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땅에 돌아온 력사의 날​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고 조국을 해방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문없이 조국에 개선하시였다.

새 조국건설의 리정표를 마련하시고 그에 따르는 준비사업까지 다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원동의 가을바람에 야영지 뒤산의 봇나무잎새들이 누렇게 황이 들던 그해 9월 조선인민혁명군 친솔부대를 거느리고 력사적인 조국개선의 길에 오르시였다.

 

 

개선문

 

 

개선대오는 이미 계획했던 륙로가 아니라 울라지보스또크로부터 원산항에 이르는 배길을 리용하기로 하였다. 일제패잔병들이 목단강 남쪽에 있는 기차굴을 폭파해놓은데다가 우회도로와 잇닿은 교량들과 목단강비행장의 활주로까지 파괴해놓았기때문에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리용할수 없었다.

 

군함을 타시고 파도 사나운 망망대해를 헤가르며 조국으로 돌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정은 참으로 감개무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평선우에 우렷이 솟아올라 선명한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며 격정에 넘치신 어조로 대원들에게 기어이 조국에 돌아왔다고 하시였다.

이 교시를 받으며 조국강산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항일혈전의 나날 어느 한순간도 잊은적 없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찾고야말리라던 귀중한 조국이였다. 그들중에는 조국땅을 처음으로 보는 대원들도 있었다. 조국에 갈 때는 나의 인사도 함께 가지고 가달라고 부탁하며 숨져간 전우들의 모습이 그들모두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의 격동된 심정을 하나하나 헤아리신듯 오늘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오늘이야말로 그립던 조국땅에 돌아온 력사의 날이라고 하시며 참으로 뜻깊은 오늘은 조국의 력사우에 길이 남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외세의 칼날아래 영영 꺼지는줄 알았던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는 이날이야말로 반만년민족사에 일찌기 없었던 가장 경사스럽고 감격스러운 날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이라는 거창한 위업을 이룩하시고도 소문도 없이 주체34(1945)년 9월 19일 원산항에 상륙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내 공산주의자들에게 조선혁명의 성격과 당면임무, 새 조국건설로선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현 단계에서 조선혁명의 성격은 의연히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되며 우리는 당면하여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숙청하고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혁명임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이며 해방된 조국땅에 세워야 할 국가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로선이며 인민대중이 념원하는 길입니다.》

 

해방의 은인을 맞이하는 원산부두는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개선일정에 대하여서는 공개하지 않았기때문에 환영나온 군중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파견되여 활동하고있던 소부대성원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원산시당부터 찾으시였다.

 

시당청사의 벽에는 《공산주의기치아래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는 구호가 나붙어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구호에 잠간 주의깊은 눈길을 보내시고나서 청사안으로 들어가시여 시당일군들을 만나시였다. 해외와 국내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과 만난 자리이니 자연히 해방된 조선의 진로에 대한 문제가 화제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에게 그에 대한 견해를 물으시였다. 몇몇 일군들이 일어서서 해방된 우리 나라에서는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고 자기들의 소견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중한 낯빛을 지으시고 수행한 동지들을 돌아보시였다. 시국에 민감하다고 할수 있는 공산주의운동자들의 견해가 그렇다면 여기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것이였다. 청사의 벽에 나붙은 구호를 보시면서 직감하시였던 우려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에게 당신들은 로동계급의 힘만으로 새 조국을 건설하려고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야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인데 로동계급밖에 믿을것이 있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들의 주장은 1920년대 후반기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별로 차이나는것이 없었다. 그들의 정견이나 주의주장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은 고려하지 않고 고전의 명제를 교조적으로 되외우는것에 불과하였고 해방된 우리 인민의 지향에 맞는 로선을 탐구하려는 진지한 모대김도 느껴지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면 로동계급뿐아니라 그 동맹자인 농민은 물론 새 사회건설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각계각층의 애국적인 군중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워 거족적인 힘으로 우리 나라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하시며 시당청사의 구호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것만큼 민주주의기발아래 단결하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당일군들을 만나신 후 숙소인 동양려관으로 찾아오는 로동조합대표, 지방유지들과도 만나 담화를 하시였다. 그들역시 시당일군들이 하던 말을 그대로 되외우지 않으면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하니까 어느것이 옳은지 알수 없다고 어정쩡한 대답을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산사람들을 만나 담화를 하시면서 국내의 어느 당파나 어느 조직도 인민들에게 똑똑한 건국로선을 내놓지 못하고있다는것을 통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군사정치간부 및 원산시공산당단체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에서 조선혁명의 성격과 당면임무, 새 조국건설로선을 다시금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단계에서 조선혁명의 성격은 의연히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되며 우리는 당면하여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숙청하고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혁명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이며 해방된 조국땅에 세워야 할 국가는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건국로선이며 인민대중이 념원하는 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해방된 조선이 진보적민주주의길로 나가야만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고 나라의 완전자주독립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달성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정치일군들과 원산시당 일군들이 인민대중속에 건국로선을 광범히 해설선전하여 그들이 조선이 나아갈 길을 똑똑히 알고 건국사업에 매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광범한 대중을 민주주의기발아래 튼튼히 묶어세워 새 조국건설을 다그쳐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원산에서 국내인사들을 만나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즉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내용으로 하는 새 조선건설의 리정표를 마련하여가지고 조국으로 나오신것이 천만번 정당하였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각지에 항일혁명투사들을 정치공작원으로 파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산에 도착하신 날 함경남북도에 가서 사업할 소조들중에서 김책, 안길, 최춘국, 류경수, 조정철 등 일부 성원들을 북행렬차에 태워 현지로 떠나보내시였다. 한편 철원방면을 담당한 소조들도 남행렬차로 떠나보내시였다. 다음날에는 서해지구와 강계를 비롯한 내륙지방에 가서 사업할 정치공작원들을 떠나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가 군정을 실시하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반인민적책동을 점차 로골화하고있는 정세하에서 예상치 않던 불의의 사태에 대처할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놓아야 우리가 장구한 기간 혈전을 벌려 쟁취한 조국해방의 위대한 승리를 고수할수 있으며 건국위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해나갈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강계, 희천, 혜산, 천마와 같은 산간지대에 일단 유사시에 의거하여 싸울수 있는 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우수한 청년들로 생산유격대, 자위대와 같은것을 광범히 조직하여 철저히 교양훈련시키며 식량과 피복,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들을 충분히 저축해놓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실로 새 조국건설위업을 선군으로 완성하실 의지가 담겨진 뜻깊은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지방에 나가 당창건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키며 인민정권기관들을 조직하고 그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큰힘을 넣으며 파괴된 산업을 복구정비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조국에 돌아오신 후 하루의 휴식도 할사이 없이 전사들을 새 전구로 떠나보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정은 괴로우시였다. 더구나 원산에 상륙한 날은 추석전날이였다. 원산에서 추석이나 쇠고 피곤을 푼 다음에 그들을 파견지로 떠나보내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으시였지만 절박한 국내형편은 그렇게 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를 높이 받들고 백두산에서 매고온 신들메를 풀 사이도 없이 어려운 투쟁과업이 기다리고있는 파견지로 떠나갔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지시를 관철하기 전에는 휴식할 권리도, 고향에 다녀올 권리도 없다는것이 바로 항일혁명투사들의 일관한 사고방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조성원들을 다 보내시고 서해지구에서 사업하게 될 동지들과 함께 9월 20일 기차로 원산을 떠나 이틀후에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에 입성하신 날부터 해방산기슭의 자그마한 집에 자리를 잡으시고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개선은 사실상 개선이라기보다 혁명의 새 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적이동과 같은것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일화: 개선길에 주신 임무​, 소문도 없이 조용히​, 평양은 일일천추 기다렸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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