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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를 깨뜨린 군사적기적​창조

 

 

전국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구상을 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9(1950)년 11월]

 

1950년 9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전선형편은 급변하였다.

 

막대한 손실을 내고서야 인천에 상륙한 미제는 《속전속결》을 기도하면서 서울방향으로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미10군단이 인천에 상륙할 무렵 락동강전선의 미8군은 9월 16일 공세로 이전하였다. 대구-김천-대전-수원방향과 대구-함창-원주방향으로 신속히 북상함으로써 수원, 원주계선에서 미10군단과 협동하여 인민군주력부대를 《포위소멸》하자는것이 적들이 노린 목적이였다.

 

급변한 정세를 두고 제국주의반동들과 어용출판물들은 전쟁의 전도가 이미 《결정》되였으며 미국의 《승리》는 시간문제라고 떠들어댔다.

 

세계의 량심적인 인민들은 조성된 정세에 위구를 느끼며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불안과 비관은 내부에서도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이 승리의 신심을 잃고 동요하였으며 적의 《기술적우세》를 과대평가하면서 전쟁의 전도를 우려하였다. 게다가 이 시기 미제의 고용간첩 박헌영, 리승엽도당은 조성된 정세를 제놈들의 반혁명적음모를 실현하기 위한 유리한 기회로까지 리용하려고 하였다.

 

우리 조국과 인민앞에는 엄중한 위기가 닥쳐오게 되였다. 이 엄혹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나갈것인가, 이것은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무비의 담력과 배짱, 탁월한 령군술을 지니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념을 지니시고 전쟁의 최후승리를 락관하시였으며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령활하고도 대담한 작전을 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아력량관계의 변화와 전선형편의 엄중성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조직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9(1950)년 9월 27일 도당위원장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와 당단체들의 과업》에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현계단에 있어서 우리 당의 전략적방침은 적들의 진공속도를 최대한으로 지연시키면서 시간을 쟁취하여 인민군주력부대들을 구출하고 새로운 후비부대들을 편성하여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하며 계획적인 후퇴를 조직하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방침은 본질에 있어서 인민군대의 주력을 보존하며 후비부대를 편성하여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하는것이였으며 정세가 아군에게 불리하게 된 조건에서도 주동을 틀어쥐고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켜나가는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전략이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조직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은 전쟁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적들이 엄청나게 우세한 력량으로 락동강전선의 인민군주력을 포위소멸하려고 달려들고있던 때에 계획적인 후퇴를 조직하여 주력을 보존하며 총반격을 위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할데 대한 주동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제기한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 어떤 대적이 달려들어도 발아래로 굽어보시며 언제나 비범한 지략과 기묘한 전략전술, 강철의 의지로 난국을 타개하고 승리를 마련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탁월하고 독창적인 군사전략이였다. 그때까지 세계의 많은 군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포위환에 든 파울루스의 30만 도이췰란드군이 막다른 골목에 들자 항복한것과 같은 전례밖에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인민군대의 주력이 적들의 《포위》를 돌파할수 있겠는가를 우려했고 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민군부대들이 다 《녹아》날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약점을 환히 꿰뚫어보시고 래일의 승리를 확신하시였던것이다.

 

적들의 약점이란 한마디로 《포위》의 범위가 넓은것이였다. 당시 인천과 서울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수다한 손실을 입은 적들로서는 그 손실된 력량으로 인민군주력부대의 퇴로를 막으려고 아무리 발악해도 서울 동쪽으로부터 전선동부사이에 어차피 빈 익측과 중간지 및 공간지가 형성되는것을 막을수 없었다. 그리고 상륙지점인 인천으로부터 기본전선인 락동강계선까지는 수백㎞나 떨어져있으므로 그 련합의 실현도 담보하기 매우 어려운것이였다. 이러한것들은 다 적들이 호언장담하는 《포위》기도에서 치명적인 전략전술적약점들이였다.

 

적의 약점과 사태발전의 추이에 대한 예리한 분석, 인민군전사들과 지휘관들에 대한 드팀없는 믿음에 기초하시여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성과적실현을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신데 이어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천-서울방어전을 완강히 벌리도록 이끄심으로써 락동강전선에 진출한 인민군주력부대들의 전략적후퇴를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얻어내도록 하시였다.

인천-서울지구에서의 방어전을 완강히 벌려 적들의 서울강점을 지연, 파탄시키는것은 적들이 기도하는 포위환형성을 지체시키고 주력부대의 전략적후퇴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해주며 주력을 보존하는데서 결정적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인천-서울지구방위자들은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군민이 한덩어리가 되여 싸웠다. 서울시민들은 단 며칠사이에 수백개의 바리케드를 거리의 요소마다에 쌓고 항전에 떨쳐나섰다.

 

9월 21일 남조선에 기여든 맥아더는 미10군단장 알몬드에게 22일까지 서울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였으나 적들은 인민군대의 완강한 방어진을 돌파할수 없었다. 하는수없이 맥아더는 25일까지 점령하라는 세번째 명령을 내리였다. 그러나 미군은 《한개의 바리케드를 넘어서는데 45분∼1시간 걸리는것이 보통》이였으며 1 000m를 전진하는데 5시간이상 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미 배에 실어나른 시체와 부상자만도 6 000명이 넘었다. 결국 미군은 맥아더의 세번째 명령도 실현할수 없었다. 화가 난 맥아더는 9월 26일 오후 2시에 서울시가 《유엔군》에 의하여 《완전히 점령》되였다고 공포하였다. 그러나 이때 서울시는 그 절반이상이 인민군대에 장악되여있었고 괴뢰중앙청에는 공화국기가 힘있게 나붓기고있었다. 27일, 28일에도 시 동북쪽구역에서는 가렬한 전투가 계속되였다. 인민군부대들은 서울시민들과 인민의용군의 지원밑에 력량상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의 공격을 14일동안이나 저지시킴으로써 《부산교두보》의 《메》로 락동강전선의 인민군련합부대들을 내려치려던 미제의 모험적인 작전계획을 여지없이 파탄시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천-서울지역에서의 완강한 방어로 적들의 《속전속결》기도를 짓부셔버리시는 한편 전례없는 기발한 후퇴전술로 인민군대의 주력을 보존하고 적의 공격속도를 최대한 지연시키시였다.

인민군부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전술대로 련합부대 또는 부대단위로 기동방어를 하면서 산발을 타고 조직적으로 후퇴의 길에 올랐다.

적들은 저들이 예측했던 지역에서 인민군후퇴종대를 찾으려고 피눈이 되여 살폈지만 인민군대의 그림자조차 볼수가 없었다. 인민군주력을 놓친 적들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AP통신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남부전선의 북조선군이 어떻게 <유엔군>의 추격에서 벗어났는가 하는것은 전쟁국면의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들은 연기처럼 사라진 모양이다. 그들은 거의 하루밤사이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여 정찰기도 후퇴중의 종대를 발견하지 못하고있다. 그리고 서울, 인천지구에 이동하고있는 징후도 없다. 문제는 장비를 갖춘 북조선군이 어디로 갔는가 하는것이다.》 인민군부대들의 기묘한 후퇴전술을 알수 없었던 워커는 《전국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할 대신에 서둘러 《조직된 군대로서의 북조선군은 없어졌》으며 《전쟁은 이미 끝났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를 두고 랭정한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돌연히 땅속에 숨어버린》 인민군대병력이 《후날 미군의 생명을 빼앗을줄은 추호도 모르고있었다.》고 조소하였다.

 

그러면 《연기처럼 사라진》 인민군주력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작전전술적계획과 조치에 따라 후퇴경로의 앞과 뒤, 량익측에 정찰과 경계를 강화하고 민첩한 기동방어로써 여러 계선에서 적을 쉬임없이 타격하면서 38°선까지 조직적으로 후퇴하였다. 그리고 이미 이 계선에서 기동방어를 하고있던 부대들은 적들에게 다시한번 된타격을 안김으로써 적들의 공격을 크게 지연시켰으며 그후 평양과 원산, 함흥 등 지역방어에서도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지정된 지점을 향해 행군을 다그쳐갔다.

 

인민군부대들과 인민들이 조직적인 후퇴의 길에 올랐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중요생산설비들과 각종 전략물자들도 안전한 지대에로 시급히 소개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과 군인들속에 안전을 념려하시여 친어버이심정으로 그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으며 필요한 모든 대책들을 다 세워주시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간고성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리신 그이께서는 인민군전사들의 마음속에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시고 모두가 높은 정신력과 비상한 의지력의 소유자가 되도록 하시였으며 인민군련합부대들의 후퇴로정도 몸소 잡아주시고 적후에 수많은 련락소조들과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후퇴하는 주력부대들을 인도하도록 하시는 세심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여러곳에 경무초소들을 조직하도록 하시였으며 어려운 행군을 계속하고있는 군인들의 식량과 피복을 념려하시여 일정한 지점들에 미리 그것을 마련해놓도록 하는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처럼 어려운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나날에도 인민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피시였다.

 

주체39(1950)년 10월 어느날, 인민들의 후퇴정형을 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과학자가 만삭이 된 안해와 다섯 아이를 데리고 서울을 떠났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날 그 과학자일가의 안전을 두고 마음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기가 무시로 달려드는 큰길로 자동차를 타고오기보다는 안해와 아이들을 달구지에 태워가지고 산길로 오는편이 안전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달구지를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이리하여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던 과학연구집단의 한 성원이 달구지를 가지고 그 과학자를 마중나가게 되였다. 후퇴도중 어느 한 마을에서 하루밤을 쉬고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던 그 과학자는 뜻밖에도 달구지를 가지고 온 일군으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고는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안해도 아이들도 모두 울었다. 나라의 존망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한 과학자일가의 안전에 대해서까지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은 정녕 우리 인민모두의 생명의 은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멀리 락동강연안의 마산지역과 대구 북쪽지역, 포항지역에 진출하였던 련합부대들모두가 앞을 막아나서는 적들을 대담하게 기습소탕하면서 소백산줄기와 태백산줄기의 높고 험한 령과 골짜기들, 키를 넘는 강을 넘고 건느며 인원과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를 보존한채 마침내 지정된 지점에 신속히 집결할수 있었다. 그 대오속에는 남조선에 나갔던 정치공작대원들과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들과 나어린 소년들도 있었다.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은밀하였으며 신속하였던지 세상사람들은 《이것은 하나의 기적이다!》라고 하면서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후퇴과정에 무질서와 혼란이 나타나는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만 알고있었고 또 그러한 후퇴만을 보아왔는데 전혀 상상밖의 일을 목격하였던것이다. 인민군대는 간고한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서 와해되거나 좌절된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념과 규률이 더 강해졌고 패기가 넘쳐났으며 대오는 더욱 강대해졌다. 반면에 적들은 여러 계선과 이르는 곳마다에서 얻어맞아 의기소침해졌으며 북으로 들어올수록 불안과 공포에 떨며 허우적거리였다. 말하자면 후퇴하는측이 강해지고 공격자가 피동에 빠졌으니 우리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전례를 깨뜨린 일대 군사적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만사람을 경탄시킨 이 기적,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출중한 지략과 비범한 령군술, 림기응변의 전법과 완강한 의지에 의하여 마련된것이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로정을 성과적으로 마친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은 차후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갈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바야흐로 전국의 근본적전환의 시기를 맞이할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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