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분묘앞에서​ 다지신 맹세

 

 

반일인민유격대 대오를 돌아보시는 조선공산주의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석녀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혁명의 시련의 시기마다 그 모든 로고와 심혈을 다하시면서 자신을 조국해방의 길로 떠밀어주신 어머님을 언제나 잊지 않고 끝까지 굴함없이 싸워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고 어머님의 념원, 온 민족의 념원을 이룩하시려는 맹세를 가다듬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그런 곡경에 처할 때마다 나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를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니가 하던 말씀과 흰옷을 입고 나를 바래주던 어머니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만원정기간에 어머님을 여의는 크나큰 불행을 당하시였다.

《조선의 어머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량강구에 돌아오신 후에 하루길이면 가닿을 집에도 들리시지 못하시고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다가 동지들의 간곡한 권고로 소사하에 가시여서야 비로소 이 비통한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소사하의 토기점골을 찾으신것은 주체21(1932)년 9월 하순이였다.

 

토기점골의 낯익은 외나무다리를 건느실 때면 매번 문을 여시고 반겨맞아주시군 하던 어머님이시였다. 그런데 이날만은 예상외로 문도 열리지 않았고 굴뚝에서 연기도 오르지 않았으며 가시물버치를 들고 부엌문으로 나들던 동생들의 모습도 보이시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장의 피가 일시에 얼어드는것과 같은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시며 걸음을 다그치시여 가까스로 문고리를 잡아당기시였는데 어머님의 침상이 있던 자리가 텅 비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발 늦었구나 하고 후회하시는 순간 김철주동생이 소리없이 다가와 그이의 어깨에 매여달리시였다. 그러시고는 왜 인제야 오는가고 하며 얼굴을 그이의 가슴에 마구 비비시면서 목이 메여 말끝을 맺지 못하시였다. 그 다음에는 나어리신 영주동생이 나타나시여 그이께 또 매여달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토방돌우에 들고오신 첩약꾸레미를 떨어뜨리시며 몸부림치는 두 동생을 그러안으시였다.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모든것을 죄다 설명해주고있었으니 어머님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더 물으실 필요조차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음을 가다듬으시고 철주동생에게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없으셨는가고 물으시는데 사립문을 열고 뜨락에 들어선 이웃집 김씨녀인이 김철주동지를 대신하여 강반석어머님의 유언을 전해드리였다.

《…내가 죽은 후에 우리 아들 성주가 오거든 내가 대하듯 해주세요. 왜놈들이 살아있고 조선을 독립하지 못한채 오거든 내 무덤을 파가지도 못하게 해야 해요. 아니, 문전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지요. 그렇지만 내 자식이라고 자랑은 아니지만 성주는 싸우다가 그저 돌아오지는 않을거예요.》

 

뜨거운 사랑과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열망이 담긴 어머님의 유언을 비통한 마음으로 전해들으시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뼈를 깎는것같은 아픔을 느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철주동생에게 어머님께서 너희들에게 남기신 말씀은 없으셨는가고 또다시 조용히 물으시였다. 김철주동지께서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목쉰 소리로 대답을 올리시였다. 《형을 잘 도와드리라고 했어요. 우리가 형을 잘 도와드리구 형과 같은 혁명가가 되면 지하에 가서도 편히 잠들수 있다구…》

 

이처럼 생애의 마지막순간에도 오직 혁명 하나만을 위해 모든 정신력을 바치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주체21(1932)년 7월 31일 마흔살을 일기로 거치른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나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동생을 데리고 그 길로 어머님의 묘소에 찾아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군모를 벗어쥐시고 어머님의 묘앞에서 절을 드리시였다.

(어머니, 성주가 왔습니다. 불효막심한 이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남만에 갔던 걸음이 늦어져서 이제야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의 말씀을 올리는 그이의 가슴은 미여지시는것 같았다.

 

그날밤 소사하의 한 지하조직원의 집에 숙소를 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등잔불밑에서 동생들과 함께 한밤을 지새우시면서 자신께서 어머님을 위해 기울이신 지성과 자식들을 위하여 바치신 어머님의 로고,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오신 어머님의 한생을 더듬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후날 어머니가 순수한 모성애만을 가지고있었다면 자신께서는 이처럼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어머니를 회고하지 못할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기울인 사랑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였다, 그것은 자식을 자기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나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전에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진실하고 혁명적인 사랑이였다, 어머니의 온 생애는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도 같은 생애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진정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강반석녀사는 일단 혁명을 시작한 사람은 인정에 끌리지 말고 오로지 목적한바를 실현하기 위해서만 노력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주신 혁명의 스승이시였고 자애로운 어머님이시였다.

부모자식들사이에 흐르는 사랑도 맹목적인것이라면 그것은 공고한 사랑이라고 말할수 없다. 사랑을 관통하는 정신이 순결하고 고결해야 그 사랑은 영원하고 성스러운것으로 될수 있다.

그 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강반석어머님사이에 오르내린 사랑을 줄기차게 관통한 넋은 애국이였다. 바로 그 애국을 위해 강반석녀사께서는 어머니로서 자제분들에게 효도를 요구하실수 있는 육친적권리마저 희생시키시였다.

 

그리운 어머님에 대한 가지가지의 추억들로 한밤을 뜬눈으로 지새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아침 소사하를 떠나시기 위하여 가슴찢기우는 아픔을 참으시며 동생들의 손목을 잡으시고 어머님의 산소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머님의 묘소앞에서 어머님께서 겪으신 하많은 고생, 어머님께서 조국을 위하여 바치신 그 모든 로고와 심혈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굴함없이 싸워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고 어머님의 념원, 온 민족의 념원을 이룩하시려는 맹세를 굳게 다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억누르시며 어머님의 유언대로 기어이 총대로 조국해방을 이룩하고야 말리라는 철석같은 맹세를 다지시면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동생들을 소사하에 남겨두신채 아픈 마음을 가시지 못하고 량강구로 돌아오시였다.

 

                일화: 어머님의 령전에 다진 맹세 이역땅의 주막집에서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2권 6장 7. 소사하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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