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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김현석   비전향장기수
옥  희   그의 안해
정  은   그의 딸
장영초   장기수, 후에 전향함
리순영   남조선의 《민가협》회원
강준철   그의 남편
현도일   월남자
민태오   순영의 이모부,《중앙정보부》형사
홍춘도   이전 《중앙정보부》국장, 《국회의원》

 

무쇠도 녹이 쓸어 부식되고 돌도 풍화되는 긴 세월-40년!

이 기나긴 나날 비전향장기수-통일애국투사들도 검은 머리 백발이 되고 젊음이 빛나던 얼굴에 주름살이 엉키고 꿋꿋하던 허리는 굽어 들었다

긴 세월 외부로부터 가해 지는 부단한 물리적타격, 미칠 지경으로 괴롭히는 정신적압박, 고독... 이속에서 외형은 변형이가고 비틀리였으며 온갖 병마가 내장을 갉아 먹었다

하지만 사상과 신념만은 변함없이 굳건했고 보석처럼 빛났거니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보다 더 괴로운 전향공세를 이겨내고 신념은 지키게 했던가.

그들의 숙원은 무엇이였던가!

 

장장세월 풍우속에
검은 머리 백발되였어라
송죽같이 푸른 절개여
인간의 고결한 존엄이여

 

 

비전향장기수의 인사말

 

 

나는 80년이 넘는 긴 한생을 살아 왔다. 이제 여생이 얼마 없다. 살아 온 날은 길고 살아 가야 할 날은 짧다. 그러고 보면 내 한생의 거의 전부는 이미 지나간 생의 추억으로 남았다.

추억속에 비낀 나의 한생, 그중에서 후반생 40년은 무딘 도끼로 마구 찍어 댄 늙은 나무의 상처와 같다 할가? 나의 백발머리와 깊은 주름살, 굽어 든 허리에는 쓰리고 괴롭고 어두웠던 그 기나긴 세월이 남긴 상처가 지울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에 와서는 돌이켜 보기조차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무슨 글을 쓸 때 어차피 그 상처투성이의 흔적을 건드리지 않을수 없다. 력사는 지식으로만 존재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내스스로 추억에 잠길 때도 있다. 그러면 그 추억은 나를 악몽에서처럼 괴롭히면서 심장을 조여댄다. 그래서 그 집요한 악몽에서 벗어 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조국으로 송환된 후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편지도 받았는데 청년들로부터 편지가 오는것이 제일 나를 기쁘게 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곧 조국의 미래인것이다. 미래가 짧은 나에게 있어서는 이제부터 참다운 인생의 길을 걸어 가야 할 이 청년들이 한없이 소중하게 여겨 지며 나의 생의 연장처럼 생각된다.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의 한 로동청년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30년동안을 감옥에서 어떻게 견디여 냈습니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저 한 질문이 아니고 그저 놀랍게 생각되여 하는 물음이여서 나는 허허 웃으며 《45년간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는데 30년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청년은 백발이 성성하고 놈들에게 고문테로를 당할 때 몽둥이에 얻어 맞아 허리가 휘여 든 이 늙은이를 그저 놀랍게 바라볼뿐이였다. 나는 청년들의 그 존경심과 호기심어린 눈들을 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의 연장으로 될 청년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온 자강도의 한 중학생소녀와 같은 꽃봉오리들에게 내가 걸어 온 수난에 찬 이야기를 하는것이 나의 의무로 된다고 자각했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판문점을 통과하여 조국땅에 들어 선 순간부터 꽃다발을 흔들고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열광적으로 뜨겁게 환영해 준 개성시민들과 수도시민들, 우리 인민들모두에게 답례를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긴긴 세월을 견디여 냈는가 하는 물음에 답변을 주어야 하는것이다.

물론 나의 이야기는 나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분렬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겨레가 안고 있는 아픔과 숙원의 일반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익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추억하기조차 지긋지긋한 악몽 같은 그 나날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즉 지나간 추억을 정리해서 후대들에게 보여 주는것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간주한다.

80고령에 이르고 보니, 그것도 무시무시한 고문과 전향을 강요하는 정신적인 시달림을 근 반세기 겪어 오며 이 나이에 이르다보니 눈도 어둡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기억은 토막이 지고 펜대를 쥔 손은 문장을 만들수 없다. 다행하게도 소설을 쓰는 작가가 나와 친교를 맺고 있는데 그가 나를 도와 주겠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나에게 있어서 큰 고역이면서도 자랑스러운 일인 책을 쓰는 일에 그와 함께 달라 붙었다.

여기서 내가 하는 몫은 물론 토막진 추억을 구술하는것이다.

 

 

 

작가의 머리말

 

김현석로인이 구술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내가 원칙으로 삼은것은 사실에 엄격히 립각하는 성실한 자세를 잃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씌여 진 이야기들은 실재한 사실 거의 그대로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글은 실화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오래전 일에 대한 로인의 추억인것으로 하여 그의 구술은 토막이 지고 앞뒤가 잘 맞지 않으며 부정확하고 흐릿한 점들이 있는데다 관여되는 인물이 또한 많아서 부득이하게 두드러져야 할것은 더 강조하고 반복되는 세부들은 빼고 이야기가 극적으로 흐르도록 사건들을 배치하며 비슷한 인물들은 합치고 필요하면 가명을 쓰는 등 약간한 예술적가공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글은 소설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

 

나는 이야기에 들어 가기전에 먼저 김현석로인의 초상을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보여 드리려 한다.

키는 약간 큰 편이고 몸매는 여위여 훌쭉하다. 머리카락은 은빛이다. 이 은발과 희슥한 눈섭과 눈두덩이를 덮고 있는 흰 장미는 로인의 외모에 그 어떤 신비로움과 지어 숭엄한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발은 전기고문을 여러차례 당한 후과로 다 빠져서 틀이를 했다.

주름살이 엉키고 입귀가 깊이 패인 얼굴은 원래는 닭알형이였으나 지금은 볼에 그늘이 지고 길쑴한 인상이다. 하지만 곡선미가 뚜렷하여 젊은 시절에 상당한 미남자였다는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꼬리가 약간 쳐진 눈은 때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찌르며 때로는 푸르스름한 정기가 넘치여 상대방의 넋을 끌어 당긴다. 그의 눈에는 그의 왕성한 정신력과 완강성, 풍부한 내면세계와 깊은 사색이 그대로 비껴 져 있다. 한마디로 80대에 이르러 남성미가 더욱 완성된듯 싶다.

쏘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을 때는 허리가 꼿꼿하다. 그러나 그가 쏘파등받이에서 등을 떼기만 하면 상체가 앞으로 숙여 지고 등이 휘여 든다.

목소리는 늙은이답게 느릿느릿하고 발음이 분명치 않으나 저력이 느껴 지는 석쉼한 음성이다.

어느 날 내가 김현석로인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없고 며느리만 있었는데 서울에 두고 온 친지의 처자들을 찾아 본다고 나갔다는것이다. 그런데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초인종소리가 울리였다. 며느리가 바깥문을 열었다. 김로인이 오는것 같아서 나도 문쪽으로 나갔다. 짐작이 맞았다. 방금 승강기에서 내린 그가 4륜차에 앉아 있고 그옆에 그를 보좌하여 따라 갔던 아들이 서 있었다.

김로인은 4륜차에서 일어 서서 아들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 왔다. 등이 휘여서 인사하는 나를 이마너머로 올려다 보며 손을 내밀었다.

《오셨소?

《예. 가셨던 일은 잘됐습니까?

내가 인사로 물었다.

김현석로인은 밤색풍뎅이를 벗어 며느리에게 주고 솜덧옷을 천천히 벗었다. 그것을 아들이 받아서 옷걸개에 걸었다.

그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정돈하고 자기가 늘 앉군 하는 팔걸이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 의자에는 그의 허리를 지지해 주는 솜베개가 놓여 있다.

그는 신덕샘물이 든 병을 기울이여 고뿌에 쏟았다. 한모금 마신 후 손수건으로 입언저리를 훔치였다.

나는 그옆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그가 나의 물음에 대답하든지 혹은 다른 말을 하든지 여하튼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차라리… 가보지 말걸 그랬어.》 마침내 김로인이 입을 열었다.

《서울에 떨어 진분의 가족을 찾아 가셨다던데, 그가 누굽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옥살이를 같이 한 장영초야. 내가 북으로 송환되기 전날 찾아 왔댔어.… 내 손을 꼭 붙잡고 부탁을 하는데 처와 자식들을 꼭 찾아 봐달라고 하지 않겠나, 눈물이 그렁해서… 그래 수소문을 해서 처자식들을 찾아 냈는데…》

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것 이다.

나는 김현석로인이 장영초의 처자들을 만났을 때의 비극적상황을 제나름대로 머리속에 그려 보았다.

《장영초로인도 나이가 많습니까?

《나보다 세살아래지.

두 로인은 다 80객이다. 두 로인이 다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을것이고 전향테로를 겪었을것이다. 두 로인이 다 출발은 같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처럼 하늘과 땅 같은 차이로 서로 버그러 지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김현석로인은 조국으로 돌아 와서 40년만에 가족들과 만났으며 고급주택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수 있게 되였으나 장영초로인은 반세기를 기다리고 있는 안해와 자식들과의 상봉, 조국에로의 송환은 이루어 질수 없었다. 방금 김로인이 그의 처자를 만나고 와서 아무 말도 못하는데, 돌아 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가족들이 얼마나 안타깝게 가슴을 쥐여 뜯었겠는가. 나이 80에 이르러 이처럼 뼈 저린 비극을 체험하게 되리라고 그가 미처 생각 못했던가?

생각했을수 있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여난 사람치고 생을 아끼지 않는이가 있으랴. 그래서 죽음을 그처럼 두려워 하는것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과 고통이 그들의 뇌수를 갉아 내고 육체를 파괴했으니 이것을 이겨 낸다는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가 송환되기 전날 밤에 나를 찾아 왔을 때 나는 가슴이 찢어 지는것 같았어!

김로인은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추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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