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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특필할만한 사변을 안아오시여​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성은 우리 인민들속에 민족의 태양으로, 해방의 구성으로 더욱더 널리 알려졌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고 10대강령을 발표하신 소식에 접하면서부터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열렬한 흠모와 신뢰의 정은 끝없이 깊어졌으며 반일을 지향하는 각계각층 군중속에서는 조국광복회가 내세운 정치로선에 공감하여 민족적단합을 이룩하려는 애국적지향이 날을 따라 높아갔다.

 

 

조국광복회가 창립된 후 불과 몇달동안에 그 산하에는 수십여만명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망라되였다. 일제의 파쑈적폭압이 극심하였던 어려운 조건에서도 전국각지에 급속히 뻗어나간 조국광복회조직에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청년학생, 지식인, 중소상공업자, 도시소시민, 민족주의자, 종교인 등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이 굳게 결속되였다. 수난에 찬 우리 인민의 민족해방투쟁사에 특기할 이 놀라운 사변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높으신 권위와 수령님께서 발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정당성으로 하여 이루어진것이였으며 항일의 불길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위대한 수령님의 무한대한 광폭정치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로동자, 농민을 조직화하여 그 계급적동맹을 강화하는 기초우에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을 조국광복회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민족을 단합시킴에 있어서 로동자, 농민을 먼저 조직화하고 그들의 계급적동맹을 강화하며 이에 기초하여 반일을 지향하는 모든 계급과 계층을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광범히 묶어세우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시면서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시여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조직정치사업을 적극 벌리시는 한편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각지의 공장, 광산, 항구들과 농촌들에 파견하시여 광범한 로동자, 농민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자, 농민뿐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일제를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반일대중을 빠짐없이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기치아래 묶어세워 조국해방전선에 총동원하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온 민족을 단합시켜나가는데서 단결의 유일한 기준을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일제에 대한 태도여하에 두시였으며 반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의 계급적처지와 정치적견해가 다르고 반일투쟁에서 우유부단하고 동요한다 하더라도 대담하게 믿으시고 민족단합의 길로 꾸준히 이끌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각계각층 인민들을 묶어세우는데서 민족주의세력들, 그 가운데서도 독립군부대를 포섭하는 문제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민족주의자들의 무장력량인 조선독립군은 한때 만주의 여러 지역에 할거하며 크게 세력을 뻗치고있었으나 일제의 《토벌》과 분렬책동 그리고 상층부의 계급적제한성으로 말미암아 급격히 쇠퇴몰락하여 이즈음에 와서는 남만일대에 일부 부대가 남아있을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신 직후에 독립군부대들과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중요한 대책들을 세우시였으며 그들과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선 통신원을 파견하여 조국광복회 창립선언과 10대강령을 보내주시고 남만의 항일련군부대에서 활동하고있던 조국광복회 남만대표 리동광을 비롯한 조선인혁명가들이 독립군과의 합작공작을 맡아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주체26(1937)년 여름에는 남만으로 떠나는 새 경위련대 정치위원 최춘국에게 독립군과의 합작을 추진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독립군 부사령 최윤구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게 하시였다. 최윤구는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10대강령을 받아보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였으며 독립군의 한 대오를 인솔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7(1938)년 3월 최윤구의 의거를 높이 평가하시고 독립군들의 청원대로 조선인민혁명군에 편입시켜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후날 최윤구​가 단행한 거사는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사와 민족통일전선력사에 대서특필할만한 의의를 가진 경이적인 사변으로 된다고 하시며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초기부터 우리가 시종일관하게 실시해온 통일전선정책의 승리였으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쌓아올린 또 하나의 탑이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과 독립군의 련합은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반드시 따라배우고 참고로 삼아야 할 하나의 선구적인 본보기로 되였습니다.》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독립군부대를 조선인민혁명군에 받아들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정당성의 빛나는 결실이였으며 조선민족의 단합을 이룩하지 못하도록 갖은 모략을 다하는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국내외의 민족주의자들을 조국광복회두리에 묶어세우는데 커다란 혁명적영향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개별적인 민족주의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전반적조선혁명을 조직령도하시기에 매우 분망하시였지만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몸소 교양하고 전취하여 조국해방전선에 굳게 묶어세우시였다.

 

주체26(1937)년 봄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 장백현 가재수마을에 파견된 정치공작원으로부터 마을사람들속에서 영향력이 큰 한 민족주의자와 접촉하기 시작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보고에는 그의 지난날 독립군에서의 생활경위와 함께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에 접한 이후의 사상동향이 자세히 밝혀져있었고 특히 자기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간 반일부대의 비행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잘못 생각하면서 좀처럼 곁을 주지 않고있다는 내용이 지적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전취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장 아파하는 문제부터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여러곳에 통신원들을 파견하여 그의 아버지가 억류되여있는 곳을 알아보신 다음 반일부대두령에게 친히 편지를 보내시여 그 사람의 아버지를 돌려보내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깊은 조치는 그 민족주의자를 전취하는데서 결정적인 계기로 되였다. 자기 아버지가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수 있었던 사연을 알게 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와 덕망에 깊이 탄복하고 수령님께 진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의리와 애국심을 가진 참된 혁명가들이라는것을 똑똑히 깨닫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길에 한몸바칠 굳은 각오를 가지고 조국광복회에 가입하였으며 가재수마을사람들을 조국해방전선에 묶어세우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밖에도 한때 반일의 길에 나섰다가 투쟁에서 물러서있는 민족주의자들과 혁명의 격류속에 대담하게 뛰여들지 못하고 주저하고있는 지식인들, 시골에서 계몽사업을 벌리며 하루하루를 지내고있는 유지들까지도 아량있게 포섭하고 교양하여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받아들이시였으며 혁명의 길에서 끝까지 몸바쳐 싸우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학습자료; 총서 불멸의 력사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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