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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기와집이 아니라 추녀낮은 초가집으로​

 

 

평안남도 대동군농민들과 담화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6 (1947). 2.24 ]

 

언제나 자신을 인민의 아들로 여기시고 인민을 위해 헌신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던 나날에 농촌마을에 가시여서도 번듯한 기와집이 아니라 추녀낮은 초가집을 찾으시고 농촌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제반 민주개혁을 실시하는것은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민주주의적발전의 길을 열어놓기 위한 합법칙적요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제반 민주개혁들가운데서도 토지개혁을 선차적인 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토지문제를 해결하는것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서 나서는 선차적과업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거의 80%는 농민이였는데 북조선의 총 농호가운데서 4%밖에 안되는 지주들이 총경지면적의 58.2%를 차지하고 땅을 못가진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토지문제를 해결하여야만 농민들을 지주의 착취와 예속에서 해방하고 그들을 새 조선의 참다운 주인으로 되게 할수 있었으며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고 전반적인민경제의 부흥발전을 힘있게 추동할수 있었다. 더우기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실정에서 지주계급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반동분자들이 거기에 발을 붙이고 우리 당과 인민의 건국위업을 방해하는 온갖 책동을 다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작성하신 토지개혁법령을 비롯한 제반민주개혁법령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계급적원쑤들의 반항을 짓부시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할수 있도록 인민정권을 튼튼히 꾸리며 그 독재기능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힘을 넣으시였다.

 

당시 지주와 반동들이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있는 조건에서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는것만으로는 지주의 땅을 빼앗을수도 없고 반항하는자들을 진압할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지주를 비롯한 반동세력의 반항을 진압할수 있는 혁명무력과 보안기관, 사법, 검찰기관 같은 독재기관들을 꾸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사업으로서 토지개혁의 직접적담당자인 농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데 깊은 주목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을 농민조합에 묶어세워 혁명적으로 교양하는 한편 그들을 실천투쟁을 통하여 계급적으로 더욱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단련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작료를 낮출데 대한 농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주체34(1945)년 10월 중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1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수확의 30%만 지주에게 바치고 나머지 70%는 소작인이 가지며 지난날 소작인이 부담하던 토지와 관련한 세금은 지주가 부담하도록 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발표하시였다.

 

3,7제를 실시할데 대한 우리 당 결정이 나오자 농민들은 그를 적극 지지환영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 대중적으로 떨쳐나섰다.

그런데 지주들은 농민들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일부 지방들에서는 지주들이 교활한 방법으로 각성하지 못한 농민들을 기만하고 소작료를 종전대로 받으려고 하였으며 지어 3,7제를 요구하면 소작권을 떼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을 발동하여 전국각지에서 군중집회를 열고 지주들의 착취행위를 폭로규탄하며 3,7제를 실시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게 하시였다.

 

평안남도의 일부 군들에서는 농민들이 성토대회를 열고 지주의 악질적인 행위들을 폭로규탄하였을뿐아니라 일부 지주들이 소작료를 종전대로 받은것을 집단적으로 도로 빼앗는 투쟁을 벌리였다.

 

농민들의 대중적투쟁과 앙양된 기세에 눌리워 지주들은 3,7제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주체34(1945)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진행된 3,7제투쟁은 해방후 농민들이 지주계급을 반대하여 진행한 첫 투쟁이였으며 그 과정에 많은 농민들이 계급적으로 각성되기 시작하였다.

농민들은 이 투쟁을 통하여 자기들이 계급적으로 해방되기 위하여서는 지주를 청산하고 땅의 주인이 되여야만 한다는것을 깨달았으며 단결하여 싸우면 지주와의 투쟁에서 능히 승리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투쟁속에서 더욱 각성된 전국각지의 농민들은 군중대회를 열고 위대한 수령님께 봄갈이전으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나누어달라는 편지와 결의문, 청원서를 올리였다. 그리고 주체35(1946)년 2월 말에는 각 지방에서 300여명의 농민대표들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찾아와 토지를 요구하는 전체 농민들의 의사를 전달하였으며 3.1인민봉기기념일에는 각지에서 200여만명의 농민들이 토지를 요구하여 대중적시위를 벌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몸소 농민들속에 들어가시여 농촌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주체35(1946)년 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당시)의 한 마을을 찾으시였다.

 

마을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일군들이 깨끗하고 번듯한 지주네 집으로 안내하는것을 사양하시고 가난한 농민이 사는 추녀낮은 초가집으로 들어가시였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흙벽에 귀떨어진 노전을 깐 좁고 침침한 방 한켠에는 떡호박과 고구마를 담은 뚝배기가 놓여있었다. 첫눈에도 땅없는 우리 농민들이 오랜 세월 겪어온 가난의 흔적이 그대로 안겨왔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없이 안색을 흐리시더니 그 집 주인에게 지난날에는 남의 땅을 얻어 부치면서 낟알을 지주에게 다 빼앗기고 헐벗고 굶주렸는데 이제는 제 땅을 가지고 잘 살아보자고 하시였다. 그러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에 지주는 몇이나 되며 토지는 얼마나 가지고있는가, 그놈들이 농민들을 어떻게 착취했는가, 지주의 땅을 필지별로 좋고 나쁜것을 다 가려낼수 있는가, 장정 한사람이 얼마만한 땅을 다룰수 있으며 소출은 얼마나 낼수 있는가 등 농촌실태와 농민들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한달동안이나 직접 대동군을 비롯한 여러 농촌들에 나가시여 지주집 머슴과도 만나시고 소작농, 자작농과도 만나시였으며 농민들을 데리고 오랜 시간 질벅한 논밭을 걸으시며 토질을 알아보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과정에 착잡하게 얽혀져있는 봉건적 토지소유관계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우리 나라 농촌실정에 맞는 토지몰수대상과 기본투쟁대상, 토지를 몰수하고 분배하는 방법, 소작제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방도 등 토지개혁의 원칙과 방도들을 확정하시였으며 몸소 토지개혁법령을 한조항한조항 완성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편 주체35(1946)년 2월 중순 북조선농민조합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시여 전국적인 범위에서 토지실태조사사업과 농촌인구조사사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토지개혁의 기본방침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신데 기초하여 주체35(1946)년 3월초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를 여시고 토지개혁의 기본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밑에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고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드는것을 토지개혁의 기본원칙으로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우리 당이 토지개혁을 준비할 때 어떤 사람들은 땅을 유상몰수, 유상분배하자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관적의견이였다.

 

만일 땅을 유상으로 몰수하여 유상으로 분배한다면 지주들은 땅값을 받아 부농이나 자본가로 변하여 계속 농민들을 착취하게 될것이며 농민들은 땅값에 얽매여 다시 부농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의 착취대상으로 될것이였다. 이렇게 되면 토지개혁을 한 보람이 없게 되고 봉건적착취관계를 자본주의적착취관계로 바꾸어놓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토지개혁을 철저히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서 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밭갈이하는 농민들이 그 어떤 사소한 재정적부담도 없이 땅의 주인으로 되게 하며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가 땅값을 받아 부농이나 자본가로 변하는것을 막을수 있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주를 청산하는 첨예한 계급투쟁에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전략전술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는 고농, 빈농에 튼튼히 의거하고 광범한 중농과 동맹하여 부농을 고립시키고 지주를 치는것을 토지개혁에서 견지해야 할 계급정책으로 내세우시였다.

토지개혁을 위한 계급정책에서 중요한것은 투쟁대상을 옳게 규정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일제와 친일파, 민족반역자 그리고 5정보이상의 땅을 소작주고 놀고먹는 지주들만을 청산대상으로, 기본투쟁대상으로 규정하시였다.

당시 5정보이상의 땅을 소작주고 놀고먹는 지주는 4만 4천여호에 달하였으며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은 72만호가 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주를 청산함에 있어서도 적대계급의 세력들을 분산약화시키고 농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하여 그들을 다른 지방에 옮겨놓고 땅을 주어 제손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수 있게 하시였다. 그리고 도시에 나가 살고있는 지주들에 대해서는 토지만 몰수하고 도시에 가지고있는 공장이나 상점은 그대로 둠으로써 그들이 반항해나서지 못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촌실태에 대한 세심한 료해와 심오한 분석에 기초하시여 토지소유원칙과 토지개혁실시방법, 계급정책 등 토지개혁에 관한 방침들을 확정하시고 주체35(1946)년 3월 5일에 력사적인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공포하시였다.

토지개혁법령의 발포는 농민들은 물론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을 감격과 흥분에 휩싸이게 하였다.

전국각지의 농민들은 련일 농민대회를 열고 토지개혁법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북조선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여 법령시행을 적극 도울것을 결의하여나섰다.

 

일화; ❖ 꿈 아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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