.》

한백천은 얼굴을 찡그리며 한손을 홱 내저었다.

《그럼 동무들 맘대로 하오. 거 고집두 정말 너무하구만. 닻을 올리든 돛을 올리든 난 일체 상관하지 않겠소. 그러나 훈련결과를 놓고 총화는 맵짜게 하겠소. 그리 알고 매사에 심사숙고하오.》

그런즉 자기는 승선지도가 아니라 강평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는 수상보안간부학교시절부터 제 주장만 고집하고 코대를 쳐들고 다니던 김군옥이 이젠 정대장이 됐다고 승선지도를 나온 작전과장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더우기나 부아가 났다.

꼬부장한 눈초리로 어뢰정들을 둘러보던 그는 해병들과 함께 25호정의 마스트에 돛을 달고있는 녀준의를 보자 실로 아연해졌다.

《여보, 저 녀자는 도대체 뭐요?》

그러지 않아도 김정인이때문에 속을 조이고 작전과장의 눈치를 살피던 김군옥은 억지로 웃어보이며 없는 재간을 부려 슬쩍 넘기려 들었다.

《기억력이 나쁘시군요. 우리 정대 담당준의 김정인동무랍니다.》

《내가 뭐 그걸 모른대. 저 녀자가 왜 어뢰정에 올랐는가 말이요.》

《원항해타격훈련에 참가하겠다고 본인이 너무 간청하기에…》

가뜩이나 기분이 잡쳤던 한백천은 얼굴이 푸르딩딩해서 버럭 언성을 높였다.

《동무 지금 제정신이야? 녀자가 어떻게 전투함선을 탄다고 그래? 세계해전사를 다 뒤져봐도 그런 소리는 없어. 내 언젠가도 말했지만 쏘련에 녀자비행사는 더러 있지만 녀자함장은 고사하고 녀자갑판수도 없단 말이야. 그런 소리를 못 들었어.》

무슨 큰일이나 난듯이 법석 고아대던 한백천은 기지장이 나타나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홍동철은 말썽이 없으면 처제가 어뢰정에 오른걸 못 본척 하려고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일이 이렇게 번져지자 정대장에게 단호히 말했다.

《준의동무는 바다에 나갈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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