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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복하고 설복하고 또 설복하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요영구회의의 전략적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유격구해산사업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요영구회의후 유격구들에서는 유격구를 해산하기 위한 사업이 벌어졌다.

유격구를 해산하는 사업에서는 여러가지 난관이 제기되였다.

 

적들은 항일유격대와 인민이 유격구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군사적봉쇄를 강화하는 한편 민심의 동요를 일으키기 위한 사상공세를 각방으로 벌리였다. 적들의 이런 책동은 유격구해산에서 첫째가는 난관으로 되였다. 유격구를 해산하기 위한 사업에서 제기된 또 하나의 난관은 인민이 유격구해산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것이였다. 유격구를 해산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격구를 해산하지 말아달라고 위대한 수령님께 진정서까지 올리는 로인도 있었다. 그리고 유격구에 떠도는 각이한 억측에다가 적의 선무공작대가 퍼뜨리는 류언비어까지 나돌아 유격구의 여론은 그야말로 수습하기 힘든 혼란상을 이루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료해하시고 유격구해산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강력히 벌리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우선 유격근거지인민들속에서 해설선전사업을 광범히 전개하여 그들로 하여금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 이 사업에 적극 동원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4(1935)년 3월말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일군들과 각지 당조직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요영구회의에서 제시된 새로운 로선의 정당성과 의의를 밝히신 다음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밑에 각 부대의 정치기관들과 지방당조직들이 유격구해산사업을 정치적으로 옳게 지도하도록 하시였다. 이어 우수한 당일군들과 군사정치간부들로 특파원들을 임명하시고 유격구들에 파견하시여 해설선전사업을 진행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4(1935)년 4월 중순 요영구에서 열린 군민련환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뜻깊은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동지께서는 연설에서 유격구해산의 절박성과 정당성을 다시금 해설해주시고 유격구가 해산되는것과 관련하여 인민들의 이동방법과 투쟁방향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어디에 가든지 혁명승리를 확신하고 조국해방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 모든것을 다 바칠것을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연설이 끝나자 군민련환대회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일제를 타도하라!》,《조선인민혁명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면서 열광적인 환호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요영구군민련환대회에 이어 동만의 모든 유격구들에서도 요영구회의에서 결정된 유격구해산방침을 깊이 해설해주도록 하시였다.

 

동만의 각 현과 혁명조직들에 내려간 특파원들은 요영구군민련환대회와 같은 성격의 대회를 열고 항일유격대와 인민이 유격구해산에 대해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해설설복하였다. 그리하여 유격구를 해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리치를 인민들이 깨닫게 되였으며 그것을 정당한 전략적조치로 받아들이였다.

 

그런데 유격구해산을 집행하는 실무단계에 들어가서는 대다수의 인민들이 적구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죽어도 유격구에서 죽을테니 우리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유격구에 파견된 특파원들과 소조성원들, 당조직 및 인민혁명정부와 반일대중단체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설복하고 설복하고 또 설복하자!》는 구호를 높이 받들고 매일같이 주민들의 집을 찾아다니였으며 구별로도 모임을 열고 조직별로도 회의를 열어 해설을 거듭하였다.

 

꾸준한 설복과 여러차례의 회의를 통하여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진 유격구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변함없이 혁명의 한길을 따라 억세게 싸워나갈 굳은 결의들을 다지였다.

그런데 일제침략자들은 유격구인민들이 유격구밖으로 나가는것을 방해해나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적들에 대한 군사적공세를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적들에 대한 군사적공세는 놈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함으로써 유격구해산사업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고 유격구를 떠나는 사람들과 적통치구역 인민들에게 용기와 신심을 안겨주는 한편 무기와 탄약, 식량 등 군수물자들을 로획하여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 준비를 갖출수 있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몸소 유격구해산사업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주체24(1935)년 4월 요영구유격구역에 달려드는 적《토벌대》놈들을 소멸하시였다. 그리고 각 유격구들에 있는 인민혁명군부대들을 유격구주변에 파견하시여 적의 《토벌》거점들을 소탕하게 하시였다.

 

각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주체24(1935)년 5월 초 왕청현 소삼차구 습격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대소전투들을 조직진행하여 적들의 군사적봉쇄를 짓부시고 유격구해산사업을 군사적으로 담보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구인민들을 이동시키기 위한 조직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였으며 적구로 떠나가는 인민들에게 최대의 봉사를 다하게 하시였다.

이 봉사에서 기본으로 된것은 소개주민들의 요구와 실정에 맞게 이동준비사업을 도와주며 생활상방조를 주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에 의하여 유격구들에서는 이동준비가 치밀하고 실속있게 진행되였다. 각 유격구들에서는 주민소개를 앞두고 호구조사표들을 정확히 작성하였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본인들의 요구에 따라 적구와 국내에 보낼 사람, 깊은 산속에 보내여 농사를 짓게 할 사람, 친척들을 찾아갈수 있는 사람과 친척이 없는 사람, 의지가지할데 없는 어린이들과 환자들을 구분하여 대렬을 편성하였으며 그 매개 대렬에 무장소조들을 붙여 목적지까지 책임적으로 호송해가게 하였다. 또한 유격구를 떠나 적구나 국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가정들에는 필요한 생활보조금을 주고 천, 신발을 비롯한 여러가지 필수품들과 화식기구들도 공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해산에 필요한 제반대책들을 빈틈없이 세워주신 다음 여러 가정들을 찾으시여 이동준비정형을 알아보시고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시였으며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시였다. 특히 환자들과 로인들 그리고 어린이들의 생활에 대하여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구해산과 관련하여 청년의용군과 반일자위대 등 반군사조직성원들은 물론 입대를 희망하는 청년들과 당 및 공청일군들, 인민혁명정부 일군들을 비롯한 수많은 청장년들을 조선인민혁명군에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유격구해산사업은 주체24(1935)년 5월에 시작되여 이해 11월초 처창즈유격구역의 해산을 마감으로 하여 완료되였다.

 

일제의 집요하고 악랄한 봉쇄속에서도 모진 기아와 추위, 적의 《토벌》을 견인불발의 의지와 백절불굴의 투지로 이겨낸 처창즈인민들은 인민혁명군과 함께 대부분 내도산쪽으로 이동하였다. 혁명군과 헤여져 적구로 떠나는 인민들은 저마다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요영구에서는 인민들이 헤여져 떠나기 전에 모두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그들은 《우리는 어디를 가나 오직 장군님만을 믿고 싸우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가 주동적으로 해산됨으로써 대부대에 의한 포위공격작전으로 유격구를 질식시키려던 일제의 기도는 완전히 좌절되게 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은 보다 광활한 판도에서 대부대에 의한 유격전을 령활하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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