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고인단계의 인류화석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발굴한것은 큰 의의를 가집니다.》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것은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였다. 그것은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정확히 밝히는데서 나서는 심각한 문제이다. 결국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는 조선사람의 조상을 바로 찾는 문제라고 말할수 있다. 

 

지난날 사대주의에 물젖은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우리 나라 땅으로 이주해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대주의적주장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됨으로써 여지없이 론박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그때에 벌써 우리 나라 땅에서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것을 말하여주는것으로서 커다란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을 비롯하여 여러 개체의 고인의 화석이 발견되였다. 여기에 관통되여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같이 발전된 특징을 가지고있다는데 있다. 그것은 이들이 신인에 이르지 못하고 멸종된 고인인것이 아니라 진화발전과정의 계주봉을 신인에게 직접 넘겨준 그의 직계선조였다는것을 의미한다.

 

△ 이발로 자기의 존재를 후세에 알린 《덕천사람》

《덕천사람》은 주체62(1973)년에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동굴유적에서 동굴히에나, 동굴사자 등 중부갱신세말~상부갱신세초의 짐승뼈화석들과 함께 나왔다.

《덕천사람》의 화석으로 보존된 유골은 2개의 이발과 1개의 어깨뼈화석이다. 이발은 왼쪽웃턱 둘째큰어금이와 오른쪽아래턱 첫째큰어금이인데 고인의 특징적인 징표는 특히 오른쪽아래턱 첫째큰어금이에서 찾아볼수 있다.

 

 

오른쪽아래턱 첫째큰어금이에서 주목되는 특징의 하나는 큰어금이의 씹는 면에서 뒤쪽에 있는 뒤꿈치부가 앞쪽에 있는 세도드리부보다 얼마간 더 넓은 점이다.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보다 얼마간 넓은 경향은 원인들에서 자주 볼수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른 시기의 고인인 에링스돌프와 늦은 시기의 고인인 레 무쓰찌예, 지브롤터고인에서도 볼수 있다.

 

어깨뼈는 오른쪽의것인데 크지 않다. 상대적으로 작으며 생김새는 배모양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발전된 특징을 많이 가지고있는 고인에게서 보게 된다. 그리고 어깨뼈에서 그것이 웃팔뼈와 마디를 이루는 뼈마디오목이의 형태가 연장된 타원형을 련상시키고 그 깊이가 깊다. 이러한 형태의 뼈마디오목이는 고인에게서 자주 볼수 있는 특징의 하나이다. 이밖에도 많은 원시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

 

△ 일곱살난 소년 《력포사람》

《력포사람》은 주체66(1977)년에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에서 발굴된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이다.

 

 

이 화석의 유골로서는 앞머리뼈, 웃머리뼈, 옆머리뼈쪼각이 남아있다. 아마도 7~8살정도 되는 어린애였다고 인정된다. 그것은 머리뼈의 봉합선들이 하나도 맞물리지 않았으며 웃머리뼈에는 불룩이를 중심으로 하여 화골방사선이 더러 남아있다는데 있다. 이와 함께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웃머리뼈의 크기는 그가 어린이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력포사람》의 머리뼈는 비록 어린애의것이였지만 거기에는 원시적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잘 나타난다.

그것은 우선 눈두덩불룩이가 형성되여있다는데서 표현된다.

사람의 머리뼈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나타나는 원시적인 징표의 하나는 눈두덩불룩이이다. 이것은 현대사람에게는 없고 원인이나 고인과 같은 진화과정의 사람들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징표의 하나이다. 따라서 인류화석을 감정하는데서 가장 중요시하는 징표의 하나이다.

 

눈턱뚝이라고도 부르는 눈두덩불룩이는 이마와 눈확사이부뿐아니라 눈확바깥삼각부까지 쭉 련결되여있는데 이러한 눈두덩불룩이를 《력포사람》에게서도 볼수 있다. 그런데 《력포사람》에서는 눈두덩불룩이가 눈확안쪽부위에서는 잘 발달되여 눈두덩과 눈두덩사이부를 구조적으로 구분해볼수 없게 쑥 두드러져나와있으며 좌우측의 눈두덩불룩이가 눈두덩사이부에서 끊어지지 않고 굵기로 이어지지만 그것이 눈확바깥쪽으로 가면서 급격히 약화된다. 이것은 눈두덩불룩이에서 발전된 진보적인 특징이 인정된다는것을 의미한다.

 

《력포사람》은 앞머리뼈의 경사가 상당히 완만하여 이마가 뒤로 쑥 제껴졌다는데서도 원시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그의 앞머리뼈는 같은 나이에 해당하는 현대사람의 앞머리뼈와는 대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느리며 앞이마는 눈두덩부위를 지난 다음부터 완만한 활등모양을 그리면서 웃머리뼈로 넘어간다. 이것은 그의 이마가 낮고 납작하며 뒤로 제껴져 뇌수의 앞머리부가 발달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큰쌍코뿔이, 털코뿔이, 대현땅쥐, 넙적큰뿔사슴, 동굴사자, 동굴히에나, 물소 등 10여종의 사멸종이 나왔다. 그가운데서도 동굴히에나는 이 유적의 년대를 추정할수 있는 시준화석으로 된다. 동굴히에나는 중부갱신세 말엽~상부갱신세를 대표하는 종이다. 따라서 《력포사람》은 10만년전을 넘어서는 이른 시기의 고인으로 인정된다.

 

△ 흐르는 용암속에 묻힌 세계의 첫 인류화석 《화대사람》

인류력사의 동틀 무렵, 구석기시대에도 사람들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준 화산분출이 적지 않았지만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하였던 당시에 사람들을 용암속에 몰아넣은 화산분출은 대단히 드물었다.

 

흐르는 용암속에 묻힌 세계 첫 인류화석으로 발굴된 《화대사람》은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에 있는 해발 172m의 높지 않은 큰봉우리 동남쪽 경사면에서 나왔다. 화석은 도로에 깔 돌을 채취하는 과정에 1.5m 두께의 큰 용암덩어리속에서 드러났다. 공사과정에 발굴된것만큼 화석은 적지 않게 깨여졌고 일부는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용암속에 사람이 묻혀 인류화석으로 보존될수 있다는 실제자료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립증하여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준것만 하여도 대단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수 있다.

 

주체89(2000)년에 칠보산 남쪽변두리에 있는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산용암속에 완전히 묻혀있는 세사람분의 인류화석을 발굴하였다. 이 화석이 발굴된 고장의 이름을 따서 《화대사람》이라고 명명하였다.

화산이 처음 분출할 때 용암의 온도는 대체로 1 400℃에 달한다. 그것이 점차 식어 400~500℃정도에서도 용암은 흐른다.

그러면 용암속에서 어떻게 사람의 유골이 보존될수 있었는가.

 

그것은 뼈질에서 30~50%를 차지하는 무기염류가 녹음점이 높은 린산칼시움과 탄산칼시움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뼈질의 무기염류에서 85%에 달하는 린산칼시움은 녹음점이 1 670℃에 이르고 10%를 차지하는 탄산칼시움은 녹음점이 825℃나 된다. 그런데 《화대사람》의 유골이 고열에 전혀 녹아흐르지 않고 온전한채로 보존된것으로 보아 탄산칼시움의 녹음점보다 낮은 온도의 용암속에 묻히였으며 인류화석이 매몰되는 순간에 용암은 천천히 류동하고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용암속의 인류화석을 감정한데 의하면 유골은 세사람분에 해당한다고 말할수 있다. 1명의 어른(녀성)과 1명의 미성년 그리고 어린애의것이다. 어머니가 두 자식을 데리고 흐르는 용암속에 파묻히는 재난을 당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용암에 묻혀 조금씩 보이는 화석의 인류학적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여기에서는 원시적인 특징과 함께 현대사람에게 이어지는 진보되는 특징도 엿보인다.

원시적인 특징을 보면 어른의 머리뼈인 경우에 이틀부돌출이 인정되고 어린애와 어른의 입천정표면이 다같이 류인원들처럼 매끈하다. 웃턱굴의 크기와 옆머리뼈 광대뼈돌기의 특징에 의하면 얼굴뼈가 상당히 클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계측할수 있는 아래첫째큰어금이의 길이는 《쟈와원인》이나 《베이징원인》보다 크며 이틀돌기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화대사람》의 유골에는 이러한 원시적인 특징뿐아니라 현대사람에로 이어지는 진보되는 특징도 엿보인다.

 

앞머리뼈부분이 남아있는 미성년의 경우에는 앞머리뼈가 뒤로 경사지고 평평하다고 하더라도 앞머리뼈불룩이가 약하게나마 형성되여있다. 이것은 신인단계사람에게서 나타난다. 이 화석의 머리뼈두께는 모든 경우에 현대사람보다 두껍다고 하더라도 인류화석치고는 그렇게까지 두꺼운편이 못된다. 또한 웃머리뼈가 비교적 높으며 웃머리뼈불룩이가 약하게 형성되여있다.

 

이러한 인류학적특징에 의하면 《화대사람》은 원인단계의 사람들과 신인단계사람들사이에서 량자를 이어주는 중간위치에 있다고 할수 있다.

인류의 진화발전과정에서 원인과 신인사이를 이어주는 중간특징은 고인단계사람들모두에서 볼수 있는 공통적인것이다.

이렇게 《화대사람》은 인류진화발전과정에서 원인과 신인사이를 이어주는 중간특징을 가지고있는것으로 보아 고인단계에 속하는 인류화석이라고 할수 있다.

여러 부문의 학자들은 석성리일대에서 5개의 화산분출구를 찾아내고 층서학적 및 광물암석학적연구와 새로 찾은 고식물화석 및 포분분석자료에 기초하여 당시 사람들을 용암속에 몰아넣은 화산분출이 지질학적 제4기 약 70만년전~10만년전에 있었다는것을 해명하였다.

그리고 인류화석 《화대사람》과 관계되는 용암을 시료로 하여 그 년대를 추정하였다. 열형광법으로는 32±4.5만년전, 고지자기법으로는 29±7.5만년전으로 추정되였다. 따라서 《화대사람》의 유골은 30만년전의 고인단계인류화석이라고 할수 있다.

 

지금까지 고인단계의 사람들은 20만년전부터 4만년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한것으로 보고있다. 중국에서는 고인단계인류화석이 적지 않게 발굴되였지만 화석의 절대년대는 대체로 10만년전안팎이였다고 한다.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이 많이 발굴된 유럽에서는 종전까지 가장 이른 시기의 고인이라고 하던 쉬타인하임(도이췰란드)이나 스완스콤브(영국), 폰테쉐바드(프랑스)의 경우에도 그 년대는 24만년전~20만년전을 넘어서지 못하고있다. 현재 고인단계의 인류화석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의것은 《이따푸에르까》이며 그 년대는 30만년전이다.

 

이처럼 어느모로 보아도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이 30만년전에 이르는것은 간혹 있어도 그것보다 더 이른 시기의것은 아직 없다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화대사람》은 세계적으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의 하나인것이다.

《화대사람》의 발굴은 우리 조국강토가 고인단계인류화석의 첫발상지, 그 발원지의 하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력사자료: 일제가 묵살해버린 우리 나라의 첫 구석기시대유적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