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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뉘우친 변대우로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군 성원들을 여러곳에 파견하시여 농촌혁명화를 다그치게 하시는 한편 몸소 중부만주의 료하농촌을 혁명화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1930년 당시 농촌들을 혁명화하는것은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닦는데서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그것은 우리 나라 계급구성에서 농민이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사정과 관련되였다. 이것은 농민대중이야말로 로동계급과 더불어 혁명에 가장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는 계급이며 우리 혁명에서는 농민이 로동자와 함께 기본동력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료하농촌을 혁명화하시기 위하여 주체19(1930)년 10월 오가자로 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만에서 무장투쟁준비와 관련된 큰 회의를 소집하려고 하시였는데 당시 정세로 보아 그곳이 회의장소로는 불리하다고 생각되시여 장소를 오가자로 변경시키시였다.

 

원래 오가자는 살길을 찾아 헤매던 조선이주민들이 한집두집 모여 개척한 농촌인데 처음에 다섯호의 농가가 자리잡았다고 하여 오가자라고 불렀다. 그후 오가자를 중심으로 료하강변을 따라 여러 마을로 전개된 료하농촌에는 이무렵 조선농가 300여호가 있었다. 장춘에서 서남쪽으로 200여리 떨어진 이곳에는 민족주의세력이 깊이 뿌리박고있었다.

1920년대초부터 《선각자》로 자처하는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이곳에 눌러앉아 경제적기초가 없는 독립운동은 공허한것이니 군세만 확장할것이 아니라 농장을 만들고 산업을 진흥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리상촌》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마을에는 자치기관인 촌공회가 나오고 학교도 섰으며 농우회, 청년회, 소년학우회 등 대중조직들도 무어졌다.

 

오가자마을을 혁명화하면 중부만주일대의 농촌혁명화에 큰 영향을 줄수 있었으며 그 경험에 토대하여 만주 전지역과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 농촌마을들의 혁명화를 다그칠수 있었다.

그런데 오가자를 개척한 유지들은 자기들의 리념이나 주의주장과 맞지 않는 이색적인 사상조류가 들어오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가자를 혁명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유지들과의 사업을 잘하는것이라고 판단하시고 먼저 마을의 대소사를 총찰하는 변대우로인과의 사업을 진행하시였다.

 

변로인은 마을의 실권자로서 유지들을 조종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 독립군에도 참가하고 원동에 가서 공산주의운동도 한 견문이 넓고 고집이 센 늙은이였다. 변대우로인을 돌려세우지 않고서는 완고한 유지집단을 돌려세울수 없었으며 마을을 혁명화할수 없었다.

 

마을의 유지들이 늘 모여앉군 하는 자기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맞이한 첫날 그는 김형직선생님의 자제분이 와서 반갑다고는 하면서도 자기 견해를 력설하며 훈시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변로인이 리치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경우에도 반박하시거나 중단시키지 않고 례절을 지키시면서 참을성있게 들어주시였다. 그러자 그는 요새 젊은이들은 남이 열마디 하면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봉건이요, 뭐요하며 트집만 잡는데 성주와는 말할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하루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위대한 수령님을 초청한 변로인은 위대한 수령님께 김형직선생님께서 생존해계실 때 자기는 림강에서 식사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 자기가 변변치 않은 음식이지만 좀 차렸다고 인사를 하고나서 요즘 오가자의 청년들이 《리상촌》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동네에 붉은기를 날릴 생각만 하는데 청년들의 지도자인 성주는 우리 《리상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견해를 말해보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그에게 《리상촌》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이국에 쫓겨와서 방황하던 조선동포들을 한곳에 모여놓고 오붓이 살아보자고 꾸린것이 《리상촌》이겠는데 왜 나쁘다고 보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료하진펄에 이런 정도의 조선동네를 만들어놓은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로인님들이 마을을 꾸리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진정을 들은 변로인은 흡족해하면서 《리상촌》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여러모로 력설하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때야말로 《리상촌》에 대한 옳바른 관점과 립장을 세워주어야 할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변로인에게 자치기관을 꾸려놓고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조선사람들의 생활상편의를 도모하는 마을을 건설한것은 애국적인 소행이라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이런 마을을 건설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독립할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연방 대통을 두드리며 위엄만 뽑던 로인은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하고있다가 《독립은 못해.》라고 하면서 자네가 내 아픈 곳을 면바로 건드렸다고, 그래서 자기도 고민하고있다고, 《리상촌》을 건설해서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말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변로인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이국땅에다가 《리상촌》을 건설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인님들의 노력으로 오가자가 다른 고장에 있는 조선인부락보다 더 살기가 편한 동네로 된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조선사람들의 리상이 해결되였다고 볼수는 없다, 우리 민족의 리상은 왜놈도 없고 지주도 없고 자본가도 없는 독립된 나라에서 착취와 압박을 모르고 살았으면 하는것이다, 그런데 지주한테 빚을 지고 살면서 리상적으로 산다고 말할수 있는가고, 왜놈들은 조선민족이 리상적으로 사는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이 마을을 현상유지나 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마을이 아니라 조국광복을 위해서 싸우는 마을로, 혁명하는 마을로 개조하자는것입니다.》  

오가자를 혁명하는 마을로 개조하겠다고 하는데 특별한 방략이 있는가고 하는 로인의 말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동, 신안툰, 내도산, 카륜, 고유수 등 마을을 혁명화하시던 일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카륜회의에서 채택된 로선 특히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2천만을 결속시킬 그처럼 명철한 방략을 내놓으시였다는것을 알게 된 로인은 그이의 도량과 구상의 웅대함에 경탄과 감격을 숨기지 못하면서 연방 머리를 끄덕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후에도 여러날에 걸쳐 변로인의 집을 찾으시고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산업진흥이 독립의 유일한 길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의 부당성과 해독성에 대하여서도 깨우쳐주시면서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오직 2천만겨레를 각성시키고 그들을 투쟁에로 일떠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변로인은 나이는 비록 어리여도 위대한 수령님을 보통청년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보람없이 보낸 자기의 지난날을 가슴아프게 돌이켜보며 그는 모두 헛된 일이였다고 진심으로 뉘우치였다. 남에게 훈계만 할줄 알던 백발이 성성한 로인, 그처럼 도고하고 완고하던 변로인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보며 자기가 근 10년가까이 공들여 꾸려오던 《리상촌》을 서슴없이 내맡기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오가자의 혁명화를 위한 돌파구는 이렇게 열리였다. 그리하여 외부세계와 담을 쌓고있던 오가자에도 새로운 혁명적사조가 흘러들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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