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하부조직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장백일대는 짧은 시일안에 조국광복회 조직망으로 뒤덮이고 이 일대 인민들의 혁명적열의는 비상히 높아져 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을 도와 조국해방전선에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그 결과 장백일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신대로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확대발전시키는 강력한 거점으로 전변되였다.

 

왕청, 화룡, 훈춘, 연길을 비롯한 동만의 여러 현과 반석, 화전, 통화, 집안, 몽강, 환인, 관전, 휘남 등 남만의 여러 도시들과 농촌들 그리고 방정, 통화, 발리, 탕원, 요하, 녕안, 밀산을 비롯한 북만의 여러 현들에서도 조국광복회 조직들이 뿌리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 조직건설사업에서 주되는 목표를 국내에 두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영향이 쉽게 미칠수 있는 북부국경지대의 압록강연안에서부터 시작하여 국내 종심깊이에로 조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국내에서의 조국광복회 조직건설은 일제의 탄압과 종파분자들의 로선상 착오로 말미암아 매우 간고하고 복잡한 조건에서 진행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는 조국광복회 조직들이 국내에 확산되는것을 제일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하나 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한편 종파분자들은 자파세력확장에 피눈이 되여 반일애국력량을 분렬시켰으며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부합되지 않는 기성리론을 교조적으로 주장하면서 애국적인 지식인들과 량심적인 민족자본가들을 일률적으로 배척하고 적대시하였다. 그들은 혁명은 계급적토대가 견실한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이 할수 있다는 좌경적견해를 류포시키면서 지방마다에 《좌익로조》, 《좌익농조》들을 조직하고 대중을 무모한 투쟁에로 내몰았으며 지어는 저들의 《혁명성》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씨름판에 나갈 때 머리에 붉은 수건을 매는가 하면 유교도덕관념이 농후하다고 하여 늙은이들을 덮어놓고 봉건으로 몰았다. 종파분자들의 이러한 극좌적인 행동은 혁명투쟁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특히 일제의 악선전으로 공산주의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있던 군중들에게 극히 해독적인 작용을 하였다. 결과 광범한 반일력량의 단합을 위한 사업에 적지 않은 난관을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좌경의 지휘봉밑에서 진통을 겪는 대중운동에 각계각층의 애국력량을 망라시킬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암중모색하면서 헤매는 혁명가들에게 광명을 안겨줄수 있는 출로는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며 조국광복회 조직을 전국적범위에서 확대하는데 있다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유능한 정치공작원들을 북부국경일대를 비롯한 국내각지에 파견하시는 한편 박달 등 국내혁명가들을 만나시여 국내에서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조국해방전선에 결속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5(1936)년 12월 곰의골밀영(곰의골밀영지​)에서 박달을 만나 담화하시면서 그의 교조주의적사고방식을 바로잡아주시고 통일전선정책과 조국광복회에 대한 정확한 리해를 가지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당시 박달은 반일민족통일전선의 필요성과 그것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제반조치,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담고있는 총적인 지향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지를 표시하면서도 조국광복회 명칭이나 10대강령의 일부 조항들에 대해서는 옳바른 리해를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그도 역시 《대통령감》(리동백)이 초기에 가지고있던것과 같은 교조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달에게 혁명이란 공산주의자들 몇사람만의 힘으로는 할수 없다,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이 총동원되여야 우리 혁명은 승산있는 혁명으로 될수 있다,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는 로동자, 농민이나 공산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온 민족이 압제속에서 신음하고있는 조건에서 조선독립에 리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력량을 다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묶어세워야 한다, 조국광복회 명칭도 사실상 어떤 계층이나 다 받아들일수 있는 적합한 명칭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단체명을 하나 지어도 혁명이라는 말이나 적색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이것은 좌경의 한개 표현이다, 우리는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조직체의 명칭에 조국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그 단체가 어떤 한정된 계급이나 계층을 위한 조직인것이 아니라 온 민족을 위한 조직으로 된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려 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조국광복회 조직을 해당 지역의 형편과 대중의 각성정도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내올수 있다고 하시면서 로동자들은 로동조합을 조직하고 농민들은 농민조합을 조직하며 청년들은 반제청년동맹이나 공산청년동맹같은것을 조직하는 식으로 실정에 맞게 조직을 내오며 진흥회와 같은 어용단체들에도 뚫고들어가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혁명화하여 조국광복회의 창립선언정신에 맞게 단체의 성격을 점차적으로 변경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박달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확실히 자기들의 운동방식에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하면서 자신을 뉘우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민족해방보다 더 큰 대의가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시고 민족을 떠난 공산주의운동이란 있을수 없으며 또 그런 공산주의운동은 필요도 없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개념속에는 로동자, 농민뿐아니라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창조적로동을 사랑하고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사랑하는 각계각층 군중이 다 포함되여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총동원의 기준이며 조국광복회 입회기준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준에 기초하여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동원할수 있는 사람은 다 동원해야 합니다.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해야 하며 또 이룩할수 있다는 자주독립사상에 기초한 민족의 총동원만이 조선의 운명을 칠성판에서 건져낼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박달에게 갑산공작위원회를 조국광복회의 산하조직으로 하되 그 명칭도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바꾸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조국광복회망을 국내에 확대하는데서 나서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의 임무와 구체적인 방도들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주체26(1937)년 1월 갑산일대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은 갑산공작위원회를 조국광복회 국내하부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동맹의 강령으로 채택하였으며 기관지로서 《화전민》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은 조국광복회 조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시키는 하나의 발진기지로 되였다. 그 산하에는 수십개의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이 꾸려졌다. 조국광복회 조직망은 갑산뿐아니라 삼수, 풍산을 비롯한 북부국경일대의 여러 지역에로 급속히 뻗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도처에 조국광복회조직을 급속히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들을 세우시고 청진, 함흥, 원산을 비롯한 중요공업지구들과 농촌지대들에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소조들과 정치공작원들을 수많이 파견하시였다.

조국광복회 조직망을 국내깊이 확대하는데서도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육성하신 서간도지방의 핵심적인 혁명가들과 북부국경지대의 선각자들이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 조직을 확대해나감에 있어서 각계각층의 반일대중을 개인자격으로 조직에 받아들일뿐아니라 이미 조직된 대중단체들을 전취하여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으로 개편하도록 하시였으며 우로부터 내리조직하는 방법과 아래로부터 올리조직하는 방법을 밀접히 결합하도록 하시였다. 또한 비합법적투쟁조건에 맞게 조국광복회조직들을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하기 위하여 우에서부터 하부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한선으로 련결시키는 단선포치방법을 위주로 하면서도 여기에 복선포치방법을 적절히 배합하며 적들의 어용단체까지도 포함한 합법적인 단체들을 적극 리용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주체26(1937)년 한해동안만 하여도 지구위원회, 지회, 분회, 반일회, 반일로동회 등 각이한 명칭을 가진 조국광복회 조직망이 국내의 전반적지역에 급속히 확대되여 혈맥과도 같이 분포되게 되였다. 덕천, 양덕지구에 파견된 정치공작원은 이해초에 맹산군 옥천면에서 조국광복회 옥천반일광복회를 내온데 이어 6월에는 덕천군 풍덕면 신흥리에서 조국광복회 평안반일광복회를 내왔다. 그는 또한 순천일대의 인화교인들속에 들어가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을 알기쉽게 해설해주면서 교인들도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조국해방성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였으며 주체26(1937)년 2월 순천군 사인면 안국리에서 인화교 교주를 비롯한 핵심성원들로 조국광복회 자모독립단을 조직하였다. 조국광복회 조직망은 전국적범위에서 계속 확대되여 함경남북도는 물론 평안남북도, 황해도, 강원도, 남부조선일대와 일본땅의 조선인 거주지역들에까지 급속히 뻗어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국적범위에로 조국광복회 조직망이 확대됨으로써 전민족적애국력량의 통일단결을 이룩할수 있는 조직적거점이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다. 조국광복회 조직망이 전국도처에 정연하게 뻗어나감으로써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는 더욱더 확고히 보장되게 되였으며 각계각층 인민들을 조국해방전선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할수 있는 휘황한 전망이 활짝 열리게 되였다.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 제15장 지하전선의 확대

           ; 총서 불멸의 력사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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