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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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너머로 해가 기울어지자 강기슭의 누렇게 황이 든 나무숲은 시꺼먼 어둠속에 우듬지까지 잠겨들어갔다. 장자강물결우에 벌거우리하게 번져지던 락조의 여광도 가뭇없이 사라져가고 검푸른 하늘에서는 마가을의 싸늘한 랭기에 파랗게 질린 별들이 하나둘 눈뜨기 시작했다. 밤이 왔다. 한종삼은 어깨에 메고있던 그물망태를 허리에 매고 사방을 두릿거렸다. 처음 와보는 도회지여서 또 길을 묻지 않을수 없었다. 삼베보퉁이를 들고오는 아낙네를 멈춰세우고 《마사오곡마단》이 지금 어데서 공연하는가고 다급히 물었다. 녀인은 삼베보퉁이를 옆구리쪽으로 바싹 끄당겨안으며 벌레씹은 상을 하고 시허연 눈자위를 굴리고있는 그를 놀라서 쳐다보았다. 《모- 몰라요, 난.》 커다란 자배기를 머리에 이고가던 두부장수할머니가 걸음을 멈추었다. 《곡마단구경을 가우?》 《예, 할머니.》 《그게 무슨 구경거리라구 그리도 극성인지 원.》 할머니는 한손으로 물에 젖은 귀밑머리를 넘기며 혀를 찼다. 《먼데서 오는가부지?》 《예, 영천서…》 《저런! 수백리길을 걸었겠구만.》 《예, 할머니. 어서 길이나 대주시유.》 할머니는 땅거미진 거리를 이쪽저쪽 가리키며 길을 대주고나서 정갱이가 드러난 홑잠뱅이바람인 한종삼을 훑어보며 또 혀를 찼다. 《원, 정신들이 나갔지. 그 먼데서 오다니.》 그러건말건 한종삼은 대충 고맙다고 하고나서 걸음을 다우쳤다. 고산지대의 도시는 어느새 크고 작은 불들을 일시에 켜고있었다. 환한 전등불, 깜박이는 고콜불, 가스등, 남포등… 길 량옆에 주런이 들어앉은 집들도 대처답게 갖가지였다. 벽돌양옥이 있는가 하면 담장을 높이 둘러친 기와집, 동기와집, 스레트지붕과 양철지붕들이 처마를 맞대고 무슨 음식점이요, 잡화점이요, 리발소, 양화점, 운송점, 대서방, 가게방 등 간판들을 내걸고있었다. 그러나 한종삼은 곁눈 한번 팔지 않고 달음질쳐갔다. 두부장수할머니가 대준 인풍루대밑까지 이르러서야 마주오는 사람을 또 붙들었다. 고개를 푹 떨구고오던 사나이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떠들어댔다. 《마사오?… 마사오란게 대관절 어떤 비루먹은 말새끼야, 아니문 왜놈의 종자야?… 하하- 해방만세를 부른지 언젠데 아직두 그런 쪽발이놈새끼가 곡마단을 끌구 다녀, 엉?!…》 사나이의 쩍 벌려진 입에서 술냄새가 확확 풍겨나왔다. 한종삼은 증을 내며 그를 지나치자 골덴승마복바지에 맥고모를 쓴 사람에게 또 소리쳐 물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점잖고 친절했다. 《마사오곡마단》이 아니라 《암파곡마단》이라고 한다는것과 여러날 더 공연을 한다니 그리 덤비지 않아도 될거라고 했다. 《암파?!…》 한종삼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왜 그러우. 아는 사람이요?》 《아니 저… 그래 어디바루라구요?》 그가 대준 길을 따라 정신없이 또 달려가기 시작했다. 암파, 암파!… 암파라고 불리우던 억대우같은 사나이가 해방전 《마사오곡마단》을 끌고다녔었다. 온몸에 백여라문개나 되는 비수를 차고다니는 사나이, 그자가 바로 한종삼의 약혼녀 월순이를 꼬여서 감쪽같이 끌고 달아났던것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사람들이 붐비고있는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걸음을 늦추었다. 달구지 한대가 찌국거리며 굴러가고있었다. 하릅송아지 한마리가 달구지를 끄는 엄지곁을 돌아치며 처량하게 떨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마주오던 자전거가 짜릉- 짜르릉!- 신경질을 부렸다. 엿판대기를 둘러멘 사람이 종삼에게로 다가왔다. 《수수엿 사시오. 한판대기에 10전씩 막 팝니다. 근태엿, 호두엿두 있구요.》 그에 화답하는듯 골목길 이쪽저쪽에서 장사군들이 저물녘의 맥풀린 싸구려소리를 내질렀다. 《새우젓 사려- 새우젓 사려!-》 《콩깨묵 사시오. 말눈깔사탕도 있소다!》 한종삼은 귀가 먼 사람처럼 아무 대답도 없이 곧추 씨근벌떡거리며 다우쳐 걷기만 했다. 두끼씩이나 굶은 그였지만 배고픈줄도 모르고있었다. 전등불이 환한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축음기소리가 마지막으로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우리 님 동창에 흥 저 달이 비치면 흥 상사불견에 잠 못 들리라 흥
건드러진 그 흥타령곡조엔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 월순이와 마지막으로 마주앉았을 때에도 저 노래가 울리고있지 않았던가!… 그는 귀구멍을 틀어막고싶었다. 부리나케 피해가려 했으나 축음기소리는 지꿎게 뒤쫓아왔다.
은하작교가 흥 콱 무너졌으니 흥 건너갈 길이 난감이로다 흥
한종삼은 화가 치밀어 이를 사려물었다. 은하작교가 어째서 콱 무너졌다는건가.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저따위 노래를 지어냈는가?… 하지만 그날엔 그 노래를 무심히 들었었다. 어정쩡해서 무슨 의미인지도 새겨보려 하지 못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없을것이다. 그날 월순이가 느닷없이 한종삼을 음식점으로 잡아끌었던것이다. 해방되기 전전해 어느 봄날에 있은 일이였다. 아궁이앞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봄날에 새빠지게 새옷을 갈아입으라, 같이 갈데가 있다며 독촉하고 잡아끄는 월순이의 강요에 처음 종삼은 어벙벙해있었다. 그러나 언제 한번 월순이의 요구를 거역해본 일이 없는 그였으므로 일손을 놓고 웃으며 따라갔었다. 그러나 일본인 기다무라의 음식점앞에 이르렀을 때엔 두눈이 굳어져버렸다. 영천읍아근에서는 제일 크고 화려한 료리점으로서 《사꾸라마찌》라고 불리웠는데 출입문유리창엔 《베잠뱅이 입고 짚신 신은 사람은 들어오지 말사》라고 써붙이기까지 했다. 《여긴 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돈은 어디서 나구?》 한종삼의 놀랜 물음에 월순이는 방그레 웃었다. 《좀 있다 다 말해줄게. 지금은 묻지 말아요, 아무것두. 그렇게 하지로?》 전라도태생인 월순이는 4년세월을 영천땅에서 함께 살았지만 아직 고향사투리를 다 버리지 못했다. 걱정 말라고, 그럴만한 일이 있으니 오늘 맘놓고 맛보고싶은게 있으면 다 청하라고 노래부르듯 속삭이며 열려진 미닫이문으로 잡아끄는데 눈같이 하얀 옥당목저고리를 입고 밝게 웃고있는 처녀의 진정을 종삼은 거역할수가 없었다. 께름한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발그레하게 물든 처녀의 얼굴은 산뜻하고 티없이 맑았다. 그들이 자리잡고앉자 바로 축음기에서는 목쉰 일본노래 《밤렬차》가 끝나고 건드러진 흥타령이 시작되였다.
저 달아 보느냐 흥 님계신데 흥
흰쌀밥과 숭어탕 그리고 일본술 기꾸마사무네 등이 상에 올랐다. 또 한번 끔쩍 놀란 한종삼이 이 많은 돈을 어떻게 물려고 하나 따지고들자 월순이는 옆상에 둘러앉은 양장을 한 트레머리녀인과 사각모를 쓴 대학생 그리고 양복점주인내외를 눈짓하며 제발 잠자코 들기만 하라고 했다. 월순이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까닭없이 소리내여 웃군 하는 월순이를 놀라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또 있다. 비록 얼근히 취하긴 했어도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것은 밤렬차의 기적소리와 그때 흠칫 몸을 떨며 걸음을 멈추던 월순이의 해쓱하니 질려있던 모습이다. 《날 부르는것 같애. 정녕.》 하고 월순이 혼자소리처럼 가늘게 속삭였다. 《저렇게 가면… 언제 올가. 언제… 올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담고있는 말인가를 알았더라면… 그러나 알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야 모든것이 밝혀졌다. 월순이가 남기고간 편지를 동생 종금이가 눈물을 삼키며 읽었다.
《종금이 오빠, 용서하세요. 나는 갑니다. 정든 오빠와 종금이, 부모님들께 용서를 빌며 갑니다. 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 맘, 종금이 오빠, 아프고 죄스러운 이 맘 부디 욕질 마세요. 종금이 오빠, 오빠가 아니문 나는 벌써 오래전에 죽은 목숨, 그 은혜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겠나요. 그걸 잊으문 난 급살을 맞을년. 그래서 떠납니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오래 살지 못할거예요. 병이 심해지고 오래 견디지 못하리라는걸 압니다. 그러니 4년세월 돌아가신 우리 엄마나 나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해온 종금이 오빠한테 무얼로 은혜를 갚겠나요. 오히려 내 병때문에 빚만 늘어가고있으니 은혜를 원쑤로 갚는 이 몸 더는 견딜수 없었어요. 용서하세요. 이제 가면 언제 올지. 살아있으면 꼭 돌아오겠어요. 그날까지 부디 안녕. 부모님들과 종금이도 다 부디 몸성히 무고하기를 빌고 또 빌면서. 월순.》
편지와 함께 돈 32원이 봉투에 들어있었다. 그 돈의 출처를 알리는 한장의 문서엔 월순이의 지장이 찍혀있었고… 거의나 한자로 씌여진 그 문서를 한종삼은 평생 잊지 못할것이다.
허락증서
일금 40원야 김월순을 상기금액으로 방매함을 허락함 방매자 김월순(본인) 구매자 암파(성영훈) 소화 18년 4월 21일
그것은 인간매매문서였다. 월순이가 40원에 팔리웠다는것을 증명하는 무서운 종이장이였다. 바로 암파라는 별호로 알려진, 《마사오곡마단》의 감독이며 유명짜한 기합술과 칼뿌리기의 명수 그자가 월순이를 꼬여간것이였다. 그때 월순이는 열일곱살이였다. 가느다란 몸매와 남달리 예쁜 용모 그리고 애절한 속삭임처럼 노래를 부르는것으로 하여 린근에 널리 알려진 처녀였다. 그렇지만 촌구석에 숨어있는 월순이를 곡마단의 감독이 어떻게 찾아낼수 있으랴. 월순이 스스로 찾아간것이 틀림없었다. 그 배라먹을것이!… 누가 저더러 빚걱정을 하라고 했는가, 은혜를 갚으라고 눈을 부라리기라도 했는가?… 숨이 막힌듯 했다. 이마전에서 피줄들이 푸들거리고 눈앞에서는 불찌들이 아물거렸다. 정신없이 영천읍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곡마단은 이미 종적을 감추어버렸었다. 남행차를 타고갔는데 서울이나 부산으로 갔을것이라고들 했다. 그날 한종삼은 난생 처음으로 헉헉 흐느끼며 터져나오는 울음을 얼음쪼각처럼 씹어삼키였다. 병들어 콜록콜록하던 월순이가 한없이 불쌍하고 또 그지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를 죽음에서 구원해준게 누구였던가. 그의 입에서 거품이는 시커먼 피를 빨아주고 약초를 캐여 달여주며 그만큼 피여나게 한게 누구였던가?… 그런데 사전예고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나가다니… 미물같은것, 철부지, 못난이, 바보!… 월순이가 열세살때 어머니와 같이 강기슭 오두막에서 숨져가는것을 한종삼이 발견하고 집으로 업어왔었다. 어머니병이 위독해져 기차에서 내렸으나 갈곳이 없어 오두막에 들어갔었다고 한다. 어데로 가던 길이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중국 상해인가 하는데서 살고있다며 오래동안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죽기전에 아버지한테 딸을 맡기겠다고 강심을 먹고 떠났다는것이다. 끝내 어머니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눈을 감기전에 한종삼의 솥뚜껑같은 두손을 어루쓸며 딸을 부탁한다고, 친동생으로 삼아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리하여 한종삼에게는 꼭같은 열세살나이의 종금이와 월순이 두 녀동생이 있게 되였다. 한쪽은 오빠처럼 실하고 걸싸게 일할줄 아는 동생이였고 한쪽은 섬약하고 글공부도 한 도회지출신의 회초리같은 동생이였다. 한쪽은 괄괄했고 한쪽은 살틀했다. 처녀로 숙성하면서 종금이가 묻군 했다. 《월순인 이제 어떤 사람한테 시집갈려니?》 《종금이 오빠같은 사람.》 《왜 오빠같은 사람이니. 오빠는 싫구?》 《싫다니, 내겐 오빠이상 없어.》 《그럼 됐구나. 가을에 가서 머릴 얹자!》 《아니, 그건 안돼. 내겐 아직 병이…》 결핵때문에 신고했어도 청춘은 날을 따라 피여났다. 구혼자들이 나타났다. 섬약하고 아련한 월순이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불같이 지져대는 놈팽이들도 날을 따라 늘어났다. 노무라의 수리상회 세무원 장근수, 주삼면사무소의 서기, 운송점대리인 려인규, 청부업자 오풍헌… 한종삼은 그런 놈팽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말없이 쇠스랑이나 곽지 혹은 지게작시미를 거머쥐고 먼발치에서 지켜보군 하였다. 목대가 굵고 어깨가 쩍 벌어진 한종삼이 주먹코를 벌름거리며 황소숨을 씨근거리는것을 보면서 마을사람들은 흐뭇하게 웃어대군 하였다. 《세상에 눈씻고도 저런 신랑감이야 찾을수 없지.》 《그러문요. 반달같은 새악시에 온달같은 새서방이지요.》 진정 한종삼이야말로 월순이의 아버지가 오래전에 남기고갔고 병든 어머니가 부리워놓고간 무거운 짐- 즉 병약하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처녀의 인생전체를 훌쩍 걸머지고 변함없이 꿋꿋이 걸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순박하고 성실하고 꾸준한 신랑감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었다. 그러한 그를 버리고 월순이는 달아났다. 《마사오곡마단》이 영천읍에 풍막을 치고 가스등을 켜기 시작한 첫날부터 련 사흘 계속 구경을 다니더니 나비처럼 훌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월순이가 그런 마음을 먹고있었으리라는것을 어찌 알았으랴. 어질고 덩둘하기까지 한 종삼이로서는 사랑을 받기만 하고 아무런 보답도 못할 때 얼마나 괴롭고 쓰라린것인지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이태동안 월순이는 편지한장 써보내지 않았다. 해방이 되여 바다건너 일본땅에서까지 징병과 징용에 끌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있는데 제나라 땅을 돌아치는 월순이에게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별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미소집 딸이 강계에 갔다가 월순이를 보았다고 했다. 한때 영천땅을 들썩하게 했던 암파라는 사나이가 거기서 기합술과 칼뿌리기로 또 소문을 내고있는데 그 곡마단에 월순이도 있더라는것이였다. 이전처럼 무명저고리를 입고있는 아련한 월순이가 아니라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을 정도로 몸에 착 달라붙는 살색옷을 입고 무대에 나와 태가락을 부리는데 막 구역질이 나더라고 했다. 종삼은 호마궁둥짝 같은 그 녀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럴수 없다. 월순이는 절대 그럴 녀자가 아니다. 그따위 수작질을 다시 했다간 주두리를 찢어놓겠다고 을러메였다. 소문을 듣고 한또래 친구들인 쇠득이, 춘보, 순필이 등이 달려왔다. 《당장 가봐라. 가서 월순이를 끌고오라니까.》 춘보가 한 말이였다. 순필이는 꺼지게 한숨지으며 말했다. 《몰래 끌어와야 해. 암파 그 사람이 기합쓰는거 너들도 봤지. 펄펄끓는 연덩이를 입안에 넣는걸. 칼뿌리는 솜씬 또 어떻구. 괜히 쌈판 벌리지 말구 몰래 빼와야 해.》 《그래두 돈은 모아가지구 가야 하지 않을가?》 쇠득이가 말했다. 《병쇠아범한테 부탁해보자. 리위원장 아니가. 돈을 모아줄거야.》 그러나 종삼의 귀에는 그들의 말이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가야 한다는, 빨리 가서 그 미물같은 월순이를 붙들어 억지로라도 끌어와야 한다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하여 그는 베잠뱅이바람으로 무작정 정거장쪽을 향해 달려갔다. 동생 종금이가 옷가지며 약간의 돈 그리고 꽁보리밥과 된장, 감자 등 닥치는대로 그물망태에 넣고 숨이 턱에 닿아 뒤쫓아왔다. 이렇게 떠난 걸음이였다. 월순이를 잡아끌지 않고서는 다시 돌아갈수 없는 종삼이여서 지금 그는 곡마단이 공연한다는 그곳을 향해 헐금씨금 정신없이 달려가고있는것이였다. 드디여 그곳에 이르렀다. 커다란 풍막이 먼저 눈에 뜨이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채찍을 후려치는 소리,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마당 하나쯤은 쉬이 덮을상 싶은 커다란 풍막안에서 불빛이 새여나오고 그속에서 터져오른 탄성이 파도소리마냥 쓸어나오군 했다. 공연이 한창인것이였다. 풍막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밀려다니다가 어느 한곳에서 말뚝에 비끄러맨 방수포자락을 들어올리고 욱 밀려들어가는것이 보였다. 종삼이도 그들속에 끼여들었다. 그러나 곧 빈틈없이 어깨성을 쌓은 사람들의 옹벽에 막혀버렸다. 송곳박을 틈도 없을듯 했다. 흥분에 달뜬 사람들이 무대쪽을 향해 왁왁 고아대고있었다. 《잘한다, 잘해!》 《잰내비한테 물동이를 이게 해봐라!》 《물동이를 이게 해? 공을 차게 해야지. 저것 보우. 조끼까지 입히지 않았수. 수컷이란 말이우.》 《아무려면 대수요. 물동이를 이구 바줄을 타게 해라. 그렇게 해보라니까!》 한종삼은 기를 쓰고 옹벽에 틈바구니를 내려고 했다. 힘꼴이나 쓰는 그였지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증을 내며 눈총을 쏘고 욕질을 해대고 누군가는 주먹질까지 하려고 했다. 사람들의 옹벽 안쪽에서 비릿하고 시큼한 땀냄새가 물씬물씬 풍겨나왔다. 밖의 날씨는 싸늘했지만 사람들이 꽉 들어차 비비적거리는 풍막안은 달아오른 화독 같았다. 열광적인 흥분과 짜릿한 전률이 수백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을 도취시키고있었다. 마침내 무대쪽 방수포천정아래어방은 내다볼수 있게 되였다. 널뛰기를 하는지 아니면 줄넘기를 하는지 머리를 박박 깎은 총각애가 허궁 솟구쳐오르더니 잇달아 꽃목걸이를 건 원숭이가 솟구쳐올랐다. 웨침소리, 휘파람소리, 어떤 중늙은이는 호물때기입을 쩍 벌리고 흐흐흐 웃어대고있었다. 종삼은 또 옹벽틈을 벌리려 했으나 웬 녀자의 기겁한 웨침소리에 흠칫하였다. 그만 젊은 녀인의 옆구리쪽 부끄럼 타는데를 윽박아놓은듯 했다. 그러자 숱한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증을 내고 사납게 을러메기도 했다. 그는 기가 질리여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별안간 《암파다!-》 하는 거쉰 속삭임의 파도가 일었다. 박수갈채가 터지고 숱한 사람들이 키를 솟구며 《암파다, 암파!》 하고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홀연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흐느끼듯 떨며 애절하게 울려오는 바이올린소리… 종삼은 더이상 참을수 없어 젊은 녀인의 어깨를 꽉 누르고 발뒤축을 높이 들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이번엔 아무런 비명도 없었다. 그 녀인마저 숨을 죽이고 자기를 덮쳐누르는 한종삼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따위는 가뭇 잊고있는듯 했다. 마침내 그는 보았다. 처음엔 암파를, 그다음엔 새빨간 불빛속에 알몸처럼 서있는(사실은 살색타이쯔를 입고있는) 소녀를 보았다. 커다란 나무십자가에 못박힌듯한 소녀… 아니 아니, 나어린 소녀가 아니라 월순이였다. 바이올린의 흐느낌소리에 맞추어 속삭이듯, 애원하듯 눈물을 머금고 노래를 부르는 처녀- 그리도 귀에 익은 그 목소리의 임자는 분명 월순이였다.
장장추야 긴긴 밤에 피리소리도 처량하다 님을 그려 서있는 이 맘 어느 누구가 알아주랴
종삼은 자기가 어떻게 되여 앞의 녀인을 비집고 더 나설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덜덜 이발을 떨며 흐느끼듯 중얼거리며 타는듯한 눈빛으로 동그란 불빛속에, 십자가벽을 등지고 서있는 월순이만을 바라보고있었다. 휙!- 시퍼런 비수가 월순이를 향해 날아갔다. 《악!-》 누가 부르짖었는가. 종삼이 자기는 아니였다. 후두둑! 심장이 떨었다. 월순이의 머리꼭대기 십자가 웃쪽에 박혀 푸들푸들 떨고있는 시퍼런 칼날, 또 날아간다. 불빛에 펀득이는 비수, 비수, 월순이의 머리와 동그스름한 어깨모양을 따라 쉼없이 날아가 박히는 예리한 칼날의 흐느낌소리… 좀전까지 떠들썩하던 관중이 숨을 죽인채 얼어붙어버렸다. 쉭- 쉭 하는 금속성의 떨림과 가냘프게, 애처롭게 울고 웃는 월순이의 노래소리만이 계속되고있었다.
날 다려가소 날 다려가소 야속한 우리 님아 날 다려가소 날 다려가소
그것은 종삼이에게 향한 눈물겨운 애원, 피나는 속삭임이였다. 《날 다려가소 종금이 오빠, 날 다려가소.》 애절하고 원망어린 하소연이였고 구원의 부르짖음이였다. 종삼은 그렇게 들었고 그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하여 그는 불시에 《월순이!-》 하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것은 찢기는듯한 아픔의 신음소리였을뿐… 그는 허덕거리며 팔을 내뻗치고 또 한번 울부짖음소리를 터치려 하였다. 순간 옆에 섰던 사람이 우악스럽게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왜 이래. 정신나가지 않았어?… 저 사람을 놀라게 했다간 체네를 죽여!》 그렇다, 자칫하면 끔찍한 변이 일어날수 있다. 그는 입을 항 벌린채 두눈을 흡뜨고있었다. 끔찍한 이 광경을 보지 않으려 몸부림치면서도 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점차 십자가에 묶인 월순이의 온몸륜곽을 따라 수많은 비수들이 촘촘히 박히고있었다. 마지막으로 월순이의 두팔 륜곽도 펀뜩이는 칼날들이 대신하게 되고 한손에 들고있던 빨간 꽃송이가 칼날에 찢겨 파들거리며 떨어져내렸다. 마지막으로 던진 비수가 찢어낸 피방울같은 꽃이파리… 월순이가 십자가에서 나서자 처녀의 자태를 찍은 칼날들만이 불빛을 받아 펀뜩거리는 가운데 암파가 월순이의 손목을 잡고 허리굽혀 인사했다. 미친듯한 박수갈채, 웨침소리… 한종삼은 비로소 뚝 멎었던 심장이 다시 푸들쩍 요동치는것을 느꼈다. 속이 메슥메슥하고 눈뿌리가 아득해졌다. 월순이의 눈물겨운 사연을 알지 못하는 관중들의 격동과 환호에 몸서리쳤다. 아아, 이게 무슨 변인가?… 그는 입술을 꽉 악물고 몸을 떨다가 급기야 다시 사람들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헐치 않았다. 밀고 닥치며 땀을 들쓰고 풍막밖을 나섰을 때 싸늘한 밤바람이 그의 달뜬 머리를 식혀주었다. 그는 느슨하게 풀려있는 그물망태를 다시 단단히 한쪽어깨에 비끄러매고 사람들이 적은 무대뒤쪽으로 갔다. 길게 생각할것이 없었다. 당장 월순이를 찾아 데리고가자, 《날 다려가소, 종금이 오빠. 날 다려가소.》 애절한 그 부르짖음소리가 귀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빛이 새여나오는 곳을 비집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순간 무대쪽의 밝은 불빛이 두눈을 때려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방수포자락을 활 걷어올리고 한걸음 들어서기까지 했다. 웅성거리는 관중석의 소음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가운데 가죽채찍을 들고있는 젊은이와 항아리를 안은 녀인, 가죽잠바를 입은 키작은 사나이 등을 훌 스쳐보았다. 월순이는 코트를 걸치고 풍막을 받치고있는 나무기둥에 이마를 가져다 붙이고있었다. 기침을 터치며 괴롭게 모지름 쓰고있다. 순간 쓰라린 련민의 정과 더불어 눈굽이 쿡 쑤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부르짖었다. 《월순이!》 처녀가 몸을 홱 돌렸다. 사방을 두릿거리더니 그만 《아!》 하는 외마디 웨침소리를 내질렀다. 다음순간 어깨에 걸쳤던 코트가 떨어지고 손에 들고있던 숄을 내던지는것이 보였다. 《종금이 오빠!》 날듯이 달려온 월순이를 와락 붙안고 해쓱하니 질려있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월순이, 인젠 가자…. 나랑 같이 … 가자. 집으로 가자!》 무작정 월순이를 풍막밖으로 끌어내였다. 《그러니… 그러니 날 데리러왔지로?》 월순이의 목메인 부르짖음, 종삼은 혀가 잘 돌지 않아 떠듬거렸다. 《그- 그렇지 않구. 워- 월순일 데리러왔어.》 《종금이 오빠, 정말 잘 왔어요. 난 더 못 견디겠어요, 이러다 죽으면… 다시 못 볼것 같아서 …울었어요. 내내 울면서 … 기다렸어요.》 《됐어, 됐어. 이제 내가… 집에 가문…》 그는 더 말을 잊지 못했다. 누군가의 아귀센 손이 그의 덜미를 잡아 비틀어댔던것이다. 《이건 뭐야. 대관절 어떤 놈팽이야. 엉? 네가 뭐길래 처녀를 꼬여간다는거야. 돼먹지 않게.》 암파였다. 풍막안에서 새여나온 불빛에 가느스름한 그의 두눈이 비수처럼 펀득이였다. 종삼은 몸부림쳤다. 《월순인… 내 약혼녀요.》 《뭣이, 약혼녀, 너따위 촌뜨기가?…》 암파는 세괃게 틀어쥔 손을 놓지 않았다. 《월순인 우리 곡마단에 팔리워왔어. 계약문서에 지장도 찍구.》 《그건, 그건… 옛날일 아니요. 인젠 해방이 됐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요?》 《소용이 없다- 이 자식, 해방이 됐다구 너같은 무지렁이까지 날치는거야. 법은 법대루 있어.》 황소같이 힘세다던 종삼이였지만 선손을 쓴 그자가 덜미를 잡고 우악스럽게 비틀어대는 바람에 도저히 빠져나올수 없었다. 당장 눈알이 튀여나올 지경이였다. 《이걸 노- 놓소.》 누군가 울며 불며 몸부림치는 월순이를 풍막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제서야 암파는 종삼이의 뒤통수를 세게 쥐여박고나서 발길로 차던졌다. 《이 미물같은 자식, 다시 기신거렸다간 사등뼈를 분질러놓을테다.》 그러나 종삼은 그대로 되돌아갈수 없었다. 급기야 암파를 뒤쫓아가며 황소울음소리같이 울부짖었다. 《월순이를 내놓소!-》 그는 자기 얼굴을 후려치는 가죽채찍과 손재주때 쓰던 몽둥이찜질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뜻밖의 소동에 풍막밖을 돌아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악에 받친 암파의 웨침소리가 비수처럼 날았다. 《그놈을 묶어라. 자갈을 물렷!… 바줄을 이리 내. 밥통같은 자식, 미친놈이야, 미친놈!… 여러분, 떠들지 마시오. 술취한 놈인지 미친놈인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다들 헤쳐가시오!》 다음순간 드센 일격이 가해졌다. 울부짖던 기차의 기적소리가 별안간 뚝 그친듯 했다. 뜨거운 내내가 목구멍으로 쓸어드는듯… 종삼은 마지막으로 월순이의 째지는듯한 웨침소리를 간신히 분간해 들었다. 《그러지 마셔요. 제발 우리 오빨 때리지 마셔요!-》 그 다음 입가장자리로 흘러드는 찝찌레한 피맛을 느꼈고 아득히 먼 야공에서 울려오는듯한 월순이의 떨리는 노래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날 다려가소 날 다려가소 야속한 우리 님아 날 다려가소 날…
그 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혼미한 꿈속에서 《날 다려가소》 하는 애통한 속삭임소리만이 멀리 아득히 자꾸만 멀어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