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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례의 타격전 (2)​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2(1953)년 5월말 어느날 제1차 타격에 련이어 보다 강력한 력량으로 적들에게 제2차 타격을 가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제2차 타격은 1953년 5월 27일부터 6월 15일사이에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제2차 타격에서는 전선동부의 이포리- 린제방향에서와 동해안에서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들이대여 다음 행동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는 동시에 북한강 오른쪽과 왼쪽을 타격하여 놈들이 차지하고있는 강 좌안의 돌출부를 없애는데 기본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적들은 인민군부대들의 불의의 강력한 타격으로 당한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침략무력증강에 미쳐날뛰였다.

 

놈들은 미제침략군 25보병사단과 괴뢰군 2개사단을 전선에 끌어들이고도 모자라 금방 5월초에 교대하고 일본에 가있던 미제침략군1해병사단을 다시 전선으로 돌려세웠다. 한편 적들은 간성과 양양에서 3개의 괴뢰보병사단들을 다시 편성하고 전선부대들에 땅크와 포들을 증강하며 돌아쳤으나 전선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뒤죽박죽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제2차 타격의 중요대상을 전선동부의 351고지와 811.7고지로 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만일 351고지를 빼앗아내지 못하면 고성, 금강산을 적들에게 내여줄수 있었습니다. 인민군용사들은 강력한 포화력의 지원밑에 결사전을 벌려 351고지를 점령하였으며 그들이 351고지를 차지하였기때문에 우리는 고성일대를 지켜낼수 있었습니다.》

 

351고지는 강원도 고성에서 남쪽으로 약 5km 동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산봉우리이다.

 

당시 적들은 351고지를 계속 차지하고 작전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월비산을 점령하고 고성일대를 장악하며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제놈들의 부대들과 합세하여 우리 익측을 위협하려고 시도하였다. 적들이 우리에게 351고지를 빼앗기면 적들은 부득이 20~30리 뒤계선까지 물러서야 했다. 그러므로 적들은 《서울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351고지는 내여줄수 없다.》고까지 떠벌이면서 한해 남짓한 기간에 걸쳐 351고지의 진지를 최신공병기술로 견고히 구축하였으며 언제든지 전함, 구축함 등 100여척의 각종 함선과 수백대에 달하는 비행대의 지원을 받을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놓고 이 고지를 《불락의 요새》, 《불퇴의 선》이라고 호언장담했다.

 

351고지 탈환전투는 결코 쉬운 전투가 아니였다.

인민군련합부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대로 351고지 공격전투를 위한 면밀한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

6월 2일 드디여 351고지 공격전투가 시작되였다.

150여문의 아군포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하여 적진지에 연거퍼 명중탄을 들씌우고 포사격이 적의 종심에로 이전하자 인민군용사들이 일제히 돌격으로 넘어갔다.

 

적들은 어떻게 해서나 인민군대의 돌격을 막아보려고 발악적으로 저항해나섰다. 요소요소에 은페시켰던 중기화점들과 무수한 철조망들이 인민군전투원들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적들은 수많은 포와 함선들, 비행대들을 황급히 동원하여 폭탄과 포탄을 마구 퍼부었다.

 

전투원들은 자기의 몸으로 철조망에 다리를 놓아 그 우로 전우들을 건너보냈으며 공화국영웅 김인택, 김룡택, 주상하는 미친듯이 불을 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구분대의 돌격로를 열었다.

그리하여 인민군전투원들은 돌격개시후 불과 15분만에 351고지를 점령하였다.

 

악에 받친 적들은 이 고지를 다시 점령하기 위하여 순양함, 구축함 등 100여척의 각종 함선들과 연 300~400대의 각종 비행기를 동원하여 폭격과 함포사격을 감행하면서 351고지와 그옆 무명고지에로 수많은 병력을 내몰았다. 고지밑에 굴설해놓은 갱도와 은페부에 몸을 숨긴 적들은 반돌격해오는 제놈들의 력량과 합세하여 불의에 고지의 전투원들을 습격하군 하였다.

 

인민군전투원들은 위력한 포병화력과 중기관총, 경기관총, 자동총 등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적에게 불벼락을 들씌웠다. 용감한 고지의 전투원들은 10여차례씩 감행되는 적의 반돌격을 그때마다 물리치고 351고지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1953년 6월 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351고지용사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시여 그들에게 친히 축하문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351고지를 굳건히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는 인민군 한 공병폭파조원들의 영웅적위훈도 깃들어있다.

 

351고지를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한 공병폭파조원들은 원쑤놈들이 2년 남짓한사이 비밀리에 굴설해놓았던 《특수갱도》를 폭파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어둠속을 리용하여 갱도의 입구를 찾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특수갱도》를 교묘하게 위장하여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거기에 은페해있다가 불의에 기여나와 반돌격해오는 제놈들의 병력과 합세하여 고지의 인민군전투원들을 습격하군 하였다. 그리하여 비밀입구를 찾아 이 《특수갱도》를 폭파하는것은 고지를 지켜내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우리의 전투원들은 적들의 탐조등불빛이 순간도 그치지 않고 샅샅이 훑어내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끝내 비밀입구를 찾아내여 폭파하고 그 안에 처박혀 발악하던 적병 260여명을 완전히 소탕해버리였다.

 

이것은 우리의 전투원들이 351고지를 끝까지 완강히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였다.

351고지전투의 성과속에는 고성지구인민들의 희생적인 투쟁성과도 빛나고있었다.

《아무도 몰라》

 

고성지구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농사일도 보장하면서 담가대, 탄약운반대, 교량복구대 등 전선원호를 위한 돌격대를 무어가지고 적탄이 비발치는 고지에로 오르내리며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인민군전투원들을 힘껏 도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실로 우리 군대와 인민은 말그대로 한덩어리가 되여 싸워 승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811.7고지에 대한 공격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전술적으로 중요한 811.7고지는 전선동부의 1211고지, 매봉과 련결된 간무봉의 동남쪽으로 약 10리 지점에 자리잡고있으며 가전리 - 이포리사이의 도로를 끼고있었다. 적들은 811.7고지를 차지하고 우리 방어 전연과 종심을 감시하면서 군사행동과 수송을 방해하고 2년에 걸쳐 방어진지를 강화하였다. 적들은 이 고지에 많은 력량을 배치하고 갱도와 《5각화점》을 비롯한 30여개의 여러가지 화점을 만들어놓았으며 방어전연전방에는 3렬철조망을 늘이고 조밀하게 지뢰원을 형성하였다. 또한 인민군대의 습격에 겁을 먹은 적들은 화점들은 물론 주변참호에까지 그물을 치고 밤이면 탐조등으로 그 변두리를 대낮처럼 비치고있었다. 그러므로 이 고지를 점령하는것은 다음 타격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놓으며 군사분계선을 멀리 남쪽으로 설정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42(1953)년 6월 1일 811.7고지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시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던 170여문의 포들이 일제사격에 이어 인민군전투원들은 맹렬한 돌격으로 불과 33분만에 811.7고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이 전투에서 적병 450여명을 살상하고 86명을 포로하였다.

811.7고지와 351고지에서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을 때 다른 아군련합부대들은 북한강왼쪽기슭에서 강력한 타격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히면서 계속 종심으로 성과를 확대해나갔다. 12km의 전선에서 사태처럼 무너져간 적들은 종심 6km까지 쫓겨나갔다.

적에 대한 인민군부대들의 두번째 타격은 전전선에서 56개의 지점에 대하여 모두 70여차례에 걸쳐 과감히 진행되였다.

 

 

 

이 기간 인민군대는 4만 2, 000여명의 적을 살상포로하고 수많은 전투기술기재들을 로획하거나 파괴하였으며 33개의 중요한 고지를 포함하여 55k에 달하는 지역을 우리가 차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는 제2차타격전에서도 빛나는 전과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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