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귀몰의 전법으로 승리한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을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드팀없는 배짱, 철의 의지로 언제나 주도권을 틀어쥐시고 력량의 집중과 분산, 이동을 배합하는 령활한 유격전술을 적용하시여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으시면서 고난의 행군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 어느 병서에도 없는 독창적인 전법들로 달려드는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고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난의 행군은 유격전쟁이 창조한 모든 전법과 전술의 종합적인 시험장이였다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에로의 간고한 행군을 시작한 초시기 진드기처럼 달려드는 적들의 교대식장거리추격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갈지자전법을 적용하시였다.

 

갈지자전법은 눈이 몇길씩 쌓인 만주산지에서 뒤따라오는 적들을 타격하는데 가장 적합한 전법이였다.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려서 앞사람이 눈을 다지며 길을 내야만 행군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적들은 어차피 혁명군이 낸 외통길을 졸졸 따라오는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군로를 갈지자모양으로 잡아나가다가 길이 꺾이는 대목마다 기관총을 휴대한 2~3명의전투소조를 매복시켰다가 적들이 매복조의 사격권안에 들어오면 횡대로 늘어서게 될 때 사격을 퍼붓군 하였다. 그리고는 적들이 죽은 놈의 시체를 처리하는 사이에 매복타격조들을 이동시켰다가 적들이 다가오면 다시금 같은 방법으로 소멸하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전법으로 주도권을 확고히 쥐시고 적들에게 련속 강타를 안기시면서 험준한 룡강산줄기의 수많은 릉선을 넘어선 다음 몽강현의 오도차, 사도차의 적을 소탕하시고 림강현 요구집단부락습격전투(요구전투​), 마의하​부근전투, 왕가점습격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을 벌리시였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치면서 한달가까이 장설행군을 하여온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장백현 7도구치기에 이른것은 주체28(1939)년 1월초였다.

적들은 비행기와 다른 지방에서 대기하고있던 《토벌대》력량까지 끌어들여 포위진을 치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와의 최후대결전을 벌리려고 하였다. 정황은 위급하였다. 앞에도 적이고 옆에도 적이고 하늘에도 적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정황에서 집단행동으로부터 분산행동으로 넘어가는 전술을 적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긴박한 정황에 대처하여 7도구치기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제2방면군 일군회의를 소집하시고 집단행동으로부터 분산행동으로 넘어갈데 대한 새로운 전술적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이에 따라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로 구성되는 사령부직속부대는 장백현 가재수방향으로, 7련대는 사령부로 가장하고 장백현 상강구방향으로, 8련대와 독립대대는 무송현 동강방향으로 진출하게 되였다.

 

방면군이 분산활동으로 넘어가게 된 때로부터 고난의 행군은 제2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3개 방향으로 갈라져 행군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전술적방침은 적의 병력을 분산시켰을뿐아니라 포위기도를 파탄시키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옹위하려는 불타는 충실성을 안고 자기 부대를 사령부로 가장한 7련대는 7도구치기를 떠나는 첫순간부터 적들을 자기들쪽으로 유인하면서 어려운 싸움을 벌렸다. 적들은 7련대를 조선인민혁명군의 사령부로 알고 쫓아다니다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사령부직속부대의 행방을 놓치고말았다.

 

적들은 가재수에서 지하공작을 하던 김 아무개라는 사람을 붙잡고 문초하는 과정에 저들이 사령부로 알고 뒤따르던 7련대가 가짜사령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비행기까지 띄우며 사령부의 행방을 찾아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들다나니 사령부성원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되였다.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모두 위대한 수령님만 쳐다보았다. 그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난관앞에 주저앉지 말고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안고 대담하게 난관을 뚫고나갈데 대한 선동연설로 그들에게 신심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 천변만화의 다양한 전법과 전술을 적용하시였다.

 

행군도중에 행처를 감추기 위해 발자국자리를 메우거나 지워버리면서 슬쩍 사라지는 방법, 넘어진 강대나 진대나무를 타고 옆으로 빠지는 방법 등 다양한 전법으로 적들을 골탕먹이군 하시였다.그중에서도 가장 통쾌한 방법은 앞뒤에서 나타난 적들이 제편끼리 맞붙어 싸우도록 싸움을 붙여놓고 슬쩍 빠지는 방법 즉 망원전술이였다. 장백현 홍토산자와 부후물등판에서 바로 그런 전술로 적들을 골탕먹이였다. 홍토산자는 12도구에서 북쪽으로 약 24㎞ 떨어져있는 해발 1 158.4m의 이름 그대로 덩지가 크고 높은 번대머리산이다.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종적을 잃지 않으려고 뒤를 바싹 조이면서 사방의 병력을 이 방향에 집중하고있었다. 정황을 예리하게 포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격해오는 적을 뒤에 달고 그 산을 두바퀴째 돌다가 앞에서도 적이 나타나자 진대나무를 타고 슬쩍 옆으로 빠지도록 하시였다. 인민혁명군을 앞뒤에서 추격하다가 외통길에서 마주치게 된 적의 두 부대는 서로 상대를 혁명군으로 알고 맹렬한 총격전을 벌리였다. 상대가 제편이라는것을 모르고 벌리는 맞불질이니 그야말로 사생결단이였다. 적들은 거의 한시간동안 기관총을 쏘아대며 개싸움질을 하다가 무리죽음을 낸 다음에야 제편끼리 싸웠다는것을 알고 아연실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후물등판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총 한방 쏘지 않고서도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시였다. 부후물등판에서 제편끼리 싸워 수많은 손실을 당한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너무나 신출귀몰하고 승천입지하는 묘술을 쓰기때문에 도저히 잡아낼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싸움을 하루에도 몇차례씩 하며 적의 많은 유생력량을 소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적들이 밀림지대에 력량을 집중하면 부대를 야산지대로 이동시키시고 적이 야산지대에 붙으면 다시 밀림지대에로 들어가게 하시는 등 정황에 따라 부대를 민첩하게 이동시키면서 놈들을 련속 혼란에 빠뜨려놓고 족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후물등판에서 싸움을 치른 다음 적들이 밀림지대에 병력을 집중하고있다는것을 포착하시고 부대를 거느리시고 밤새껏 강행군을 해서 야산지대인 가재수쪽으로 쭉 빠져나가시였다.

 

참으로 령활무쌍한 전술이였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 적들은 바로 저들의 코밑에서, 가재수마을에서 개짖는 소리까지 들리는 그곳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여유있게 숙영하리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재수부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자그마한 야산에 숙영지를 정하시고나서 남패자를 떠난 다음 처음으로 대원들을 휴식도 시키고 학습도 시키면서 얼마간 피로를 풀게 하시였으며 사령부성원들과 마주앉아 앞으로의 활동방향과 전술적문제들을 토의하시였다.

그런데 이때 신념과 의지가 약하고 단련이 부족한 한 신입대원이 중첩되는 곤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식량공작을 내려간 기회에 도주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아군의 행처를 알아가지고 달려들수 있는 정황이 조성되자 무연한 벌판을 대낮에 대담하게 돌파하여 수림지대로 들어가도록 명령하시였다.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용단이였다. 가재수부락의 적들은 포대에서 빤히 내려다보면서도 그 기세에 눌리여 감히 접어들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가 수림지대에서 벗어나 다시 행군하고있을 때 앞뒤에서 적들이 나타나자 이번에는 적들을 따돌리는 전술로부터 선손을 써서 적들을 답새기는 공격전술로 적을 쫓아버리시였다. 이때부터 이런 전술을 광범하게 활용하여 어려운 고비들을 수없이 이겨내고 피동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장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부대전으로 적들을 완전히 수세에 몰아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2월 18일 장백현 13도만집단부락습격전투(13도만전투)를 진행하시여 위만군 1개 중대를 완전히 소멸하시였다. 그후 적들이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에 이전보다 더 많은 《토벌》력량을 집중한것으로 하여 어려움과 곤난은 더욱 컸지만 피동에 빠지지 않고 3월 상순 장백현 13도구 집단부락을 또 하나 들이쳐 분산활동을 하고있는 부대들에 사령부의 위치를 알리시였다. 7련대는 사령부가 13도구를 습격하였다는것을 알고 적후방을 교란하여 사령부에 련대의 행동방향을 알리기 위해 13도구 웃마을과 아래마을 적들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이 전투가 있은 다음 7련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신 통신원을 따라 사령부로 찾아오게 되였다. 8련대와 독립대대 그리고 청봉밀영에 있던 후방성원들도 련락을 받고 사령부로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집결한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장백현 간삼봉부근과 오반도일대를 중심으로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신 다음 주체28(1939)년 3월 북대정자에 이르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력사적인 고난의 행군은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다.

도보로 대엿새면 가닿을수 있는 거리를 무려 110여일에 걸쳐 진행한 이 행군과정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다 겪었지만 조선혁명은 다시 상승일로로 전진하게 되였다.

실로 고난의 행군의 승리는 강의한 신념과 배짱,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유격전법과 탁월한 령군술의 빛나는 승리였다.

고난의 행군의 승리는 또한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끝까지 한길을 가려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이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였다.

 

일화 ❖ 기묘한 돌파전​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제7권 제19장 시련의 언덕을 넘어. 8. 남패자의 수림속에서

                                제20장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향하여. 1. 고난의 행군

            도서; 총서《불멸의 력사》장편소설 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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