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군 금당농장을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83(1994)년 6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류달리 무덥고 가물이 계속되는 주체83(1994)년 6월 우리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험한 논두렁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인민들과 함께 계시며 인민을 위해 헌신의 로고를 다 바치시였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대중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은 가장 영예롭고 보람찬 일이며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더없는 행복이고 영광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해당 일군들에게 언제쯤이면 비가 올것 같은가를 알아보시며 가물피해막이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농장들을 찾으시고 포전길을 걸으시며 영농사업을 지도하시였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6월 19일 온천군 금당농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나날 치차처럼 맞물려있는 대외활동으로 매우 바쁘신 때였으나 한 일군을 부르시여 온천군 금당농장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이날은 일요일이였는데 원래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나절을 외국대표단을 만나시고 오찬까지 나누시기로 이미 일정이 맞물려있었다. 한 일군이 다문 일요일의 반나절이라도 휴식하시기를 간절히 말씀드리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물에 타는 농작물이 걱정되시여 농장포전으로 나가시였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만이 아닌 생의 거의 모든 일요일들을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내시였다.
어느해에는 50여일의 일요일중에 단 한번의 휴식도 없이 50여차에 걸쳐 전국의 수십개 단위들을 찾으시였고 어느 일요일에는 해종일 도와 도의 지경을 넘으시며 10여개 단위에 현지지도의 거룩한 자욱을 남기시였다. 거의 날마다 공장과 농촌을 찾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일군들이 어느 일요일엔가 하루만이라도 휴식하실것을 말씀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휴식한다는게 뭐 별다른게 아니라고, 공장이나 농촌을 돌아보는것보다 좋은 휴식이 어디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겹쌓였을 때는 한가지 일을 끝내고 새 일감을 잡으면 기분이 새로와지니 그게 다 휴식이라고,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고심하던 문제를 풀수 있는 고리를 찾아내거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를 포착할 때처럼 기쁜 일은 없다고, 이것도 다 자신에게는 좋은 휴식이라고 하시였다. 공장과 농촌을 돌아보시는것을 좋은 휴식으로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의 일요일에도 80고령의 몸으로 온천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나서시였던것이다.
금당농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장의 포전들을 돌아보시면서 영농실태를 료해하시고 이곳 농업근로자들이 당의 농업제일주의방침을 높이 받들고 모든 힘을 농사에 집중함으로써 훌륭한 작황을 마련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특히 여러가지 관수방법을 도입하여 밭관수를 하고있는것을 보시고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농장들에서 관수시설을 총동원하여 강냉이를 비롯한 농작물들에 물을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며 그늘 한점없는 포전머리에서 오랜 시간 농사일을 지도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장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한 일군을 부르시여 오늘 온천군에서 애로가 없다고 하면서 아무 제기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비료가 절실히 요구될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가서 알아보고 계획된 비료전량을 공급해주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금당농장에서 보신 기구식관수시설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에도 관계부문 일군들을 통하여 가물피해막이대책을 어떻게 세우고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면서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6월 21일에는 대성구역의 농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보다 능률적인 관수방법을 여러모로 탐구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연구하여 만들었다는 기구식관수시설이 설치된 대성구역의 농장 감자포전을 찾으시였다. 이틀전 금당농장에서 이미 보아주신 기구식밭관수시설의 현실적가능성여부를 다시금 확인하시기 위해서였다. 기구식관수시설은 수소를 넣은 큰 비닐풍선을 공중에 띄워놓고 작은 구멍이 숭숭 난 비닐관을 매달아 놓은 다음 양수기로 물을 쏘아주어 공중에 떠있는 관에서 물이 안개비처럼 쏟아지도록 만든것이였다. 이 관수시설로는 7~8시간동안에 한정보의 밭에 관수를 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구식밭관수시설로 관수를 하는 작업모습을 주의깊이 살펴보시며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안색으로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기구를 만들자면 수소분리공정도 복잡하고 거기에 드는 많은 량의 원자재를 보장하는것도 문제였다. 이런 조건에서는 전국의 모든 농장들에 도입하는 문제가 걸릴수 있었다.
농장에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후 한 일군을 부르시여 다른 관수방도가 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신통한 안이 없다보니 아무런 답변도 드릴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중의 지혜를 불러일으키면 반드시 방도가 있을것이라고 하시며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효과적인 관수방법을 찾아야 하겠다고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6월 23일 대성구역에 있는 어느한 남새시험포전을 찾으시였다.
첫눈에도 남새대풍이 안겨오는 푸르싱싱한 남새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신듯 천천히 남새밭 가운데로 들어서시였다. 남새밭에서는 나무짝지발우에 작은 구멍을 뚫은 비닐관을 늘인 관수기로 물을 뿌려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무짝지발우에 올려놓은 비닐관에서 물보라가 날리는 모양을 오래도록 살펴보시였다. 뒤늦게야 달려온 농장일군의 인사를 받으시며 그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은 누가 연구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농장일군이 집체적으로 연구해서 만들었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동무들이 밭에 나무짝지발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은 다음 그우에 비닐관을 쭉 늘여놓고 관수를 할수 있게 잘해놓았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방법이 간단하고 경제적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방법으로 분수식관수를 하면 적은 자재와 로력을 가지고도 지금있는 관개시설들을 리용하여 얼마든지 모든 강냉이밭들에 물을 다 줄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동안 생각해오시던 밭관수방법문제가 풀리게 된것이 더없이 기쁘시여 넓은 남새밭을 만족스럽게 둘러보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심혈과 로고에 의하여 주체83(1994)년에도 농장벌들마다에 황금이삭이 설레이게 되였으며 우리 인민들은 한평생 멀고 험한 논두렁길을 걷고 걸으시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해오신 우리 수령님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