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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자에 대한 단호한 응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자기의 향토와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였으며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한나라 무제의 《사신》으로 고조선에 파견되였던 섭하가 비렬하게도 자기를 호송하여주던 비왕 장을 죽이고 도망쳤다. 이것이 바로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한 《구실》로도 된 중대한 사건이였다.

이 사건은 B.C. 109년 만조선이 후조선과 교체된지 86년째 되던 해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력사적근원은 만조선이 성립된 시기부터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다.

 

△ 만조선과 한나라와의 첨예한 관계

B.C. 194년에 후조선을 대신하여 정변의 방법으로 새 왕조를 세운 만은 초기의 불안정한 국내정세를 안정시키고 정치, 경제, 군사적지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내정에 힘을 넣는 한편 이웃한 한나라와의 관계를 신중하게 풀어나갔다.

 

고조선은 진나라가 옛 《료동외교》로 삼았던 옛 땅을 되찾은데 기초하여 패수를 경계로 한나라와 대치해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만은 변경에서 다른족들의 략탈행위를 방지하고 주변소국들이 변경을 나드는것을 막지 않기로 한나라와 약조함으로써 되도록 충돌을 피하고 호상 화평하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몇해 지나지 않아서 한나라가 조선을 치려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B.C. 180년에 한나라 무제가 즉위한 후 장군 진무는 《남월과 조선은 앞선 진나라때에는 <복속>되여있었으나 그후에는 무력으로써 가로막고 형세를 관망하고있다.》고 하면서 만조선에 대한 원정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 무제는 국력이 만만치 않은 만조선과 전쟁을 하면 가뜩이나 흉노족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고있는 조건에서 이기기 어렵다는것을 타산하고 그 제의를 깔아버리고 말았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아예 뒤전에 놓은것은 아니였다. 때를 봐서 만조선을 먹어보려는것이 한나라 통치배들의 생각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B.C. 128년에 만조선의 후국왕인 예군 남려가 한나라에 투항해온것이였다.

 

남려가 다스리는 땅은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되는가고 묻는 한무제의 물음에 자기가 다스리는 땅은 발해에 면해있는 바다가지역으로서 한나라 동변에서 수백리 떨어진곳이며 그 크기는 사방이 수백리이며 28만의 백성들이 살고있다고 제 몸값을 잔뜩 높이였다. 만조선왕의 총애를 잃자 하루아침에 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로 도망간 남려가 그 수백리땅과 28만의 백성들을 모조리 제잔등에 지고 갔을리는 만무하였을것이며 측근부하 몇명을 데리고 간신히 빠져나온 도망자에 불과하였을것이다.

 

그러나 무제는 명색뿐인 《예군》이라도 나에게 굴러들어왔으니 하늘이 내 왕권을 보살펴주는구나 하고 어리석게 생각하면서 남려가 다스렸다던 후국지역에 한나라의 《창해군》을 설치한다는 어지를 내렸다.

멀쩡한 남의 나라 땅에 그것도 접경지대도 아닌 패수에서 수백리 떨어진 료동반도 동부지방의 고조선의 《예》후국에 《창해군》이라는 난데없는것이 자리잡도록 고조선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한나라는 군을 설치하느라 연, 제지방의 군사들을 바다길로, 륙로로 내몰았으나 고조선군민들에게 여지없이 패하고말았다. 당시의 력사기록들에는 과도한 비용으로 하여 3년후에 《창해군》을 철페하였다고 간단하게 적혀있으나 하나의 큰 전쟁이였다고 할수 있는 이 싸움에서 한나라는 남쪽의 《서남이》를 개척하던것과 맞먹는 커다란 인적, 물적손실을 내고 쫓겨나고말았던것이다.

 

어쨌든 이 전쟁에서 예상외로 만조선의 반격을 받아 어리둥절해진 한나라는 전술을 바꾸어 당분간은 만조선을 다치지 않고 다른 지역들을 정복하는데로 나갔다. 그리하여 북쪽 흉노와의 오랜 기간에 걸치는 전쟁끝에 B.C. 119년 좌흉노를 만리장성바깥 몽골고원쪽으로 몰아내고 B.C. 111년에는 장강남쪽의 남월(오늘의 복건성지방)과 동원(오늘의 절강성지방)을 침략하여 주변 여러 나라들과 종족들에 대한 정복사업을 기본적으로 끝냈다.

이런 기초우에서 그들은 고조선에 대한 침략을 단행하려고 하였다. 

 

△ 비왕 장을 살해한 섭하

한무제는 18만에 달하는 병력을 북쪽 변방지대와 동쪽바다가로부터 갈석에 이르는 변경에 집결시켜놓고 침략의 구실을 찾기에 골몰하였다.

무제는 섭하를 사신으로 파견하면서 만조선의 우거왕을 회유하여 굴복시키든가 아니면 도발이라도 해서 앞으로 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구실을 만들라고 분부하였다.

그때 섭하가 가지고 온 한무제의 서신을 받아보고나서 고조선의 우거왕은 한나라의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였다.

무제의 서신을 받아보면 우거왕이 발밑에 설설 기리라 생각하였던 섭하는 철퇴로 자기를 내려조기는듯한 선언에 도리여 목을 움츠렸다.

 

《회유설복》하라던 무제의 엄포가 귀에 쟁쟁한데 이대로 돌아가자니 처벌이 두려웠다. 왕검성에서부터 우거왕이 그래도 이웃나라의 사신이라고 함께 보낸 비왕 장과 함께 패수까지 오는 며칠동안 섭하는 접시물에라도 빠져 죽고싶은 심정이였다. 이제 이 강만 건너서면 한나라 료동군의 《새》이다. 저 강건너 우렷이 보이는 목책들에 눈주고 섰던 섭하는 오늘 밤 연회에서 끔찍한 일을 꾸밀 생각으로 저도모르게 몸서리쳤다.

 

그날밤 장은 전송연회를 차리여 섭하를 사절로서 례의있게 대해주었다. 그때 장이 섭하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더라면 류달리 불안해하고 초조한 기색을 감추느라 억지 웃음을 지은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였을것이다. 그러나 장은 한 나라의 사절인 섭하가 그런 흉모를 꾸밀 악당인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패수의 달밤이나 구경하자며 장을 나루로 유인해낸 섭하는 주변에 박아놓았던 하수인들에게 눈짓하였다. 비렬한들의 칼을 받아 피흘리며 쓰러지는 장을 내려다보던 섭하는 겁에 질려 하수인들을 고조선군사들과의 접전에 남겨놓고 저만 패수를 건너 《새》로 도망쳐 들어갔다.

 

이 비보를 받은 우거왕은 너무도 통분하여 가슴을 쳤다. 그는 당장 정예기병을 출동시켜 섭하를 도륙내자는 신하들의 제의를 뒤로 물리고 우선 한나라에 이 사건의 전말을 알리고 그 살인자를 당장 압송해보내라고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놈을 장의 무덤곁에서 릉지처참할 결심에서였다.

그런데 되돌아온 사신의 말인즉 한무제는 《사신》의 명색으로 비렬하게 남의 나라 고위관리를 살해한 섭하를 책망할 대신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니 기특하다》고 칭찬하였다. 게다가 그를 료동군 동부도위로 임명하였으며 특별히 상까지 내렸다.

살인자를 고조선과의 변경지대의 관리로 임명한것은 고조선의 존엄을 크게 자극하는 더 큰 도발이였다.

드디여 결심을 내린 우거왕은 복수심에 불타는 끌끌한 군사들을 패수건너로 보내며 그놈의 목을 당장 베오라고 명령하였다.

제놈이 지은 죄로 하여 매일밤 악몽속에 시달리며 저승길을 걷던 섭하는 그날 밤 별안간 선뜩하는 칼날아래 목 없는 귀신이 되고말았다.

이것은 비렬한 도발자에 대한 고조선의 응당한 징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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