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류역은 사람이 살기좋은 고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하는 기본요인이다.》

자연과 사회의 주인인 사람을 떠난 사회란 있을수 없으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람들의 활동을 떠나서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혀낼수 없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몸구조자체를 완성하고 사유와 언어 및 사회관계를 발전시켜나갔는가 하는것은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을 정확히 리해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원시무리사회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아직도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의 힘에 많이 구속되여있었던만큼 이시기 생산력의 발전, 사회의 발전은 매우 느리였다. 아시아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인류를 지금으로부터 60만년전에 생겨났다고 본다 하더라도 대략 5만년전까지 계속된 원시무리시기는 무려 55만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끌었던것이다.

오랜 옛날일수록 사회는 미숙하였으며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에 주는 자연환경의 영향은 컸다.

인류력사의 첫시기인 원시무리시기의 자연환경은 오늘날과 퍽 달랐다.

지구의 지형과 기후 및 동식물계가 기본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된 시기를 지질학에서는 현세라고 부르고있으며 그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년전으로 보고있는것만큼 원시무리시기는 현세이전의 지질시대에 속한다.

사람이 생겨난 시기라고 하여 《인류기》라고도 하는 지질학에서의 신생대 제4기에는 지형과 기후의 변화가 심하였다.

 

례를 들면 오늘의 우리 나라 서해와 조선해협이 바다로 된것은 제4기에 있은 일이였다. 그것이 제4기의 어느때였는가에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으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제4기의 하부갱신세(대략 40만~30만년전)말에 있은 일로 보고있다. 그렇다면 하부갱신세에는 우리 나라와 중국의 동남부 및 일본의 섬들이 륙지로 련결되여있었던것으로 된다. 제4기에는 이처럼 지형에서만 변화가 있은것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도 심하였으며 그에 따라 동식물계도 많이 변하였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제4기 갱신세의 유적들과 짐승뼈화석들은 원시무리사회의 자연환경이 오늘과 같지 않았을뿐아니라 수십만년을 지나는 동안에 많이 변화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대동강류역은 맑은 강줄기와 넓고 비옥한 평야, 물산이 풍부하고 그 기온이 따뜻한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서 인류의 발상지의 하나로 되였다.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유적들과 거기에서 발굴된 인류화석들은 대동강류역이 원인, 고인, 신인 등 인류진화의 순차적단계를 거쳐오면서 우리의 옛조상들이 태고로부터 살아온 보금자리이며 인류의 초기문화가 싹튼 유서깊은 력사의 성지였다는것을 확증하여준다.

 

△ 검은모루유적을 통하여 본 하부갱신세의 자연환경

1966년 황해북도 상원군 흑우리에서 발견된 검은모루유적은 지금으로부터 100만년이전에 해당하는 원인들이 남긴 동굴유적으로서 거기서는 당시 대동강류역의 자연환경을 리해하는데서 중요한 자료로 되는 수많은 포유동물화석들이 나왔다.

 

상원군 검은모루유적의 전경

 

검은모루유적의 석회암(방해석으로 이루어진 퇴적암)동굴에는 당시의 자연환경을 보여주는 짐승뼈화석들이 약 30m범위안에 평균 2m두께로 덧쌓여있었다.

검은모류유적에서 나온 화석포유류에는 이미 오래전에 사멸된 종이 절반이상이나 되였다. 특히 발견된 화석포유동물들중에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것은 큰쌍코뿔이로서 포유류의 50%이상, 마리수에서 33.7%를 차지하고있다.

 

코등에 뿔이 있는 큰 집승인 코뿔이는 지금 인디아, 아프리카와 같은 더운 지대들에서 볼수 있는것으로서 흔히 서우라고 불리우고있다. 오늘날의 코뿔이를 보면 인도의 코뿔이와 같이 뿔이 하나있는것도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사는 종류들과 같이 뿔이 2개 있는것도 있다. 그것들가운데는 아프라카에서 사는것들과 같이 무게가 1.5t이나 되는 큰 종류가 있다고 한다. 검은모류유적에서 나온 화석이 된 코뿔이도 코등에 뿔이 2개 있으며 크기가 아프리카에 사는것들만 하였을것으로 인정되고있다. 그러나 검은모루유적의 큰쌍코뿔이는 이미 수만년전에 도태되여 없어진 종이였으며 오늘날의 코뿔이들과는 다른 종에 속하는것이였다.

 

검은모루유적의 화석포유류들에는 큰쌍코뿔이처럼 이미 오래전에 도태되여 멸종한 종이 절반이상이였으며 그가운데는 습들쥐, 상원말과 같이 신생대 제3기에 번성하였던 오랜 종들도 있다. 이것은 검은모루유적의 화석포유동물상이 현대동물상과는 전혀 구별되는 오랜 지질시대의 동물상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한편 물소, 원숭이, 큰쌍코뿔이, 코끼리와 같이 더운 지방동물상의 대표적인 짐승들이 보이는것은 당시의 기후가 지금보다는 더웠으리라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물이 많고 습기있는곳에서 살기 좋아하는 물소, 해리, 습들쥐와 같은 짐승들이 있었다는것은 당시에 비내림량이 많았고 이런 짐승들이 사는 주위에는 큰 강이 흐르고있었으며 강변은 진펄로 덮여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그뿐만아니라 이 유적의 화석포유동물상은 상원일대에 여러가지 짐승들이 무리지어 살수 있는 자연환경이 이루어져있었다는것을 여러모로 보여주고있다.

 

화석포유류가운데는 메돼지, 승냥이, 곰과 같이 나무가 무성한 지대에 사는 짐승들, 코뿔이나 말과 같이 초원지대 혹은 산림성초원지대에서 사는 짐승들, 사슴과 같이 수풀과 산간공지 혹은 언덕지대에 사는 짐승들이 있었다.

 

이것은 수풀이 무성하였으며 오늘날에는 볼수 없는 짐승들이 많이 살고있었을뿐아니라 그 짐승들의 먹이로 되였던 식물들에도 지금에는 볼수 없었던 종류들이 많았으리라는것을 엿볼수 있게 한다. 그런것들가운데는 사람이 먹을수 있는 열매가 달리거나 뿌리를 가진것도 많았을것으로 보아진다.

 

△ 중부갱신세의 자연환경

1969~1970년에 발굴된 황해북도지역의 상원군 청청암동굴과 평산군 해상동굴에서 나온 포유동물화석들은 중부갱신세의 자연환경이 하부갱신세에 비하여 퍽 달라졌다는것을 보여준다.

이 동굴에서 나온 짐승뼈화석들은 사멸한 종들의것이 아니라 모두 현대동물상과 공통성을 가진 종들의것이다.

그런데 1972~1973년에 발굴된 평안남도 덕천군 승리산동굴유적, 1977년에 발굴된 당시의 평양시 승호구역 화천동유적에서 나온 화석포유류들가운데는 큰쌍코뿔이, 큰뿔사슴 등 검은모루유적에서 본것과 같은 사멸한 종들이 있다. 이것은 중부갱신세에도 하부갱신세에 번성하였던 일부 포유동물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말하여준다. 그러나 승리산동굴유적, 화천동유적에서 나온 화석포유동물상은 그 종구성전반을 놓고볼 때 검은모루유적의것과 퍽 다르다.

 

승리산동굴유적에서 나온 화석포유동물상의 종구성을 보면 매우 풍부하며 대략 30종에 달한다. 이처럼 종수는 많지만 화석포유동물의 , 는 검은모루유적보다 적으며 같은 목안의 종구성은 퍽 달라졌다.

 

검은모루유적의 화석포유동물상에서는 기제목이 큰 포유류가운데서 많은 수를 차지하고있었으나 승리산동굴유적에서는 기제목이 줄어들고 그대신 우제목이 더 많아졌던것이다.

그런데 화석포유동물상의 종구성에서 우제목이 기제목보다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것은 중부갱신세에 일반적인 현상이였다. 즉 청청암동굴과 해상동굴의 화석포유동물상을 보더라도 거기에 기제목은 없고 그대신 우제목이 큰 포유류의 많은 수를 차지하고있었다.

이와 같이 중부갱신세의 화석포유동물상에서는 우제목이 많아진것이 특징적인데 더욱 주목되는것은 우제목가운데서도 사슴과의 속과 종이 늘어나고 복작노루와 노루가 새로 나타난것이다.

 

사실 기제목보다 우제목이 많은 수를 차지하며 복작노루, 노루를 포함한 사슴과짐승들이 많은것은 중부갱신세이후 현세에 이르는 우리 나라 원시유적들에서 나온 포유동물상의 종구성에서 특징적인 현상이였다고 할수 있다.

 

이것은 중부갱신세동물상이 하부갱신세동물상과는 퍽 달랐으며 현세동물상에 많이 가까워졌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한편 중부갱신세의 화석포유동물상에 더운 지방 동물상의 대표적인 짐승들이 적어진것으로 보아 중부갱신세의 기후가 검은모루유적시기보다는 훨씬 추웠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중부갱신세의 동물상에 추운지대 및 북부얼음땅지대 동물상의 대표적인 짐승이 매우 적은것으로 보아 오늘의 온대지방보다 더 추운 기후는 아니였을것이라고 인정된다.

중부갱신세의 기후가 추웠다는것과 관련하여 이야기되여야 할것은 신생대 제4기에 지구 북반구의 여러 대륙에 영향을 미친 빙하에 대한 문제이다.

신생대 제4기는 인류가 생겨난것과 함께 빙하기가 여러번 반복된것으로 특징지어지고있다.

 

제4기에는 지구겉면의 기후변화에 따라 북극지대에 중심을 둔 빙하가 남쪽으로 밀려내려와 아메리카 및 유럽대륙의 많은 지역과 아시아북부의 일부지역이 빙하에 덮인 때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륙지가 빙하로 덮여있는 때인 빙하기와 기후가 따뜻하여져서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고 빙하가 북쪽과 고산지대로 물러선 때인 간빙기가 교체되군 하였던것이다.

 

제4기에 지구 북반구의 빙하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 발달정도가 달랐으며 그에 대한 견해도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중부갱신세에는 두번째 간빙기와 세번째 빙하기가 있었으며 이 세번째 빙하기는 지구 북반구의 빙하가 가장 발달하여 많은 지역이 빙하에 덮였던 시기로 인정된다.

 

빙하기시기에는 수백만k㎡에 달하는 넓은 면적의 륙지가 굉장히 두터운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이렇게 빙하에 덮였던 지대는 물론이고 그 주변지역도 몹시 추웠다. 그리하여 빙하기에 더운 기후에서 사는 동식물은 남쪽으로 물러가고 추위에 견딜수 있는 동식물로 바뀌였던것이다. 중부갱신세의 빙하지대 및 그 주변지역의 유적들에서 털코끼리, 털코뿔이와 같은 짐승들의 화석이 자주 발견되는것은 그것을 잘 말하여준다.

 

제4기에 지구 북반구의 많은 륙지가 빙하에 덮이군 하였으나 우리 나라는 빙하에 덮인 일이 없었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고산지대를 제외하고 제4기의 빙하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구우에는 오늘의 열대지방을 비롯하여 제4기의 전기간에 빙하에 한번도 덮인 일이 없는곳이 많다. 그러나 빙하가 덮이지 않는 지대에서도 기후의 변화는 심하였다. 빙하기에 열대지방에는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렸을것이라고 인정되고있다.

우리 나라도 빙하기에는 그 영향을 일정하게 받았을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우에서 본것처럼 고동물학적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기후는 중부갱신세의 빙하기에도 빙하지대나 그 주변지역과는 달리 몹시 춥지는 않았을것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이러한 력사자료들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이 사람이 살기 좋은곳으로서 인류발생지의 하나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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