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기강에 낚시줄을 드리우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8(1939)년 여름 올기강기슭의 수림속에 자리잡은 사령부밀영에 계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전반적인 군사정치활동을 조직지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우리앞에는 국내진공작전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발전시키면서 우리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나가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준동이 극심한 조건에서 밀영지를 놈들의 감시로부터 철저히 은페되고 유사시에는 대원들이 재빨리 기동할수 있는 지대인 올기강골안에 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기강밀영​에서 백두산동북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지휘하시였으며 두만강연안일대와 국내각지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들의 사업을 직접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통신원들, 정치공작원들을 정기적으로 밀영에 부르시거나 때로는 사령부통신원들을 보내시기도 하고 친히 그들을 찾아가 사업을 지도해주시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올기강밀영에는 백두산동북부와 국내에서 활동하는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정치공작원들이 그칠새없이 드나들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이해 여름 백두산동북부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려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일제의 여름철 《토벌》작전을 완전히 파탄시킬수 있었으며 광범한 인민들을 혁명화하여 백두산동북부를 강력한 혁명기지로 꾸릴수 있었다. 일제의 관동군헌병대가 줄여서 발표한데 의하더라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주체28(1939)년 6월부터 9월까지의 4개월동안에 벌린 전투는 무려 138회에 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올기강의 사령부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당면한 군사정치활동을 조직지휘하시였을뿐아니라 다가오는 겨울철군사작전을 구상하시면서 작전수행에 요구되는 제반 보장사업도 빈틈없이 맞물려나가시였다.

어느덧 여름도 다 가고 올기강기슭에 가을이 왔다. 9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작전준비를 위하여 여름내 백두산동북부의 각지에서 활동하던 주력부대의 각 련대들을 사령부가 있는 올기강밀영으로 부르시였다.

마침 추석명절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성과를 달성하고 돌아온 부대들의 사기를 더욱 높여주며 특히 이해 여름에 각 련대들에서 대원들을 새로 많이 받아들인 사정을 고려하시여 추석을 특별히 잘 쇠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밀영은 오래간만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추석명절을 쇠는 대원들의 기쁨으로 하여 흥성거리였다.

그러나 명절을 즐기는 대원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름내 밀영에 와있다가 얼마전에 집으로 돌아간 중국인지주 류통사의 동생과 조카의 일로 하여 불안과 긴장감이 없지 않았다.

 

류통사는 중국 화룡현 우심산기슭의 룡담촌에 사는 대부호였는데 조선말을 잘하여 중국사람들과 조선사람들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통역을 맡아나서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있던 그를 징벌이나 재산몰수가 아니라 높으신 덕망과 교양으로 반공의식을 바로잡아주시고 반일애국정신을 더욱 조장시키시여 조선혁명의 적극적인 지지자, 후원자로 교양개조하시였다. 그리고 아편만 피우면서 호의호식해온 그의 동생도 잘 대해주면서 꾸준히 교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포옹력과 사리정연한 가르치심에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류통사는 동생과 조카를 밀영에 남아있게 하고 그를 구실로 많은 식량과 천, 신발 등 각종 원군물자를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그 물자들은 그해 겨울나이준비를 하는데서 큰 도움으로 되였다.

 

그런데 추석명절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류통사의 동생과 조카를 집으로 돌려보내시였으니 그들을 통하여 사령부의 위치를 알아낸 적들이 언제 밀영으로 달려들지 알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모연의 목적도 달성되였고 또 부대이동도 예견되여있었던것만큼 류통사의 동생을 돌려보내여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위치를 로출시키고 적들이 올기강골안으로 밀려들게 함으로써 부대의 새 작전을 준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것을 타산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성급한 대원들은 출발명령이 내리기를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밀영에 떠도는 긴장된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시지 않고 전령병과 함께 낚시질을 하러 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올기강에 낚시대를 드리우시고 심원한 작전적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적들이 어느 시각에 달려들지 모를 긴박한 정황에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빛이 없이 낚시대를 드시고 강가로 향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태연자약한 모습은 대원들의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밀영의 팽팽하던 분위기를 가셔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기강물속에 낚시를 넣기 바쁘게 펄펄 뛰는 산천어를 연신 낚아내시였다. 그런데 전령병의 낚시에는 영 고기가 물리지 않았다. 속이 달아난 전령병은 강아래우로 왔다갔다하며 자리를 바꾸었지만 매한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달아 하는 전령병을 보고 웃으시며 낚시질에도 묘득이 있소, 묘득이란 고기의 성질을 알고 그 성질을 리용해서 잡는 법을 말하는것이요, 옛날 사람들의 말에도 군사를 잘 쓰는 장수는 적을 잘 알고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소, … 적의 병력, 무장상태와 전술을 잘 알고 적의 장점과 약점을 잘 알고 우리의 력량을 잘 타산해야 싸워서 이길수 있소, 낚시질도 바로 그렇소, 잡으려는 고기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있고 어떤 곬으로 다니고 어떤데 숨어있고 어떤것을 잘 무는지 모르고는 고기를 낚을수 없다고 하시였다. 전령병은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의 깊은 뜻을 미처 다 리해할수 없었지만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하니 그의 낚시에도 산천어가 물리기 시작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런 재미로 낚시질을 하시는구만요.》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에 크게 웃으시면서 동무도 이제야 낚시질맛을 안것 같군, … 그러나 낚시질을 좋아하는것은 고기를 잡는 재미때문만은 아니요, 고기잡는 재미도 있지만 그만 못지 않은 다른 재미도 있소, 례하면 시인이 낚시질하면서 글귀를 생각하며 발명가가 낚시를 드리우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재미란 고기잡는 재미보다 결코 못지 않다고들 하오, 이런 사람들은 고기잡는 재미보다 더 깊은 맛을 아는 사람들이요, 동무도 낚시를 드리우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면 문제가 곧 잘 풀려나온다는것을 알것이라고 하시였다. 낚시줄을 드리우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마 아직도 류통사동생이 가닿지 못했겠지?》, 《일제놈들이 고발을 받으면 벌의 둥지를 뚜져놓은것 같이 될거야.》라고 하시면서 천천히 낚시대를 거두시였다.

 

전령병은 이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의도를 다소나마 짐작하게 되였다.

사실 올기강기슭에 낚시를 드리우시고있던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하신것이 아니라 적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더우기 방금 돌려보낸 류통사동생의 《고발》을 받은 적들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얼마만 한 병력으로 어느 방향으로, 어느 때쯤이면 달려들것인가를 타산하시고 놈들을 어떻게 족칠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작전을 짜시려고 긴장한 사색을 모으고계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낚시터에서 돌아오시자 주력부대에 출발명령을 내리시고 올기강밀영을 떠나 유유히 안도방향으로 향하시였다.

한편 류통사동생의 말을 듣고 적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올기강골안으로 몰려들었으나 그때는 이미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이동한 뒤여서 헛물만 켜고 돌아갔다.

 

일화; 판판 달라진 류통사​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21장 대부대선회작전의 총성. 2 중국인지주 류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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