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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31(1942).2ㅡ주체53(1964).3]
1. 백두산의 아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31(1942)년 2월 16일 백두산밀영에서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동지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정숙동지의 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맑은 아침의 나라, 조선의 북변에 솟아있는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과 기상을 안고있는 조종의 산이며 주체위업의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이다. 머리에 흰눈을 이고 만리창공에 솟아있는 백두령봉에 아침해살이 비치면 삼천리강산은 정기에 넘치고 만물은 생의 희열로 약동한다.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에서 시작된 백두산줄기는 남동방향으로 수십리를 뻗어내려 정일봉을 이루었는데 그밑으로 소백수 맑은 물이 굽이쳐흐른다. 여기 소백수골에 백두산밀영이 있다. 백두산밀영은 1930년대 후반기부터 1940년대 전반기까지 항일대전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던 조선혁명의 책원지, 중심적령도거점이였다. 당시 1940년대초는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을 들씌우던 때였다. 일제는 침략전쟁을 아시아전역에로 확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전례없는 공세를 감행하는 한편 우리 인민에 대한 파쑈적폭압과 략탈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시기 혁명의 길우에 가로놓인 난국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고 조국해방의 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최후공격작전을 준비하시는 한편 수많은 소부대와 소조, 정치공작원들을 국내각지에 파견하여 전민항쟁을 성숙시켜나가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서도 국내와 장백지구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느라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였다. 우리 인민은 바야흐로 조국광복의 서광이 밝아오고있던 이 격동적인 시기에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탄생을 민족의 크나큰 경사로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가정은 조선근대력사의 첫 시기부터 대를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싸워온 가장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이다. 고조할아버님과 증조할아버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할아버님 김형직선생님과 할머님 강반석녀사, 작은할아버님 김형권동지와 삼촌 김철주동지, 외삼촌 김기준, 김기송 동지에 이르기까지 일가분들 모두가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고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모든것을 바쳐 싸우시였다. 아버님이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 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이시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치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력사의 새시대, 주체시대를 개척하신 혁명의 영재이시며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조국광복과 민족번영의 대업을 이룩하시여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이 지배하던 우리 나라를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전변시키신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인류의 자주위업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세계정치의 원로이시였다. 어머님이신 김정숙동지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투쟁에 한생을 바치신 항일의 녀성영웅이시며 고매한 덕성을 지니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는 이렇듯 혁명적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아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탄생하신 천출위인이시며 백두산의 아들이시다. 력사의 그날 천연의 요람, 백두산밀영은 크나큰 환희와 기쁨으로 들끓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자제분이 룡마타고 백두산에 내렸다고 환성을 터치였다. 그들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백두성》, 《백두광명성》이라고 칭송하면서 이날의 경사를 아름드리나무들에 글발로 새겨 온 민족에게 알렸다. 《아 백두광명성탄생을 알린다》 《동포여 보느냐 듣느냐 백두산에 김대장 뜻 이을 광명성 솟았다》 백두광명성! 항일의 준엄한 시절에 조선의 혁명가들이 높이 칭송한 이 존귀한 부름에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광복의 홰불을 높이 올리신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더불어 김정일동지께서 영원히 이 나라, 이 땅을 밝게 비쳐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우리 인민의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념원이 소중히 담겨져있었다. 그때로부터 어언 반세기, 세월은 멀리 흘렀어도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발굴된 구호문헌들은 력사적인 그날의 감격을 어제런듯 전하며 김정일동지의 탄생으로 우리 조국, 우리 인민이 받아안은 행운과 영광을 소리높이 구가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탄생은 백두밀림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기약하는 찬란한 해돋이였으며 백두산의 위대한 아들, 시대의 향도성을 맞이한 우리 조국과 인민의 크나큰 경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리실 때부터 남달리 영특하고 뛰여난 천품을 지니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찍부터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충효의 마음이 지극하시였다. 주체35(1946)년 정초 김정일동지께서 어머님과 함께 만경대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증조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붓과 벼루를 내놓으시며 여기에 먹을 갈아 할아버지는 《지원》이라는 글을 썼고 아버지는 《조선독립》이라는 글을 썼는데 우리 증손이는 무슨 글을 쓰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붓을 들어 흰종이우에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정성담아 쓰시였다. 어린 나이에 붓글씨를 척척 쓰는것도 대견스러웠지만 아버님에 대한 충효의 마음이 지극한데 감탄하며 증조할아버님께서는 과시 만경대의 혈통을 타고났다고 여간 기뻐하시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관찰력과 통찰력, 분석력이 비상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년시절에 진지하고 세심한 관찰로 닭이 물을 먹을 때 주둥이를 우로 쳐드는 까닭과 갖가지 꽃들가운데 검은 색갈의 꽃이 없는 리치를 알아내시였다. 그리고 어느해 추석날 저녁 달구경을 하시며 달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 밑에서 토끼가 절구질한다는 전설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하늘높이 날아가는 비행기가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사라지는것과 견주어보시고 그처럼 먼 달속에 있는 토끼가 보일수 없다고 하시며 전설을 재음미해보시였다. 사물현상에 대한 김정일동지의 관찰력과 창조적사고력은 실로 비범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하나의 진흙덩이에 다른 하나의 진흙덩이를 합쳐도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고 꽃잎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하나로 합쳐지는것을 보시면서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둘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때에는 원래의것과 같은 하나가 아니라 더 큰 하나가 되고 여럿이 합쳐져 하나가 될 때에는 굉장히 큰 하나가 된다는것을 알아내시였다. 그리고 작은 시내물이 모여 하나의 강이 되고 여러개의 강물이 모이면 바다가 된다는것, 위대한 장군님을 따르는 우리 인민의 힘은 아무리 합쳐도 하나가 되며 그 힘은 무엇으로써도 당해낼수 없다는 진리도 터득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린시절부터 크나큰 담력과 웅지를 지니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년시절의 어느날 450톤급철갑선 《신흥》호 진수식에 참가하시여 넓은 바다에 비하면 배가 작은것을 보시고 앞으로 큰 배를 만드실 웅지를 품으시였으며 또 어느날에는 만경봉에서 평양쪽을 바라보시면서 앞으로 평양에 10층, 20층, 30층짜리 집도 짓고 50층, 100층짜리 집도 지으며 만경봉에서 평양까지 무지개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그것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게 하겠다고 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린시절부터 열렬한 조국애와 뜨거운 인간애, 소탈한 품성을 지니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새 조선의 모든것을 남달리 아끼고 사랑하시였다. 어느해 여름 대동강가에서 사람들이 폭약을 터뜨려 물고기잡이를 하는것을 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끼고기까지 다 죽는데 그물이나 낚시로 고기를 잡자고 안타깝게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그날저녁 아버님께 낮에 있은 일을 말씀드리시였다. 그후 나라의 자원을 보호할데 대한 대책이 세워지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지우애심이 뜨거우시였다. 색다른 물건이 생기면 동무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동무들이 당하는 아픔과 곤난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면서 진정으로 도와주시였다. 주체37(1948)년 6월 유치원에서 운동회가 있은 날 자전거경기에 참가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승벽을 겨루며 함께 달리던 동무가 넘어지자 달리기를 멈추시고 그를 부축해주시고야 달리기를 계속하시여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생활을 검박하게 하시였다. 보통학생들과 꼭같이 수수한 옷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책보를 들고 학교에 걸어다니시였으며 어쩌다 빛다른 신발이나 책가방이 생기면 동무들과 꼭같이 생활하는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시며 굳이 사양하시였고 추운 겨울날에는 교실난로당번도 빠짐없이 서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지니신 뛰여난 천품은 부모님의 혁명적교양과 영향에 의해 더욱 소중히 가꾸어졌다. 부모님의 세심한 교양과 따뜻한 보살피심은 어리신 김정일동지의 마음속에 열렬한 애국심과 인민에 대한 사랑을 굳혀주었고 원쑤에 대한 적개심과 높은 계급의식을 간직하시게 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잘 받들고 기쁨을 드리는것이 곧 나라가 부강해지고 우리 인민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어머님의 간곡한 말씀과 숭고한 모범은 김정일동지의 가슴속에 수령님에 대한 충효심을 깊이 심어주고 대를 이어 혁명을 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뿌리내리게 하였다. 특히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치시는 아버님의 혁명활동과 세심한 교양은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 지니신 뛰여난 성품을 더욱 빛나게 하여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벅찬 현실속에서 남다른 천품을 더욱 훌륭히 키워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모님을 따라 평양과 청진, 남포일대와 선봉군, 대동군을 비롯한 여러 도시와 농어촌들에 나가시여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건국열의와 불굴의 투쟁모습을 보시면서 장군님을 따르는 그들의 불타는 마음과 무궁무진한 힘, 열렬한 조국애를 느끼시였다. 그리고 보통강개수공사장과 미림벌에 나가시여 어른들이 일하는것을 보시면서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 마음을 굳게 다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38(1949)년 가을 너무도 뜻밖에, 너무도 일찌기 청천벽력같은 슬픔을 당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시며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정숙어머님께서 9월 22일 3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시였던것이다.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놀라운 현실이였고 애통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크나큰 아픔이 어리신 김정일동지의 가슴에 휩쓸어들었다. 어려서 일제놈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갖은 고생을 다 겪으시다가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항일대전의 혈로를 헤쳐오신 어머님, 해방후 건국사업에 바쁘신 어버이수령님을 도우시며 언제한번 편히 쉬지 못하시다가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이시였다. 모란봉에 안치된 어머님 묘소를 찾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숲속에 황혼이 깃들도록 그곳을 떠나지 못하시며 어머님의 숭고한 생전의 뜻을 새기고 또 새기시였다. 그날부터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님을 대신하여 동생을 돌보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며 아버님께 기쁨을 드리는 충성의 한길에 모든것을 고스란히 바쳐나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백두산형의 특유한 천품은 후날 그이께서 지니신 위인적풍모, 천출령장의 풍모를 활짝 꽃피운 풍요한 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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