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끝까지 지켜낼 각오를 안고 결사전에 떨쳐나선 방어군과 인민들은 적의 약점을 틀어쥐고 적들내부에 혼란을 조성하면서 적들의 공격을 련속 짓부셨습니다.》
전쟁에서 적내부의 알륵을 조장시켜 저들끼리 싸우게 함으로써 전투력을 약화시켜 전술적우세를 차지하는것은 전쟁승리의 중요한 전술의 하나이다.
만조선은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벌써 이러한 전술을 훌륭히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한나라침략군의 내부에서는 전쟁마감까지 서로 반목질시하는 사태가 조성되였다. 따라서 전쟁에서 피동에 빠지고 1년간이나 전쟁을 질질 끌었기때문에 단시일내에 평양의 왕검성까지 쳐들어가리라던 한무제의 망상은 실현될수 없었다.
△ 한나라침략자들의 교활한 지연술책
한나라 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첫 전투가 벌어진후 만조선의 기본수도인 평양의 왕검성의 궁궐을 그대로 본딴 부수도 왕검성 행재소에서는 《어전회의》가 벌어졌다.
첫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데 당황한 한무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우거왕에게 담판을 제기하여왔다.
시간을 얻기 위한 지연전술이라는것을 대번에 간파한 고조선측에서는 태자로 하여금 담판에 나서되 결렬되는 경우 정예군사로 겁에 질린 적들을 족치게 하였다.
한무제의 담판사신으로 파견되여온 위산이며 순체 등 우두머리들은 담판장을 향해 강을 건너오는 고조선군대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고 질겁하여 무장을 해제하고 올것을 요청하였다. 만여명의 군사들이 배다리를 건너오느라고 절컥거리는 서슬푸른 기치, 창검, 방패들, 어흥거리는 5천여필의 늘씬한 군마들, 군량을 실은 말파리들이며 신심에 넘친 끌끌한 군사들의 모습은 전전긍긍하여 담판에나 매달린 《패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심하였다.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한번 되게 얻어맞아 어지간히 위축되였던 한나라측은 담판을 기회로 저들의 배후를 한바탕 들이치려는 고조선의 계책에 빠진것같은 느낌이 들어 이런 조건을 내걸었던것이다.
수세에 빠진 약자의 가긍한 모습을 일별한 태자는 강 저쪽 대안의 한나라군사들이 바라보이는 밋밋한 구릉에서 군사들을 사열하고 진법을 조련하도록 하였다. 담판을 하지 않겠다면 구태여 우리도 가지는 않으나 용감무쌍한 고조선군대의 위용을 보여주어 한나라측의 기를 꺾어놓자는것이였다.
결국 담판은 결렬되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우거왕이 태자의 일처리가 괜찮다고 상을 내린 반면에 한무제는 위산이 담판을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했으니 이번에도 한나라는 단단히 얻어맞은셈이였다.
△ 한나라침략자들의 대규모적인 무력침공, 고조선의 리간책
한무제는 강화담판을 통하여 시간을 쟁취하려는 저들의 흉계가 파탄되자 침략무력을 증강하여 대규모적인 공격전을 감행하는 길로 나아갔다.
순체의 부대가 대릉하중류를 에돌아 고조선의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왕검성 서북쪽으로 남하하여 진을 치자 패잔병을 그러모아 대오를 재편성한 양복의 부대도 남쪽을 포위하였다. 이리하여 왕검성은 적의 포위속에 들게 되였으며 이 성에서 적아간의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였다. 당시 부수도 왕검성에는 왕과 태자 그리고 나라의 많은 충신들이 나가있었다. 그러므로 왕검성전투는 나라의 운명을 건 판가리싸움으로 되였다.
치렬한 성공방전이 벌어져 여러달 지난 어느날 우거왕이 새로운 전쟁국면을 타개하느라고 중신들을 불러들여 의견을 물어보았으나 모두 묵묵부답이였다.
이때 동쪽반렬의 두번째 자리에 부복하였던
이
◆ 력사인물: 끝까지 왕검성을 지켜싸운 고조선의 무관 성기
성기는 우거왕에게 의기소침한 양복을 내세워 순체를 견제하게 하여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그날밤 우거왕은 성기장군만을 따로 만나 양복과의 《화의》교섭끈을 어떻게 조절할것인가를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다음날 우거왕은 양복에게 사신을 보내여 《화의》를 교섭하게 하였다. 교섭은 고조선의 의도대로 진행되여갔다.
고조선사신이 왕검성과 양복의 군막을 몇차례나 나들면서 똑똑한 대답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항복》을 제가 받아냈다는 공을 독차지할 욕심이 항아리같던 양복은 순체와의 협동작전을 뒤전에 밀어놓고 삼복철 엿가락같이 질질 끄는 《화의》교섭에만 매달렸다.
매번 협동작전에서 기약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데 화가 난 순체는 저대로 사람을 보내여 고조선에 《항복》할것을 요구해나섰다.
그러나 왕검성에서 울려나오는 대답은 싸울테면 싸워보자는 배심있는 소리뿐이였다.
순체는 안달이 났다. 그것은 자기네 료동군사가 성을 그만큼 드세게 공격했어도 아직 끄떡하지 않고 큰 소리를 치는 고조선때문이였다. 혹 양복이 그전에 병졸들을 잃어버린 죄도 있고 지금 혼자서 고조선과 《화의》교섭을 한다는 소문이 도는것으로 보아 반변을 하려는게 아닌가고 의심도 하였다.
삼거웃같이 엉킨 의심의 실토리를 끊임없이 풀고 풀던 순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양복을 더 경계하며 자기 진에 틀어박히고말았다. 이리하여 협동작전은 종국적으로 파탄되고 왕검성에 대한 공격은 거의 반년나마 지연되게 되였다.
이러한 때 한무제는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여 사태를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공손수가 현지에 도착하자 순체는 양복의 허물을 들춰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여러차례 협동작전을 벌릴것을 요구하였으나 양복이 선선히 응하고는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시간을 지연시켜 이렇게 질질 끌게 되였노라 발명하였다.
공손수는 길길이 뛰며 양복을 대령시켜 놓고 치라는 적은 않치고 오히려 그들과 내통하여 좌장군의 부대를 도륙내려 하였다는 죄를 씌워 잡아가두게 하였으며 그 수하의 군사를 순체에게 넘기도록 조처하였다. 이렇게 사태는 수습되였다.
공손수가 사태를 수습하고 돌아오자 한무제는 도리여 그의 처사를 두고 잘못 처리했다는 죄명을 씌워 죽여버렸다.
이것은 적들의 모순을 잘 리용하여 알륵을 조성시키고 내부를 혼란시킨 고조선의 능란한 리간전술에 의하여 빚어진 통쾌한 사건이였다.
◆ 력사이야기: 《님아, 강을 건느지 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