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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구사수냐, 해산이냐​

   

 

요영구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24(1935)년 3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4(1935)년 3월에 진행된 요영구회의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적극적인 대부대활동을 벌릴데 대한 새로운 로선을 내놓으시여 유격구사수를 위한 전략적방어로부터 전략적공격의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적계기를 마련하시였다.

 

반《민생단》투쟁이 남긴 파국적인 후과를 놓고 온 동만이 비탄의 눈물을 흘리며 갈길을 모색하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지구형태의 고정된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적극적인 대부대활동을 벌릴데 대한 새로운 로선을 내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로선을 주체24(1935)년 3월 하순 요영구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일군회의에서 하신 연설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하여》에서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조성된 정세와 혁명임무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는 새로운 전략적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 

회의에 참가한 절대다수의 군정간부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로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나 당, 공청의 일부 간부들가운데는 유격구해산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3~4년동안이나 유지해온 유격구를 해산하는것은 투항주의이니, 패배주의이니 하면서 유격구사수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유격구를 해산하고 혁명군이 광활한 지대에로 떠나가면 인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며 또 유격구라는 군사정치적지탱점이 없이 혁명군이 유격전을 전개할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들고일어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4(1935)년에 이르러 유격구를 해산하기로 결심하시게 된것은 당시의 주객관적정세가 바로 그것을 요구하였기때문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칙적요구였다.

 

두만강연안에 창설된 유격구들이 자기앞에 부과된 사명과 임무를 다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만강연안에 유격구를 창설하시면서 유격구의 사명과 임무로 내세우셨던 최대의 과제는 혁명력량을 보존육성하며 항일무장투쟁의 확대발전을 위한 정치군사적,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축성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군대와 인민은 불사조로 성장하였다. 창건당시에는 100여명에 달하였던 유격대오는 대규모의 유격근거지방어전투들과 도시공격전까지 벌릴수 있는 방대한 력량을 가진 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였다. 혁명투쟁의 실천속에서 수많은 청년혁명가들이 자라났으며 종파주의와 함께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는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혁명대오는 하나의 대가정으로 통일단결되였다. 무장투쟁과 당건설을 위한 군중적지반도 튼튼히 다져지고 중국인민들과의 반일공동전선도 끊을수 없는 불패의것으로 되였다.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역에로 진출하는것은 또한 당시 조성된 객관적정세의 요구였다.

 

이 시기 일제는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정예무력을 동원하여 유격구를 겹겹이 포위하고 매일과 같이 근거지에 대한 《토벌》작전을 감행하였다. 한편 적들은 혁명군과 인민들사이의 련계를 끊어버리고 압살하기 위하여 집단부락정책과 중세기적인 보갑제도를 강압실시하면서 《기아작전》, 《봉쇄작전》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지어 놈들은 유격구인민들에 대한 《귀순공작》을 꾀하면서 혁명대오를 안으로부터 와해하기 위한 온갖 비렬한 정치적모략에 매달리고있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해방지구형태의 고정된 유격구를 견지하면서 막대한 군사적잠재력을 가진 강적을 상대로 1대1의 정면대결을 계속한다는것은 모험주의이며 자멸을 가져올뿐이였다. 유격구에 그대로 틀고앉아 결사전가를 부르며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근거지를 지키겠다는것은 혁명을 더 심화시킬 의향은 없이 현상유지나 하자는것외에 달리는 볼수 없었다.

 

대세의 흐름을 외면하고 이미 로출된 유격구를 보위하는데만 몰두하게 된다면 혁명군은 결국 군사적으로 피동에 빠지게 되고 적과의 끊임없는 소모전에 말려들어 다년간에 걸쳐 육성된 혁명력량을 보존하기는 커녕 지리멸렬될수 있었다. 협소한 유격구를 사수하는데만 몰두한다면 근거지의 모든 군민을 립체전으로 압살하려고 발악하는 적의 기도에 말려들어가는것으로 될수 있었다.

변화된 혁명정세는 조선혁명가들에게 그에 맞는 새로운 로선을 제시할것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시 조성된 주객관적정세와 항일무장투쟁발전의 합법칙적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회의에서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천명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제한된 지역의 유격구를 떠나 보다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대규모적인 유격전을 조직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조성된 오늘의 정세하에서 유격구사수를 주장하는것은 겉보기에는 혁명적인것 같으나 실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은 행동이며 혁명발전의 요구를 무시하는 그릇된 견해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전략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만주의 광활한 지역과 북부조선일대에 진출하여 대규모적이고 기동적인 유격활동을 벌려 적들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주는 한편 장성강화된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과시하며 도처에서 광범한 군중을 대상하여 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유격구를 해산하는 사업을 실무적사업으로가 아니라 정치사업으로, 새로운 전략적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혁명사업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거지인민들속에 들어가 해설선전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그들로 하여금 유격구해산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 이 사업에 적극 동원되도록 하며 적위대, 반일자위대, 돌격대, 소년선봉대와 같은 반군사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에서 교양되고 단련된 청소년들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켜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게 될 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더욱 확대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유격근거지에서 각성되고 교양된 혁명군중들을 적통치구역에 파견하여 그곳 인민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고 적구인민들을 각종 반일투쟁에 힘있게 불러일으키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적로선에 따라 두만강연안유격구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조선과 만주의 광활한 지대에 진출시켜 무장투쟁을 더욱 확대강화할것을 결정하였다.

참으로 요영구회의는 다홍왜회의와 더불어 조선혁명의 자주로선을 확고히 고수하며 조선혁명에서 주체를 세워나가는데서 또 하나의 리정표로 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이 유격구를 사수하기 위한 전략적방어로부터 전략적공격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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