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지어주신 학교이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교육제도를 세우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새 조선 건설에서 나서는 중요한 과업의 하나는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 민주주의적개혁들을 실시하는것입니다.》

 

교육은 혁명의 승패와 민족의 장래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적인 문제이다.

 

 

일제침략자들의 민족우매화정책으로 말미암아 해방전 북조선에는 단 하나의 대학도 없었고 기껏해야 도에 중학교 한두개가 있었을뿐이였는데 그것마저도 지주, 자본가의 자식들이나 공부하는 학교였다.

 

해방후 민족교육의 건설은 령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권기관들이 일제때의 모든 교육기관들을 장악하고 식민지교육법을 청산하며 교육기관안에 숨어있는 친일파와 반동들을 숙청하도록 하시였다. 한편 교육국에서 《북조선학교교육림시조치요강》 제정하도록 하시고 학교교육의 기본내용과 방법, 교수과목과 과정안을 확정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낡은 식민지교육제도가 페지되고 지난날 배우고싶어도 배울수 없었던 근로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마음껏 공부할수 있는 넓은 길이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민주교육제도를 세우고 근로인민의 아들딸들이 마음껏 공부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3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4차회의에서 민주교육을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하여 교원양성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직교원들을 재교육하는 한편 교원양성소를 조직하고 일정한 지식을 가진 좋은 사람들을 선발하여 교원으로 양성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교원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교를 설립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기관들에서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제거하고 학생들의 학습조건을 잘 보장해주며 교육기관들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인민교육제도를 철저히 세워 근로인민의 자녀들을 다 공부시킬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4월 북조선인민교원직업동맹결성대회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진보적민주주의원칙에서 새로운 교육체계와 교양체계를 세우도록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는 식민지교육체계와 교양체계를 모조리 없애버리고 짧은 기간에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로 구성된 보통교육체계와 대학들과 연구원들로 구성되는 고등교육체계, 초급기술학교와 전문학교들로 이루어진 기술교육체계가 세워졌다. 학업을 전문으로 하는 정규교육체계와 함께 대학들마다에 야간 및 통신학부들을 내오고 공장기술학교와 야간기술전문학교, 농촌과 가두에는 성인학교와 성인중학교를 세워 근로자들이 일하면서 배울수 있는 교육체계도 세워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육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교육의 물질적조건과 학생들의 학습조건을 충분히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의 물질적조건을 보장하기 위하여 학교건설사업에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나라가 해방되여 두달이 좀 지난 주체34(1945)년 10월 2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의 평안남도 대동군 칠골인민들을 찾으시여 조국의 장래와 후대들을 위하여 학교를 많이 세우자고 호소하시였다.

 

그후 칠골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자기들의 힘으로 칠골에 중학교를 세웠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지덕체를 겸비한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여 나라를 흥하게 해야 한다는 뜻에서 학교이름을 《삼흥중학교》라고 지어주시였다. 그리고 삼흥중학교건설의 모범을 일반화하여 학교건설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벌리도록 하시였다.

 

학교건설사업이 새 조국의 장래를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라는것을 자각한 로동자, 농민, 기업가, 상인 등 각계각층 인민들은 로력과 기술, 자금을 여기에 바치는것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1년 남짓한 기간에 전국적으로 소학교는 1 110개, 중학교는 217개나 건설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건설과 함께 긴급하게 요구되는 교과서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시기의 교과서들을 모두 없애고 우리 혁명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교과서들을 새로 편찬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시였다. 그리고 과학적이며 주체적인 교수교양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우리 글로 새로 만든 교과서의 내용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우리 나라의 현실을 옳게 반영함으로써 교육교양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고 교육사업을 우리 혁명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대들을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모든 조건을 우선적으로 풀어주도록 은정깊은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20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1차회의의 의정으로 연필문제를 상정시키시였다.

사회의 민주주의적개혁이 일정에 오르고있던 당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앞에는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업들이 수많이 나서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의 안건으로 연필생산문제를 상정시키고 토의하도록 하시였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의아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위원들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필문제를 해결하는것은 단순한 실무적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후대들을 훌륭한 인재로 육성하며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여있는 소원을 풀어주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문제이라고 하시면서 연필생산을 자체의 힘으로 보장할데 대한 현명한 방침과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연필생산은 이렇게 시작되였으며 새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우리 인민이 만든 연필이 차례지게 되였다. 이것은 지난날 글 한자 배우지 못하고 등뼈가 휘도록 일하면서도 자식들에게만은 연필을 쥐여주어 글을 배우게 하고싶어하던 우리 인민들의 평생 소원을 풀어준 력사적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력사에 그 류례가 없는 이러한 인민적조치를 취하심으로써 사회적진보와 민족적번영을 위하여 투쟁하는 나라 특히 제국주의식민지예속에서 벗어나 새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들에서 교육사업을 어느 위치에 놓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필과 함께 학습장, 학용품, 실험기구를 비롯한 교구비품을 충분히 마련해주시였을뿐아니라 국가의 부담으로 교육을 실시할데 대한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4월부터 학생들의 수업료를 낮추거나 면제시키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혁명가유자녀들과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집 자녀들에 대한 수업료가 완전히 페지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후대사랑에 의하여 우리 나라 학생들은 벌써 이 시기부터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교육제도에서 무료교육의 혜택을 받는것이나 다름없는 크나큰 행복을 지니고 마음껏 공부할수 있게 되였다.

 

일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첫 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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