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포옹력​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대표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주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북련석회의기간 넓은 도량과 하해같은 은덕으로 남조선에서 온 여러 대표들과 개별적인사들도 만나시여 그들을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애족의 한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월송로인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사선을 넘어 북조선에 들어온 대표들가운데는 흰 수염발을 날리며 멀리 경상도에서 온 김월송​로인도 있었다.

그는 한때 홍범도의병부대에도 참가하였고 《상해림시정부》에도 관여하였으며 민족주의자들의 《정의부》를 거쳐 독립군 군관학교의 교관도 지낸바있는 사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먼길을 헤쳐온 김월송로인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고 바쁘신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시여 친히 그를 만나주시였다. 그리고 북과 남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해방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앉은 이 회의에는 가장 나이많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에서 고생을 많이 한분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 개막사를 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겨레를 위해 해놓은 일보다 오히려 뉘우쳐지는 일이 더 많은 그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아안은 이 영광은 참으로 분에 넘치는것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김월송로인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가 대표들과 함께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았을 때였다. 환영나온 원아들속에서 달려나오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김월송로인의 아들이였다. 평양에 와서 오래전에 헤여진 아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속에 공부하고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서도 어쩐지 꿈만 같아 설마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그였다. 생사여부조차 알길없던 아들, 소년티를 벗고 끌끌하게 자랐으나 어릴 때의 모습이 확연한 아들을 만난 그는 이루 말할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일찍부터 파란많은 한생을 살아온 그가 자신에게 이런 기쁨, 이런 영광이 차례지리라고 꿈엔들 생각해본적이 있었으랴. 나라잃은 망국노의 슬픔에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뿌리긴 했으나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이 너무도 크고 고마와 아들을 부여안은채 어깨를 들먹이였다.《장군님! 이 은덕을 무엇으로 갚아야 하오리까? 흘러간 옛 세월을 되찾을수 있다면 이제 남은 여생에 보태여 장군님의 병졸로서 충성을 다하고싶소이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공에 보답할길 없어 늙음을 통탄하며 뜨거운 눈물로 다지는 옛 독립군 군관학교 교관의 심장의 맹세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랜 민족주의자이며 우익정객의 한사람인 김규식​에게도 크나큰 은정을 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앓는 몸으로 북조선에 들어온 그에게 의사와 간호원을 붙이여 치료를 하게 해주시고 친히 병문안을 하시였을뿐아니라 회의진행과정에 대하여 상세히 알려주기까지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연단에 나설 기회를 못가졌던것을 아쉬워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시여 남북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난 뒤에 마련된 성대한 연회에서 첫 연설을 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는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자기 인민의 힘을 믿으시고 나라의 통일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게 하는 정치라고 하면서 남조선에서 들어온 대표들을 향하여 우리도 이제는 남의 장단에 춤을 출것이 아니라 제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민족자주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도 더는 미국놈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남조선에서 들어온 대표들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믿음에는 정녕 끝이 없었다.

 

회의가 있은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민주독립당 당수인 홍명희​선생을 저택에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달래 오시라고 한것이 아닙니다. 오늘이 바로 선생님의 환갑날입니다. 그래서 환갑연을 차렸습니다.》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날이 자기 환갑날인지조차 생각못했던 그는 방 한가운데 차려놓은 환갑상과 그 두리에 여러 간부들이 자리잡고있는것을 보고 《장군님!》 하며 감격에 떨리는 첫마디를 떼였을뿐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다심한 사랑에 홍명희선생은 격정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서울에 두고온 가족들과 떨어져 환갑을 쇠는것을 마음아프게 여기시며 친히 잔에 술을 부어 권하시였다. 그리고 환갑기념으로 귀중한 선물을 주시였다. 나라안팎의 크고작은 일을 돌보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의 환갑날까지 아시고 이처럼 고마운 은정을 베푸시는것만도 비길데없는데 가족들이 옆에 없는것까지 심려하시니 무슨 말로 인사를 올리랴. 그는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며 갈린 음성으로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우리 문중과 친척들 만사람이 모여앉은들 제가 어찌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행복하겠습니까. 저는 60평생을 허무하게 살아왔습니다. 장군님을 모신 이 자리는 제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여나는 자리입니다. 장군님, 이 하해같은 은덕에 보답을 드리기 위하여 저의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사랑의 품속에서 재생의 첫걸음을 내디딘 남조선인사들은 이들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신을 못하는 몸으로 남의 등에 업혀들어온 나이많은 유학자, 평생 예수만을 믿어온 종교인과 애젊은 청년대표들 그리고 홍수처럼 밀려드는 어지러운 사조의 소용돌이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채 붓을 놀리던 기자들까지도 일일이 만나시여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앞길을 밝혀주시였다.

나라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어도 겨레를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그 품에는 계선이 없었고 따사로움이 미치지 않은 곳이 따로 없었다.

 

미국의 출판물까지도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대표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운 립장》과 《의문의 여지가 없는 애국심》에 탄복하여 수령님을 끝없이 우러러 모시고 흠모하였다고 썼다.

 

외세에 대한 의존심과 허황한 《반공》사상에 물젖어 캄캄한 어둠속을 헛되이 헤매던 사람들이 새 인간으로 다시 태여나 참된 애국애족의 길을 걸을수 있게 한것은 비록 어지러운 과거를 가지고있다 하더라도 오늘의 사명감을 느끼고 나라를 위해 몸바치려할 때 그들모두를 너그러운 한품에 안아주시고 삶을 빛내여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포옹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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