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혁명의 길에 오르신 때로부터 20년만에 만경대고향집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34 (1945). 10.14 ]

 

《…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이 말은 조국을 해방하시고 당창건위업을 이룩하신 다음 만경대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을 맞이한 그때에 할머니 리보익녀사가 한 가슴뜨거운 말이다.

《만경대의 노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과 개선인사를 나누신 바로 그날 오후에야 평양에 들어오시였던 삼촌내외분들과 함께 그리운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주체34(1945)년 10월 15일 그리운 만경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경대인민들과 뜻깊은 상봉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방된 고향땅 만경대에서 20년만에 그립고 보고싶던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나니 참으로 감격과 기쁨을 금할수 없습니다.

 

20년만에 찾으시는 만경대, 건국사업을 의논하시려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아가실 때 지척에 두고도 들려보지 못하시였던 만경대였다.

 

순화강나루터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은 나루배를 타시고 고향마을에 들어서시였다. 마을의 남녀로소가 동구밖에까지 떨쳐나와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다운 고향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례를 하시였다.

 

이 력사적인 광경을 당시 《평양민보》는 이렇게 전하였다.

 

《…전원에는 만곡이 무르익고 가을 하늘은 무한히 맑았다. 산천이 아름다와 영웅이 난다더니 절경 만경대에서 마침내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셨다. 장군님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을사람들은 남녀로소 통털어서 동구앞까지 마중나왔다. 악수, 포옹, 인사 그리고 만세, 만세의 환호… 마을사람들은 마음껏 높이 불렀다. 기쁨의 만세를, 축복의 만세를!

오늘부터 만경대는 조선의 만경대 아니 세계의 만경대라는 영예를 지니게 되는것이다.… 이날 벌어진 광경은 세기의 극적장면이요 또 력사적장면이였다.》

 

고향집의 사립문앞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뜻 그안으로 들어설수 없으시였다.

조선독립을 위한 싸움의 길을 찾아 만리이역으로 떠나간 아들, 며느리, 손자들을 기다려 밤에도 낮에도 늘 열려져있었다는 사립문이였다.

가난과 일가분들의 마음고생에 쩌들은, 이 나라 어디가나 볼수 있는 평범한 사립문이였지만 한번 나섰다가 다시 찾기까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피어린 가시덤불길이 걸음마다 앞을 막아나서는 장장 20년세월을 헤쳐오시여야 했던것이다.

그때 버선발로 마당에 달려나오신 할아버님께서는 손자분을 얼싸안으시고 《우리 장손이 돌아오는구나.…어디 보자! 어디…》 하고 눈물속에 뇌이시였다. 할머님께서도 손자분의 넓은 품에 그대로 안기시여 《너를 보니 한생에 쌓인 시름이 다 풀리는구나!…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시면서 울음을 터뜨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나이 서른살이 넘도록 효도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상봉의 인사를 드리시였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말아라. 네 아버지가 하다가 못한 조선독립을 네가 해냈으면 그게 효도지 그보다 큰 효도가 어디 있겠느냐. 나라와 백성을 잘 돌보면 그게 효도니라.》

할아버님의 이 말씀에 사람들모두가 감격의 눈물에 젖어있었다.

 

그날 남리 사람들이 다 모여왔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귀향하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두단리와 추자섬에서도 사람들이 떼를 지어 찾아왔다. 소박한 가족연회가 수십명을 망라하는 군중연회로 번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여 춤을 추고 노래도 불렀다. 끝없이 펼쳐지는 감격적인 이야기와 기쁨에 넘치는 노래를 안고 만경대의 밤은 깊어갔다.

 

그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향집에서 주무시게 되였다.

할머님께서는 이부자리가 변변한것이 없으니 20년만에 돌아온 손자분에게 어떻게 덮던것을 드리겠느냐고 걱정을 하시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개선하신 손자분께 새 이부자리 한채 펴드릴것이 없었던 가난한 살림, 수수한 농가, 이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고향집이였다.

그런데다가 고향집은 집수리를 하느라고 구들을 뜯어놓고 문도 채 달지 못하고 지내는 형편이였다. 채 마르지 않은 구들에는 밀짚과 벼짚을 깔고 그 우에 멍석을 펴고있었다.

할아버님께서는 여러가지로 생각하시던 끝에 다른 집 사랑방에 잠자리를 정해놓았으니 오늘밤은 궁색한대로 거기에 가서 쉬여야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아버님의 손목을 꼭 잡으시고 우리는 산에서 호강을 하다가 온게 아닙니다, 풍찬로숙을 하다가 왔습니다, 하늘을 지붕삼고 초목을 이불삼아 덮고 살았습니다, 좋은 제집에 와서야 왜 구차스럽게 남의 집에 가서 자겠습니까, 나는 우리 집에서 자겠습니다라고 하시며 할아버님, 할머님과 함께 대를 두고 물려오는 무명이불을 덮으시고 하루밤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밤 잠못드시고 백두산과 만주광야에서 겪어온 행적을 조용히 더듬어보시며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얼굴도 그려보시고 은인들도 생각하시고 어린 시절도 추억하시며 앞으로 건설하게 될 새 조국의 미래도 설계해보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스무해만에 맞이하게 되는 만경대의 밤, 그밤은 참으로 감회깊은 밤이였다.

이튿날 아침에 고향집마당에서는 아무런 격식도 차리지 않은채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는 마을인민들의 모임이 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석단이며 연탁이며를 마련하는것을 굳이 사양하시고 토방에 그대로 서신채 마을인민들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뜻깊은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터전을 마련하시는 일이 너무도 분망하시여 일가분들과 쌓이고쌓인 회포를 나누실사이도 없이 곧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뒤를 이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을 앞세우고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만경대고향집을 찾으신때로부터 두달반이 지난 이듬해 양력설날 조국에 개선하시여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어리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을 앞세우시고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만경대는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던 그날처럼 명절분위기에 휩싸였다.

 

손자며느님의 큰절을 받으시고 신통히도 수령님을 닮으신 어리신 장군님을 품에 안으신 할아버님께서는 《우리 가문의 대가 만리에 뻗쳤구나!》라고 하시며 감탄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할머님께서는 영특하신 위대한 장군님을 품에 안으시고 《과시 그 아버지,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로구나!》라고 하시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시여 오매에도 그리던 만경대를 찾으시고 일가분들을 뵙게 되는 감회가 무한히 깊으시였으며 위대한 혁명일가의 장손며느리로서의 책임을 깊이 간직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아드님과 함께 만경대를 찾으신것은 해방된 조국력사에 특기할 또 하나의 대경사였으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기약하는 뜻깊은 사변이였다.

 

일화: 환영군중대회장에 찾아 온 삼촌어머님​, 칠골외가에서의 감회깊은 회고 (1)​,

        칠골외가에서의 감회깊은 회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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