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 이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전기간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속에서도 드팀없이 견지하고계시는 원칙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계승자들이며 미래의 주인공들인 새세대들을 나라의 귀중한 보배로 여기시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배우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바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새 세대들이 없으면 나라의 앞날도 없으며 사회의 진보도 있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주인공들인 새 세대들을 잘 키우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강원도일대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야영생들에게 친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50(1961)년 9월 30일 오후 송도원소년단야영소(당시)를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승용차에서 내리시자마자 어린이들은 그이께로 달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와락 안겨드는 어린이들을 두팔을 벌려 살뜰하게 안아주시였다.
야영소의 책임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송도원소년단야영소 야영생 205명이 지금 야영생활중에 있다고 보고올리자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사고는 없는가, 앓는 학생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사고도 환자도 없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한 녀학생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의 이름을 물으시였다. 《김기순입니다.》라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그 학생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은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방금까지도 기뻐하던 학생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무엇을 감촉하신듯 그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더욱 부드럽게 집이 어디냐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학생은 고개를 숙인채 《집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안색이 달라지신 수령님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야영소의 일군이 남포초등학원에서 온 학생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초등학원…》하고 조용히 말씀하시더니 그 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초등학원이 기순의 집이지. 그렇지, 기순이!》라고 하시였다.
그 순간 모두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둘러선 학생들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주시면서 야영소에 온지 며칠째인가, 뭘 더 먹고 싶은것이 없는가, 바다가 무섭지 않은가, 어떤 놀음이 제일 재미있던가 등을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어린이들속에 둘러싸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야영소현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바다를 바라보시며 이 송도원은 참 좋은곳인데 옛날에는 돈있는 자들이 독점한 피서지였다고, 이 좋은곳에서 우리의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여놀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때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이 자리는 솔밭도 백사장도 좋고 바다는 수심이 얕아서 위험하지도 않아서 달리 리용하려고 아끼고있었는데 수령님께서 여기에 소년단야영소를 지어주라는 가르치심을 받들고 이렇게 지었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띠우시며 잘했다고, 제일좋은 자리를 어린이들에게 준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그걸 누구에게 주겠는가, 제일 좋은것은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단야영소를 돌아보시면서 지침으로 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는데 그 모든 가르치심마다에 관통되여있는 사상은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당에 들리시여 아이들에게는 식탁에 백포보다 비닐보를 놓는것이 더 좋으니 비닐보로 갈아줄데 대한 문제, 식사계획표를 보시면서는 아이들이 배고파하지 않게 식량공급량을 좀더 늘이며 두부는 지금보다 적게 주고 그대신 닭알과 과실, 간식같은것을 더 주도록 할데 대한 문제, 오락실에 이르시여서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줄수 있게 영사기를 하나 주되 그것도 제일 좋은것으로 줄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린이들의 침실도 돌아보시였다.
침대로 다가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포를 벗기시고 개여놓은 침구를 몸소 헤쳐보시다가 여름철에는 솜이불보다 담요가 좋을텐데 이불을 주겠으면 꼭 누벼서 주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린이들에게 이부자리 하나를 개여도 모두가 꼭같이 개도록 가르쳐주어야 하며 야영생활은 집단주의정신과 집단적규률을 배양하는 측면에서도 교양적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침실을 떠나시기전에 침대를 흔들어 보시고 삐걱소리가 나자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가 어린이들을 이런 침대에서 재워 키운다면 그들이 커서 침대를 짤 때도 이렇게 삐걱거리는 침대를 짜게 될것이고 사업하는데 있어서도 틈이 생길수 있다고, 침대를 좋은것으로 교체해주라고 타일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야영소일군들에게 6월 1일부터 10월말까지 하게 되여있는 야영을 4월중순부터 시작하도록 일군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면장의 수도꼭지를 틀어보시고 더 좋은것으로 바꾸어 달아주도록 하시였으며 복도와 매 방들에 걸려있는 유화, 수채화를 보시고는 어린것들이 풍경화는 잘 리해할수 있는것이 아니므로 사회주의건설모습을 보여주는 벅찬 그림이라든가 청년영웅들의 투쟁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을 걸어주며 풍경화인 경우에도 동해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것 같은 힘차고 전망성있는 그림을 걸어주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복도에 걸린 크지 않은 거울을 보시고 작은 거울대신에 큰 거울을 달아서 오르내리는 아이들이 자기의 전신을 볼수 있도록 해주어야 우아래의 옷차림이 제대로 되였는가를 자기 눈으로 보고 고칠수 있다고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층까지 올라가시여 소조실들을 일일이 살피시면서 앞으로의 소조실의 설비와 그 운영에 대하여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질탐사대 부럽지 않게 아이들에게 알맞는 등산지팽이를 만들어주어서 산을 오르다가 마음에 드는 바위나 돌을 까볼수 있게 하고 또 배낭도 든든하고 맵시있게 만들어서 메워주라고 당부하시였다. 이날 소년단야영소의 총건설계획도를 보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는 이 지방의 기후에 맞게 구락부를 꼭 지어서 비가 와도 야영생들이 기를 펴고 놀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린이들을 위하여 우리 힘으로 할수 있는 모든것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송도원소년단야영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거듭 강조하시던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 여기에 담겨져있는 우리 수령님의 어버이사랑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숭고하고 뜨거운것이였다.
송도원소년단야영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이들에게 마련해주신 사랑의 요람이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후대사랑에 의하여 더욱 훌륭히 개건현대화되여 우리 어린이들은 이 사랑의 집에서 최상의 행복을 맛보며 무럭무럭 자라나고있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리 경제형편이 어려울 때에도 어린이들에게만은 온갖 국가적혜택을 선참으로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온 나라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철따라 새옷과 외투, 털모자와 털신 등을 공급해주도록 하시고 그 값도 체계적으로 낮추어주시였다.
주체55(1966)년 2월 평안남도 온천군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공업품상점에 들리시여 어린이솜옷 한벌을 드시고 두터이를 가늠해보시며 그 값을 알아보시였다. 세대당 수입과 아이들의 옷값을 계산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에게 어린이옷값을 50% 더 낮출수 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몇해전에도 아이들의 옷값을 30%나 낮춘 일이 있었던것만큼 그 일군은 국가의 재정지출이 념려되여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가가 많은 보상을 하더라도 값을 대폭 낮추어 어린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겨울옷을 다 사입도록 해야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이해에 또다시 어린이들의 옷과 신발값을 대폭 낮추는 조치를 취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해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천으로 더 맵시있게 옷을 해입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육친의 정으로 보살피시였다.
어느해 봄 학생들에게 여름교복을 공급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의 의견을 미리 들어보지 못하신것이 마음에 걸리시여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뛰노는 몇몇 아이들을 댁으로 부르시여 새로 타입은 여름옷들을 살펴보시였다. 모두 새 교복에 새 신발을 신고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만은 낡은 신을 신고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없이 자라는 네형제가운데서 둘째인 열네살난 소녀였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부모없는 네형제를 따사로운 한품에 안아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바로 이렇게 시작된것이였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어린이들에 대한 육친적사랑은 조국의 북방 랑림산줄기의 험준한 골짜기로 오가는 통학렬차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주체58(1969)년 여름 어느날 량강도의 어느 한 두메산골 어린이들이 멀고 험한 령길을 넘어 학교에 다닌다는것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그 아이들에게 통학렬차를 따로 만들어주도록 하시고 그 운영방법까지 가르쳐주시는 은정깊은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그리하여 얼마후부터 이곳 19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사랑의 꽃렬차가 랑림의 깊은 수림속을 달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렇듯 세심하고도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이르는 곳마다에 사랑의 다리며 통학용뻐스와 나루배가 생겨났으며 외진 등대섬의 4~5명밖에 안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학교분교가 세워지고 교원들이 파견되여가는 꿈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혁명도 건설도 후대들을 위한것이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제일 좋은것을 선참으로 돌려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그것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갔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 안겨산 우리 어린이들이야말로 온 세상이 부러움을 금치 못하는 가장 행복한 이 나라의 《왕》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