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모루유적을 통해 본 인류발생의 첫 자취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검은모루유적, 승리산동굴유적, 굴포리유적을 비롯하여 구석기시대의 유적들이 평양시와 평안남도와 함경북도일대에서 발굴되여 조선반도에서 인류력사의 첫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고증되였습니다.》

검은모루유적은 주체55(1966)년에 황해북도 상원군 흑우리에 있는 석회암언덕 남쪽비탈면에 자리잡고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였다. 유적이 있는 고장의 본래 이름이 검은모루이므로 이 고장의 이름을 따서 검은모루유적이라고 한다.

 

황해북도 상원군 검은모루유적의 전경

 

검은모루유적은 인류력사의 동틀 무렵에 해당하는 구석기시대 전기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유적으로서 지금으로부터 100만년이전에 해당된다. 이때로 말하면 지구상에서 인류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성이 처음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므로 이 유적은 우리 강토가 인류력사의 시작과 더불어 그 서막이 열린 유구한 력사의 나라라는것을 확증해준다. 검은모루유적은 동방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이라고 할수 있다.

땅우로 매일같이 걸어다니면서도 그밑에 조상들이 남긴 삶의 자취가 있다는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곳에서 유적유물을 발견할수도 있다.

 

고대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야성도 땅속에 묻혀 페허가 된채로 발견된것이다. 이로써 고고학자들은 수백년간이나 력사학자들과 문학자들이 론쟁을 거듭해오면서도 해명할수 없었던 트로야전쟁의 진상을 밝혀낼수 있었다.

 

아주 오래된 유적들중 대부분이 그러한것처럼 검은모루유적도 돌을 캐는 채석과정에 드러나 알려졌다. 동굴의 덧쌓인 층은 뭉쳐서 돌과 같이 굳어졌는데 희끗희끗한 짐승뼈화석들이 섞여있었다. 상원강의 기슭에 돌로 뚝막이를 하던 채석로동자들의 관심은 짐승뼈화석 그 자체보다도 그 화석의 크기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짐승은 소인데 여기에 있는 짐승뼈화석은 그의 10배가량 되는 3t 700kg에 달하는 큰쌍코뿔이화석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소뼈에 비할바없이 큰 이 유적의 짐승뼈화석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여 고고학자들의 발굴대상으로 되였던것이다.

 

△ 동굴에서 발견된 인류의 첫 창조적로동의 산물 ㅡ 석기들

발굴당시 동굴은 그 길이가 30m정도, 높이가 2.5m가량 되였다. 덧쌓인 층의 두께는 평균 2m정도였는데 그것은 5개 층으로 구분되였다. 짐승뼈화석과 석기는 주로 제4층에서 발굴되였다.

유적에는 주먹도끼형석기, 제형석기, 뾰족끝석기, 쪼각석기 등이 나왔다. 

동굴안의 퇴적층이 덧쌓인 상태로 보아 석기를 남긴 사람들의 살림터는 동굴밖에 있었던것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그 터가 있었을 지대자체가 지형의 변동으로 없어지고말았다. 따라서 발굴된 석기들은 당시 주민들이 살다가 버렸거나 잃어버린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것들이다.

이 석기의 재질로서는 규질석회암이 리용되였다.

 

돌의 미세한 알갱이가 조밀하여 굳기는 하지만 그 미세한 알갱이의 밀도는 균등하지 못하다. 따라서 돌의 력학적성질이 고르롭지 못하고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기때문에 결이 나있고 결에 따라 잘 쪼개진다. 이러한 돌로서는 예리한 날을 쉽게 얻을수 있지만 필요한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유적의 주인들은 한번 쪼개지거나 깨여낸 다음에 더 손질하지 않아도 될만 한 돌덩이나 한두번 더 떼여내면 도구로 능히 쓸만 한 돌덩이를 석기감으로 골라 석기제작에 사용한것 같다. 따라서 석기의 생김새가 원래의 돌생김새 그대로인것이 많다.

유적의 석기들은 아주 투박하고 극히 조잡한것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창조적로동의 산물이였기때문에 그것을 만드는데 일정한 제작수법이 적용되였다.

 

그 제작수법으로서는 때려떼기와 내리쳐떼기이다. 유적의 주먹도끼형석기가 다름아닌 내리쳐떼기로 만든것인데 그것은 돌덩이를 손에 쥐고 모루돌우에 내리쳐서 쪼각을 떼여내는것이고 제형석기나 뾰족끝석기를 만드는데 적용한 때려떼기는 석기를 만들려는 돌덩이에 돌망치로 타격을 가하여 쪼각들을 떼여내는것이다. 유적의 석기들은 주로 반쪼갬하여 만든것이다.

 

검은모루유적의 석기들은 구석기시대 전기의 석기치고는 가장 원시적인 류형에 속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이 유적에서 드러난 석기들이 구석기시대의 석기제작기술발전에서 일정한 규칙성이 없고 규격화된 형태를 가지게 되는 단계에 겨우 들어설 정도로 가장 원시적인 석기였다는데 있다.

구석기시대 전기의 특징적인 석기는 주먹도끼, 찍개, 자르개이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전형적인 주먹도끼나 찍개 그리고 자르개는 나오지 않았고 그 시초형이라고 인정되는 석기가 드러났을뿐이다.

 

주먹도끼형석기는 주먹도끼와 같은 류형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첫 단계의 석기였고 제형석기는 찍개의 시초형으로 인정되고 뾰족끝석기는 자르개와 통한다고 말할수 있다.

 

△ 동굴에서 발견된 짐승뼈화석을 통해 알수 있는 이시기 기후

유적에서는 27종에 달하는 크고작은 짐승뼈화석이 수많이 나왔다. 그것은 동물분류학적으로 7목 16과 20속에 해당되는데 이 동물구성에서 특이한것은 당시의 기후가 지금보다 비할바없이 더웠다는것이다.

유적의 동물상가운데는 코끼리나 큰쌍코뿔이도 나온다. 많은 동물들이 현재 우리 나라에는 살지 않고 더운 남쪽지방에만 있거나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된 짐승들도 적지 않다.

 

유적이 자리잡고있는 상원강기슭에는 코끼리가 떼지어 다니였고 코우에 뿔이 쌍을 지어 웅장하게 돋아난 힘센 큰쌍코뿔이들도 어슬렁거렸는데 그것은 성이 나면 칼날이발범이라고 하는 호랑이도 받아 허리를 꺾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춘 원숭이, 주름이발해리, 큰점히에나, 큰꽃사슴, 물소, 상원말, 큰메돼지들과 설치류들인 검은모루땅쥐, 상원갈밭쥐, 대륙갈밭쥐, 얼룩쥐들도 있었다. 히에나는 지금 아프리카초원에서나 볼수 있는 맹수류의 짐승이다.

 

 

이렇게 검은모루유적시기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중부지역의 기후가 아마도 아열대성이거나 온화한 온대성이였다고 인정된다.

 

△ 검은모루유적이 보여주는 인류의 발생과 인류문화의 첫 싹

검은모루유적의 발견은 인류력사의 시원이 열리던 구석기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우리 강토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인류문화의 첫 싹이 자라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동방조선에서 인류의 탄생을 알리는 이른 시기의 유적이 새로 발견되였다는 놀라운 소식은 전파를 타고 세계에 퍼졌다. 검은모루유적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주의를 집중시켰다. 

 

동방에서 인류문화의 발원지, 그 발상지라고 하면 의례의 《베이징원인》이 나온 중국황하류역과 《쟈와원인》이 발견된 인도네시아의 쟈와섬일대를 념두에 두었는데 이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인류문화의 발원지를 평양일대에 설정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100만년전 이전이라고 하면 구석기시대 전기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데 자연적으로 날이 생긴 돌덩이와 크게 구별되지 않을 이시기의 석기를 혹시 잘못 감정한것이나 아니겠는가.

검은모루유적에 대한 세계학계의 호기심은 많은 경우에 의혹속에 생긴것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동방의 한쪽끝에서 이렇게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되였다는데 대하여 놀라움과 의혹을 품게 되는것은 그때까지는 응당하다고 할수도 있었다.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의 고고학자들은 검은모루유적을 참관하고 조선이 유구한 력사의 나라, 인류문화의 발원지라는데 대하여 하나같이 동감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고있다.

이처럼 인류사회의 려명기에 해당되는 검은모루유적은 우리 나라에서 인류발생의 첫시기부터 사람이 살아왔다는것을 실증하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구석기시대 전기문화 특히 원시인들의 생활을 연구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

 

력사유적: 전곡리유적

력사이야기: 대동강류역에서 울려퍼진 인간탄생의 고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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