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인생전환​

 

 

쑥섬에서의 하루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절대로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민족의 분렬을 막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하며 민주주의적통일정부를 수립하여야 합니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대표들 가운데는 지난날 조국과 인민앞에 죄를 지었고 당시에는 닥쳐온 시련앞에서 갈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에 안겨 한결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참된 길을 찾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넓은 품에 안겨 재생의 길을 찾게 된 사람들가운데는 남조선의 이름있는 우익정객의 한사람인 김구​도 있었다.

 

김구로 말하면 지난날 공산주의자들을 배척하고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해온 사람으로서 《상해림시정부》를 미래의 조선《정부》로, 자기를 조선민족의 《지도자》로 내세우면서 해방이 되자 서울에 들어와 리승만과 《정권》쟁탈전을 벌려온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러기에 그는 남북련석회의 초청장을 받고서도 죄많은 지난날이 마음에 켕겨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한채 동요하면서 자기의 서기를 평양에 보내여 자기와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회의에 참가하면 어떻게 대하겠는가를 알아보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구에게 일체 과거를 백지화한다는것을 담보하시여 그로 하여금 38°선을 넘어설 용기를 내게 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믿음에서 힘을 얻은 김구는 서울을 떠남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유엔이 아무리 단독정부를 수립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 자손만대에 넘겨줄수 있는 정부가 될수 없는것이다. 나는 외국인의 유혹과 국내 일부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흔연 남북회담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수래공수거라고 기우하는 이도 있으나 우리의 전도에는 위대한 희망이 보이고있다. 나는 오직 우리의 통일과 독립의 활로를 찾기 위하여 피와 피를 같이한 동포끼리 마주쳐 최후의 결정을 보려고 결연 가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구가 마음의 동요와 반동의 압력을 물리치고 북에 들어온것을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적인 행동으로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회의의장단 성원으로 포함시켜주시였으며 회의의 기본문제토의에 앞서 하루 휴회하도록 하시여 그가 력사적인 회의에서 연설할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시였다.

그리고 친히 김구의 숙소를 찾으시여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구와 그 일행에게 평양은 물론 북조선의 여러 지방에 자유롭게 가볼수 있도록 은정깊은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그들은 우리 인민의 마음의 고향인 만경대와 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 황해제철소(당시), 국립영화촬영소(당시)를 비롯한 여러 경제문화시설들을 참관하면서 새 민주조국건설을 위한 북조선인민들의 보람찬 투쟁모습을 직접 볼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김구는 유서깊은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여 커다란 감동을 받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고향집마당에서 울바자를 엮고계시였다. 마당에 들어선 김구는 이 자그마한 초가집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고향집이라는데 놀랐으며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농사를 짓고계시는 사실에 눈이 둥그래졌다. 헛간에 놓여있는 모지랑호미며 나무쟁기들, 방안에서 싱싱하게 자라고있는 고구마싹이며 소박한 가구들과 부엌세간들은 평범한 농가의 살림형편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김구는 두손으로 할아버님의 거치른 손을 모아잡고 《손주님을 일국의 령도자로 두신분이 어찌하여 이런 험한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아버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본래 농군이요. 손자는 령도자이지만 나야 농군인데 어찌 일을 하지 않겠소. 나의 손자는 내가 한평생 고생만 하였으니 이제는 고생을 하지 않게 모시겠다고 하오. 그러면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귀족생활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말고 소일거리로라도 손때묻은 농쟁기를 놓지 말라고 했소. 물론 나도 농쟁기를 집어던지고 호화로운 량반생활을 하려고 생각한 일은 없소.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는데 농사군인 내가 농사를 잘 지어야 우리 손자가 정치를 잘할것이 아니요.》

 

할아버님의 이 말씀에 김구는 크게 탄복하였으며 이루 헤아릴수 없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는 만경대혁명학원에 갔을 때 그곳에서 또다시 전혀 예상치 못하였던 현실에 부닥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날 혁명의 길에서 희생된 혁명가들의 아들딸들과 함께 민족주의자들의 자녀들까지 데려다 공부를 시키고 계시는 사실이였다. 김구는 민족주의자로서 한때 독립군부대 사령이였던 량세봉의 아들이 이곳 학원에서 공부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잘 믿어지지 않아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윽하여 한 학생이 나타났다.

《네가 량사령의 아들이냐?》 《예, 저의 아버지가 량세봉입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공부하게 되였느냐?》 《김일성장군님께서 사람을 보내시여 저희 식구들을 불러주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김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였다.

 

김구는 북조선에 들어와 만난 친지들, 젊은 시절에 가까이 지낸바있는 사람들이 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로동당원이 되고 나라의 중요직책에서 일하고있는 사실, 특히는 《상해림시정부》에서 부장을 지낸바있는 한 동료가 교육부문의 중요간부로 일하고있는 사실들을 놓고 수령님께서 민족주의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넓은 도량에 감탄을 금할수 없어 눈굽을 적시였다.

주체37(1948)년 4월 25일 평양에서는 남북련석회의를 지지하는 평양시민대회가 열리였고 뒤이어 5월 1일에는 5.1절기념군중대회와 열병식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모든 대표들에게 이 성대한 모임과 열병식을 볼수 있게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주석단에 김구도 초대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발기하시고 소집하신 남북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된 가운데 명절을 경축하는 군중대회장은 수령님을 우러러 목청껏 부르는 만세의 환호로 들끓었다.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그토록 열렬히 흠모하고 우러르며 환호를 열광적으로 올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김구는 《독립》의 빈 구호밑에 진정한 애국자, 혁명가들을 반대하여온 자신의 지난날을 더욱 부끄럽게 돌이켜보았다.

시간이 이윽히 흘렀을 때 흐려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차츰 비방울이 굵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옷이 젖어드는것을 걱정하여 부관이 우산을 펼쳐드리였으나 수령님께서는 군중이 다 비를 맞고있는데 나라고 어찌 우산을 쓰겠는가고 하시며 우산을 받지 않으시였다. 이때 안내자의 권고에 따라 이미 우산을 펼쳐들고있던 김구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고매한 풍모앞에 머리를 숙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새 김구의 이러한 속마음을 헤아리시고 선생은 나이많은분이시니 옷이 젖으면 감기에 걸릴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냥 우산을 쓰고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이르시였다.

 

자신보다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고 자신께서는 그냥 비를 맞으시면서도 옆사람이 비를 맞을세라 마음쓰시는 고결한 성품,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깊으신 그 은정에 김구는 흐려지는 안경너머로 수령님을 우러르며 숙연해지는 마음을 누를길 없어하였다.

평양에 와있는 며칠사이에 김구의 마음에서는 실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열화같은 애국심과 투철한 자주사상, 넓은 도량과 겸손하고 소탈하신 인품이 무뚝뚝하고 완고하던 김구의 마음을 그처럼 크게 흔들어놓은것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뵙고 민족의 옳은 진로를 깨달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자기의 동료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독립과 번영의 길로 이끄실 절세의 위인이시고 민족의 탁월한 령도자이시라고 확신에 넘쳐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출발을 앞둔 김구를 다시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렬책동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혈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질 위험이 커가고있는데 대하여 걱정하시면서 남조선에 나가면 반미구국통일전선을 뭇고 민중의 앞장에 서서 미제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투쟁에서 단결보다 못지 않게 중요한것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크게 감동된 김구는 북조선에 들어와 참으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수령님께 정중히 말씀올리였다. 《저는 이번에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 여기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애국자들입니다.… 저는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이란 협애하고 몹쓸 사람인줄로만 알았으나 이번에 와보니 공산주의자들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여 얼마든지 합작할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장군님을 받들어나갈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조선에 떨어져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북에서 자기를 연금하였다고 요언을 돌릴수 있으므로 남조선에 나가야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는 남조선에 나가서 투쟁하다가 정 곤난하면 다시 들어오겠으니 여생을 보낼수 있게 과수원이나 하나 주시였으면 한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리고 미제의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투쟁에 인민들을 궐기시키기 위한 글을 쓰는데 필요한 종이와 붓을 달라는것과 남조선 연백벌농민들에게 관개용수를 다시 보내주셨으면 좋겠다는것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요구를 쾌히 수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김구는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고 다니던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수령님앞에 내놓았다. 그것은 비록 늦기는 하였으나 헛되이 살아온 지난날과 깨끗이 결별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여생을 보람있게 마치려는 그의 결연한 각오의 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심중을 깊이 헤아리시고 인장은 그냥 가지고 가라고 하시며 우리에게는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신변에 관계되는 문제에까지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김구는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시 한수를 읊었는데 그는 자기의 소감을 해묵은 나무에 다시 꽃이 핀 기쁨에 비기면서 죽었던 몸에 삶과 젊음이 되살아나 싸움터로 나가는 심정이라고 노래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다진 결의대로 그는 남조선에 나가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비렬한 테로에 의하여 숨이 지는 그날까지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굳세게 싸웠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해같은 사랑의 품에 김구만이 아닌 애국을 지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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