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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10

 

그날도 밤이 늦어 당중앙위원회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이윽토록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이 며칠새 지방도시와 농촌마을들을 다니며 보신 가슴아픈 정경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시였다.

자연재해로 상처입은 땅, 류실된 농토, 흰쌀이 보이지 않는 통강냉이밥그릇들…

전기가 모자라 기차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상점매대들에는 상품이 말라버리고있으며 공장의 설비들은 하나, 둘 녹쓸어가고있었다. 이미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사이의 생산적련계가 끊어지고 적지 않은 공장, 기업소들이 원료난, 자재난으로 생산을 멈추거나 조절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경제에서 이런 혼란이 일어난것은 미제의 극악한 경제봉쇄책동으로 다른 나라들이 우리와의 경제거래에 나서지 못하게 되여 대외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기술과 자금 물자반입이 일체 차단되였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국가로부터 모든것을 충분히 보장받으며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던 일군들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고난의 행군》이라는 생활에 적응되지 못한데 있었다.

사실 일부 우리 일군들은 좋은 제도에서 너무도 편안히 살아왔으므로 일시적인 곤난앞에서 어쩔줄 모르고 허둥거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신채 집무탁에 마주앉으시였다.

대외일군이 올려보낸 자료가 먼저 눈에 띄시였다.

우리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적들의 암해책동에 대하여 반영한 실태자료였다.

적들은 지금 조선사람들이 살고있는 해외의 모든 주민지대들에 막대한 돈을 들이밀어 《아리랑호텔》이요, 《무궁화무역회사》요, 《송학국수집》이요 하는 여러가지 상업편의봉사망들을 차려놓고 우리의 비밀을 탐지하면서 암해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고있다고 하였다. 한편 적들은 분계선과 국경지구로 간첩암해분자들을 침투시켜 갖은 비렬한짓을 다하게 하였다. 현실적으로 몸에 폭발물을 품고 분계선이나 국경지구에 들어왔다가 체포된 간첩들이 한두명이 아니였다. 적들은 일시적으로 우리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틈을 타서 몇줌 안되는 불순분자들과 힘을 합쳐 공화국을 붕괴시키려고 발악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제 더 지체하지 말고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여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보시다 말고 정원으로 나오시였다. 부관이 먼발치에서 그이를 따라가며 지켜보고있었다. 어디서 날아온 비둘기인지 정적이 깃든 정원의 숲속에서 구구거리는 소리가 첼로의 선률처럼 은은히 들려왔다. 그 소리를 받쳐주듯 바로 그이곁에 서있는 은행나무밑둥에서 풀벌레소리가 가늘게 울리고 먼하늘에서는 소쩍새가 구슬피 울었다.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나가야 하는가?)

그이께서는 정원길을 거닐며 자문하시였다.

오늘의 어려운 정세는 지금 조국앞에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고난의 행군, 쏘도전쟁시기의 레닌그라드 봉쇄, 쏘련 공민전쟁시기의 제국주의련합군의 포위환과 같은, 아니 그보다 몇갑절 더 어려운 난관과 역경이 막아서고있다는것을 더 깊이 절감하게 하시였다.

결국 조선과 세계제국주의자들의 대결속에서 벌어지고있는 《고난의 행군》이였다.

자주냐, 예속이냐 하는 민족의 운명을 놓고 그이께서는 사색을 펼치시였다.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 나라에 대한 적들의 군사적모략과 경제봉쇄책동은 절대로 그치지 않는다. 조선의 슬픈근대력사와 다난한 현대력사는 선군정치만이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고있다. 지난 시기나 오늘이나 우리 나라의 지리학적위치는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있지만 공화국의 대외적권위와 군사력에 억제되여 지금까지 그 어떤 침략자도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했던것이다. 그런데 적들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자 《북조선의 조기붕괴설》을 내걸고 침략의 화살을 우리 나라에 집중시키고있었다.

수령님의 서거 3돐이 되는 래년이 적들의 요설인 《3, 3, 3》설에서 한정한 마지막 《붕괴선》이였다.

적들의 발악은 극도에 이르렀고 우리의 《고난의 행군》또한 절정에 달하였다.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것인가?》

그이께서는 다시 자문하시였다.

가장 중요한것은 적들의 그 어떤 악랄한 경제봉쇄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역경을 딛고 높이 일어서는 하나의 본보기, 사회주의수호정신의 모범을 보여주는것이였다.

온 나라 인민에게 그것을 보여줄수 있는 전투지점을 선정하여야 했다.

이제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가 필요하였다.

승화되여가는 김정일동지의 사색의 광야에서 하나의 전선지구가 유난히 반짝이였다. 그것은 바로 자강땅이였다.

그렇다, 그 지구를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로 정하자.

그이의 사색은 자강땅에로 이어졌다.

자강도는 여러면에서 다른 도들보다 불리한 산간지대이다. 공업발전을 위한 자원도, 농사지을 기름진 옥토도, 시원한 벌도 없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이 산간지대사람들은 니탄까지 캐먹으며 일했다지 않는가. 아까운 기술자, 기능공들이 적지 않게 쓰러졌다.

자강도는 교통조건이 나빠 다른 지대와의 생산적련계를 발전시키는데서도 불리하다. 그러니 이 궁벽한 산간지대 도를 《고난의 행군》결속의 본보기로 정하는것이 어쩌면 역설적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창조되는 본보기로 하여 더 큰 감화력과 견인력을 가진다. 자강도에서 일어나는것을 보면 온 나라가 신심에 넘쳐 역경을 디디고 일어날수 있다. 그이께서는 자강도에서 포성을 울리게 하고 이어서 또 새로운 지역에서 혁명의 열풍을 일쿨 계획이시였다. 현재 자강땅은 지대적, 물질적조건은 가장 불리하지만 그대신 여기에는 자랑스러운 우리 혁명의 유산과 전통이 있다.

일찌기 김형직선생님께서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나가신 거룩한 행적이 새겨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걸어가신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이 뻗어있다.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반공격작전의 화살표도 여기서 그으시였다.

자강땅에는 수령님께서 전쟁의 불길속에서 마련해주신 기계공업의 토대도 있었다.

그렇다. 50년대 전화의 그날처럼 자강땅에서 반격의 화살을 긋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결단을 내리시였다.

정원숲에서 벌써 새벽이슬 듣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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