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머리말
김현석로인이 구술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내가 원칙으로 삼은것은 사실에 엄격히 립각하는 성실한 자세를 잃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씌여 진 이야기들은 실재한 사실 거의 그대로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글은 실화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오래전 일에 대한 로인의 추억인것으로 하여 그의 구술은 토막이 지고 앞뒤가 잘 맞지 않으며 부정확하고 흐릿한 점들이 있는데다 관여되는 인물이 또한 많아서 부득이하게 두드러져야 할것은 더 강조하고 반복되는 세부들은 빼고 이야기가 극적으로 흐르도록 사건들을 배치하며 비슷한 인물들은 합치고 필요하면 가명을 쓰는 등 약간한 예술적가공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글은 소설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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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에 들어 가기전에 먼저 김현석로인의 초상을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보여 드리려 한다.
키는 약간 큰 편이고 몸매는 여위여 훌쭉하다.
머리카락은 은빛이다.
이 은발과 희슥한 눈섭과 눈두덩이를 덮고 있는 흰 장미는 로인의 외모에 그 어떤 신비로움과 지어 숭엄한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발은 전기고문을 여러차례 당한 후과로 다 빠져서 틀이를 했다.
주름살이 엉키고 입귀가 깊이 패인 얼굴은 원래는 닭알형이였으나 지금은 볼에 그늘이 지고 길쑴한 인상이다.
하지만 곡선미가 뚜렷하여 젊은 시절에 상당한 미남자였다는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꼬리가 약간 쳐진 눈은 때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찌르며 때로는 푸르스름한 정기가 넘치여 상대방의 넋을 끌어 당긴다.
그의 눈에는 그의 왕성한 정신력과 완강성,
풍부한 내면세계와 깊은 사색이 그대로 비껴 져 있다.
한마디로
80대에 이르러 남성미가 더욱 완성된듯 싶다.
쏘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을 때는 허리가 꼿꼿하다.
그러나 그가 쏘파등받이에서 등을 떼기만 하면 상체가 앞으로 숙여 지고 등이 휘여 든다.
목소리는 늙은이답게 느릿느릿하고 발음이 분명치 않으나 저력이 느껴 지는 석쉼한 음성이다.
어느 날 내가 김현석로인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없고 며느리만 있었는데 서울에 두고 온 친지의 처자들을 찾아 본다고 나갔다는것이다.
그런데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초인종소리가 울리였다.
며느리가 바깥문을 열었다.
김로인이 오는것 같아서 나도 문쪽으로 나갔다.
짐작이 맞았다.
방금 승강기에서 내린 그가
4륜차에 앉아 있고 그옆에 그를 보좌하여 따라 갔던 아들이 서 있었다.
김로인은
4륜차에서 일어 서서 아들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 왔다.
등이 휘여서 인사하는 나를 이마너머로 올려다 보며 손을 내밀었다.
《오셨소?》
《예.
가셨던 일은 잘됐습니까?》
내가 인사로 물었다.
김현석로인은 밤색풍뎅이를 벗어 며느리에게 주고 솜덧옷을 천천히 벗었다.
그것을 아들이 받아서 옷걸개에 걸었다.
그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정돈하고 자기가 늘 앉군 하는 팔걸이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 의자에는 그의 허리를 지지해 주는 솜베개가 놓여 있다.
그는 신덕샘물이 든 병을 기울이여 고뿌에 쏟았다.
한모금 마신 후 손수건으로 입언저리를 훔치였다.
나는 그옆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그가 나의 물음에 대답하든지 혹은 다른 말을 하든지 여하튼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차라리… 가보지 말걸 그랬어.》 마침내 김로인이 입을 열었다.
《서울에 떨어 진분의 가족을 찾아 가셨다던데,
그가 누굽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옥살이를 같이 한 장영초야.
내가 북으로 송환되기 전날 찾아 왔댔어.… 내 손을 꼭 붙잡고 부탁을 하는데 처와 자식들을 꼭 찾아 봐달라고 하지 않겠나,
눈물이 그렁해서… 그래 수소문을 해서 처자식들을 찾아 냈는데…》
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것 이다.
나는 김현석로인이 장영초의 처자들을 만났을 때의 비극적상황을 제나름대로 머리속에 그려 보았다.
《장영초로인도 나이가 많습니까?》
《나보다 세살아래지.》
두 로인은 다
80객이다.
두 로인이 다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을것이고 전향테로를 겪었을것이다.
두 로인이 다 출발은 같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처럼 하늘과 땅 같은 차이로 서로 버그러 지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김현석로인은 조국으로 돌아 와서
40년만에 가족들과 만났으며 고급주택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수 있게 되였으나 장영초로인은 반세기를 기다리고 있는 안해와 자식들과의 상봉,
조국에로의 송환은 이루어 질수 없었다.
방금 김로인이 그의 처자를 만나고 와서 아무 말도 못하는데,
돌아 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가족들이 얼마나 안타깝게 가슴을 쥐여 뜯었겠는가.
나이
80에 이르러 이처럼 뼈 저린 비극을 체험하게 되리라고 그가 미처 생각 못했던가?
생각했을수 있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여난 사람치고 생을 아끼지 않는이가 있으랴.
그래서 죽음을 그처럼 두려워 하는것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과 고통이 그들의 뇌수를 갉아 내고 육체를 파괴했으니 이것을 이겨 낸다는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가 송환되기 전날 밤에 나를 찾아 왔을 때 나는 가슴이 찢어 지는것 같았어!》
김로인은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추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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