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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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자주 끼였다. 하늘가 멀리에서 소리도 없는 번개가 벙끗거리면 대동강을 거슬러 불어치는 바람이 거리의 창문들에 비방울을 쥐여뿌리군 했다. 곡식들이 혀를 빼물며 자라던 주체36(1947)년 이해 평양학원졸업생들이 함북도의 회령, 청진, 라남, 평북도의 신의주, 강계, 정주, 평남도의 개천 등지의 보안간부훈련소들에 파견되여가고 동해의 북항과 서해의 남포에는 수상보안대들이 조직되였다. 보안간부훈련소 제1소는 개천, 2소는 라남, 제3소는 평양에 지휘소를 두었는데 1분소로부터 6분소에 이르는 매 분소들은 최현, 류경수, 최춘국 등 항일투사들이 지휘하였다. 그 분소들이야말로 래일의 정규군 사단급들이였지만 지금은 련대 혹은 대대로도 불리우고있었다. 전체 훈련소들을 총괄지휘하는 사령부명칭도 별로 눈에 띄지 않게 《보안간부훈련대대부》라는 소박한 이름을 달고있었는데 대대부 참모장은 안길이였다. 그 역시 비록 겉으로는 중앙경위대 대대장으로 임명된 강상호와 동일한 급으로 보였지만 사실상 안길은 새로 건설될 정규적혁명무력의 총참모장이였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중요지휘성원들로는 대대장 최용건, 문화부대대장 김일, 포병부대대장 김봉률 등이였는데 안길휘하의 참모부 훈련참모로는 고윤이 임명되였다. 서울에서 로구 리승만이 《북의 오석산숲속에서 호랑이들이 자라고있다》고 비명을 지를무렵이였다. 강점 첫날부터 괴뢰군창설을 미친듯 다그쳐온 미제나 리승만으로서는 북에서 어느새 그처럼 빨리 군건설을 다그쳐올수 있었는지 상상도 할수 없었을것이다. 어느덧 평양학원에서는 제2기생들이 졸업을 앞두고있었고 중앙보안간부학교(정치부교장 김경석, 군사부교장 오진우)에서도 리승만이 《호랑이들》이라고 한 중급군사간부들이 육성되고있었다. 평양경비사령부도 기마대대를 포함한 4개 대대로 증편되였다. 보안간부훈련소 분소들에서는 76㎜ 포대대와 120㎜포대대들이 실탄사격훈련에 들어갔고 평양문수비행장에는 첫 비행대대가 조직되였다. 평양학원항공과 졸업생들로 꾸려진 비행대대장은 리학이였다. 리학은 승용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였다. 저녁무렵이였다. 운전수는 리학이 여느때처럼 보안간부훈련대대부로 찾아가려니 했던것 같다. 막상 대동교우에 올라서려 할 때 리학이 소리쳤다. 《가만, 차를 세우오. 여기 어데 적당한데 세우고 기다리오.》 그는 대동교를 천천히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부위가 뜨끔뜨끔해났다. 지난해에 있은 사고의 후과였다. 평양학원에서 있은 일이였다. 회령비행장에서 가져온 일본제 《9-70》전투기를 타고 시험비행하던중 갑자기 비행기의 모든 계기들이 멎어버렸다. 일본놈들이 도망을 치면서 휘발유통구멍마개가 공중에서 절로 뽑아지도록 해놓고 스위치가 합선되도록 작간을 꾸며 놓은줄 알지 못했던것이다. 정비원들의 기술이 부족한탓에 그것을 발견할수 없었다. 그날 리학이 비행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지상에 런락하자 시험비행을 지켜보던 안길이 빨리 락하산을 타고 내리라고 무선으로 지시하였다. 그러나 리학은 귀중한 비행기를 그대로 내버릴수 없었다. 그 한대한대의 비행기들이 장군님의 수첩에 적혀져있는것이였다. 리학은 고도 천에서 가까스로 휘발유를 멈추긴 했으나 프로펠라가 멎어버린것만은 어찌할수 없었다. 고장난 비행기를 활주로에 내려앉히려 무진애를 썼으나 공교롭게도 지원물자를 싣고 들어서던 달구지를 들이받을번 했다. 멋모르는 달구지군이 비행기만 쳐다보고있었고 그 비행기가 자기한테로 미끄러져내리자 소와 달구지는 줴버리고 정신없이 풀숲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리학은 뜻밖의 장애물을 피하느라고 비행기를 간석지땅으로 휙 돌렸다. 흐물흐물한 간석지땅이 뒤번져지고 비행기는 감탕속에 구겨박혔다. 리학은 치명상을 입었다. 사골, 경골, 이발이 부러지고 출혈이 멎지 않았다. 평양학원군의소에서 온갖 대책을 다 취했지만 끝내 살릴 가망이 없다고 본 군의들은 그를 치료실 한쪽구석에 밀어놓고 백포를 씌워놓았다. 안길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비행사를 살려내야 한다고 하시며 평양에서 유능한 의사들과 의료기구들, 약품들을 즉시 보내주시였다. 그는 다시 수술대우에 올랐다. 죽음을 선고받은 그였었다.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고있었고 문을 닫고있던 때였다. 그러나 그 문을 다시 열고 그를 소생의 침대우에 또 올려놓았다. 끊임없이 수혈을 하며 긴장한 치료전투를 벌렸다고 한다. 지금 그의 몸에는 수많은 군의, 간호원, 평양학원학생들의 피가 흐르고있다. 장군님께서 넣어주신 뜨거운 사랑이 피줄마다에서 맥박치고있다. 의식이 회복되던 날 장군님께서는 평양학원에 와계시였다. 담당의사가 양말을 신은채로 달려나가 그 소식을 알렸을 때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즉시 군의소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시려 했다. 그러다 무춤 서시였다고 한다. 《아니, 그래선 안돼, 환자가 흥분하면 또 잘못될수도 있소.》 문고리를 놓고 돌아서신 그이께서는 앞으로는 절대 위험한 시험비행을 시키지 말라고, 그를 곧 정부병원으로 후송하여 빨리 완쾌시키라고 하시였다. 얼마전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6개월전의 일이다. 그 6개월의 많은 시간을 혼수상태에서 보낸 그였으므로 불과 엊그제 일같이 여겨진다. 대동교너머에서 전차가 땡땡 종소리를 울린다. 레루우를 굴러가는 차바퀴소리, 다리우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비행복을 입은 그를 향해 반갑게 눈웃음을 치며 뭐라고 소곤거린다. 자전거를 밀고가던 한 중년사나이는 쭈그러든 농립모를 벗어 인사까지 한다. 무어라고 소리치며 손저어주는 녀인, 눈굽이 저릿저릿해진다. 새 조선의 비행사를 기쁨어린 눈빛으로 반겨주는 저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여야 한다. 조선사람의 슬기와 재능을, 장군님군대의 기백과 투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대동교복판에 이르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아래를 살펴보았다. 교각높이는 9m로 표시되여있다. 이어 한 경간의 너비를 걸으며 재여보았다. 대략 75m 정도이다. 제일 합당한 곳을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경간으로 보았다. 《아저씨, 무얼 보나요. 물고기를 잡으려구요?》 녀인의 손목에 이끌려가던 한 소년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있었다. 리학은 소리없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비행기를 타려구 그런다.》 《비행기?… 비행기가 어데 있나요?》 《있지, 있어도 아주 많단다. 래일 아침 여기 나오렴. 그럼 비행기가 물우로 미끄러져가는걸 보게 된다.》 녀인이 웃으며 소년을 잡아끌었다. 《얘, 넌 비치지 않는데가 없구나.》 귀여운 소년이였다. 어머니에게 끌려가면서 《나 비행기 볼래. 비행기가 물우로 날아간다구 했어.》 하고 떼질했다. 《그건 아저씨가 노느라구 한 소리야. 비행기야 하늘을 날지 물우로 미끄러져간다던?… 어서 가기나 하자.》 리학은 그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급히 차있는데로 되돌아갔다. 인제는 자신이 있다. 대좌 쑤하레브동지, 2차대전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당신과 또 겨루어봅시다. 우린 비록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뗀 인민공군이지만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든든한 배심이 있습니다!… 하고 그는 속으로 부르짖고있었다. 대좌 쑤하레브는 문수비행장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쏘련비행사이다. 우리의 첫 비행대대가 문수비행장에 도착하여 훈련을 시작하자 쑤하레브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비행기가 뭐 소달구지를 모는 일인줄 아는가. 벌써부터 비행훈련이라니 이발도 안난게 뼈다귀추렴을 하겠다는것이 아닌가 하면서 야단을 쳤다. 적어도 쏘련공군아까데미야에서 4년이상 교육을 받은 다음에야 비행기를 탈수 있다는것이였다. 그때 리학은 웃으며 말했다. 《우린 그렇게 오래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쑤하레브는 항공리론과 기술은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이다 하는 단순한 수학문제풀이가 아니라고 력설하면서 이 무모한짓에 대하여 당장 김일성동지께 보고드려야겠다고 떠들기까지 했었다. 《대좌동지.》 리학은 말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지금보다 더 빨리 비행술을 익힐것을 바라고계십니다. 남들이 10년을 걸렸다고 해서 우리도 꼭 10년이 걸려야 한다는법은 없다고, 남이 열걸음 걸을 때 우린 백걸음을 내짚어 따라앞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쑤하레브는 오래동안 눈시울을 실룩거리며 마치 자살을 결심하고 벼랑끝에 나서는 사람이라도 보는듯 비행기에 오르는 리학을 바래우고있었다. 그러나 유능한 비행사인 그는 곧 리학의 비행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선사람이 그렇게 비행기를 잘 타다니… 잘 믿어지지 않는 일이요.》 그 말이 리학을 흥분시켰다. 《조선사람》이라고 한 그 한마디에 숨어있는 미묘한 의미를 참고 견딜수 없었다. 리학은 그에게 실력을 겨루어보자고 청했다. 그때 쑤하레브는 모욕을 받은것같이 불현듯 낯색이 질렸다. 벌거우리해진 얼굴우의 더부룩한 눈섭이 엄하게 찌프려지고 가늘게 좁혀뜬 눈에서는 분노의 불꽃이 튀여나왔다. 《난 쏘련군 대좌요.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120회 공중전을 하고 도이췰란드비행기 62기를 격추한 쏘련영웅 꼬체또브와 한 부대에서 싸운 전우이고, 나자신 열한대의 적기를 격추했소.》 이어 그는 이완 꼬체또브대좌(지금은 공군사령관)가 62기, 알렉싼드로 보끄리슈낀중좌가 59기, 그리고리 레치깔로브대위가 56기 격추… 등 순위를 꼽아가던 끝에 자기가 전 쏘련공군적으로 스물세번째에 속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군모채양을 들어올리고 열을 내여 내뿜는 그의 장광설을 끝까지 참을성있게 듣고나서 리학은 정중히 말했다.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야 공중전을 해보자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비행술도 배울겸 한번 청해본것입니다.》 쑤하레브는 두눈을 슴벅이더니 《좋소.》 하고 말했다. 그리하여 오늘 실력을 겨루는 경기가 있었다. 첫 경기는 문수비행장활주로에 T자표식을 하고 비행기로 착륙하면서 비행기날개와 동체로 T자를 덮는 경기였고 두번째로는 공중에서 연기로 8자를 그리는것이였다. 두번 다 쑤하레브가 패했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하여 불성모양이 된 얼굴을 리학에게 돌리고 그는 아주 낮게, 신음소리처럼 속삭이였다. 《나는 교예사가 아니라 전투비행사요. 진짜 실력을 겨루자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오. 이번엔 저 다리(대동교)밑을 비행기로 꿰여보자는거요. 해보겠소?》 리학은 말없이 머리만 끄덕이였다. 그들은 이 사실을 절대 비밀에 붙이고 래일 아침 일찌기 경기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리학은 사전에 대동교를 돌아보고 자기가 꿰지를 경간까지 확정하였던것이다. 맑은 아침이였다. 솜덩이같은 구름쪼각들이 점점이 널려져 연기처럼 사라져가고있을뿐 하늘은 유리같이 투명했다. 그 푸른 하늘을 리학은 바라보고있었다. 소생된 삶의 기쁨을 안고 마음껏 날게 된 조국의 하늘이였다. 그는 자기가 오늘 경기에 나서는것이 잘 된일인지 아닌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선사람…》 하던 쑤하레브대좌의 그 말, 조선사람이 어떻단 말인가?!… 그는 쑤하레브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쳐서야 피끗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의 파아란 두눈에 미소가 비껴있는 그것이였다. 친근한 벗을 대하는 정답고 선량한 미소, 그의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리학, 당신은 내 마음에 드오.》 《?!…》 리학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있는지 알수 없어 물끄러미 마주보기만 했다. 《당신은 용감한 비행사요. 그렇지만 이제라도 늦진 않았소.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니 잘 생각해보오. 자존심따위는 싹 내던지고…》 리학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해봅시다. 약속대로.》 《오- 역시 용감한 비행사답소.》 그는 한손을 약간 들며 웃음어린 인사를 했다. 《전쟁시기 우린 전투에 나갈 때 늘 웃으며 인사를 나누군 했소, 또 만납시다. 리학, 유쾌한 마음으로.》 역시 그는 전투비행사답게 의젓하고 대범하고 솔직한 사람이였다. 리학이도 그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성공을 바랍니다.》 드디여 그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개앞머리에서 해빛이 자글자글했다. 한없는 쾌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과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충동… 지상에서의 질주는 비록 그것이 최고속을 놓은 승용차라 할지라도 2차원적운동 즉 앞뒤와 좌우측면에 한정되나 비행기는 3차원적운동상태이다. 무제한한 공간, 앞뒤와 좌우는 물론, 우와 아래 할것없이 뜨고 내리고 날며 뒤집기를 자유로이 할수 있다. 매 순간순간이 위험을 동반하는 짜릿한 쾌감의 련속이다. 하기에 비행사는 싫증을 모른다. 두려움을 사랑하며 모험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을 멀리한다면 그는 벌써 비행사의 혼을 잃어버린것으로 된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양각도상공을 선회하였다. 공중전을 앞둔 추격기비행사들처럼 상승을 마치자 수평비행으로부터 선행비행에로 넘어간것이다. 첫 공중조작비행으로서 반전(180°돌리기)을 하고 주전(원을 그리는것)에 이어 강하를 시작하였다. 리학이 먼저 초저공으로 대동교 두번째 정간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천개유리에 물방울들이 튀였다. 이것은 비행기가 물표면으로부터 3m정도로 날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물면에서 일어나는 세찬 회오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는것이다. 그는 조종간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입술을 꽉 악물었다. 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그때엔 끝장이다. 비행기가 물속에 구겨박히든가 란간에 부딪쳐 무서운 폭발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버릴것이다. 눈앞이 흐려졌다. 번개처럼 마주치는 대동교, 세차게 뿌려치는 물보라속에서 거대한 콩크리트벽체가 갑자기 커지며 덮쳐들고있었다. 그는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경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눈을 쪼프리고 저도 모르게 《윽-》 하고 신음소리를 내뿜었다. 순간 《앙!-》 하는 세찬 소음이 귀청을 때렸다. 하늘과 물결을 쩍- 가르며 대기를 찢어발기는 그 소리, 발동기의 동음이 교각에 부딪쳐 대기를 찢고 터쳐놓는 거센 충격파였다. 비행기가 경간을 꿰질러나간것이였다. 대동교로 아침출근길에 올랐던 사람들이 난데없는 비행기의 돌입과 순간의 무서운 그 음향에 서로 부둥켜안고 쓰러지고 굳어져버린채 한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 량쪽 대안을 하얗게 덮고있던 사람들이 팔을 흔들어주는것을 본것은 다시 선회를 시작했을 때였다. 뒤따라 저공비행을 시작한 쑤하레브는 대동교의 중심경간을 꿰려고 돌입했으나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상승하고 말았다. 리학은 환호하는 사람들의 머리우를 날며 날개를 흔들어 답례를 보냈다. 그러고도 공중에서 두번세번 반전을 하고야 기수를 돌렸다. 비행장에서는 먼저 착륙한 쑤하레브가 리학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리학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당신은 훌륭합니다. 리학,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의 솔직성에, 수치심을 억누른 그의 꾸밈없는 고백에 리학은 감동되였다. 《당신도 역시 훌륭한 군인입니다. 쑤하레브대좌, 전투비행사다운 품성을… 존경합니다.》 전체 비행대대가 리학에게로 달려오고있었다. 쏘련비행사들과 기관사, 통신수들도 뛰여왔다. 얼싸 부둥켜안고 팔목을 잡아끄는가 하면 축하와 경탄의 웨침소리를 우박처럼 퍼붓기도 했다. 리학이를 둘러싼 그 많은 사람들속에서 리학은 어줍게 웃고만있었다. 그 많은 찬사와 질문의 웨침에 일일이 대답하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말없는 그의 웃음이 끝없이 퍼부어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였고 진정어린 축하에 대한 답례였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곧 가셔졌다. 안길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의 목소리는 엄하였다.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동무가 이자 대동교밑을 날았소?》 하고 물었는데 딱딱하고 실무적인 그 목소리에서 그의 얼음장같이 차고 날카로운 분노가 쩡쩡 울리고있었다. 《곧 여기로 오시오. 장군님께서 기다리시오.》 하여 그는 다시 차를 타고 대동교를 건느게 되였다. 자기가 비행기를 타고 꿰지른 경간우로 차가 달릴 때 웬일인지 가슴이 졸아드는듯 했다. 이제 다시 그밑을 날아지나라고 한다면 선뜻 대답이 나올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아니다, 필요하다면 열번, 스무번이라도 꿰여나갈것이다. 비행사들은 그가 비록 수백회의 비행기기록을 가지고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비행을 앞둔 때엔 야릇한 흥분상태에 잠기군 한다. 그것을 공포라고 한다면 거짓말로 될것이다. 바로 그러한 새로운 느낌, 야릇한 흥분이 대동교우를 달리는 그의 전신을 짜릿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수 없었다. 사전에 보고하지 않은것때문에 안길참모장이 그처럼 분노한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 대동교우로 건너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내다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분망하신듯 했다. 오래 기다렸다. 장군님집무실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았다. 당과 정권기관의 간부들, 공장지배인(리학이도 언젠가 본 평양기계제작소 지배인이였다), 항일빨찌산투사들도 있었다. 최현, 최춘국, 류경수, 오진우… 서기에게 물어 그들의 이름을 알았다. 평양학원에서 알게된 최용진, 조정철, 주도일, 심태산 등 사람들과 별로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서는 하나같이 쇠소리가 울려나오는듯 했다. 특히 최현의 구붓하니 휘여든 숱진 눈섭과 두툼하게 맞물린 입술과 걸음씨는 인상깊었다. 바로 그가 집무실에서 나오다가 리학을 무섭게 노려보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비행산가?》 그가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뭔가? 누가 그런걸 붙이구 다니라구 했어?》 그가 무엇때문에 눈알을 부라리는지 리학은 알수 없었다. 엉거주춤 일어서며 어정쩡하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최현은 굵은 손가락으로 자기 코밑을 문질러보더니 버럭 소리질렀다. 《그거말이야, 코수염! 그런거, 왜 아직 붙이구 다녀?》 그는 뒤따라 나오는 안길에게로 획 돌아서며 따지고들었다. 《이건 2중규률이 아니구 뭐요, 참모장동무?!》 안길은 처음 어리둥절했으나 최현의 눈길을 따라보고 사태를 알아차린듯 했다. 《아! 이 동문 유명한 비행사 리학이요.》 《그럼 난 유명한 빨찌산이 아니란 말인가?》 《유명하지. 그래서 더욱더 코수염은 필요없소. 그런게 없이도 최현동문 세상이 다 알지 않소.》 《그럼 이 친군?》 《이 사람도 최현동무만큼 유명해지면 저절로 코수염을 밀어버릴거요.》 안길은 더 긴말할새 없다는듯 리학에게 손짓했다. 《자, 들어가기요.》 그러나 최현이 리학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까지 불그락푸르락하던 그같지 않았다. 숱진 눈섭을 쭝긋거리며 능첩스럽게 웃더니 리학의 귀에 대고 여전히 큰소리로 말했다. 《동무가 대동교밑으로 비행기를 몰았지. 바늘귀를 꿰듯이!… 내 들었당이. 아주 괜찮아. 이 사람, 코수염두 멋있구.》 그의 이 말에 고무되여 리학은 장군님집무실로 들어섰다. 눈에 익은 집무실, 그가 이 방에 들어서는것은 벌써 네번째이다. 장군님께서 역시 여느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의 건강에 대해 물어보시고 비행대의 일과며 훈련정형도 알아보시였다. 이어 쏘련비행사와 실력을 겨루게된 자초지종도 귀담아 들으시였다. 미소를 머금고 가끔 머리를 끄덕이시군 하였다. 다만 그것을 왜 미리 보고하지 않았는가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리학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입속말처럼 나직이 말씀드렸다. 《쏘련비행사가 절대 비밀에 붙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장군님! 그와 그렇게 약속했기에… 말을 못했습니다.》 《음-약속이야 지켜야지.》 리학은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안길의 분노가 무엇때문인지 비로소 알게된것이다. 그러나 곁에 앉은 안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였다. 수첩에 써놓은 글을 들여다보고있었으나 어느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 싶었다. 가끔 리학이쪽을 스쳐보는 그의 눈빛은 엄엄하였다. 아니, 거의나 매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것이 리학을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 가벼운 미풍에 창가림이 흔들거렸다. 이윽고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내가 리학동무랑 부른것은 한가지 중요한 과업을 주기 위해서요.》 순간 리학은 머리를 번쩍 쳐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그를 눌러앉히며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각지의 보안간부훈련소들에서는 벌써 정규군의 면모가 잡히기 시작했소. 나날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있소. 정치사상적준비에서나 군사적준비에서나 성과가 대단히 크오. 그래서 보안간부훈련대대부에서는 어느 한 단위의 시범전술훈련을 조직하기로 했소. 동무도 알고있겠지만 매 훈련소는 지금 대대급으로 정해져있지만 후엔 사단급규모로 발전하게 되오. 현대전의 요구에 비추어 그러한 사단급전술훈련에는 꼭 항공지원이 필수적인데… 리학동무, 비행대대의 훈련을 다그쳐야겠소. 유능한 비행사들을 더 많이, 더 빨리 양성하기 위해 힘써주시오. 동무에게 맡겨진 임무가 대단히 중요하오.》 《장군님, 알겠습니다. 훈련을 다그치겠습니다!》 흥분으로 하여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지금 당장 단독비행을 할수 있는 비행사는 몇명이나 되오?》 《열명정도 있습니다.》 《음- 열명, 그것도 대단하지, l년새 전투비행사 열명이 나왔으니… 그들 모두가 리학동무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수 있소?》 《…》 그는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이미전부터 비행기를 타보았거나 새로운 사람들속에서도 담차고 재능있는 비행사들이 적지 않게 자랐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였다. 그런데 비행사의 경험은 비행회수와 시간과 직결되는것이다. 《알만하오.》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나 목표를 높이 정하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리고 또 한가지…》 그이의 안색은 근엄하시였다. 《리학동무! 동무에게 지워진 책임이 큰것만큼 동문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요. 동무도 평양학원에 가있었지만 학원의 모든 소대장, 중대장들은 다 항일빨찌산출신들이요. 각지의 보안간부훈련소 대대장, 중대장들도 같소. 그밖에 철도경비대, 경비사령부의 대대, 중대급 지휘관들도 그렇고… 오직 비행대대의 지휘관만이 례외요. 무슨 말인지 알만하오?… 리학동무, 모험하지 마시오. 객기를 부려선 안되오. 동문 언제든 우리 인민공군의 첫 지휘관들중 한사람이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엔 사소한 자유주의도 금물이요.》 리학은 불현듯 숨이 차오르고 눈앞이 아찔해지는것을 느꼈다. 장군님께서 엄하게, 분노하신 음성으로 질책하셨더라면 이렇듯 가슴이 쓰려나지는 않았을것이다. 눈을 들수도 없었다. 창가로 흘러든 해빛이 바늘끝처럼 콕콕 눈을 찌르는듯 하였다. 장군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실 때까지 그는 숨도 쉬지 못하고 바닥에 구멍이라도 뚫을듯 발끝을 방바닥에 힘껏 박고있었다. 《물론 모험도 필요하지. 모험을 두려워하고서야 무슨 군인이며 비행사겠소. 그러나 쓸데없는 모험은 객기에 불과한것이요. 우리가 인민공군을 건설하는 목적이 뭐겠소. 해방된 내 나라, 우리 인민을 지키기 위한게 아니겠소. 동무가 아닌, 동무가 키워낸 다른 비행사가 대동교밑을 꿰고날았다면 얼마나 좋겠소. 자기의 비행술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대받던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얼마나 빨리 자랐는가를 검증받기 위해서 그랬다면 말이요. 내가 바라는것이 바로 그것이요. 모든 비행사들을 담차고 슬기롭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늘의 결사대원들로 키우시오. 당과 조국이, 우리 인민이 그걸 동무에게 부탁하고있소.》 눈굽이 조여들다 못해 아프게 떨리기까지 했다. 잘 비다듬은 그의 코수염이 흠칫거리고 목에서는 뜨거운 물결이 분수처럼 솟구쳐올랐다. 금시 터질것같은 오열을 씹어삼키며 그는 부르짖었다. 《장군님,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좋소. 나도 그걸 믿소. 그걸 믿고있기에 부탁하는거요.》 실룩거리는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여나오고있었다. 모진 후회와 목메인 기쁨, 하지만 느닷없이 기쁨이란 웬말인가?… 그는 깨닫고있었다. 전날의 리학이 아닌 전혀 새로운 리학이 지금 태여나고있음을… 그것이 그를 울게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리학은 대동교에서 차를 멈추고 걸어서 건너갔다. 검푸른 물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가끔 마주오는 사람들과 부딪치군 하였다. 그가 꿰질렀던 경간으로 남포에서, 송림에서, 강선에서 떠나온 배들이 유유히 강을 거슬러오르고있었다. 그 웃쪽 련광정앞에서는 물오리들이 열심히 자맥질을 했다. 누군가와 또 부딪칠번 했다. 《왜 그러슈, 무얼 그리 살피고있수?》 땀에 절은 삼베등거리를 걸친 늙은이였다. 잔등엔 빈 지게를 지고 한손엔 커다란 숭어 두마리를 꿰들고있었다. 장작단이나 팔고돌아가는 길인듯 했다. 《아, 안됐습니다. 강물을 좀 보느라구.》 《하- 별난 사람 다 있군. 강물을 첨 보는가?》 리학은 말없이 머리를 돌리고 또 물결우에 눈길을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 그 강물우에 비쳐졌던 비행사의 모습은 멀리 사라져갔다.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경간을 꿰질러날던 비행기와 우쭐렁거리던 비행사가 비껴있던 그 물결은 지금쯤 바다로 흘러들고있는지도 모른다. 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나 물은 그 물이 아니다. 지금 물결우엔 새로운 리학의 그림자가 얼른거리고있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뒤를 쫓아온 승용차는 돌아보지도 않고 활개치며 걷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