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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페지로
애국지주 김정부의 눈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조국해방전선에 묶어세우시기 위하여 지주, 자본가와 같은 착취계급에 속한 사람이라도 반일을 기준으로 하여 그들을 갈라보시고 반일적인 지주들과 민족적량심이 있는 자본가들도 교양개조하여 항일혁명의 적극적인 지지자, 동정자, 협조자로 만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말하는 각계각층의 군중속에는 실로 그 경력과 생활처지가 서로 다른 천태만상의 인간들이 있다. 그 모든 인간들과의 사업에 다 들어맞는 유일한 처방이란 있을수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다 참고할수 있는 원칙만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 당시 사람들을 평가하는데서 기준으로 삼은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친일인가 반일인가, 애국애족의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이였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고 일제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 우리와 손을 잡을수 있으며 반대로 나라와 민족, 인민은 안중에 없고 자기 개인의 향락과 안일을 위해 친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투쟁대상으로 된다는것이 우리의 립장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로 이런 관점, 반일, 애국애족의 정신에서 출발하여 중국 장백현 지양개의 대지주 김정부를 비롯한 유지들을 항일혁명의 적극적인 지원자, 후원자로, 애국자로 이끌어주시였다.

주체25(1936)년 8월말 중국 장백현 지양개부락에 모연공작을 나갔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성원들이 친일지주들이라고 하면서 칠순이 넘어보이는 로인과 그밖의 몇몇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때 마가자라고 부르는 림산마을에서 군중정치사업을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억류된 사람들의 명단에서 김정부의 이름을 보시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김정부로 말하면 독립군이 장백땅에서 한창 기세를 올릴 때 군비단에서 활동하면서 가산을 털어 독립군에 천과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후방물자들을 대주었고 후대교육을 위해서도 적지 않게 공헌하였으며 150정보나 되는 토지를 가진 대지주였지만 농민들을 위해서도 많은 덕행을 베푼 부호였다. 그래서 지양개사람들은 그를 《우리 아바이》, 《우리 부장님》, 《우리 교주어른》이라고 찬양하면서 그의 집앞에 송덕비까지 세웠다. 그가 이런 선덕을 지닌 부호였기때문에 만주국관청이나 일본령사관에서도 감히 허술하게 대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전부터 김정부의 과거경력에 대하여 잘 알고계시였고 장백에 나오면 그에게 협조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든가 밀영에 데려다가 만나려고 계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성원들에게 사람을 피상적으로 보고 망탕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지적하시면서 나는 그가 타도대상이 아니고 포섭대상이며 반동지주가 아니고 애국지주라는것을 이 자리에서 보증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한번 만나보고싶었던 사람인데 이왕 이렇게 된바에는 밀영에 데리고 들어가서 품을 놓고 담화를 하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부로인을 애국지주로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밀영에 온 지주일행에게 우리 사람들이 밤중에 갑자기 무례하게 데려오게 해서 안되였다고 사과하시면서 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장백의 유지들과 첫 통성을 하시였다.

《인민혁명군이라니! 일전에 무송에서 왜놈들을 혼쌀냈다는 그 김일성장군부대란 말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부대라고 하시였다.

그들은 《김일성장군은 지금도 무송에 계시는가요?》하고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니라고, 인사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자신이 바로 김일성이라고 하시였다.

김정부는 뜻밖에도 부대가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이며 바로 마주앉으신분이 다름아닌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자 황송하다고 하면서 량해를 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지주들과 담화를 계속하시였다.

 

그날 지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한 지주는 김장군님이 《사흘천기》를 내다보신다는것이 정말인가 하는 질문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흘천기를 미리 내다보는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혁명군이 인민들과 련계를 가지고 좋은 정보들을 제때에 잡아쥐기때문에 정세판단을 잘할뿐이다, 인민의 지지와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지주들은 장군님께서 백성들을 그렇게 하늘만치 대해주시니 송구스럽다고 하면서 우리도 장군님의 대사를 도와야겠는데 무슨 일을 했으면 좋겠는지 방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군대를 타승하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전민족이 일치단결하여 힘과 마음을 다 합쳐야 한다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주이건, 자본가이건 다 동원되여 인민혁명군을 후원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김정부에게 선생을 련행해온 대원들에게 선생은 반동지주가 아니라 애국지주라고 말해준 사실을 상기시켜주시였다.

 

김정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김장군이 나를 애국지주라고 하였으니 이 늙은 몸은 당장 흙이 된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거듭 사의를 표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일행을 가리켜 사실은 저 사람들도 반동지주는 아니니 장군님앞에서 목숨을 걸고 보증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양개의 지주들을 《조국광복회창립선언》정신에 맞게 사상적으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게 하며 그들을 통하여 장백일대의 유지들을 혁명의 관조자, 방해자로부터 혁명의 동정자, 지지자, 협조자로 만들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부의 간청대로 밀영에 머무르게 하시고 생일상도 차려주도록 하시면서 그를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그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부로인을 만나 마을로 돌아갈것을 거듭 권유하시였으나 그는 간밤에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내가 여기 있어야 우리 아들이 지양개에 돌아가더라도 나를 코에 걸고 원호물자를 보내줄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옹고집을 부리였다. 그는 자기가 유격대의 병정으로 싸우지는 못할 망정 나라의 독립에 이바지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빼앗지 말아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간청대로 아들만을 먼저 마을로 돌려보내시고 밀영에 지양개의 유지들을 위한 거처를 특별히 따로 마련해놓고 있는 성의를 다하여 그들을 돌보아주도록 하시였다. 김정부는 그때 밀영에서 생일도 쇠고 주체26(1937)년 설명절도 쇠였다. 그때까지도 그는 아들이 마련해보내기로 한 원호물자가 도착하기 전에는 밀영을 떠날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구사업을 하는 공작원들을 통하여 흰쌀과 고기, 술 등의 식료품들을 마련해두시였다가 김정부로인의 생일날 그가 있는 밀영을 찾으시였다. 진수성찬은 아니였지만 그날의 생일상은 인민혁명군의 력사에서 거의 전례를 찾아볼수 없던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혁명군의 이름으로 생일을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잔에 술을 가득 부어 그에게 권하시였다. 술잔을 받아쥔 김정부는 눈물이 글썽해서 유격대원들이 통강냉이죽을 먹으며 나라를 찾으려고 신고하는걸 보니 하루 세끼씩 먹는 더운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는데 하물며 이 산중에서 자기같은 늙은이의 생일이 다 무엇인가, 김장군님의 은혜는 백골난망이라고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무쪼록 나라가 독립될 때까지 장수하기를 바란다고 하시자 그는 자기같은 늙은이야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그러나 김장군님께서만은 옥체건강하시여 기어이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셔야 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도 김정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넉달남짓한 기간 밀영생활을 하는 과정에 김정부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주시해온 조선혁명가들에 대하여 옳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나는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아왔소이다. 그런데 김장군이 하는 공산주의는 판이하오. 같은 지주도 친일, 배일로 갈라서 친일만 치니 그런 공산주의를 누가 나쁘다고 하겠소. 왜놈들은 유격대를 〈공비〉라고 하는데 그건 다 개수작이지.… 그동안 유격대의 밥을 먹으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였소. 물론 결심도 새롭게 다졌구. 이제 내가 살면 몇해를 더 살겠소. 하지만 여생을 값있게 바치겠소. 죽어도 인민혁명군의 뒤시중을 하다가 죽을 작정이웨다. 이 김정부는 살아도 죽어도 김장군의 편이라는것을 믿어주시오.》

김정부는 밀영에 와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적극적인 동조자, 후원자가 되였다. 그는 그후 인민혁명군의 후방사업을 도와 쌀과 집짐승까지 팔아 수천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과 천과 식량을 비롯한 많은 물자를 마련해 보내왔으며 농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지주들도 모두 반일애국의 길에 나서도록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일제의    보도관제가    혹심한 당시의    형편에서도    월간잡지    《삼천리》에 《…김일성회견기》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전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에 대하여 피력하였다.

 

《〈…김일성〉이라 하면 국경일대에선 너머나 알니엇고 신문지나 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리라. 총사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에 가까운 만인, 조선인부하를 이리저리 통제해가며 습격싸흠. 완강히 군대와 저항해가며 산중소굴을 지휘해가는 그! 은근히 동의자를 규합하며 이일저일을 꿈꾸는 그!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인고? 김정부옹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이 수수꺽기의 인간을 회견하였든것이다. 후리후리한 키, 우락부락한 말소리 음성을 보아 고향은 평안도인듯. 예상보다 년령은 너머나 젊은 혈기방장의 30미만의 청년. 그는 만주어에 정통, 어대까지 대장이란 표적이 없고 복장, 식음에까지 하졸과 한가지로 기거를 같이하며 감고를 같이하는데 그 감화력과 포옹력이 잇는듯 하게 보었다.…》

 

일제파쑈통치의 검은 구름이 온 삼천리강토를 뒤덮었던 그 암담한 시기에 벌써 해방될 새 조국을 눈앞에 그리며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열망이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애국적지식인들과 량심적인 지주, 민족자본가와 종교인 할것 없이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넘쳐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온 민족이 조국광복회 기치밑에 단합되여 나감으로써 전국적범위에서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은 반석같이 다져지게 되였으며 조국해방위업수행의 날을 앞당길수 있는 담보가 확고히 마련되여갔다.

 

일화; ❖ 주가 받은 생일상​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 제13장 6.애국지주 김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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