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형의 혁명정권, 인민정권의 탄생​

 

 

인민혁명정부를 세우시고 인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1(1932)년에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에 새형의 정권인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였다.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를 유지하고 그것을 운영해나가자면 그 령역안의 인민들에 대한 경제조직자적, 문화교양자적역할을 감당할수 있는 정권을 건설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1(1932)년 5월에 있은 소사하회의에서 이미 카륜회의와 겨울명월구회의에서 제시하신 정권건설사상에 기초하여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에 세워야 할 정권은 인민혁명정부로 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뚜렷이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구에 당조직과 계층별 혁명조직들을 내오고 조직지도체계를 정비하며 유격구내의 전반사업을 지도하는 인민혁명정부를 조직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구현한 독창적인 정권건설로선으로서 혁명정권을 건설하는 투쟁에서 조선의 혁명가들이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유일하게 정확한 지도적지침이였다.

 

혁명대오에 기여든 종파사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반일부대와의 련합전선을 위하여 남북만진출의 길을 계속 이어나가시는 기회를 리용하여 쏘베트로선을 그대로 본따서 유격구들에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 쏘베트정부를 세웠다. 주체21(1932)년 10월혁명기념일을 계기로 중국 왕청현 가야허에서는 군중대회를 열고 쏘베트정부수립을 선포하였으며 이어 연길현 왕우구와 삼도만에서도 쏘베트가 수립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남북만진출을 마치시고 소왕청 마촌에 돌아오시였을 때 쏘베트시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이 유격구 도처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유격구인민들이 쏘베트를 달가와하지 않은것은 정부가 즉시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극좌적인 구호밑에 사유재산철페를 선포하고 토지와 식량, 농쟁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소유하고있던 동산, 부동산들을 공동소유로 만든 때부터였다. 쏘베트정부는 재산의 공유화를 강행한 다음 유격구안의 모든 주민들이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공동생활, 공동로동, 공동분배의 새로운 질서밑에 움직이도록 하였다. 좌경적인 쏘베트시책이 빚어낸 후과로 하여 유격구들에서는 심한 동요와 혼란이 일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쏘베트시책에 불만을 품고 유격구를 떠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만강연안의 일부 지역들에 조직된 쏘베트를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2(1933)년 2월 하순 왕청현 소왕청 마촌에서 당 및 공청지도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유격구들에서 발로되고있는 좌경적편향들을 시급히 바로잡고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당면과업과 수행방도들을 밝히시면서 두만강연안의 일부 지역들에 조직된 쏘베트를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조선혁명의 구체적현실은 로동자, 농민, 병사대중의 리익만을 대표하는 쏘베트정권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 병사대중은 물론 청년학생, 지식인, 량심적인 자본가,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한 반일군중의 리익을 대표하는 인민의 정권,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쏘베트정권을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하는 사업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당 및 공청지도간부들이 조직성원들을 발동하여 인민혁명정부로선의 본질과 정당성을 해설선전하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며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책동에 경각성을 높이고 그들이 내리먹이는 좌경적인 시책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진행된 마촌회의는 정권건설분야에서 나타난 좌경적편향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철저히 옹호관철해나가는데서 일대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후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사업과 분공사업을 하여 당 및 공청지도간부들을 현지로 파견하시고 각지에서 벌어지고있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였다. 한편 쏘베트로선을 내리먹이거나 그에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나 사리정연한 론리로 설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소왕청의 마촌에서 동만특위서기 동장영을 만나 동만지방의 유격구들에서 쏘베트가 실정에 맞지 않는 정권형태라는것이 생활적으로 증시된 조건에서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결단을 내려 정권형태를 바꾸고 인민의 요구에 맞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혼란상태를 시급히 수습하여야 한다고 설득시키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군정간부들을 부르시여 쏘베트를 대신하는 혁명정권을 세울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시면서 통일전선적정부를 세우되 로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적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권형태를 인민혁명정부로 규정하신 다음 왕청 5구에서 먼저 시범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른 혁명조직구들에도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2(1933)년 3월 18일 가야허유격구 사수평마을에 가시여 왕청 제5구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는 집회를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난생 처음으로 제손으로 인민의 혁명정권을 세우게 된 유격구역인민들은 끝없는 감격과 환희에 휩싸여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인민들앞에서 《인민혁명정부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하여서는 광범한 반일력량을 하나로 결속할수 있는 새형의 정권, 인민혁명정부를 하루속히 수립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새 정권의 성격과 임무에 대하여 명백히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우리가 세우는 인민혁명정부는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하고 광범한 반일대중의 통일전선에 의거하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입니다. 인민혁명정부는 어느 임금이 다스리는 정권이 아니라 인민이 정권의 주인으로서 인민자신이 관리운영하는 정권입니다. 이 정부는 지주나 자본가나 어느 개인의 리익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 인민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고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민의 정권입니다. 이 정권은 농민들에게 땅을 주고 녀자들에게 남자와 꼭같은 권리를 주며 누구나 배우고 일하며 누구나 다 잘살수 있게 하는 정권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연설에서 인민혁명정부를 시급히 수립하기 위한 방도들과 인민혁명정부가 실시해야 할 제반 시책들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의 집회에서 인민의 의사에 따라 구인민혁명정부대표들을 선출하게 하시고 왕청 제5구인민혁명정부의 수립을 엄숙히 선포하시였다. 집회에서는 또한 10개 조항에 달하는 정부정강이 발표되였다.

 

사수평에서의 첫 인민혁명정부의 수립, 이것은 세계정권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새형의 혁명정권, 인민정권의 탄생이였으며 주체의 기치밑에 정권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다.

《녀성들도 모두다 힘을 합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왕청 5구에 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된 얼마후인 주체22(1933)년 4월 소왕청 마촌과 십리평에서 국제당파견원 반성위(본명 리기동)와 담화하시면서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의 부당성과 인민혁명정부로선의 정당성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그리고 이해 여름에 열린 로선전환을 토의하는 회의에서 인민혁명정부로선과 인민혁명정부의 시정방침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국제당파견원은 이 회의에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전적으로 지지찬동하였다.

 

로선전환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에 기초하여 쏘베트를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하고 유격구의 모든 지역들에서 쏘베트로선의 좌경적후과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가야허에서의 인민혁명정부수립과 로선전환회의를 계기로 하여 동만 각 현의 혁명조직구들에서는 인민혁명정부를 세우는 사업이 인민대중의 드높은 정치적열의속에서 진행되여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낮에 밤을 이어 쉬임없이 여러 유격구역의 혁명조직들을 찾으시여 인민혁명정부를 내오는 사업이 정확히 집행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소왕청유격구역의 서대포마을에 살던 한 로인은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면불휴의 로고에 대하여 회상하면서 장군님께서 그때 한번인들 편한 잠을 주무셨겠소, 마촌에서 떠나셨다면서 우리 집에 들리군 하셨는데 그때마다 언제나 장군님은 늘 새벽에 잠드셨소, 밤에 청림속을 오시다나니 옷이 비를 맞은것처럼 흠뻑 젖었드랬소, 그 옷을 쥐여짜서 그냥 입으시군 하시였소라고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주체22(1933)년 여름까지 두만강연안의 모든 유격구들에는 구인민혁명정부가 나오고 마을마다에는 촌인민혁명정부가 출현하였다. 조건이 성숙되지 못한 곳에서는 과도적형태로 농민위원회를 내오고 점차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하였다. 구인민혁명정부들에는 회장, 부회장, 9~11명의 집행위원을 두었으며 토지부, 군사부, 경제부, 식량부, 교양부, 통신부, 의료부 등의 부서들을 내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세우신 인민혁명정부는 로동자, 농민, 병사대중은 물론 청년학생, 지식인, 량심적인 자본가,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한 반일력량을 망라하고 그들의 리익을 대표하는 가장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새형의 혁명정권이였다. 인민혁명정부는 반제민족해방투쟁을 진행하고있던 당시의 조건과 유격구의 실정에 가장 알맞는 정부였으며 해방된 조국땅우에 세울 인민정권의 맹아였고 원형이였다.

 

            일화; ❖ 배격하신 《쏘베트》로선,녀회장이 사랑한 노래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3권 7장, 3. 쏘베트냐, 인민혁명정부냐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3권 7장, 4. 국제당파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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