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 첫 공연과 련이은 군사작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5(1936)년 8월 하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압록강연안으로 진출하시던 길에 백두산의 서쪽 위성구역인 만강부락에 들리시여 며칠간 묵으시면서 이 마을을 혁명화하기 위한 정치사업을 크게 벌리시였다.

 

 

만강은 주민의 대부분이 가난한 조선사람들인데다가 무송과 장백, 림강을 련결하는 길목에 놓여있어 이 마을을 혁명화하는것은 백두산지구에 유격근거지를 창설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체 부대가 마을을 혁명화하기 위한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낮에는 밭에 나가 농민들의 일손을 도우면서 해설사업도 하고 혁명가요도 보급하였다. 녀대원들은 빨래터와 우물가에서 마을녀성들을 대상하여 정치사업을 벌리였다.

《피바다가》

 

만강에서 진행한 정치사업에서 이목을 집중시킨것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혈해》)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것이였다.

 

만강에서의 첫 종합연예공연은 마을복판에 자리잡은 촌장네 집마당에 꾸린 가설무대에서 진행되였다. 《유격대행진곡》, 《반일전가》의 합창에 뒤이어 독창, 중창, 하모니카합주 등 다채로운 종목들이 무대에 올랐다. 연예공연은 인민들에게 민족적 및 계급적자각을 높여주었고 그들에게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었으며 그들의 가슴마다에 억센 투쟁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특히 《피바다》는 만강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안겨주었으며 그들을 혁명의 한길로 힘차게 고무해주었다.

 

 

혁명가극 《피바다》의 한 장면

 

공연이 끝나자 장내는 요란한 박수갈채로 떠나갈듯 하였다. 《일제강도놈들을 타도하자!》, 《우리도 일제놈들과의 싸움에 나섭시다!》라는 힘찬 구호소리가 연방 울려나오는 가운데 많은 청년들이 무대에 뛰여올라와 조선인민혁명군에 받아줄것을 청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만강에서의 연극공연은 두메산골 까막눈이던 젊은이들, 늙은이들을 계몽하고 교양하여 항일혁명투쟁의 적극적인 참가자로, 후원투사로 개변시켰다.》

 

만강은 그후 수많은 입대자를 배출한 고장의 하나로, 조선인민혁명군의 믿음직한 후방보급기지의 하나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백두산서북부일대에서 이룩한 성과에 의거하여 백두산서남부일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시였다.

 

백두산서남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한 작전은 그해 중국 장백현 대덕수전투로부터 시작하여 이도강전투로 결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기간에도 군사활동과 정치활동, 집중과 분산 등을 밀접히 결합하시였으며 대부대와 소부대의 배합전술, 적들을 끌고다니다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저들끼리 싸우게 하는 전술,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의 적을 치며 동쪽의 적도 치고 서쪽의 적도 치는 전술 등 다양한 유격전법과 전술을 능숙하게 활용하시면서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시였다.

 

대덕수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장백땅에 진출하신 후 벌리신 첫 전투로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널리 시위하고 적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겨준 의의있는 전투였다.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대덕수마을에 들어선것은 중낮쯤 되여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마을에서 대중정치사업을 벌릴것을 계획하시고 감시조건이 좋은 마을앞산의 길쪽과 마을뒤산의 선바위에 각각 망원초들을 조직하여 경계근무를 강화하게 하신 다음 연예공연을 할수 있게 가설무대를 준비하도록 하시였다. 그런데 이때 망원초로부터 적들이 달려든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부대를 마을 뒤산으로 오르게 하시고 망원초성원들이 적을 달고 천천히 철수하도록 하시였다.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이 얼마 안되는줄만 알고 아군의 주력이 배치된 선바위 남쪽 고지로 바싹 다가들었다. 선바위부근에 지휘처를 잡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이 사격권안에 들어서자 일제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드센 타격에 숱한 사상자를 낸 적들은 무기와 장구류를 내버린채 이도강쪽으로 황급히 도망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투를 승리적으로 마치신 후 부대를 마을에 집결시키시고 예정했던대로 연예공연을 하게 하시였으며 몸소 선동연설을 하시여 인민들을 조국해방을 위한 반일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힘있게 고무하시였다.

 

대덕수전투를 계기로 장백일대의 인민들속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출귀몰한 전법과 탁월한 령군술을 칭송하는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갔다. 대덕수마을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투를 지휘하신 선바위를 장군바위라고 불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덕수전투에 이어 그 다음날에 소덕수에서 망원전술로 이도강과 15도구쪽에서 출동한 적《토벌대》놈들을 소멸하시였다.

이때 적들은 저들이 따르던 수백명의 인민혁명군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자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때부터 국경지대에는 유격대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대덕수, 소덕수전투​에서 울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성은 장백과 그 대안의 조국인민들에게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덕수골에서 그후 여러명의 청년들이 입대한것을 계기로 장백지방에서 인민혁명군대오는 급격히 늘어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덕수전투(마등창망원전투)에 이어 15도구의 동강일대와 16도구의 천교구에서 위만군놈들을 요정내시였다.동강전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여러 소부대들을 장백현의 각 지역들에 파견하시여 도처에서 적들을 타격하게 하시는 한편 일부 부대를 친솔하시고 13도구 룡천리전투, 20도구 이종점전투, 17도구 반절구전투, 20도구경찰분서습격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벌리시여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련속적인 타격을 가하시였다.20도구전투​

 

조선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적의 병영들과 경찰서들, 반동통치기관들이 불탔으며 크게 파괴되였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걷잡을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겁에 질린 적들에게 더욱 큰 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적의 요충지의 하나인 이도강에 대한 습격전투를 조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찰과 지방혁명조직의 통보자료에 기초하시여 적의 기본주력이 멀리로 《토벌》을 떠난 기회에 이도강을 습격하여 부락에 남아있는 적들을 삽시에 소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작전과 령활한 지휘에 의하여 백두산일대의 적이 제압됨으로써 이 지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주동적으로 활동할수 있는 무대로 전변되였으며 백두산근거지창설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였다.

 

    일화; 찰분서장이 받은 통고장​

    학습자료;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 제13장 3. 《피바다》초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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