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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서야 무엇이 반갑겠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의 계급진지, 핵심진지를 튼튼히 꾸리시는 한편 한없이 숭고한 도량과 인덕으로 사회계급적처지와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사람들도 넓은 한품에 안으시여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나가시였다.

사회주의혁명시기에 와서 우리 혁명의 대중적지반은 끊임없이 확대되였다.

 

사회주의혁명에 리해관계를 가지고 참가하는 계급과 계층은 로동자, 농민만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지난날의 자본가도 있었고 도시의 소자산계급도 있었으며 해방전에 일제에게 복무한 지식인도 있었다. 종교인들도 사회주의혁명에 참가하였다.

 

이와 반면에 우리 나라 주민들의 사회계급적구성은 매우 복잡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악독한 후과로 주민들의 사회계급적구성이 매우 복잡한데다가 해방후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나라가 분렬되고 조국해방전쟁 특히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를 거치다보니 그 복잡성이 더욱 심해졌다. 적들은 일시적강점지역에서 《치안대》요, 《대한청년단》이요 하는 반동단체들을 만들고 여기에 계급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들였으며 패주할 때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위협공갈하여 남으로 끌고갔다. 그리하여 주민구성에는 적기관복무자, 반동단체가담자, 월남자가족과 같은 사회정치생활경위와 가정환경이 복잡한 계층이 생기게 되고 전쟁시기 적들에게 포로되였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사람들의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정치사상적통일을 강화하고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며 사회주의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나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일관하게 견지해오시는 혁명적군중로선과 숭고한 포옹력으로 떳떳하지 못한 지난날때문에 그늘진 가슴을 안고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찬 새생활과 광명한 미래를 안겨주시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에서 본인의 현재동향을 기본으로 하여 매 사람을 평가하며 적대분자들을 최대한 고립시키고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혁명의 편에 전취하도록 하는 원칙을 견지하도록 하시였다.

여기에는 사람의 사상이나 성분은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제도가 변하고 교양사업이 진행되는데 따라 변하는것만큼 사람들을 믿고 실천을 통하여 검열하며 소수 적대분자들을 제외한 모든 군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워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의 정치철학이 구현되여있었다.

전후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에서 주되는것은 전쟁시기에 생긴 월남자가족과 적에게 복무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였다.

이들의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것을 당사업의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신해방지구사업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특히 월남자가족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적의 강제와 기만에 의하여 월남한 사람들의 가족들에 대하여서는 헌법상 공민의 권리를 보장하여주어야 하며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며 그들속에서 정치교양사업을 잘하여 그들이 안심하고 생활하며 국가사업에 참가하도록 도와주어야 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식을 차별하지 않는 부모의 심정으로 월남자가족들의 사업과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6(1957)년 6월 황해남도 연안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적들에게 속아서 남조선으로 나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차별하거나 따돌릴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세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주체48(1959)년 5월 하순 또다시 이 고장을 찾으시여 군안의 월남자가족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부르시였다는 꿈같은 소식을 받고 군당청사로 달려온 황해남도 연안군안의 월남자가족들은 누구나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서있는 군당청사앞 련못가에 나오시여 다정히 인사를 나누시였다. 그러신뒤 매 사람에게 생활형편도 물으시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위로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그때 한 녀인이 《수상님, 수상님을 뵈옵게 되여 정말 영광입니다. 수상님,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습니다. …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격한 심정을 터놓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동무들의 남편을 다 데려다주어야 반갑지 나를 보고서야 무엇이 반갑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녀인들은 가까스로 눌러오던 격정의 물고를 와락 터치고 엉엉 소리를 내여 울기 시작하였다.

 

한창 젊은 시절을 남편없이 보내야 하는 서글픔과 늘 주눅이 들어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마음속고충, 거기에다 월남자가족이라고 따돌리고 배척하는 이웃들의 랭랭한 눈길… 지난날의 그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마구 가슴을 허볐던것이다.

 

마치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정아버지앞에서처럼 제설음을 아뢰이던 녀인들은 문득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에 시선을 멈추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가의 꽃 한송이를 꺾어드시더니 아무 말씀없이 그 꽃잎을 한잎한잎 뜯어 물우에 떨구고계시는것이였다. 못가의 한 곳을 응시하시는 수령님의 시선에 얼마나 침통한 빛이 어렸던지 녀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가다듬었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한사람한사람 둘러보시고나서 어떤 사람들은 공화국정치가 좋다는것을 몰라서 넘어간것이고 그들속에는 깡통을 차고 빌어먹는 사람도 있으며 또 리승만도당을 반대하여 싸우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월남자라고 해서 다 나쁘다고 말할수 없다, 우리 당의 정책은 언제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와 같이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다 용서하고 같이 데리고 가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남편들이 밤중에라도 들어오면 잘 교양하여 그들이 당을 믿고 따르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자기 손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일을 잘해서 당에도 들고 정치생활에도 잘 참가하여 월남자가족들가운데서 사회활동가도, 로력영웅도 나와야 한다고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이렇게 월남자가족들의 얼음같은 마음속 응어리를 따뜻이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뜨시며 건강한 몸으로 일들을 잘하라고 하시였다. 또다시 눈물이 글썽해진 녀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눈에 손수건을 가져가시는 모습에 그만 목메여 인사도 못드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해 11월에 열린 황해남도 당 및 정권기관, 경제기관, 사회단체 지도일군협의회에서도 도앞에 나선 가장 중요한 과업은 각계각층 군중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들을 모두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그들이 모두 안착되여 마음놓고 일하도록 하는것이 우리 당이 일관하게 견지하고있는 기본방침이라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에게 복무한 사람들에게도 어버이사랑을 베푸시였다.

월남자가족들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전진하는 우리 혁명대오의 어엿한 성원으로 떳떳이 살며 일하도록 이끌어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은 월남자가족만이 아니라 적에게 복무한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미쳤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의 방침은 〈치안대〉, 〈대한청년단〉등 적들이 만든 반동단체에 들어갔던 사람이라 하여 다 몹쓸 사람이 아닌것만큼 그들을 교양하여 개조하자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 잘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일제기관 복무자요, 미국놈에게 복무했소 하면서 따돌리거나 떼여버리는것은 옳지 않은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과의 사업을 잘하도록 하시였다.

 

우리 나라 대야금기지의 하나인 김책제철소(당시)에는 지난날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나 공부도 했고 적들의 일시적강점시기에는 강압에 못이겨 놈들에게 일시 복무한 한 지식인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의 죄과를 뉘우치고 당을 따라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를 믿으시고 용광로직장장의 책임을 맡겨주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에 보답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였다. 주체46(1957)년에 1호용광로의 로벽이 무너지자 그는 로를 세우지 않기 위하여 작업복을 물로 적시고 800℃나 되는 고열속에 뛰여들어가 로동자들과 함께 결사전을 벌려 로보수를 성과적으로 끝냈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소행은 인민군대가 전쟁시기에 불을 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은것과 같다고, 이런 영웅적지식인을 신임못할 근거는 없다고 하시며 그에게 제철소 기사장의 중책까지 맡겨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사람들을 굳게 믿으시고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안겨주시면서 주체49(1960)년 4월에는 각계각층 군중을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울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결정을 채택하여 그들과의 사업을 기본군중과의 사업과 함께 더 잘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로동당원으로,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로력혁신자로, 로력영웅으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인민의 정치사상적, 도덕의리적통일단결은 날을 따라 더욱 공고화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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